글/ 중국 윈난(雲南)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9년 ‘7·20’ 이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로, 올해 69세입니다. 수련한 지 23년 동안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줄곧 평온하게 세 가지 일을 해왔습니다. 제 수련 경험이 매우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대법 보서 『전법륜(轉法輪)』의 가르침에 따라 심성을 높이는 과정의 오묘함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어머니가 법을 얻은 초기의 기적
제 어머니는 근면하고 선량한 전통적인 가정주부셨습니다. 1927년생으로 배움이 없어 글을 모르셨고 전족을 하셨으며, 머리는 항상 단정하게 귀 뒤로 빗어 넘기셨습니다. 젊은 시절 집안이 가난해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았는데, 우리 5남매를 위해 당신의 몸을 모두 바치셨습니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온몸이 병투성이가 되셨는데, 약 20여 년간 하루에 푹 익힌 밥 한두 숟가락과 백화채, 상추 같은 몇 가지 한정된 중성 채소, 그리고 절인 무 한두 조각만 드실 수 있었습니다. 고기는 오직 푹 삶아 다진 것만 조금 드실 수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못 드셨습니다. 다른 것을 드시면 심장과 위, 배가 아파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계란찜이나 우유조차 드시지 못했습니다.
90년대 말 기공 열풍이 불던 시기,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을 고치려고 온갖 기공을 배워 어머니께 기를 내보내셨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1995년 대법이 우리 작은 현까지 널리 전해지고, 부모님이 공원에서 단체로 파룬궁을 연마하는 모습을 보시고서야 다행히 대법에 입문하게 되셨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60대셨고, 오랜 영양실조로 다리가 불편하셔서 전족한 작은 발로 걸으실 때마다 비틀거리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첫날 연공하실 때 동공(動功)을 완전히 마치셨고, 정공(靜功)은 표준 결가부좌로 30분을 하신 후 전혀 아프지 않고 매우 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공원에서 함께 연공하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이 할머니는 전족이신데도 가부좌가 참 보기 좋네요”라고 감탄했습니다. 제가 법을 얻고 나서야 그것이 사부님께서 연로한 새 제자를 격려하신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전법륜』이 출판됐을 때 아버지가 서점에서 보서를 모셔와 책 첫 페이지의 사부님 법상을 펼쳐 보이시며 “여보, 이분이 바로 우리 사부님이야”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사부님 사진을 보시자마자 “어머, 신기하네. 이 선생님은 내가 본 적이 있어요! 어느 날 가부좌하다가 눈을 떴더니 이 선생님이 베란다에 서서 나를 보며 빙그레 웃고 계셨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법을 얻지 못해서 정말 신기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어머니가 사부님의 법신을 뵌 것임을 알고, 어머니가 정말 행복하셨다고 느낍니다.
어머니는 연공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식사가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고기, 우유, 계란은 물론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소화가 어려운 밤과 땅콩까지 모두 드실 수 있게 되셨고, 점점 기력도 생기셨습니다. 전족으로 어디든 마음대로 다니실 수 있었고 부축도 필요 없었습니다. 글을 모르셨는데도 『정진요지(精進要旨)』 전체를 통독하실 수 있었는데, 언니가 어떻게 글을 아시냐고 묻자 아버지가 읽어주시는 것을 들으니 알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우리는 모두 믿기 어려워했습니다. 어떻게 며칠 만에 그렇게 많은 글자를 알 수 있을까요! 나중에야 대법이 어머니께 지혜를 열어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의 대법에 대한 인식은 줄곧 병을 없애고 건강을 지키는 감성적 인식에 머물렀고, 법리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 심성 고비에서도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일거사득(一擧四得)의 법리에 따라 심성을 제고하지 못하셨고, 큰 병업 고비가 나타났을 때는 결국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의사들은 어머니를 온갖 검사를 한 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이 할머니는 오장육부를 다 검사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고, 혈압도 정상이며 심장은 젊은이보다 더 좋은데, 왜 아픈 상태인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그저 힘들어하시는지 말입니다. 오빠가 의사의 말을 어머니께 전하자 어머니는 전혀 깨닫지 못하시고 오히려 오빠를 나무라며 “내가 가짜 병으로 너희를 괴롭힌단 말이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시 아직 법을 얻지 못해 어머니를 도와드릴 수 없었고, 다만 인지상정으로 위로해드릴 뿐이었습니다.
2002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는 법을 얻었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어머니가 겪으신 일들을 돌이켜보니 사부님께서 이미 『전법륜』에서 분명히 말씀하신 것을 발견했습니다. ““스승님, 저는 어찌해서 어디나 다 불편한지 늘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도 소용이 없고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내게 말한다! 그건 물론 소용이 없다. 그것은 병도 아닌데 소용이 있겠는가? 당신이 가서 검사해 보라. 병은 없는데, 당신은 괴롭기만 하다.” 알고 보니 사부님께서 어머니의 신체를 정화하고 수명을 연장해주신 것인데, 어머니가 법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리신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일생을 돌이켜보면 법을 얻으신 그 3년이야말로 평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으며, 우리는 사부님께 한없이 감사드립니다.
기침과 함께 입에서 금빛을 뿜어내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심한 기관지염을 앓아 매년 가을겨울 환절기마다 심한 기침으로 고생했고, 해마다 병원에 다녀도 해마다 재발했습니다. 제가 막 법을 얻었을 때 사부님께서 제 신체를 정화해주셨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때 밤낮없이 심하게 기침을 해서 눈앞에 별이 보일 정도였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기침으로 내장이 제자리를 벗어난 것 같았고, 때로는 소변도 참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잠잘 때도 똑바로 누울 수 없어 이불을 머리맡에 받치고 반쯤 앉아서 잠깐씩 눈을 붙였습니다.
신기한 것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증상이 가벼워져 정상적으로 일하고 생활하며 수련의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토요일과 일요일이 되면 증상이 심해졌습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자 저는 사부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절묘하게 안배하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제자가 업을 없애면서도 일과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느 날 밤, 이불에 기대어 쉬다가 또 심한 기침에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기침과 함께 입에서 한 줄기 한 줄기 금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봤습니다. 처음엔 기침으로 눈이 어른거리는 줄 알고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비벼봤더니, 또다시 금빛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분명히 봤는데, 입에서 나오는 금빛이 마치 설날 아이들이 터뜨리는 불꽃놀이처럼 제 기침과 함께 멀리까지 뿜어져 나갔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바로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대로 제자의 신체를 정화해주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아무리 기침이 심하고 괴로워도 흔들리지 않고 확고하게 사부님과 법을 믿었습니다. 점차 기침이 1년에 몇 번에서 몇 년에 한 번으로 줄어들더니, 어느새 20년 동안 기관지염 증상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포기하다
2003년 전국적으로 직원들이 대거 실직하는 추세 속에서 저와 남편도 잇따라 실직했습니다. 아이는 아직 중학생이었고, 온 가족이 수입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지역사회 조사를 거쳐 우리 가족이 무소득 가정으로 확인되자,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매월 120위안의 보조금을 받게 됐습니다.
당시 제 나이는 애매한 나이였습니다. 은퇴하기엔 아직 젊고, 일자리를 구하자니 고용주들이 나이가 많다고 꺼렸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로 저는 곧 한 사기업에서 회계로 일하게 돼 매월 400위안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비록 적은 돈이었지만 수입이 생겨 생활 걱정은 없어졌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수련의 길에서 확고히 걸으면서 평온하게 세 가지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고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법공부와 연공, 심성 수련을 통해 수련 전의 여러 질병들이 치료 없이 나았지만, 자궁근종 출혈 증상만은 매달 여전히 장시간 지속돼 다리에 힘이 빠져 걸음을 떼기 어려웠습니다. 처음엔 업을 없애는 과정이니 업이 다 없어지면 좋아질 것이고, 세 가지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다섯 가지 공법을 한 번에 다 연마하고, 꾸준히 대면해서 일대일로 진상을 알렸습니다. 친척들에게, 친구와 동창들에게, 상사와 동료들에게, 장보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알렸습니다.
이렇게 2년 가까이 지속했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매달 출혈량은 오히려 점점 많아졌습니다. 저는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혹시 심성이 어느 층차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심성을 높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저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명정리(名·情·利)를 하나하나 찾아보자.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명예를 중시하는가? 별로 상관없다. 정은? 보서 『전법륜』을 통해 사람마다 각자의 운명이 있다는 법리를 이미 알고 있다. 그럼 기초생활수급비 문제는 어떤가? 이것이 이익심은 아닐까? 지금 나는 매달 400위안의 월급이 있으니 더는 수급비를 받아서는 안 되고, 그 돈은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남겨둬야 한다. 이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도 하지 않고 이튿날 바로 지역사회 직원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포기하러 왔다며, 일자리를 구해 매달 400위안의 수입이 있으니 이 기회를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게 양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역사회 직원들은 모두 놀라며 감탄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좋으실 수 있어요? 우리는 온갖 방법으로 수급 신청을 하거나 거짓 서류를 만들어 속이는 사람들만 봤지,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분은 처음 봅니다.” 지역사회 주임은 존경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며 “당신의 행동은 정말 대단합니다. 표창을 받을 만해요”라고 하면서 신문사에서 개인 인터뷰를 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원래 이것은 진상을 알릴 가장 좋은 기회였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는 두려운 마음이 너무 크고 정념이 부족해 감히 모든 사람 앞에서 제가 대법제자이고 우리 사부님께서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다시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나중에 기회를 찾아 일대일로 지역사회 주임과 직원들에게 각각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모두 대법이 좋고 공산당이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그 후로 자궁근종으로 인한 매달 대량 출혈 증상이 점점 약해지더니 어느새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나가서 진상을 알린 후 목에 걸린 생선가시가 사라지다
저는 어릴 때부터 생선을 유독 좋아했는데, 국이든 구이든 볶음이든 어떤 요리법이든 다 좋아했습니다. 예전에 이것이 집착심이니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너무 좋아해서 법에서 스스로를 위한 변명거리를 찾았습니다. 제멋대로 ‘내 수련 층차가 아직 낮아서 먹을 수 없는 때까지는 아직 멀었어’라고 생각하며 마음 편히 계속 생선을 먹었습니다.
어느 날 구운 생선을 먹다가 갑자기 생선가시 하나가 목구멍 왼쪽에 걸렸습니다. 손으로 목구멍을 눌러 뱉어내려 했지만 소용없었고, 삼키려 해도 안 됐습니다. 급히 밥을 한 덩이 먹어 가시가 함께 내려가길 바랐지만 역시 소용없었습니다. 다시 부추를 가져와 씹지 않고 덩어리째 삼켰지만, 부추는 내려갔어도 가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순간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자 깨달았습니다. ‘수련인에게 우연한 일은 없지 않은가? 사부님께서 생선 먹는 마음을 없애라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서둘러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밤 12시 정념을 내보낸 후 사부님 법상 앞에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부님 법상을 향해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진작에 생선 먹는 집착을 없앴어야 했는데, 앞으로는 절대 집착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고개를 비틀고 고통스럽게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양치질할 때 목이 아프고 피까지 나와 속인의 마음이 단번에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면 어쩌지? 차라리 병원에 가서 빼달라고 하자. 어차피 병도 아니니까.’ 병원에 가서 접수하고 진료실에 갔습니다.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자 의사는 설압자로 혀를 누르고 등불 아래서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가시를 찾지 못했습니다. 기계를 사용해야 가시를 찾을 수 있다며 입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를 깨우쳐주시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속인의 방법으로 수련인의 일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 생각이 들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장시간 정념을 내보내고 법공부와 연공을 하며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더니 좀 편해졌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무슨 생선가시든 통증이든, 내 마음을 흔들 생각 마라. 나는 구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사부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니 나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고 편안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을 계속 하겠다.’
그날 점심에 저는 사람을 구하러 나갔습니다. 농산물시장 입구에서 호박씨를 파는 중년 여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진상을 알리면서 호박씨를 샀습니다. 그녀는 진상을 알고 중공 악당의 소선대에서 탈퇴하기로 했고, 기쁘게 자신의 호박씨가 얼마나 좋은지, 향긋하고 달콤하니 맛보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무심코 하나를 까서 평소처럼 삼켰는데, ‘어?’ 그제야 생선가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감격해서 두 손을 합장하고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제자가 심성을 높이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그 업력을 가져가 주십니다.
원망심이 사라지자 피부병이 사라지다
2017년 8월 22일, 남편이 갑자기 뇌졸중에 걸려 여러 곳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눈이 비뚤어지고 손발이 불편하며 말이 어눌한 후유증이 남았습니다. 병세가 진행되면서 점점 그는 이름만 그대로일 뿐 외모, 성격, 성질, 입맛, 취미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생활을 독립적으로 하기 어려웠지만 성질은 매우 난폭해져서, 제가 돌보는 것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격노하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저는 매일 팽이처럼 바쁘게 돌아다니며 세 가지 일을 빠뜨리지 않고 하면서도 장보고 밥하고 남편을 돌봐야 했고, 종종 이유 없이 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저의 원망심이 올라왔습니다. ‘당신은 젊었을 때 나를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데, 내가 대법을 수련한 덕분이지 아니면 당신을 돌보지도 않았을 거야. 지금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당신을 돌봐야 하는데, 화장실 가는 것만 겨우 혼자 할 수 있고 모든 게 다 내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나를 아껴주거나 고마워하기는커녕 욕까지 하다니. 내가 수련하지 않았다면 누가 당신을 돌봐주겠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저를 욕할 때마다 저는 속인의 이치로만 옳고 그름을 따지며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망심의 시작인 줄도 모르고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꿈을 꿨는데, 한 파출소 입구에 갔더니 파출소에서 사나운 큰 누런 개가 튀어나와 저를 덮쳐 얼굴이 땅을 향하도록 엎드리게 했습니다. 개의 앞발 두 개가 제 허리 양쪽을 꽉 누르고, 개 입이 제 목덜미에 있어서 그것이 내뿜는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마치 제 목을 물어뜯으려는 것 같았습니다.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놀라 깨어났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꿈이 너무 생생했습니다. 파출소 입구에서 개에게 덮친 꿈, 저는 사부님께서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릴 때 안전에 주의하라고 일깨워주신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대량으로 법공부하고 집중적으로 장시간 정념을 내보내며, 동시에 대법의 요구에 따라 안으로 찾으며 제가 발견한 각종 집착심을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원망심만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이 원망심은 마치 방 안의 투명한 코끼리처럼 제 마음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컸지만 저는 볼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제 목 뒤 오른쪽, 허리 양쪽, 왼쪽 허벅지와 종아리, 두 팔 등에 모두 두껍고 큰 덩어리들이 생겼는데, 일반인들이 말하는 건선 같은 것이었습니다. 특히 목 뒤 오른쪽과 허리 양쪽의 건선 모양은 개 입과 개 발톱 모양과 똑같았습니다. 온몸이 뜨거웠는데 더울수록 가렵고, 가려울수록 긁고 싶어서 피가 날 때까지 긁어야 조금 나아졌습니다. 낮에 정말 가려워 참기 어려울 때는 찬물로 두드려 온도를 낮추면 잠시 완화됐고, 최대한 긁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면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막 잠들려 할 때마다 가려워서 깼고, 한번 긁으면 그 부위가 즉시 두꺼워지면서 더 가렵고 아팠습니다. 더우면 더 가려워서 이불을 덮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찬바람을 쐬어야만 잠들 수 있었습니다. 정념도 제대로 내보내지 못하고 법공부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세 가지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습니다. 자신의 심성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몰라 그저 무력하게 감당할 뿐이었습니다.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저는 한 가지 생각만 지켰습니다.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정념입니다. ‘만약 제가 생생세세 지은 업력이라면 감당하고, 만약 구세력의 박해라면 정념으로 부정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는 사부님의 진수 제자가 되어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걷겠습니다.’
4년여가 지난 2022년 2월, 남편이 간이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했더니 의사가 간암 말기로 최대 3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순간 그에 대한 모든 원망이 사라지고, 병상에 누워 아파서 웅크린 그가 불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저는 수련인의 기준으로 그를 잘 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생애 마지막 날들에 원망 없이 그를 돌봤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그가 어떻게 욕을 해도 최대한의 자비로 그를 돌보고 간호했으며, 시시각각 수련인의 기준으로 모든 일을 대했습니다. 제가 법을 읽어주는 것을 거절해도 더는 원망하거나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사람은 제각기 운명이 있다”는 법리를 깊이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해 동안 저를 괴롭혔던 피부 건선이 모두 나았습니다. 그제야 모든 것이 저의 원망심이 불러온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남편이 이치 없이 욕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제게 심성을 높일 기회를 안배해주신 것인데, 어리석은 제자는 이런 기회를 헛되이 놓쳤고, 이런 기회는 한번 놓치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쓰면서 깨달은 것은, 오직 만나는 사람과 일에 대해 최대한의 선념으로 대해야만 원망심을 없앨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어떤 인연이든, 그 일에서 내가 옳든 그르든, 모두 마음을 닦고 업을 없애는 좋은 기회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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