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중국의 난법(亂法) 현상은 사악이 사부님의 정법을 교란하고 파괴하려고 배치한 것이다. 일부 표면적인 난법은 식별하기 쉽지만, 비교적 식별하기 어려운 것은 진짜를 가짜로 어지럽히는 표현이다. 표면상 세 가지 일도 하고 심지어 매우 두드러지게 하지만, 목적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지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며, 수호하는 것은 개인수련의 이치이지 정법 노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이렇게 고집하면서 바꾸려 하지 않는데, 정법과 수련에 대한 교란이 매우 심각하다.
내부에서 오는 교란과 파괴에 직면하여 사부님께서는 매우 명확하게 지적하셨다. “당신들의 수련은 내가 배치했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사부가 한마디 더 하는데, 당신들의 매 순간은 모두 수련의 길 위에 있으며, 매 순간 모두 내가 당신들을 관리하고 있다.” “수련의 엄밀함은, 한 고리 한 고리 연결되어 있으며, 설사 매 시각, 매 일보마저 교란을 받아서는 안 된다.”[다시 방할(棒喝)하노라]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법을 스승으로 삼을 것’을 요구하셨다. 법을 많이 배우고 진지하게 법을 배우면, 수련 중에 부딪치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때로는 해결하는 데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어려운 것도 정상이다. 수련의 길에서 부딪치는 일들이 모두 그렇게 쉬울 수만은 없다. 어떤 구체적인 문제와 집착을 정말 깨닫기 어려울 때, 사부님께서는 때때로 수련생의 말을 통해 일깨워주시는데, 기본적으로 모두 인연에 따라 얻는 것이다. 당신이 준비하게 하지도 않고, 미리 기대하게 하지도 않으며,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을 통해 고정된 형식으로 자주 나타나지도 않는다. 인연에 따라 얻는 것을 벗어나, 고정된 수련 교란과 파괴 방식을 형성하면 어느 정도 수련생들의 정법과 수련을 교란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진수(眞修), 실수(實修)를 포기하고 지름길을 찾으려 하면 난법자들에게 교란받게 된다.
특히 중국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떤 보편적인 사명, 어떤 특수한 직책이나 능력, 어떤 스스로 부여한 직무를 자처하여 다른 사람의 수련을 조직하고, 책임지고, 간섭하려 하며, 심지어 정법 노정의 수요를 돌보지 않고 현지의 정법 항목을 총괄하여 책임지려 한다. 예를 들어 중국 환경에서 마음대로 활동을 조직하고, 심지어 법회를 소집하며, 함부로 수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적하거나, 전문적으로 공능이나 특수한 방법을 이용하여 자주 병업 문제나 기타 수련 중의 전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우연히 또는 제한된 시간 동안 이렇게 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방법들을 일상화, 습관화하면 모두 사악이 틈을 타서 이용하게 된다. 이런 이른바 ‘특수한 수련생’은 겉으로는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수련생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어떤 방면에서 명성을 얻고 영향력이 생겨서, 일부 수련생들이 이런 사람을 찾아가게 된다. 정법과 수련을 사부님 외에 누가 책임질 수 있겠는가? 조성된 교란과 파괴를 누가 책임질 수 있겠는가? 어떤 방법들을 일상화, 습관화하는 것은 겉으로는 사람의 표면 행위 선택 같지만, 그 배후에는 틀림없이 사악의 안배가 있을 것이다. 난법자, 제2의 사부, 대신선(大神仙), 신공표(申公豹)가 바로 그 속에 있다.
자신을 실증하는 사람은 구세력의 배치에 이용당하기 쉽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자신을 실증하는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을 수호하고 자신을 실증하는 것을 크게 여긴다. 대법제자의 일을 하는 것 같고 심지어 표현도 매우 두드러지지만, 정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법을 실증하러 가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형식상으로는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동기는 여전히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세 가지 일의 표면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심지어 두드러지게 표현하지만, 언어 방식과 행위 방식이 모두 자신을 실증하고 자신을 크게 여기는 것을 떠나지 못한다. 대법과 대법제자의 일을 이용하여 자신을 실증하는 것은 법을 훔치는 행위로, 정법 중에서는 절대로 그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을 실증하는 가장 두드러진 표현은 개인수련의 이치로 수련과 법 실증을 이해하고 바라보며, 이로써 수련생, 대법제자를 오도하는 것이다. 자신이 세 가지 일을 잘한다고 실증하는 것 외에도, 종종 자신이 수련을 잘하고, 법에 대한 인식이 좋다고 실증한다. 아무리 변해도 그 근본은 바로 ‘나’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을 실증하는 것에는 어떤 표현들이 있는가?
첫째, 비교한다. 법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고, 법의 다른 층차 요구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비교하는 것을 중시한다. 사람 중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려 하고, 가장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데, 이는 속인 마음의 체현이다. 수련과 법 실증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지, 개인이 어떠한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법은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으로, 자신을 실증할수록 사부님의 안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사실 바로 사람이다. 사람 마음이 범람하면 높낮이를 비교해낼 수 없고, 오직 사람 마음이 범람하는 대로 난법할 뿐이다.
둘째, 과시한다. 자신을 실증하는 것은 종종 천목이 잘 열렸고, 법리를 잘 이해하고, 수련을 잘하고, 사람 구하기를 잘하고, 법공부를 잘하고 외우기를 잘한다…… 자신이 가장 잘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표현된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법공부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내가 어떻게 어떻게 수련을 잘했는지 등등을 표현한다. 다른 수련생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모방하게 하며, 자신이 좋은 명성을 얻은 것에 우쭐해한다. 이것은 “유위(有爲)적인 사법(邪法)”이고, “중생을 미혹케 하고 난법(亂法)하게 된다.”(정진요지-수련자 금기)
자신을 과시하는 또 다른 두드러진 표현은 항상 자신이 과거에 잘했던 일들을 말하고, 자신이 예전에 그런 일들을 어떻게 어떻게 잘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련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수련은 어떠한가? 세 가지 일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또 어떤 사람은 자주 ‘사부님 안배’ 등의 말로 자신을 높이고, 마음대로 사부님의 명의를 이용하는데, 사실 사부님을 그다지 존경하지도 않는다. 또 명혜망을 이용해 자신을 높이는 사람도 있는데, 형식상으로는 사부님을 존경하고 명혜망을 존중하지만, 사적으로는 개인의 수요만 만족시키면 법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도 똑같이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전파한다.
셋째, 은폐한다. 자신의 진정한 문제와 집착을 건드리려 하지 않고, 직면하려 하지 않으며, 안으로 찾지 않고, 방법을 찾아 은폐하며, 심지어 새로운 은폐를 만들어 원래의 은폐를 덮는다. 수련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형상은 보호했지만, 오히려 진정한 문제와 집착을 은폐했다. 특히 사악이 시험하는 관건적인 순간에, 어떤 사람들은 고난에 직면했을 때 견지하려 하지 않고, 진실한 문제를 은폐하거나 회피한다.
넷째, 질투한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믿지 않는다. 남이 어떻게 안 되는지, 어떻게 자신보다 못한지 등등만 말한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면 방법을 찾아 폄하하고, 심지어 공격한다.
다섯째,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협력하기만을 원하고, 다른 사람에게 협력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이 크고, 하는 일이 많고, 하는 일이 중요하며, 수련생들 사이에서 영향이 크고, 옳게 하고, 잘한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의 단점과 좋지 않은 점을 부각시킨다. 다른 사람에게 협력할 때는 핑계를 찾아 미루고, 거부하며, 심지어 뒤에서 잔꾀를 부린다.
여섯째, 속인의 신분, 지위 등 속인이 중시하는 것들을 대법으로 가져온다. 자신의 방법이 수련생들의 옹호와 인정을 받게 하여, 수련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시장과 세력을 형성한다. 개인 감정을 따져서, 누가 나에게 잘하면 나도 그에게 잘하고, 나에게 잘하지 않으면 나도 그에게 잘하지 않는다. 속인의 업무 방법과 태도로 대법 수련을 대한다.
일곱째, 다투고 싸운다. 이는 자신을 실증하는 가장 극단적인 표현이다. 채택하는 방법에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끌어들이고, 자신이 잘하고 능력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이 포함된다. 더 심각한 것은 시비를 일으키고, 갈등을 만들고, 갈등을 격화시키며, 뒤에서 여론을 조성하고, 걸림돌을 놓고, 분열시켜 파괴하고, 전력을 다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의 크기와 많고 적음을 수련으로 여기고, 공능 운용의 크기와 많고 적음을 수련으로 여긴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자신의 재주, 자신의 영광을 내려놓지 못하고, 이것이 대법이 준 것이고 사부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임을 생각하지 않으며, 항상 자신이 어떻게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집착한다.
또 어떤 사람은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과시하고 자신을 실증하는 자본으로 삼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사람을 제도하는 것은 법이며, 이 일을 하는 것은 오로지 사부뿐이다.”(정진요지-광언을 하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세 가지 일을 잘하는 정념이 부족하고,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심지어 숭배한다.
자신을 실증하면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없다. 하늘의 공을 탐내어 자기 것으로 삼는데, 무슨 수련을 말하고, 무슨 조사정법(助師正法)을 말하겠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 자체는 신의 길을 걷는 것으로서, 사람마음은 곳곳마다 모두 장애이다. 그러나 우리의 길은 도리어 아주 좁고, 주의하지 않으면 빗나가게 될 것이며, 빗나가기만 하면 문제, 심지어 큰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인데, 돌아오지 못하면 바로 영원한 유감이다.”[정진요지-다시 방할(棒喝)하노라]
어떤 사람들은 무리 중에서 일찍이 두드러진 표현을 했는데, 예를 들어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했거나, 또는 기타 두드러진 표현이 있었거나, 또는 아주 크고 좋은 일을 했다 하여 자신이 어떻게 어떻게 됐다고 여기는데, 오만한 심리를 오랫동안 제거하지 않고, 법공부를 해도 사부님의 요구를 보지 못한다. 만약 수련이 정체되고, 심지어 거짓 수련을 하면, 구세력의 안배에 이용당하기 쉽다.
사악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이 자신을 실증할 때 드러내는 심성상의 부족은 문제의 한 방면일 뿐이고, 더 치명적인 문제는 박해 중에 사악과 타협하는 것인데, 이런 타협의 요소는 사악에게 이용당해 조성된 것이다. 어떤 대법제자는 줄곧 이런 타협의 치명적 해악을 소홀히 했다. 이런 제자들은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경문 ‘정진요지3-생사의 고비(死關)에서 벗어나라’를 진지하게 읽어보기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타협을 다른 사람이 알까 봐 두려워하여 줄곧 은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명혜망에 엄정성명을 발표하여 관을 넘으려 하고, 심지어 엄정성명을 발표하면 일이 과거가 되고 관을 넘을 수 있다고 여기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새롭게 수련하여 배로 보충하겠다(從新修煉、加倍彌補)”는 이 글자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가!
이른바 ‘두려운 마음’, 갖가지 집착은 사실 진아(眞我)의 본성이 아니다. 가장 위대한 신으로서, 그가 한 법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일이든 그가 이미 그 신의 자격이 없음을 의미하는데, 하물며 사부님과 대법을 모욕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실천하는 것이 수련이다. 심성 문제를 찾아내고, 새롭게 수련해 올라와야만 다시 대법제자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들이 지금까지 아직도 정법제자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현재의 마난(魔難)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없으며 인간 세상의 안일(安逸)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끌려 사오(邪悟)할 것이다. 사부는 떨어져 내려간 그러한 사람들을 줄곧 아주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수가 이런 마음에 이끌려 망가진 것이다.”(정진요지2-정법시기 대법제자)
사악과 타협한 적이 있는 사람은 몸에 모두 사악의 물질을 지니고 있으며, 만약 깨끗이 제거하지 않고 진정으로 행동상에서 보충하지 않는다면, 감옥에 있든 없든 똑같이 모두 사악의 지속적인 박해 중에 있는 것이다.
사악의 안배는 바로 한 걸음 한 걸음 당신을 사오로 인도하는 것이다. 원래 사악과 타협한 치욕을 지니고 수련하는 사람들은 사실 더욱 쉽게 사악에게 조종당해 자신도 예상치 못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
우리 수많은 대법제자들은 진정으로 ‘법을 스승으로 삼음’을 해내고, 밖으로 구하지 않고, 안으로 수련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우리에게 알려주셨는데, 중국 제자들이 나타낸 문제는 단순히 수련 문제가 아니라 강제로 가해진 박해라고 하셨다. 사악의 배치에 이용당한 대법제자는 어떻게 박해의 함정에서 걸어 나오고,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넘어진 적이 있어도 괜찮으니 일어서라. 사부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고 우리를 기대하고 계신다. 우리 진수제자들은 모두 박해의 잔혹함과 정법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우리 함께 사악을 타파하고 진정한 자신을 되찾자. 만고의 기회이니 꼭 소중히 여기자!
원문발표: 2025년 8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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