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처음 득법했을 때는 인생이 너무 고통스럽고 삶이 지루하다고 느꼈습니다. 주로 건강을 바라는 마음으로 대법에 입문했습니다. 이러한 바람은 마치 하나의 동력이 된 듯했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집착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20여 년간의 수련이 꽤 괜찮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시련이 연달아 찾아왔습니다. 지금부터 두 차례 병업관을 넘긴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치명적인 큰 난관
2020년, 제가 70세 되던 해, 팬데믹 봉쇄가 심각하던 시기에 저는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가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집에서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와 정념(正念)을 발했지만 일주일 후에도 호전되지 않았고, 부목을 댄 종아리 표면에 궤양이 생겨 결국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사악한 세력은 저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했습니다. 견인, 접골, 수술 후 감염을 겪으며 2년 동안 다섯 차례 수술을 받았습니다. 결국 다리 절단과 백혈병이라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모든 방법이 소용없게 되자 저는 정념을 일으켰고 생사를 내려놓은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떤 약도 사용하지 않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그리고 수련생들의 큰 도움을 받으며 법공부와 심성 수련, 안으로 찾는 과정을 통해 불과 한 달 만에 아물지 않던 상처가 정상으로 회복됐습니다.
사람을 구하러 나섰는데 어째서 이렇게 큰 난을 만났을까요? 수련생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꾸준히 나가서 사람을 구하고, 여러 면에서 아주 정진하며, 이처럼 신성한 일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큰 문제가 발생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박해의 원인을 정말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법공부, 연공, 발정념, 진상 알리기 등 중생을 구하는 활동을 게을리한 적이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늘 사람을 구하는 일에 매달렸고, 수년간 이런 활동에 항상 앞장서 왔습니다.
한동안 법공부에 집중한 후에야 비로소 제가 형식적으로 수련해 왔으며,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착각하고 심성 제고에 소홀히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미 대역병이 닥쳤으니 수련도 곧 끝날지 모른다. 시간을 다투어 사람을 더 많이 구해야 한다.’ 마치 100미터 단거리 경주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다다른 것과 같았습니다. 사실 이 생각은 인간적인 마음이 섞여 있었던 겁니다.
병원에 있으면서도 저는 꾸준히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정념을 발했고, 안으로 찾고, 진상을 알리며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점차적으로 저는 문제가 정말 미묘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평소 일을 할 때 목적의식이 아주 강했습니다. 이는 이기적이고 위사위아(爲私爲我)한 후천적인 속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제 사고와 행동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쉽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기회가 오면 속인이 상업적 기회를 민감하게 포착하듯이 그것이 나옵니다. 제가 중생을 구하는 목적은 자신의 위덕을 세우고, 층차를 높이며, 최종적으로 원만에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수련에 있어서 ‘유위’적인 행위였습니다. 그 안에 깊숙이 숨겨진 이기심과 자아가 있었기에, 지난 세월 동안 왜 그토록 자비심이 생겨나지 않았는지 늘 마음속으로 의아해했던 것입니다. 이기심과 자아를 버려야만 자비심이 생겨납니다! 이처럼 교활하고 더러운 이기심으로 그토록 신성한 일을 대했으니, 구세력이 이를 명확히 보지 못할 리 없었습니다. 마침내 박해의 주요 원인을 찾게 된 것입니다.
한번은 진상을 알리러 나가는 길에 문득 제 머릿속에 ‘바보 같은 용기’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사부님께서 당시 저의 순수하지 못한 마음을 보시고, 법에서 자비심을 수련해 내지 못하여 마치 ‘바보 같은 용기’를 가진 것과 같다고 보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중생을 구하는 길에서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매 순간 제 곁에서 저를 보살피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수많은 위급한 순간에도 위험을 넘기고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간, 진상을 알리는 것은 제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됐습니다. 단 한 번도 그것이 부담이나 압력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으며, 마음속 깊이 그것은 책임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곤 합니다.
제 다리가 겨우 계단을 내려갈 수 있게 되자마자 저는 건물 아래에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걸을 수 없을 때는 주변 환경에서 알렸습니다. 두 손으로 차 문을 힘껏 잡고 대중교통을 탈 수 있게 되자, 저는 더 넓은 외부 환경으로 나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때는 길가의 턱을 오르내리는 것이 매우 힘들었고, 몇 번이나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저에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좀 더 회복된 후에 나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2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고, 구하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면 어떻게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4년이 지난 지금, 제 다리는 아무런 재발이나 후유증 없이 완전히 회복됐습니다. 7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걷는 속도가 매우 빠르며,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2. 다시 관을 넘기다
이듬해 여름, 저는 한동안 온몸에 기운이 없고 다소 수척해졌으며, 물을 마시고 땀을 흘릴 수 있었지만 쌀죽을 매끼 두 그릇씩 마셔도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몸에는 다른 증상들도 나타났습니다. 무심코 딸에게 이 이야기를 전화로 했는데, 딸은 듣자마자 즉시 당뇨병이라고 단정하며 병원에 가서 빨리 검사를 받아보라고 강요했습니다. 저는 수련인에게는 병이 없으니 검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두 딸은 끈질기게 요구했습니다. 나중에 오랫동안 정진하지 못했던 당뇨병을 앓는 수련생 이웃이 집에 기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며 저를 측정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검사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병이 없다는 것을 딸에게 확인시켜 안심시키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혈당 수치가 정말 높았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속으로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내가 이런 병을 가질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 말은 이미 자신이 ‘정말로 병이 생겼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고, 그때 그 가상을 부정하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제 머릿속에 ‘그냥 숫자일 뿐이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저를 일깨워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순간 마음이 매우 평온해졌습니다. 그 후 식단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혼란스러웠습니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할지 몰랐고, 어떤 음식은 감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이 문제는 저를 계속 괴롭혔고 조절하기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스스로도 이런 상태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직 사부님과 법을 진정으로 믿지 못했고, 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병’이라는 이상한 틀에서 진정으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이는 이 글을 쓸 때 깨달은 것입니다).
이듬해 저는 딸네 집으로 가서 살게 됐습니다. 딸과 사위는 혈당 측정기를 샀지만, 그때 저는 측정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반년 후, 아마도 그들은 제 상태가 괜찮은 것을 보고는 “오늘 다 같이 혈당을 측정해서 정상인지 아닌지 보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계속 제 건강을 걱정하고 있으니 제가 너무 비합리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도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했고, 몸에 힘이 생겼으며, 물도 많이 마시지 않았기에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이치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혈당 수치가 매우 높았습니다. 딸과 사위는 크게 놀랐고 더 이상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매우 엄한 어조로 저를 병원에 가라고 강요하며 다음 날 아침 8시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감정이 매우 격앙된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지금 내 몸은 어디 하나 아픈 곳 없이 괜찮은데, 병원에 가는 것은 분명히 사악한 세력이 안배한 길을 걷는 거야.’ 그들에게 협조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이상하게 아프고 온몸이 불편하며 마치 큰 재앙이 닥쳐오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걷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딸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제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는 크게 화를 냈습니다. “공복으로 병원에 가서 혈당 검사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밥을 먹고 있어요?!” 평소 온순하던 딸은 온갖 격한 말을 쏟아냈고, 사위도 화가 나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먹고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대하며 그들과 논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너희들 모두 진정해. 너희의 좋은 마음은 다 이해한단다. 엄마를 걱정하고 엄마를 위하는 마음이지. 하지만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기에 내 마음속에는 대법의 법리가 있단다. 이건 너희가 이해하기 어려울 거야. 그러니 이렇게 하자. 일주일 시간을 줄 테니 결과가 어떤지 보고 다시 이야기하자.” 그들은 저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마지못해 동의했습니다.
다음 날 오전에 저는 진상을 알리러 나갔는데, 사부님께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저에게 당부하고 제 믿음을 굳건히 해 주셨습니다. 저는 40대 중반의 한 여성을 만났는데, 그녀는 아름답고 교양 있으며 기품이 있었습니다. 정말 예상치 못하게, 그녀는 70대 노인인 저에게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가명으로 악당에서 탈퇴했습니다. 나중에 그 여성은 저에게 “건강해 보이시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제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이게 어디 병 있는 사람 같나요?” 그녀의 말은 진심이 담겨 있으면서도 함축적이고 수준이 높아서 저는 대략 ‘스스로 결정한 일은 자신의 방식대로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당시 저는 다소 의아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어 날 일깨워주신 것이 아닌가?’ 이렇게 오랫동안 진상을 알려왔지만, 이토록 저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분명 택배를 찾으러 간다고 했으면서도 굳이 저를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했습니다. 사실은 사부님께서 그녀를 통해 저에게 ‘병이 없으니, 측정할 필요가 없다. 법에서 굳건히 서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말라’고 알려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일주일 동안 큰딸은 당뇨병의 위험성에 대해 더 많이 알아보고 왔습니다. 그들은 더욱 겁에 질려 매일 저에게 전화해서는 “어떠세요?”, “그렇게 혈당이 높으면 정말 무서워요. 갑자기 쓰러지면 큰일 나요”라고 말했습니다. 딸은 너무 무서워서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제가 죽는 악몽까지 꾸었다고 했습니다. 아침에는 저에게 전화해서 장례 절차를 어떻게 할지,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묘지는 어디에 할지까지 묻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둘째 딸은 화병으로 몸까지 아프게 됐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는 더욱 확신을 가졌고 오히려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정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이 관을 반드시 넘어야 했습니다.
수련 과정에서 저는 늘 ‘병’에 대한 집착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당뇨병 환자들을 볼 때면 ‘이 병은 참 무섭다, 살아도 먹고 싶은 것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이 ’죽지 않는 암‘이라고 부르지 않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련인은 속인의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제 집착이 시련을 불러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평생 단 음식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음료수도 즐겨 마셨는데, 슈퍼마켓에서 음료수가 자주 할인하면 이익심 때문에 ‘싸니까 마시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작년에는 새로 나온 멜론 종류가 제 입맛에 아주 잘 맞았습니다. 약간 흠이 있는 멜론은 아주 싸게 팔았고, 저는 자주 많은 양을 사서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습니다. 거의 30년 가까이 수련했지만 이 집착심을 버려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마음이 자주 튀어나왔습니다. ‘나이가 들었으니 먹고 싶은 것을 좀 먹자.’ 그래서 지난 2년간 몸이 눈에 띄게 노화됐는데, 이는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늙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을 좀 먹자”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단 한 번도 수련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지 않았고, 작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수련을 평범한 세상사처럼 흘려버린 것은 어릴 때부터 길러진 강한 성격과 무엇이든 뒤처지지 않으려는 습관 때문입니다. 마음속에는 위사위아 등 다양한 사람마음이 있었고, 실질적인 수련을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속인이 자신의 감각과 눈으로 보는 것을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가상을 진짜로 받아들였습니다. 처음 대법 수련에 들어선 가장 근본적인 집착은 질병을 없애고 건강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수련한 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 근본적인 집착을 아직 진정으로 버리지 못했고 마음속에는 여전히 ‘병’의 그림자가 남아있습니다. ‘병’에 대해 법에서 깊이 있게 인식하지 못했고, 수련의 더 깊은 내면적 함의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수련은 정말로 엄숙합니다. 사람의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면 대법에 동화될 수 없고, 그렇다면 원만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몸의 증상들이 점차적으로 완화되고 사라졌습니다. 몸에 기운이 났고, 입술도 더 이상 마르지 않았으며, 하체에 피부가 벗겨졌던 곳도 회복되고 있습니다. 대법에 따라 진실하고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기만 하면, 모든 관과 어려움은 발아래 놓이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7/2/4929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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