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린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예순세 살의 할머니로, 지린성 농촌에 살고 있습니다. 1998년에 득법했으며 아래는 제 굴곡진 인생 경험 중에서 끊임없이 대법 중에서 수련하며, 홀로 수련하는 상태에서 시련을 벗어나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고,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는 과정을 교류하려 합니다.
굴곡진 인생에서 자신을 닦다
저는 1998년 법을 얻은 후 밖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독 수련하는 상황이었고, 계속 진정으로 수련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베이징 ‘천안문 분신자살’ 사기극이 나온 후, 휴가 때 집에 돌아가서야 들었는데, 집에 수련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약간의 진상을 알게 됐습니다. 직장으로 돌아가서 일부 진상을 알리고 DVD를 배포했는데, 2003년에 불법 강제노동 1년 반을 받았고 많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강제노동 기간 중에 많은 확고한 수련생들을 보았는데 저는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그 중에 ‘전법륜(轉法輪)’을 외울 수 있는 수련생이 있었는데, 매일 기숙사로 돌아간 후 모두를 이끌고 함께 법을 외웠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제고가 됐다고 느꼈고, 집에 돌아간 후에는 반드시 잘 수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밖에 있을 때는 줄곧 제대로 법공부를 하지 못해서 법리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수련생의 소개로 저는 또 다른 남자 수련생을 찾아 결혼했습니다. (이 남자 수련생은 젊었을 때 이혼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광산에서 자랐는데, 부모님은 모두 탄광 노동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처급 간부였고, 가정 형편은 비교적 넉넉했습니다. 저의 첫 번째 결혼이 순탄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술을 마시고 출근하지 않아서, 막내아들이 7살 되던 해에 화가 나서 이혼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멀고 외진 이 농촌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말하자면 참 신기했는데, 결혼하는 날 사방 하늘에서 비가 내렸지만 유독 우리 머리 위 하늘에는 비가 내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까지 떴습니다. 결혼한 해에 저는 44세였고, 남편이 저보다 7살 많았습니다. 2년 후 제가 46세 되던 해에 또 남자아이를 하나 낳았습니다. 집에는 70~80세 되는 시할머니가 한 분 계시고, 큰시누이 한 명, 큰아주버니 한 명, 작은아주버니 한 명, 여섯 명의 작은시누이들이 있었습니다.
농촌 생활을 저는 잘 몰라서 결혼 첫 해는 그래도 무사평온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남편이 변했고, 가정 내 크고 작은 갈등이 끊임없이 심화되어 저는 매일 고비를 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법공부는 적고 심성도 그리 높지 않아서 매우 고통스러웠고, 삶에 대해 절망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안의 이 형제자매들이 마치 회전등처럼 오늘 당신이 오고 내일 그가 가고 하는데, 저는 모두 위아래로 시중을 들었습니다. 어디서 잘못되면 이 사람이 저를 한바탕 꾸짖고, 저 사람은 저를 한바탕 욕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참았지만 속으로는 매우 화가 나서 ‘너희들은 친정으로 돌아와서는 물건도 좀 가져가고 돈도 좀 가져가면서도, 이것저것 따지고 소란을 피우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또 ‘내가 대법제자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날 이렇게 대할 수 있을까?! 나는 당신들 집 아홉 자녀를 대신해서 노인을 효도하며 모시고 있는데,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날 괴롭히다니!’ (저는 친정집에서 유명한 ‘두 번째로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기억하건대 한번은 넷째 시누이가 외지에서 돌아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는 바쁘게 만두를 빚었는데, 기쁘게 만두를 상에 올리고 나서 소리쳤습니다. “넷째 시누이, 빨리 와서 만두 먹어!” 그런데 그 방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보 같이 굴지 마, 뭘 부르고 난리야?” 저는 흔쾌히 안방으로 들어가서 말했습니다. “잠 한번 자고 나니 왜 또 화가 났어? 누가 화나게 했어?” 그녀는 험악하게 말했습니다. “들어와서 뭐 하는 거야? 또 나랑 싸우려고 하는 거야?” 저는 이 상황을 보고는 밖으로 나가서 낫을 들고 옥수수를 베러 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수련생)이 와서 저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불렀습니다. 저는 그녀가 가지 않으면 오늘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갔고 저는 생각을 바꿔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을 떠올렸습니다. “당신이 그보다 더하다면 당신은 그 속인보다도 못하다.”(전법륜) 저는 일어나서 집으로 걸어가면서 속으로 집에 돌아가면 절대 그녀와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집 대문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넷째 시누이와 다섯째 시누이(다섯째 시누이는 나중에 왔음)가 모두 나와서 웃으면서 저를 반겼습니다. 이런 비슷한 풍파가 많았는데, 제가 한 번 또 한 번 고비를 잘 넘기지 못했을 때마다, 모두 현지 수련생들과 제때 교류하여 사부님의 가지(加持) 하에서, 수련생들의 도움을 받아 평온하게 지나갔습니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닦아버리다
제가 이 가정에 온 것은 현지 사람들에게 하나의 신기한 이야기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는데, 남편은 진짜 농촌 사람이고 저는 어쨌든 도시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가 예쁘게 생겼고 체형이 단정하며 키가 164cm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동네 사람들은 모두 “저런 사람이 여기서 오래 살 수 있겠어?” “사기꾼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뒤에서 제 남편에게 둘째(저와 그가 낳은 아들을 가리킴)를 조심하라고 했고, 저에게 속아서 돈을 뺏기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제가 전남편과 아들이 하나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도 정말로 저를 매우 경계했고, 저에게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시집오자마자 남편과 함께 일당을 받는 일을 했고, 벌어서 바로 썼습니다. 농촌 일은 모두 그때그때 배웠는데 수련의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고생을 낙으로 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저는 호적을 옮겨와서 농촌에 정착했고, 또 아이를 하나 낳았는데, 그러자 집안에서 신뢰감을 증가시켰습니다. 시누이들이 비록 저에게 좀 심하게 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제가 시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것이 그들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다가 악인의 신고로 2016년에 납치되어 3년 반의 억울한 판결을 받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또 정말로 큰 고비를 하나 넘었습니다. 제가 감옥에서 막 집에 돌아온 그날, 집에 많은 친척들이 왔습니다. 남편이 말하는데 저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비웃을 수 있으니 나중에 다시 말해요”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그는 저를 욕하기 시작했는데 저는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저에게 5~6명의 남자들이 있고 그 중에는 수련생도 있었으며, 제가 그 사람들과 불륜 관계가 있었다고 하며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각 사람마다 모두 한 세트의 이야기를 지어냈는데, 만약 제가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저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는 낮에는 온돌에 앉아서 욕하고 밤에는 자지도 않고 밤새도록 욕했습니다.
감옥에서 막 돌아왔는데 제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드디어 집에 왔구나!’ 하는 기쁨이었을 텐데, 생각지도 못하게 어떻게 갑자기 또 이렇게 큰 시련이 닥쳤을까요? 제가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이 없었고 저는 말없이 참았지만 속으로는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막 돌아왔기 때문에 집안일도 많고 법공부도 따라가지 못하고, 심성도 그리 높지 않아서 항상 오늘은 참았다가 내일은 참았다가 하다가 모레는 화가 나서 친정으로 도망쳤습니다. 이렇게 저는 세 번 도망쳤는데, 모두 수련생들의 격려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그냥 법을 적게 배웠을 뿐이에요. 누가 당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실제로는 죽이지 않았는데, 뭘 두려워해요?”
남편이 저를 욕할 때마다 시어머니가 그를 꾸짖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며느리가 그런 사람이라면, 어떻게 또 너 같은 가난한 사람과 살겠느냐? 며느리가 감옥에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집에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 텐데, 너는 왜 또 며느리를 괴롭히느냐?!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며느리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내가 알고 있다. 난 눈이 밝아서 다 본다. 며느리는 화장품도 바르지 않고 휴대폰도 쓰지 않는데, 누구와 연락하겠느냐? 이렇게 며느리를 욕하는 것은 잘못된 거야.”
시어머니는 비록 글을 모르시지만 매우 똑똑하셨고 보통 할머니가 아니었습니다. ‘문화대혁명’ 때 성분을 따질 무렵 시어머니는 부녀단장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매일 한 무리 사람들을 이끌고 지주를 잡아다가 때렸고 시어머니는 그것을 직접 목격하셨다고 합니다. 소위 지주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을 산 채로 때려죽이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어머님, 사람 때리는 데 참여하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무서워서 감히 때리지 못했어.” 저는 그럼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예전에 제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반대하셨는데, 만약 누군가 저희 집에 오면 제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시킬 때 시어머니는 모두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 제가 여러 번 시어머니에게 진상을 알렸더니 마침내 깨달으셨고, 집에 또 사람이 오면 시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가 말하는 것을 도와주며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탈퇴하세요, 평안을 보장해요.” 시어머니도 매일 진상 호신부를 차고 다니시며 항상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눈가에서 왜 자꾸 뭔가 도는 것이 보이지? 또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돌고, 이리저리 돌아다녀.” 저는 “어머님, 그건 파룬(法輪)이 눈에서 돌고 있는 거예요. 제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도와주시니까 사부님이 어머님을 돌봐주시는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듣고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제 막내아들이 3살 때부터 시어머니가 데리고 계셨는데, 그때 시어머니는 이미 79세셨습니다. 저는 매일 나가서 집에서 기른 파를 팔면서 동시에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고, CD를 배포하며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잤습니다. 매번 집에 돌아올 때마다 시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텔레비전을 보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 안에서 대법 노래가 나오면 할머니와 손자가 모두 따라 불렀습니다. 저는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시어머니는 2024년에 돌아가셨는데, 그해 94세셨습니다.
이렇게 이 시련이 2년 넘게 지속됐는데, 수련생의 도움으로 저는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보며 마침내 지나왔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돌아보니, 정말로 수련할 줄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래서 그렇게 힘들게 걸어온 것 같습니다.
남편은 초등학교 2학년만 다녔습니다. 농촌에는 수입이 별로 없고 집안 식구도 많아서 생활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그는 전혀 학교를 다닐 형편이 안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집에서 농사일을 하며 가계를 도왔습니다. 지금은 비록 ‘전법륜’을 읽을 수는 있지만, 법에 대한 이해력은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그를 바라보며, 이것도 수련인답지 않고 저것도 법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를 깔보는 마음이 있었고, 자신이 모든 면에서 그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우월함’이 바로 가장 큰 사람마음이고, 오만함이며, 자신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수련인이니까 법의 기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 4년차에 제가 잘못 처리해서 그에게 강제로 욕망을 끊게 했는데, 그가 불만을 품으며 자신은 그 단계까지 수련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가 저를 의심하고 괴롭히게 된 것입니다.
정법 수련의 길에서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다
저는 예전에도 세 가지 일을 했지만, 줄곧 다른 수련생들만큼 정진하지 못하고 정법 과정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2009년부터 진정으로 정법 수련에 들어가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억하건대, 어느 날 저는 한 나이 든 남자 수련생과 함께 이웃 마을의 한 구멍가게에 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곳은 안팎으로 3개의 방이 있었는데, 비교적 큰 방 하나에는 마작을 하는 한 탁자가 있었고, 주변에는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또 작은 방 하나에는 4명만 있었는데, 역시 마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방에 들어가서 사람이 많은 이 방의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때 그 장면이 정말로 저를 흥분시켰습니다. 당시 삼퇴가 매우 순조로웠는데, 마작을 하는 4명을 포함해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저는 좀 흥분해서 어디서 이름을 써야 할지 몰라서 종이 한 장을 마작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의 등에 올려놓고 말했습니다. “오라버니 등을 제 책상으로 써도 될까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매우 기뻐하며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정말로 동북 사람의 시원한 성격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후 저는 빠르게 각 사람의 이름을 썼는데, 실명도 있고 가명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온 사람들도 모두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대략 20명 정도였는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곳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장면은 정말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목소리가 크고 사람을 보면 먼저 다가가 친근해지는 특성이 있고, 성격이 비교적 외향적이어서 저는 구멍가게만 전문적으로 다니기로 선택했습니다. 농촌 사람들은 할 일이 없을 때 모두 그곳에 모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았습니다. 한동안 진상을 알린 후 효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여러 번 위험한 상황을 만났지만 모두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셨습니다.
한번은 이웃 마을에 자료를 배포하러 갔는데 그때는 겨울이었고 날씨가 추워서 땅에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습니다. 눈이 차에 눌려서 매우 깊은 바퀴 자국이 났고 길은 모두 얼음이었습니다. 저는 수십 개의 션윈 CD를 메고(당시는 중국에서는 션윈CD 배포가 허용됐음) 깊었다 얕았다 하는 발걸음으로 3km가 넘는 길을 걸어서 이 마을에 도착한 후, 집집마다 다니며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며, 션윈CD를 배포했습니다. 제가 마을 큰 길에서 가장 가까운 한 집에 도착했을 때, 그 집 대문으로 들어가서 방에 들어가 진상을 알렸습니다. 집 여주인이 별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녀에게 소책자 한 권을 주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집 대문에 도착했을 때, 그 집 남자 주인(당시 이 남자 주인은 밖에서 화장실에 가고 있었음)이 나와서 저를 불렀습니다. “당신 이리와 봐, 뭐 하는 사람이야?” 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 저는 사람을 찾아서 이야기하러 온 사람이에요. 마침 당신에게도 말씀드려야겠네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 방으로 들어가세요.”
방에 들어가자 그가 급하게 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파룬궁을 믿는 사람이지요, 하늘을 믿는 사람이지요?” 저는 “맞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매우 긴장하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빨리 방으로 들어가세요, 밖에 길에 경찰차가 서 있어요, 당신을 잡으러 왔어요.” 어째서인지 당시 저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리가요, 그들은 다른 일을 처리하러 온 것 아닐까요?” 그가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바로 당신을 잡으러 온 거예요.” 저는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방금 전에 갔던 한 집에서 그 집 남자 주인의 태도가 매우 나빴고, 저를 그 집에서 대문 밖까지 계속 밀어냈습니다. 저는 “아, 그런 일이었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이 집 부부는 모두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당신은 그냥 이 방에 있으세요, 나가지 마세요, 잠깐 후면 그들이 갈 거예요.” 저는 급히 그들에게 감사했습니다. 남자 주인이 나가서 한 번 보고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아직 안 갔어요, 많은 사람들이 모두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어요.” 세 번째로 남자 주인이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경찰차는 갔지만 아래 길목에서 당신을 가로막을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저는 “괜찮아요, 저는 당신 집 뒤쪽 그 길로 갈게요. 그 길은 수리 중이라 방금 돌을 깔았는데 아직 평평하게 다지지 않아서 사람도 걷기 어렵고, 차는 절대 다닐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북풍이 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자료 한 봉지를 가지고 힘들게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길이 익숙하지 않아서 큰 눈구덩이에 빠졌는데, 눈이 제 가슴까지 찼습니다. 저는 매우 힘들게 한참 만에 기어 나왔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부님의 보호 하에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 전화로 신고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비슷한 일이 많았는데 모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평안하게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바로 2016년 어느 날 아침, 저는 여전히 평상시와 같이 수련생 집에 가서 법을 한 강의를 읽고 그 후 지붕 달린 삼륜차를 몰고 우리 일행 3명이 농촌에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날은 작은 설(음력 12월 23일)이었는데, 마지막 구멍가게에서 우리가 진상을 알릴 때 악인의 신고를 받아 결국 현지 파출소에 납치됐습니다. 저는 당시 두려워하지 않았고 파출소에 도착한 후 그 몇 명의 경찰들이 욕하며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정말 할일이 없어서 문제만 일으키고, 우리에게 골치거리나 안겨주고.” 그들이 뭐라고 하든 저는 모두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대법의 아름다움, 질병 치료와 건강 증진의 신기한 효과, 파룬궁은 진정한 불가(佛家) 대법이며, 진선인의 법리에 따라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등등을 말했습니다. 몇 명이 모두 매우 진지하게 들었는데, 그 중 한 경찰이 말했습니다. “아이고, 학력이 어떻게 되세요? 어쩜 이렇게 잘 말해요? 대학교수 수준이네요.”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려 저를 격려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다른 경찰 한 명이 휴대폰을 들고 녹음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대로 녹음하세요, 제가 한 말을 인터넷에 올려서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게요.” 그러자 이 젊은 경찰이 웃었습니다. 이때 또 한 경찰이 들어와서 저를 보더니 “말솜씨가 꽤 좋네”라고 말하며 제 맞은편에 앉아서 손을 뻗어 진상 자료 한 장을 집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해했고 정말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어떤 서명을 하라고 해도 저는 모두 서명하지 않았고, 그날 밤 그들은 우리 3명을 구치소로 보냈습니다.
중간에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병원에서도 저는 계속해서 진상을 알렸는데, 의사에게도 말하고 환자들에게도 말했습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모두가 복도에 서 있었는데, 저는 계속 진상을 알렸고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경찰 무리에서 한 사람이 나와서 제 앞으로 걸어와서 저를 부르며 말했습니다. “누님, 저 탈당합니다.” 저는 “정말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매우 진지하게 “정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럼 좋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했고, 그가 성씨를 말했습니다. 저는 “그럼 제가 가명을 하나 지어드릴게요, 평안이라고 하죠”라고 했습니다. 그가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누님”이라고 말하고 다시 경찰들 사이로 돌아갔습니다. 그 소장의 아내가 웃으면서 그를 밖으로 밀어내며 말했습니다. “우리 여기 서서 뭐 해요, 이미 탈당했잖아요.” 그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반드시 탈퇴해야 합니다.” 이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탈당을 외쳤으니, 그는 그 주변의 모든 중생들에게 미래에 구원받을 기회를 마련해 주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 그는 바로 파출소에서 제 맞은편에 앉아 진상 자료를 보던 그 경찰이었습니다. 구치소에 도착했을 때 그가 매우 걱정스럽게 저에게 말했습니다. “옷을 많이 입으세요, 누님, 안이 춥거든요.” 저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치소에 도착한 후 저는 매일 인연 있는 사람을 놓치지 않고 계속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때로는 감방장이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계속 말했고 나중에 그녀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감옥경찰에게도 말하고 죄수들에게도 말했는데, 나중에 저는 3년 반의 억울한 판결을 받았고 구치소에서 1년 넘게 있으면서 대략 50여 명을 탈퇴시켰습니다. 구치소에서는 연공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저는 소장을 찾아가서 연공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소장이 저를 한바탕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여기가 당신 집인 줄 알아? 또 연공을 하겠다고?” 저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정념을 많이 발하며 시간이 있으면 감방에서 연공을 했고,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지속했습니다. 감방 안의 방송 스피커로 감옥경찰이 소리를 지르며 외쳤습니다. “뭐 하는 거야? 그만해!” 저는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계속 포륜을 했고, 시간이 지나자 그들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네 개의 정시에 정념을 발했는데, 시간이 되면 모두 누군가가 저를 깨워서 정념을 발하라고 했습니다. 몇 명의 죄수가 저와 함께 가부좌를 했는데, 모두 매우 도움이 된다고 느꼈고 집에 돌아가면 반드시 수련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포륜할 때 모두 죄수들이 저에게 시간을 봐주고 동작을 바꾸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특히 매일 바람 쐬러 나갈 때 오전 1시간, 오후 1시간 저는 바람쐬는 장소에서 큰 소리로 대법 노래를 부르고 연공했습니다. 바람 쐴 때 소장이 모두 건물 위를 한 바퀴 돌았는데, 제가 연공하는 것을 보고 그는 오히려 웃었습니다. 수련생이 저에게 변호사를 찾아주었는데, 매번 저는 삼퇴 명단을 변호사에게 기록하게 해서 수련생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구치소를 떠나는 날, 문 앞에서 두 명의 경찰관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 중 한 명은 삼퇴했고, 다른 한 명은 구치소 의사였는데, 그는 비록 탈퇴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여기서 지낸 1년 동안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인정했습니다. 그는 매일 감방에 약을 가져올 때마다 제가 연공하는 것을 매우 진지하게 지켜봤습니다. 또한 여성 감방의 여경도 떠날 때 삼퇴를 권했더니 마찬가지로 탈퇴했습니다. 나중에 감옥에서 구치소에서 함께 있던 수감자를 만났는데, 그녀가 말하기를 그 여경이 임신해서 곧 출산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 여경은 결혼한 지 여러 해가 되도록 임신하지 못했는데 삼퇴하고 나서 복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사부님께서 수감자의 입을 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저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저도 지금은 오래된 대법제자로서 반드시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칭호에 어울려야 하고, 정법 과정을 따라가야 하며,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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