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읽고 생각한 것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명혜망에 실린 서양 수련생이 쓴 ‘수련의 각도에서 본 션윈이나 페이톈을 떠나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읽고, 자유롭고 여유로운 해외에도 그런 사람이 나타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중국의 혹독하고 억압적인 환경을 너무 많이 겪어서, 나는 예전에 늘 션윈과 페이톈의 환경을 부러워했고, 그런 곳에만 가면 그토록 좋은 수련 환경에서 서로 도우며 누구든 순탄하게 수련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이제 보니 나는 사람의 관념으로, 사람의 각도에서 수련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법 수련의 엄숙함과 진수(眞修), 실수(實修)의 중요성을 느낀다. 아무리 좋은 수련 환경이라도 스스로 진수, 실수해야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수련은 고생을 해야 한다. 인간 세상에서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수련할 수 있다. 수련하지 않는 속인도 무슨 큰일을 이루려면 많은 고생을 하고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정욕과 업력으로 가득한 사람이 신이 되려 하는데, 그것도 대법이 만드는 위대한 신이 되려면서, 기쁘고 편안하게, 안일하게, 모든 걸 자기중심으로 하고 남들이 다 내 뜻대로 따라주면 수련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에 지배된 망상일 뿐이다. 우리 대법제자 단체는 수련하는 단체지, 겉으로 즐겁고 향락을 추구하는 속인들의 클럽이 아니다.

수련이란 다양한 심성의 갈등과 마찰, 각종 난 속에서 자신이 수련인임을 떠올리고, 끊임없이 법에 비추어 안으로 찾으며, 계속해서 여러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부단히 승화하고 제고해야만 최종적으로 원만에 이를 수 있다.

비교적 자유롭고 여유로운 해외 환경에서는 중국처럼 고압적이고 잔혹한 납치와 구금 박해는 없지만, 수련의 시험과 정법시기 대법제자에 대한 기준은 똑같이 극도로 엄격하며, 오히려 외부 환경이 상대적으로 여유롭기 때문에 요구가 더 엄격할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장기간 바른 믿음(正信)이 없고 진수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구세력에게 도태되는 ‘모래’가 될 수 있다.

사실 20여 년의 잔혹한 박해를 거쳐온 대법제자들, 특히 어려운 수련 실천 속에서 이미 근본적으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세운 대법제자들에게는, 사부님과 대법을 모독하고 비방하는 모든 것들이 우스꽝스럽고 슬프고 불쌍하게 느껴진다. 저급한 사람의 정과 사람 마음에서 나온 그런 것들은 이미 이런 대법제자들에게 교란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런데 왜 여러 해 동안 계속 난법자들, 불만을 터뜨리는 자들과 그들의 법을 어지럽히고 파괴하는 언행이 끊임없이 나타나는가? 이런 사람들을 조종하는 구세력은 무엇을 노리고 오는가? 내가 보기에 주로 근본적으로 아직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세우지 못하고 오래도록 진수(眞修), 실수(實修)하지 않는 사람들을 겨냥해 온 것이다.

해외를 여러 번 다녀온 한 수련생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녀가 아는 어떤 해외 국가에서 우리 대법제자가 운영하는 매체에는 오랫동안 법공부도 하지 않고 연공도 하지 않으며, 수련 개념이 없고 기본적으로 명혜망도 보지 않는 젊은 수련생들이 많다고 했는데, 그 수련생은 이것이 개별 현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심지어 오래도록 갈등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큰 난관을 넘지 못하면 사부님을 의심하고 원망하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장기간 법공부를 하지 않거나 법공부를 해도 법을 얻지 못하고, 수련 개념이 없으면 자신이 만나는 모든 갈등과 난을 수련의 각도에서 볼 수 없고, 안으로 찾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며, 반드시 사람의 정, 사람의 마음, 사람의 생각으로 주변의 사람과 일을 대하게 된다. 수련 중 본래 자신을 제고시킬 수 있는 인간 세상의 ‘고통’을 자신에 대한 불공정으로 여기면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본질적으로 자신을 바꿀 수련 기회를 한 번 또 한 번 놓치고, 그에 상응하는 업력도 없애지 못하며, 질투, 원망, 증오 등 사람 마음이 사악에 의해 강화되고 확대되어 갈수록 정념으로 자신을 주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수련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이 일단 수련에 들어서면 인생의 길을 사부님께서 이미 바꾸고 새롭게 안배하셨다. 수련 중 한 관을 넘지 못하면 다음 관이 또 온다. 이렇게 난관과 업력이 많이 쌓이면, 법에서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넘기가 정말 어려워진다. 결국 수련을 포기하고 완전히 떨어질 수 있는데, 이런 사례가 너무 많다. 이때 이런 사람이 일단 난법자나 사오(邪悟)자와 접촉하게 되면(여러 해 동안 우리가 본 바로는, 구세력과 중생을 훼멸하려는 사악도 온갖 방법으로 그들을 접촉시키려 한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더욱 미혹되기 쉽고, 그러면 대법과 완전히 대립하는 쪽으로 가서 사마(邪魔)에 조종당해 법을 파괴하고 중생을 훼멸하는 온갖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그(그녀)가 깨닫는 날, 자신이 훼멸한 무량한 중생과 지은 무량한 죄업을 마주하고, 생명으로 보증하며 서명한 서약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 그것은 어떠한 고통과 후회일까? 진수하지 않으면 정말 너무 위험하다.

또한 내 생각에는, 모든 난법자와 사오자가 만들어낸 것들에 대해 우리 국내외 모든 대법제자는 호기심을 갖고 보거나 듣지 않는 게 최선이다. 사람의 면에서 말하면 나쁜 것에게 이른바 조회수를 늘려주는 것이고, 높은 층차에서 말하면 사악에게 에너지를 더해 그들을 더욱 ‘득의양양’하게 만드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어떤 시장도 주지 말고, 동시에 정념으로 그들을 조종해 이성을 잃고 나쁜 일을 하게 만드는 모든 사마를 제거하는 것이 우리가 올바르게 해야 할 일이다.

약간의 개인 인식이니 부족한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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