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사부님의 홍대하고 자비로운 보호와 법공부 팀 수련생들의 전체적인 정념의 도움으로 단 하룻밤 사이에 생사의 고비를 넘긴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실정을 살피지 않고 수련생을 원망하다
우리가 단체로 법공부하는 시간은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4시 정도까지입니다. 2월 26일 그날 법공부가 끝난 후 저는 일이 있어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제가 떠난 후 협조인이 제안했습니다. 당시는 중공 악당의 양회(兩高,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 기간이므로 법공부 장소의 안전을 위해 임시로 조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다른 곳에서 법공부하고 악당의 양회가 끝나면 이 법공부 장소를 다시 회복하자고 했습니다. 통지받지 못한 수련생들은 법공부 장소 주인인 A가 다음 주 아침에 새 장소로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당시 법공부 장소의 수련생들은 모두 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음 주 법공부 날, 저는 예정대로 도착했습니다. 주인 A가 오늘은 세 사람만 법공부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매우 이상했습니다. ‘어째서 세 사람뿐이지?’ A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해요. 그 아파트는 경비가 없어서 비교적 안전하거든요.”
이때 C 수련생도 왔습니다. A가 또 앞의 말을 C에게 전했습니다. C가 말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법공부해요. 어디도 가지 않을 거예요.” 저와 C는 이전의 임시 조정을 전혀 몰랐습니다. 사실 협조인은 법공부 장소를 위해, 수련생을 위해 생각한 것이니 본래는 선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두려운 마음이라고 여겨 매우 반감을 가졌고 마음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 세 사람도 법공부할 수 있어요. 세 사람이면 무리를 이루죠.” 우리는 발정념하고 ‘논어’를 외우며 법공부했습니다. C는 정오 발정념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후에는 저와 A가 계속 법공부하고 끝낸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원망심의 교란으로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자신이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왜 이렇게 분개하는가? 혹시 내게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닌가? 어디서 잘못된 것인가?’ 대신 계속해서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났습니다. ‘멀쩡한 법공부 팀인데, 그녀가 막 협조인이 되자마자 몇 명 안 되는 팀에서 네 명을 데리고 가버렸네.’ 제 원망이 도무지 가라앉지 않아 법공부도 집중이 안 되고 교류문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상태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이 원망심이 나온 것임도 알았습니다. 이런 마음은 수련인이 반드시 제거해야 할 마음이며 구세력에게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저는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 꿇고 말했습니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원망심은 제가 아닙니다.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련생들과는 일주일 후에야 만나 교류할 수 있습니다. 그때쯤이면 악당의 회의도 끝날 것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안으로 찾는 것을 들어보고 덩달아 저도 찾아보려고 생각했습니다.
고비가 겹치고 마음이 평온치 못해 스스로 빠져나오기 어려워져
이후 수련생들과 만난 후 저는 말했습니다. “여러분 돌아왔군요. 저는 안 돌아올 줄 알았어요.” 말투가 분명히 선하지 않고 원망이 섞여 있었습니다. 뜻밖에도 협조인은 이 일을 언급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우리 아무개 수련생의 일에 대해 교류해 봅시다.”
그녀가 언급한 것은 제 며느리와 관련된 일이었는데, 이전에 저와 교류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사는 곳은 아들, 며느리의 집인데 며느리는 직장이 없습니다. 저는 매달 제 월급에서 일부를 떼어 집세, 수도전기료, 관리비를 포함해 그들에게 주는데, 마치 제가 집을 임대한 것과 같습니다. 협조인은 이것이 대법 자원이니 대법의 각도에서 이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며느리가 수입이 없으면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회 문제라고 알려주며 물었습니다. “저는 50세에 퇴직했는데 당신은 몇 살에 퇴직했나요?” 그녀도 50세에 퇴직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 며느리는 벌써 51세가 다 되어가는데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이렇게 오랫동안 지내왔는데 갑자기 돈을 주지 않거나 적게 준다면 필연적으로 가정 갈등을 일으킬 겁니다. 가정도 우리의 수련 환경입니다.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가족을 선하게 대하고 가정관계 환경을 잘 처리해 대법을 잘 수호해야 합니다. 지금은 대학 졸업생도 일자리를 못 구하는 거 아시죠? 젊은이들도 일자리를 못 찾는데 하물며 중년은 어떻겠습니까?” 저는 매우 불만이었습니다. ‘자신은 안으로 찾지 않으면서 오히려 다른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내는구나.’
집에 돌아온 후에도 저는 여전히 제대로 안으로 찾지 않고 오히려 협조인을 더욱 원망하며 불평을 늘어놓고 듣기 싫은 말을 했습니다. 저도 ‘또 옛날 병이 도졌구나’라고 생각하며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사부님! 제가 사부님을 기만하려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넘어가지 않습니다!’ 저는 상심하고 괴로워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자신의 잘못을 찾은 것이 아니라 극도로 강한 사심과 사념을 갖고 한결같이 남의 잘못을 찾으며 그 집착심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부풀린 것이었습니다. 아, 이것이 자신을 수련하는 것입니까?
대법이 기적을 드러내 병업이 하룻밤에 사라지다
3월 26일, 저는 일찍 연공을 마치고 아침을 먹은 후 서둘러 법공부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9시가 넘어 법공부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11시쯤 되자 제가 법을 읽다가 줄을 건너뛰고 어디를 읽는지 몰랐습니다. 수련생이 찾아준 후 얼마 안 되어 또 어디를 읽는지 몰랐습니다. 수련생들도 뭔가 이상함을 알아차렸습니다. 중간에 화장실에 갔는데 걸음걸이가 비틀거렸습니다. 수련생이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급히 따라왔는데 저는 당시 비교적 정신이 또렷해서 “괜찮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정오에 준비해온 간식을 조금 먹은 후 저는 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고 기본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뒤에 일어난 일은 전혀 모릅니다. 뒤의 일은 모두 수련생이 회상해준 것입니다. 당시 상황은 제 얼굴이 온통 붉어지고 춥다가 덥다가 하며 이마는 뜨겁고 손발은 뻣뻣하며 의식이 또렷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략 2시쯤 수련생이 저를 위해 발정념을 했는데,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보니 제 등 뒤에서 앞뒤로 남자 마귀 두 명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수련생들이 사부님께 가지와 정념을 청하여 두 남자 마귀를 무생지문(無生之門)으로 쳐넣었습니다. 그 후 또 제게 사부님 경문 ‘법난(法難)’을 읽으라고 했는데 제가 읽은 것이 전혀 들리지 않아 읽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함께 ‘논어’를 외우라고 했는데 저는 가끔 두세 구절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따라갈 수 있었고 기본적으로 외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련생이 반복해서 저와 함께 ‘논어’를 몇 번 외운 후, 수련생이 또 사부님의 법을 외우라고 했습니다. “쩐싼런(真善忍) 세 글자 성언(聖言) 법력(法力)이 무한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진정으로 외면 만겁(萬劫)이 즉시 바뀌네”(홍음4-대련). 저는 계속 외우지 못했습니다.
오후에 제 체력은 점점 더 떨어지고 몸이 아래로 처졌습니다. 수련생이 저를 옮기려면 반드시 세 사람이 필요했는데, 한 사람은 뒤에서 제 겨드랑이를 받쳐 힘껏 위로 끌고, 두 사람은 제 두 다리를 안고 힘껏 위로 들어야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A는 상황을 보고 제가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라고 생각해 특별히 죽을 끓여 제게 직접 먹으라고 했는데, 저는 숟가락을 들고도 움직이지 못했고 손이 말을 듣지 않아 수련생이 할 수 없이 반 그릇 정도 죽을 떠먹여주었습니다.
4시가 넘어 수련생들이 단체 발정념을 한 후 또 저를 위해 한 차례 발정념을 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아직 일어설 수 있었고 부축을 받으며 걸을 수 있었으며 화장실도 스스로 갈 수 있었습니다. 5시쯤 수련생이 또 저와 함께 제1장 공법을 연마했습니다. 제 동작은 규범적이지 않았지만 상황이 다소 호전된 것으로 보였고, 저녁은 식탁에 앉아 스스로 먹었습니다. 식후 수련생이 저를 소파에 눕게 했는데 두세 시간 누워 있었습니다. 대략 8시 반쯤 수련생이 저를 깨워 사부님의 ‘광저우 설법’ 녹화를 보게 했습니다. 대략 10시 반쯤 사부님 설법을 다 봤습니다. 수련생이 저를 씻겨준 후 부축해 침대에서 쉬게 했는데, 제가 침대 가에 앉아 발을 들어 올리지 못하자 세 수련생이 매우 힘들게 저를 침대로 옮겨주었습니다. 제가 누운 후 수련생들은 각자 자기 일을 하러 갔는데, 잠시 후 어떤 수련생이 제가 헛소리하는 것을 듣고 모두 급히 모여 들었지만 제대로 듣지 못해 수련생들 마음이 불안정해졌습니다. A가 말했습니다.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남은 몇 수련생이 함께 무릎 꿇고 마음속으로 묵묵히 사부님께 수련생을 구해달라고 청했습니다.
향을 올린 후 모두 제 아들과 며느리에게 알릴지 상의했습니다. 그때 거의 밤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A가 말했습니다. “그만하죠, 내일 다시 말합시다.” 이렇게 관건적인 시각에 수련생들이 안정을 유지했습니다. 시간이 되어 단체 발정념을 한 후 수련생이 또 저를 위해 발정념을 했습니다. 제가 거의 3시까지 자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 몇 번 일어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련생을 깨웠고, 양쪽에 한 수련생씩 손을 내밀어 저를 끌어 일으켰습니다. 이번에는 좀 정신이 들었고 약간 힘도 쓸 수 있었습니다. 손으로 침대를 짚고 앞으로 이동했고, 내려온 후 수련생이 저더러 걸으면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했습니다. 침대로 돌아온 후 수련생이 또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오직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만 외우라고 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7시쯤 잠에서 깬 후 또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습니다. 수련생이 들어와 저를 부를 때 저는 말했습니다. “저 나았어요.” 제가 정신이 맑아지자 수련생들이 모두 저를 위해 기뻐했습니다. 제가 하룻밤 사이에 생사의 고비를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 생명을 구해주신 것입니다. 사부님은 제자의 보답을 바라지 않으시니 저는 오직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해 사부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정신이 맑아진 후 저는 자발적으로 법공부 장소에서 수련생들과 교류했습니다. 진정으로 의식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자신의 강렬한 원망심에 질투심이 뒤섞여 조성된 것으로,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하여 하마터면 대법에 손실을 조성할 뻔했습니다. 만약 이 일이 집에서 발생했다면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는 혼자 살고 있습니다(아들, 며느리가 곁에 없음). 제 사돈댁도 혼자 살다가 무슨 원인인지 모르게 육신이 집에서 죽어 당시 대법에 매우 큰 부면적인 영향을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바로 저의 한 면 거울입니다. 어쩌면 그녀의 집착과 제 집착이 유사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 주변에서 발생한 일은 우연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에게 아직 내려놓지 못한 어떤 집착이 있는지 찾아보고, 그중에서 교훈을 얻어 법에서 제고해 올라와 정법 과정을 따라가며 자신을 잘 수련해야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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