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지난 기간 항목 팀에서 활동하면서 전화나 대면으로 진상을 알릴 때 말을 꺼내는 시기, 단어 선택, 심지어 말투와 태도까지도 삼퇴(탈당·탈단·탈대) 권유 결과를 좌우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기에 아무리 훌륭한 전화 대본이라도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해봤습니다. ‘만 가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얼마 전 전화팀 교류회를 통해 이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이 떠올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만약 틀리거나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1. 스스로 확신하는 말로 전심전력을 다해 상대를 위하기
전화를 걸거나 길에서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일반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지가 매우 중요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비슷한 인사말을 계속 쓰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가 약해지는 듯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각자 편안하고 자신감 있게 시작할 수 있는 인사말이 필요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전화한 이유(예: 축복 전하기 등)를 밝힌 후, 절기나 명절, 시사 등으로 화제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준비된 대본을 사용한다면 반드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전통적인 좋은 문구라도 내가 쓰고 싶지 않거나 효과적이지 않다고 느낀다면, 어쩌면 안으로 찾아볼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어떤 관념이 가로막고 있는지, 아니면 어려움을 두려워해 내용을 외우려 하지 않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상적인 도입부는 상대방이 ‘이 낯선 사람이 나를 걱정해서 전화했구나, 내 안부를 위해서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좋은 통화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상대를 위한다’고 하면 분명 모두가 그런 마음일 것입니다. 상대를 위하지 않는다면 왜 시간을 들여 전화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일방적으로 ‘진심으로 위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상대가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다릅니다.
이 문제를 생각하다가 마치 바다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다에서 아무리 애써도, 주먹질하고 발길질해도 바닷물을 조금도 바꿀 수 없고, 바다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평온해지면 바다의 광활함과 바닷물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바다처럼 넓다면, 상대의 감정이나 부정적 반응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까요? 좌절감을 느끼게 할까요? 우리가 오히려 상대를 차분하게 만들고 우리의 진심과 선의를 느끼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2. 평온한 마음가짐
전화할 때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삼퇴를 권할 때 ‘상대가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거부할 것이다, 두려워할 것이다, 우리를 반정부 세력으로 볼 것이다’라는 걱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은연중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다만 전화 대본을 충분히 준비하고 상대의 반응도 예상했다면 좀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수련생들이 전화하는 것을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만약 전화할 때 마음을 좀 더 편안히 가진다면, 마치 그리 친하지는 않지만 특별히 관심을 갖고 따뜻함과 희망을 전하고 싶은 친구와 대화하듯 한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과 어조로 말하게 될까요? 상대는 우리와 전혀 모르는 사이이므로 부모님의 잔소리나 선생님의 가르침, 상사의 훈계 같은 전화를 기대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이념을 강요하거나 민감한 화제임을 의식해 에둘러 말하는 것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좀 심하게 표현했을지 모르지만, 이런 마음가짐을 피하고 친구와 수다 떠는 마음으로 대화한다면 더 좋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전화를 거는 수련생들은 모두 알고 있듯이 매 통화 기회가 정말 소중합니다. 이 사람이 다음에 언제 진상을 알 수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 초조, 조급함을 갖고 말한다면 이런 정보가 상대의 공간장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지닌 에너지는 매우 강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비롭지 못한 마음가짐과 감정, 이런 좋지 않은 물질이 일반인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3. 상대를 이해하고 경청하기
진상을 알릴 때 대법제자가 주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주도할까요? 제 개인적 이해로는 화제를 붙잡고 쉬지 않고 말하는 것이 주도는 아닙니다. 이번 교류에서 한 수련생이 일반인의 마음소리를 경청한 경험을 나눴는데,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수련생의 인내심, 존중, 소중히 여기고 이해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경계심을 풀어 결국 삼퇴에 동의하게 했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수련생은 경청하면서도 끈기 있게 기회를 포착해 계속 진상과 삼퇴 권유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것은 수련생의 경청이 겉으로는 양보 같지만 사실은 더 나아가 상대의 마음 매듭을 풀 장애물을 제거한 것입니다.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비유하자면, 이때 수련생의 경청은 마치 홍수를 소통시켜 상대의 격앙된 감정이 출구를 찾게 한 것이지, 우리 말로 댐을 쌓아 막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 간의 대화에도 이런 경청, 존중과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전화하는 그 순간, 자신을 친구와 수다 떠는 사람으로 여기면 됩니다. 설령 상대가 당장 삼퇴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겸손한 인상을 남길 수 있고, 다음에 삼퇴 이야기를 들으면 기꺼이 우리와 소통할 것입니다.
4. ‘탈퇴’와 ‘탈퇴하지 않음’
제가 이해하기로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일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입니다. 이 사람이 탈퇴했다면 우리가 이번 전화에서 시험에 합격한 것이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만약 탈퇴하지 않았다면 분명 우리가 수련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전화한 수련생뿐만 아니라 참여한 모든 수련생과 관련이 있습니다. 비록 제가 일선에서 전화하지 않지만 이것도 저와 관계있습니다. 제 마음가짐이 충분히 평화롭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평소 수련이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그 정도밖에 수련하지 못했다면 쓴 글의 힘도 그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수련에서 자신을 찾아봐야 합니다. 말을 적절한 곳에 쓰지 못했거나 더 온화한 다른 표현을 써야 했거나 다른 각도로 접근해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전화하는 모든 수련생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진정 하나의 정체(整體)이므로 어느 부분이 빠져도 효과가 떨어지고 배로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하는 모든 최종 결과는 사부님의 장악 속에 있고, 만나는 모든 좌절, 문제, 순탄치 못함 등등은 사실 사부님께서 우리의 부족함을 보여주시고 빨리 제고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사실 우리가 수련 제고할 기회 아니겠습니까?
이 기회를 빌려 사부님께 대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제가 전화 항목팀에 참여할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수련생들의 관용과 지지,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일선에서 전화하는 수련생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헌신이 저를 깊이 감동시키고 크게 고무시켰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상대가 삼퇴하든 안 하든, 여러분이 건 모든 전화에는 감사하고 싶어 하는 생명이 있을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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