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사악한 박해에 정념으로 맞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농촌 여성으로,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온몸에 병이 있었고 해마다 많은 돈을 병원비로 썼다. 당시 집안 형편은 몹시 어려웠고 장터에서 잡화를 팔아 약간의 용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1998년 어느 날, 장터에서 한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얼굴이 완전히 잿빛이네요. 파룬궁을 수련하면 병을 고치고 건강해지는 효과가 아주 크다고 하는데 한번 수련해보세요.” 나는 시험 삼아 해보자는 마음으로 마을의 파룬궁 연공장을 찾아갔다. 이후 매일 연공장에 가서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파룬궁의 신기한 효과가 내게도 나타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1. 20여 일 수련 후, 병 없는 가벼운 몸 체험

수련 넷째 날, 나는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 화장실을 찾았고, 여러 번 다녀온 뒤에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 설법을 들으러 가기 전에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먹으면 곧바로 토하며 배가 몹시 부풀었다. 위장병이 있어 찬물을 마실 수 없었고, 말린 것도 먹을 수 없었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으며, 심장병, 신장병, 혈뇨, 당뇨병, 두통, 안구 통증, 다리와 허리 통증, 위장병, 안구건조, 구강건조로 침이 나오지 않는 병, 땀이 나지 않는 병까지 있었고, 전신에 힘이 없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또 출산을 하며 얻은 산욕열과 전신 냉증 등 온몸이 병투성이여서 몹시 괴로웠다. 그런데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지 넷째 날, 나는 찬 찐빵을 먹을 수 있었고 찬물도 마실 수 있었다.

7일째, 제2장 공법을 연마할 때 내 자세가 정확하지 않았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 오른손을 위로 들어 올려주었다. 내가 눈을 떠서 앞을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사부님께서 내 손을 들어주신 것을 알았다.

18일째, 나는 텔레비전을 보던 중에 천목(天目)을 통해 사부님께서 앉으셔서 설법하시는 모습을 보았고, 집에 돌아와 눈을 떠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일째, 나는 원래 류머티즘으로 인해 땀을 흘리지 않는 병이 있었는데 아침 4시 반에 땀을 흘렸고 5시에 땀이 멈췄다. 사부님께서 내가 장터에 일찍 나가야 함을 아시고 맞춰주신 듯했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게 됐고, 모든 병에서 벗어났으며, 잠도 잘 수 있게 되어 천둥이 쳐도 들리지 않았고 아주 달게 느껴졌다. 걸을 때는 몸이 가벼웠고 자전거를 탈 때는 누군가 뒤에서 밀어주는 듯했고, 걸을 때 바람이 일었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언급하신 현상들이 모두 내 몸에서 나타났다.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시 우리집의 형편이 몹시 어려워 나도 집안일을 도왔다. 겨울에 차를 몰고 시장에 갈 때 연공하기 전에는 몹시 추웠지만, 연공한 후에는 운전할 때 소매 안으로 따뜻한 바람이 들어왔고, 연공장(아침에 대법제자들이 함께 연공하는 곳)을 지나칠 때면 온몸을 관통하는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연공하지 않았을 때는 여름철 집 안에서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지만, 연공한 후에는 문을 닫고 있어도 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한 뒤에야 병 없는 가벼운 몸의 느낌을 알게 됐고, 마음도 무척 밝아졌다. 사부님의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2. 사악한 박해에 정념으로 맞서다

2016년 11월 16일 밤, 파출소 사람들이 갑자기 우리집에 들이닥쳐 집에 있던 프린터 10여 대와 컴퓨터 2대, 진상용 복(福) 글자와 대법 서적 등을 모두 강탈해갔다. 저녁에 그들은 나에게 이름을 물었고,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대법 노래도 불러주었다. 나는 “하늘도 땅도 망망한데 세상 사람 어디로 가는가 미혹 속에 길을 잃었으니 방향을 알려거든 진상을 찾으세요 부유하건 가난하건 모두 마찬가지 큰 난 닥치면 숨을 곳 없어라 그물 한쪽 열려 있으니 어서 빨리 진상을 찾으세요.”[홍음3-진상을 찾으세요]를 불렀다. 파출소 젊은이들은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당일 자정 무렵, 그들은 나를 탕산(唐山) 제1 구치소로 끌고갔다. 당시 날씨가 몹시 추워 나는 얼어 죽을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어디에 있든 법을 실증하자고 생각했다. 도착한 시각은 자정 12시였고 나는 감방으로 들어가며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쳤다. 외침이 아주 커서 감방 안의 모든 사람을 깨웠다. 그들이 내가 들어오도록 문을 열었을 때, 내가 천목으로 보니 큰 검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감방 안에는 20여 명이 있었고 바닥에서 침구 위까지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나에게 죄수복을 입게 했다. 나는 입지 않은 채 내가 죄수가 아니고, 입을 수 없으며,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끝내 죄수복을 입지 않았다. 그들이 나에게 일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하지 않았고 그곳에서 진상을 알렸다.

셋째 날 파출소에서 나를 심문했다. 나는 나가면서도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쳤다. 그들이 이것저것을 물었지만 나는 모두 모른다고 했다. 무엇을 묻든 모른다고 했다. 구치소 안은 밤새 불이 켜져 있었고, 매시간 두 명씩 교대로 당번을 섰다. 나는 밤에 발정념과 연공을 해야 했으므로 자원해서 당번을 섰고, 감방의 다른 수감자에게 연공을 가르쳤다.

감방 안에서의 18개월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공과 발정념을 했다. 또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유해 190명을 탈퇴시켰다. 감방의 반장은 진상을 분명히 알게 됐다. 나에게 펜이 없다고 하니 반장이 몰래 펜을 하나 주었다. 나는 밤에 연공과 발정념을 한 뒤 모든 이불과 요, 신발, 문틀, 죄수복 위에 ‘하늘이 중공을 멸하여 중공의 재앙이 이미 도래했으니 삼퇴하여 목숨을 보전하자’를 크게 써 넣었다. 밤중에는 함께 당번을 서는 사람에게 연공을 가르쳤고, 감방에서도 많은 사람에게 연공을 가르쳤다. 휴식 시간에는 함께 모여 법공부를 했다. 어떤 이는 자신도 출소 후에 대법 책을 찾아서 배우겠다고 했고, 그런 사람은 모두 조기 출소했다.

1년 남짓 지나 법정에 출두했을 때 나는 스스로를 변호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저희 집이 가난해서 병원에 갈 돈이 없었지만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에 온갖 병이 모두 나았습니다. 저는 당연히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습니다.” 재판장은 내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 재판이 끝나고 밖에서 기다리던 중에 나는 사람들에게 대법제자가 창작한 노래를 불러주고 진상도 알렸다. 1심에서 나에게 징역 3년 6개월이 선고됐지만 나는 마음이 동요되지 않았고 밖으로 나가면서도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쳤다. 우리 감방의 반장 두 명이 나를 위해 항소장을 써주었다. 두 달 뒤, 법원에서 사람이 와서 나를 찾았고 나는 밖으로 나가면서 다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쳤다. 그들에게 “진선인이 뭐가 나빠요?!”라고 물으니 그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열흘쯤 지나 다시 법원 직원 몇 명이 찾아왔고 나는 나가며 또 외쳤다.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쩐싼런하오!” 이번에는 남자 법관이었고 그는 먼저 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내가 말했다. “저희한텐 돈이 없습니다. 돈이 있었으면 병원에 갔을 겁니다. 돈이 없어서 파룬궁을 배워 좋은 사람이 됐고, 병도 나았고, 돈도 안 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좋습니까?” 내가 그에게 이번에 재판을 여느냐고 묻자 그는 “이번엔 재판을 안 열고, 우리 법원에서 여섯 명이 와서 사건을 조사하고 확인해요. 지장을 찍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안 찍습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법원에서 온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리며 말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장쩌민의 거짓말을 믿지 마세요.” 그 사람은 아주 선량해 보였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이건 여러분에 대한 하나의 시험일 겁니다.” 이후 감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경찰 감시실 앞을 지나던 중 경찰 한 명이 튀어나와 나를 때렸고 나는 맞아서 기절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나서 말했다. “저는 여러분을 범법 행위로 고소할 겁니다.” 이후 소장 장(張) 씨가 나와 대화를 하자고 했고 나는 그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 악인은 다른 사람에게 사과를 할 줄 몰랐다. 내가 말했다. “어쨌든 저는 제 가족한테 사람을 때리고 법을 지키지 않는 구치소를 고소하게 하고, 저를 때린 그 경찰관을 반드시 끌어내리게 할 겁니다. 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감옥에도 안 갈 겁니다.”

나중에 그들은 나에게 진료를 받게 했고 혈압이 높다며 약을 먹으라고 했다. 나는 약도 먹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여러분은 우리가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이라 남의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걸 모릅니다. 만약 밖에서 누군가를 때렸다면 병원에 가서 검사비만 해도 수천 위안이 들 텐데, 그 사람이 얼마를 배상하라고 할지 모르잖습니까?” 소장은 “구치소에 그런 지출 항목은 없고, 내가 회의에서 그를 비판, 교육할 수는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을 저한테 사과하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소장은 사과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끝까지 물러서지 않자 소장은 결국 2천 위안으로 해결하자고 했다. 그들은 나중에 2천 위안을 나에게 주었다. 이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말에 이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말이 이치에 맞지 않았다면 소장이 돈을 줬겠는가?! 나는 즉시 그 이치를 요구했고 그 사악한 곳에서 당시로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소장은 이 일에 대해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감방 반장에게 이야기했다.

이후 판결문이 다시 내려왔고 1년 6개월 감형되어 2년 6개월이 됐다. 2017년 7월 16일 이른 아침, 나는 감옥으로 들어갔다. 구치소에서는 돈을 그쪽으로 이체했다. 감옥에 도착해 모두 줄을 서자 감옥경찰이 “누가 죄를 인정하지 않지?”라고 물었다. 나와 몇몇 수련생이 한목소리로 “나는 죄가 없어요. 나는 죄가 없어요”라고 외쳤다. 우리는 모두 ‘전향’ 구역으로 배정됐다. 나는 전향을 거부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자 화장실에도 못 가게 하고 양치도 못 하게 했다. 그곳에서는 몰래 폭행을 했고, 화장실에 감시카메라가 없어 그곳에서 몰래 때렸다. 그곳의 조교들은 마치 ‘서유기’에서 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만난 요괴들처럼 잔인하고 포악했다. 나는 그곳에 두 달 동안 있었다.

이후 나를 10구역으로 보내 노동을 하게 하면서 실밥 자르기를 시켰다. 나는 눈이 좋지 않다며 반장 옆에 앉아 있었다. 나중에는 사람들에게 물을 따라주는 일을 맡았는데, 그들은 모두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았고 나를 아주 잘 대해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반장도 아주 좋았다. 나는 함께 밖으로 나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는 물을 따를 때 병의 절반만 채우게 되어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가득 채워 주었다. 모두들 만족해했고 나를 아주 존중해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대법 노래도 불러주고 대법 진상도 알렸다. 그곳에서는 기계 소음이 아주 커서 경찰이 들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주전자를 하나씩 양손에 들고 가다가 넘어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소리가 아주 커서 경찰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또 한번 나를 구해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설날이 됐을 때 공장에 쓰레기봉투가 보였고, 안에 뭔가를 싸고 있는 노란 천 조각이 있어 그것을 주워 열어보니 중공의 생체 장기적출을 폭로하는 진상 소책자가 한 권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가져와 조장에게 보여주었고, 열흘 남짓 만에 조 전체가 다 보았다. 내가 다른 조에도 보여주자 조장이 “경찰한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요”라고 말했다.

감옥에서는 노역 수당으로 매년 6백 위안을 지급했다. 나는 감옥에 10개월 있었으므로 5백 위안을 받아야 했다. 다른 사람은 누구도 그 돈을 감히 요구하지 못했고, 그 달 출소 예정자가 70여 명이었지만, 누구도 노역비를 요구하지 않았다. 경찰관은 나에게 “걱정 마세요. 출소 전에 카드에 넣어 줄게요”라고 말했다.

출소 며칠 전, 감옥경찰이 또 나에게 “당신은 판결 전에 벌금 6천 위안을 안 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출소 며칠 전에 명세서를 확인하니 5백 위안이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나에게 아직 돈이 입금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출소자들은 “우리 요구하지 말자. 나갈 수 있으면 됐잖아”라고 했다. 나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감옥이 그 돈을 착복한 것이라고 했다. 출소 날인 7월 16일 월요일 아침, 감옥경찰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고, 나는 장 경관에게 돈을 주지 않을 거면 차용증이라도 써 달라고 했다. 장 경관은 안쪽 방으로 들어가 상관과 상의하고 나와서 자신이 대신 지급하겠다며 현금 5백 위안을 주었다. 나는 그들이 내가 출소 후 자신들의 행위를 폭로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저에게 용기를 주시고 지혜를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7/5/4967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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