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수련생들 사이의 갈등이 매우 첨예해졌는데, 이는 모든 사람에게 제고할 기회가 왔다는 것을 설명하지만 아직 법을 스승으로 삼고 안으로 찾아 자신을 수련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듯하다. 언행에서 이미 매우 극단적으로 표현되고 있었지만, 자신을 보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기에 오랫동안 깨닫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대할 수 없었다. 아래는 몇 가지 예시인데, 다른 지역 수련생들에게도 유사한 상황이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있다면 이 부분 수련생들이 제고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1. 명혜망의 교류 문장을 단편적으로 취해 법으로 삼아 배우며, 수련생들에게 요구한다
수련은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比學比修)’(홍음-실수)이지, 표면 형식이나 겉모습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표면에서 무엇을 하든 최종적으로 실질적인 제고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2. 박해를 초래한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원망한다
원망과 불평으로는 박해를 끝낼 수 없고 오히려 박해를 불러들일 뿐이다. 왜냐하면 ‘진선인(眞·善·忍)’에 부합하지 않아 사악한 것들이 바로 이를 이용해 당신의 빈틈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3. 자신의 집착을 찾는 것이 너무 세밀하고 기계적이어서, 오히려 더 크고 근본적인 것을 소홀히 한다
비유를 들어보면, 사람이 병에 걸리면 많은 느낌과 증상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이 모든 증상과 느낌을 다 찾아냈어도 여전히 병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수 있다. 병근을 찾지 못하면 오직 ‘머리가 아프면 머리를 치료하고, 발이 아프면 발을 치료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으로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만약 수련인이라면 더 많은 집착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치우칠 수도 있다.
4. 다른 수련생의 일에 과도하게 참여하며,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
남의 말을 듣고 따라 하는 수련생은 스스로 그 집착을 내려놓은 것도 아니고, 관념을 바꾼 것도 아니며, 자신의 수련 상황에 근거해 해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떨 때는 다른 수련생에게 계속 강요한다. 예를 들어 수련생이 상대를 찾아 결혼하려 하면 모두 결혼하지 말라고 권하며,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결혼하려 하느냐”라고 하거나, 찾은 그 상대의 수련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면서, 듣지 않으면 계속 말하고 포기할 때까지 권한다. 직장과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서, 표면적인 옳고 그름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법에 대조해 자신의 어느 부분이 제고되어야 하는지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지 않는다.
5. 법공부를 중시하지 않고 자신의 깨달음을 법보다 더 중시한다
사실 수련 과정에서 개인의 어떤 견해나 생각도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두 과정 중의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을 봐도, 만약 누군가가 어릴 때의 관념에 집착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성숙할 수 없는데, 하물며 수련이겠는가! 바로 대량의 법공부를 하고 함께 모이면 법을 읽는 것이다. 수련생들 사이에 수련이 잘되고 못되는 것, 일반인 중에서 만나는 번거로운 일들은 모두 중요하지 않다. 자아를 내려놓고, 일은 적게 말하거나 말하지 않으며, 대량의 시간을 법공부에 사용하면 법 안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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