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자신의 공산당 문화 제거를 중시하자

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해외에 온 지 이미 여러 해가 됐으니 공산당 당문화도 거의 다 제거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많은 경우 다른 수련생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그들의 당문화가 아주 심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이 방면에서 괜찮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하나는 작년 6월경의 일이다. 우리 상점에 새로 멕시코계 남자 동료가 왔는데 모두 그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그가 다른 동료들과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기회를 찾아 그에게 깐징월드 플랫폼을 소개하고 깐징월드 영화를 홍보하는 카드를 줬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이 플랫폼에 접속하는지 알려주고 그의 휴대폰으로 깐징월드 페이지를 열어줬다. 그는 매우 기뻐했다! 처음에 우리는 매우 화목하게 지냈고, 또한 우리는 모두 한 사람이 더 도와주면 일이 좀 더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이 남자 동료가 매우 게으르다는 것이었다. 모두 바쁘게 일할 때 그는 종종 고객과 아주 오랫동안 수다를 떨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매번 휴게실 식탁 위와 바닥에 쓰레기를 잔뜩 남겨두고, 음료를 테이블에 흘려 끈적끈적하게 만들어도 전혀 치우지 않았다. 심지어 화장실을 사용한 후에도 물을 내리지 않았다. 그의 갖가지 나쁜 습관은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그가 계산을 할 때는 종종 마지막 결산 시 돈이 맞지 않았는데, 그는 대충대충 해서 가장 간단한 숫자도 틀렸다. 한 가지 일을 그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건을 어떻게 진열해야 하는지 알려주면 그는 알았다고 했지만 다음에는 또 틀렸다. 우리가 그에게 주의를 주면 그는 즉시 얼굴을 바꾸며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고 하며 우리가 말해줄 필요 없다고 했다. 다른 동료들은 모두 그 때문에 화가 잔뜩 났고, 매니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그에게 계산만 하지 못하게 했을 뿐 그에게 별로 시키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바쁠 때는 오히려 매니저가 우리를 불러 더 많은 추가 작업을 시켰다.

내 마음도 움직였다. 그가 남긴 엉망진창이 된 모습을 내가 수습해야 하는 것을 보면서 불공평하다는 마음, 분노, 질투가 연달아 솟아올랐고, 마음속으로 정말 이 동료가 싫었다. 가끔 그가 이미 여러 번 물어본 질문을 또 물어올 때 나는 울화를 참으며 마음속으로 ‘그를 어린아이라고 생각하자. 어린아이에게는 더 많은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거야’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상기시키며 선해야 하고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이 남자 동료가 한 진열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는 태연하게 가버렸다. 그때 나는 계산대에서 봤는데, 동료들이 모두 화를 내며 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나도 참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그의 나쁜 점을 몇 마디 말했다. 이때 매니저가 마침 와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누가 한 건지, 왜 이렇게 엉망인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중 한 여자 동료가 “그녀가(나를 가리키며) 알아요. 그녀에게 물어보세요!”라고 하며 한순간에 나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나는 화제를 돌리고 다른 일이 있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떠났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왜 동료가 나에게 책임을 떠넘겼을까? 그것은 내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악역을 하기 싫어하고, 차라리 다른 동료들이 매니저에게 이 남자 동료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말해주길 바라는 마음,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매우 선하지 못했다. 심지어 ‘다른 동료들이 모두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보게 하자. 매번 그를 위해 수습해줄 수는 없잖아! 매니저는 왜 전혀 보지 못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불공평하다는 마음, 질투심이 이미 매우 심각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것을 초래했을까? 그것은 당문화 중의 그 ‘평균주의’(전법륜) 관념이었다. 모두 같은 급여를 받는데 왜 게으른 사람이 그렇게 당당한가? 우리는 또 그가 남긴 일까지 해야 하니 정말 불공평하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수구(修口)를 하지 못하고 속인들을 따라 험담을 했다. 하지만 이때도 나는 여전히 당문화 중의 이런 변이된 관념들을 제거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다.

작년 12월경쯤 어느 날, 나는 결국 이 동료에게 극도로 짜증이 났다. 그가 옷걸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내 뒤 바닥에 던져놓는 것을 보고, 나는 계산대에서 매우 바빴는데도 그가 던진 옷걸이를 주워서 제자리에 놓아야 했다. 그날 세 번이나 옷걸이를 진열대에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참았다. 바로 그날 밤, 내 이마, 대략 두 눈썹 사이 부분에 작은 여드름이 났는데,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금방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이 작은 여드름이 하룻밤 사이에 부어올랐고, 만져보면 아플 정도였다. 다음 날 출근할 때도 나는 마음에 두지 않고 금방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어서 금요일, 토요일은 나의 이틀 휴무일이었는데, 그때 마침 션윈(神韻) 홍보 기간이라서 나는 여전히 수련생들과 함께 문 손잡이에 전단을 걸러 갔다. 햇빛을 가리는 모자를 써서 여전히 문제없었고 여드름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중시하지 않았고, 일요일에 출근하러 갈 때는 분명히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일요일 아침 일어났을 때 여드름이 완전히 부어올랐고, 또한 내 얼굴 반쪽도 부었으며, 눈도 부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고 출근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전화로 휴가를 신청했다.

이때 나는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듯했다. 바로 내가 그 동료에게 가진 분노가 초래한 것으로, 줄곧 중시하지 않았으니 수련인답지 못했다. 행위가 이미 완전히 속인과 같아져 버렸다. 나는 일찍이 그 남자 동료에게 깐징월드를 소개해줬는데, 이 플랫폼을 통해 그가 언젠가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나는 속으로 그를 싫어하고, 선하게 대하지 못하며, 얕잡아 봤다. 비록 직접적으로 그를 지적한 적은 없지만 그는 분명히 그 선하지 못한 장(場)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속인일 뿐인데 확실히 많은 좋지 않은 행동 습관이 있지만, 나는 내 기준으로 한 속인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갖가지 좋지 않은 행동은 바로 내 심성을 제고시키려고 온 것이 아닌가? 만약 내가 이런 분노심, 남을 얕잡아 보는 마음, 불공평하다는 마음, 질투심이 없었다면 어떻게 또 이런 일들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일거사득(一擧四得)’의 법리를 생각하니 나는 이 동료에게 감사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니 나는 한순간에 완전히 분노하지 않게 됐고, 오히려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 휴가를 내서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억지로 여드름을 가린 채 여전히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션윈 포스터를 붙이러 나갔다. 그런데 그날 평소에 분명히 붙이지 못하게 했을 상가들이 예상 밖으로 모두 붙이게 해줬다.

그날 이후 내가 다시 이 남자 동료를 봤을 때 정말 싫어하지 않게 됐고, 오히려 항상 평온하고 선의적인 심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얼마 후 이 남자 동료는 사직하고 떠났다.

또 다른 사례다. 대략 몇 달 전, 한번은 퇴근 후 집에 돌아가다가 문 앞에서 집주인(수련생)을 만났다. 집주인은 쓰레기통 옆의 종이박스가 또 해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미 모두에게 여러 번 말했는데, 그녀의 남편이 한 번 종이박스를 해체하다가 너무 힘을 써서 팔까지 다쳤다고 했다. 사실 나는 이런 것들을 매우 주의해서 매번 종이박스를 해체한 후 쓰레기통에 버린다. 나는 즉시 “저는 아니에요. 저는 매번 해체해서 버려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하고 나서 나는 한순간에 깨달았다. 이것도 여전히 당문화의 사유 습관이었다. 일을 만나면 우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고, 좋지 않은 일과 선을 긋고,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기며,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건드려지기 싫어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수련인의 위치에 놓고 왜 이런 일을 만나게 됐는지, 어떤 마음이 건드려졌는지, 어떤 염두를 움직였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이 잘하지 못한 일을 봤다면 왜 조용히 원융하게 잘할 수 없었을까? 사실 자신이 매번 외출하거나 퇴근 후 집에 돌아올 때마다 이런 해체되지 않은 종이박스들을 봤고, 도와서 해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번 자신이 출근해야 해서 시간이 급하다거나,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꽤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만두자!’라고 생각하며 결국 집주인이 해체하게 두었다. 나는 속으로 ‘누구누구는 왜 그러는 거지? 왜 자신의 일을 잘하지 못하는 거야? 어린아이도 아닌데 그렇게 여러 번 말해도 듣지 않네’라고 불평했다.

나는 자신에게 아직 매우 심한 당문화 관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일을 만났을 때 먼저 안으로 찾지 않고, 먼저 보이는 것이 모두 다른 사람의 잘못이며, 항상 습관적으로 당문화에서 형성된 타락한 관념으로 옳고 그름을 가늠하고, 때때로 대법의 법리로 자신의 문제를 찾아보지 않았다. 일사일념(一思一念), 많은 세부 사항에서 모두 아직 당문화의 요소가 있다.

나는 지금 자주 명혜 라디오의 ‘당문화 제거’ 오디오를 듣는데, 매번 들을 때마다 크게 유익하다.

이상은 개인적인 수련 체득이니 부적절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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