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촨성 대법제자
[명혜망] 수련인은 먼저 선(善)을 수련해야 하고, 선으로부터 점차 자비심을 수련해낼 수 있다. 그런데 선이란 무엇인가? 많은 경우 이 부분을 진정으로 소홀히 했고, 남과 다투지 않으면 그것이 선이라고 여겼다. 이는 일반인이 이해하는 선이다. 무엇이 선인지, 어떻게 선을 수련하는지 모른다면, 수련을 어떻게 논할 수 있겠는가?
보통 우리는 법공부를 할 때 중생에게 자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진상을 알릴 때나 수련자와 교류할 때 많은 경우 자비를 입에만 걸고 있을 뿐,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자비가 생겨났는지 알 수 없다. 특히 일상 업무와 생활에서는 수련자의 선을 자주 소홀히 하거나 잊는다.
구체적인 표현을 보면, 중생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관심이 없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여전히 좋고 싫은 것이 있으며, 주변 사물에 대해서도 예쁘고 안 예쁘다를 구분하고, 일을 할 때도 여전히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이 많으며, 인간관계에서도 여전히 희로애락이 있다.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것은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항상 동요한다.
특히 가정환경에서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자매 등을 대할 때 매우 쉽게 정(情)의 것으로 대하며, 그들을 나의 가족이라고 여기고 어떻게 해도 큰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이 세상에 내려와 대법의 제도를 기다리는 중생의 일원으로 여기기 어렵고, 이렇게 되면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한다는 목적에 도달하기 매우 어렵다.
진정한 사랑은 자비이며 누구에게나 좋다. 이는 대법제자의 마음속에 원망과 정이 없고, 미와 추가 없으며, 기쁘고 기쁘지 않음이 없고, 생명의 귀천을 구분하지 않으며, 생명의 대소도 구분하지 않고, 마음속에 적이 없어야 함을 요구한다. 언제나 상대방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데, 심지어 작은 풀 한 포기라도 우리가 함부로 그것을 망가뜨릴 때 그들도 괴롭지 않겠는가? 그들도 생명이다! 한 가지 물품을 원하지 않는다고 버리는데 그들도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함부로 하나의 생명을 버릴 수 있겠는가? 만물에는 모두 영이 있다. 하지만 우리도 극단으로 가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기르는 채소도 생명이 있지만, 그것은 인류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우리도 그것을 수확하고 먹어야 하는 등등이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인식했다. 이 정을 끊지 않고, 심지어 집착해서 놓지 않거나 각성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수련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또 속인 중에서 수련하고, 속인의 업무와 생활환경이 있는데, 만약 완전히 정(情)의 것이 없다면 우리는 속인 중에 있을 수 없다. 오직 수시로 자신을 경계하여 담담히 보고, 또 담담히 보아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해야 한다. 최소한 우리가 사람과 일을 판단할 때 사람의 표준으로 판단할 수 없고, 대법으로 판단해야 한다. 만약 정이 너무 무거우면 아마 문제가 생기거나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우리 지역의 1996년에 법을 얻은 한 노년 수련자가 기억난다. 과거에도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었지만, 2024년에 다시 박해를 당했는데, 사악이 그의 배우자와 자녀들(모두 관료)을 이용해 위협하며, 수련을 포기하지 않으면 자녀들의 업무에 영향을 준다고 했고, 그 가족들이 위압과 회유를 했다. 아마도 그 수련자가 정마(情魔)의 얽힘을 견디지 못해 집의 대법 서적과 자료를 내놓았을 것이다. 이는 바로 사악의 간계에 빠진 것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가족을 해친 것이다. 그들이 사악에 협조해 사악이 하려는 일을 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뉘우치지 않으면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할 수 있다! 대법제자는 오직 수련해 원만해야만 가족에 대한 자비이고, 진정으로 그들을 구할 수 있으며, 그들이 아름다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만약 사악에게 이용되어 대법이나 대법제자에게 범죄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미워할 수 없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사실 그들은 몽폐된 것이고, 그들의 선천적 본성은 이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들도 법을 위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조건이 있을 때 이런 사람들을 선하게 권하고, 그들도 구원받기를 희망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법제자가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말을 할 때, 만약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상대방이 견딜 수 있는지, 진정으로 그에게 좋은지를 생각할 수 있다면? 나는 대법제자로서 만약 장기적으로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아마 자비심이 자연스럽게 수련되어 나올 것이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대법제자로서 반드시 자비와 인정을 구분해야 하고, 정에 집착하면 수련할 수 없다. 정이 있으면 사람이고, 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에서 파생된 모든 집착심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이상은 나의 최근 얕은 깨달음이다. 적절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수련자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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