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遼寧)성 대법제자
[명혜망] 올해 53세인 저는 대법 수련을 시작한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업력으로 가득 찬 평범한 사람에서 수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이기적이던 사람에서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수련생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 모든 여정은 위대한 법과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마음을 수련하며 체득한 내용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수련 과정에서 마음속 집착들은 반복적으로 수련됩니다. 한 시기에 제거했다고 여겨도, 다른 시기가 되면 다시 나타나고, 그러면 또다시 수련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아래에서는 주로 제가 층층의 원망심을 제거해 나간 체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남편에 대한 원망심을 수련해 없애다
남편은 선량하지만 극도로 성급한 성격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해도 그의 생각과 조금만 어긋나면 장소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큰 소리로 화를 냅니다. 자제력이 부족합니다. 자주 화를 내는 그와 달리 저는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이라, 매번 그의 마성을 억지로 참아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그에게 짜증과 원망, 경멸과 무시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수준이 낮고 교양이 없으며 나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이구나’라고 여겼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후 남편에 대한 원망심이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가 저에게 고함을 지를 때마다 제 안에서는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뜨거운 피가 솟구쳐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참으며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지나고 나면 후회하며 ‘왜 또 이 고비를 넘지 못했을까.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냥 내게 한 말이 아니라고 여기면 될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원망심이 올라올 때면 정말 통제하기 어려웠습니다.
때로는 눈물을 참으며 작은 방에 들어가 사부님의 법을 외우거나 발정념을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후천적으로 형성된 이 사심(私心)을 반드시 수련으로 없애야 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계속 법을 배우고 수련이 깊어지면서 이런 마음들이 진정한 저 자신이 아님을 점차 깨달았습니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과 좋지 않은 물질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시 갈등이 생길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이 원망심, 남을 깔보는 마음은 내가 아니야. 나는 그것들을 원하지 않아. 사라져라.’ 그렇게 점점 남편이 성질을 부려도 가끔은 감정을 통제하고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고비를 넘기고 어떤 때는 넘기지 못하면서 계속 반복하며 수련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오후에 진상을 알리고 돌아오는 길이 조금 늦어졌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이 큰 소리로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외출하기로 한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진상 알리기로 이미 지쳐 있던 차에 그런 욕설을 듣자 마음이 괴로웠고 원망심이 바로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자신이 수련생임을 떠올리며 ‘이건 좋은 일이다, 나는 그에게 끌려가면 안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마디 달래보았지만 오히려 더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 목소리가 쉬어버렸습니다. 저는 얼른 말했습니다. “알겠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돈을 넉넉히 챙겨서 좋은 거 사러 같이 나가요.” 그는 ‘무언가 사준다’는 말에 약간 누그러졌습니다. 사실 정말 피곤해서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연공하는 사람인데 피곤하다고 할 수 없지. 이기심과 원망심을 수련해 없애야 하며, 상대방을 배려해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외출했고 한바탕 소란이 끝났습니다.
때로는 ‘남편이 왜 저럴까. 내가 수련하니까 이렇게 참고 사는 거지, 수련하지 않았다면 절대 같이 살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을 수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좋은 일 아닐까요! 가끔은 제가 한마디만 해도 갑자기 고함을 지르기 시작해 당황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상황이 어떻든, 내가 옳든 그르든 마음을 흔들지 않겠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겠다.’
제가 조금씩 자신을 수련하고 심성을 제고해 나가자 남편도 변했습니다. 예전처럼 자주 화를 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 공간장에 원망심, 남을 깔보는 마음, 무시하는 마음 같은 좋지 않은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에 남편이 그런 역할을 하며 제가 그것을 수련해 없앨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어지자 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남편에 대한 원망심을 거의 수련으로 제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어머니에 대한 원망심과 지적하는 마음을 수련으로 없애다
어머니는 99년 이전에 저를 수련의 길로 인도해주신 분이었습니다. 박해 이후 어머니는 수련을 포기하셨고 저는 결혼해 평범한 사람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저는 다시 대법 수련의 길로 돌아왔습니다.
2012년, 저는 어머니를 다시 수련으로 인도하려고 설득했습니다. 한 해 동안 수련하시던 어머니는 시력이 안 좋아져 법리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병원 수술을 받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거의 실명 상태가 되어 수련을 포기하셨습니다.
대략 2020년, 저는 어머니께 다시 대법 수련을 권했습니다. 매일 어머니와 함께 법을 배우고 연공했는데, 2년쯤 지나자 심장병 증세를 보이셨습니다. 수련 시간이 짧고 두려운 마음이 무거워 결국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으셨습니다. 퇴원 후에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연공은 어려워졌고 법공부만 겨우 하실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불만이 생겼습니다. ‘깨달음이 너무 부족하고 수련자답지 않으셔. 정말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매일 오전마다 함께 공부하고 연공하느라 내 시간이 얼마나 허비되는지!’
어머니는 시력이 좋지 않아 책 읽기가 버거워 속도도 느렸으며, 오래 앉아 있기도 힘들어 중간중간 쉬셔야 했습니다. 때로는 과일을 드시거나 화장실에 가셔야 했습니다. 결국 오전 내내 한 강도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변 수련생들이 오전 한 번에 세 강도 읽는 것을 보고 정말 부러웠고 더 이상 신경 쓰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곧 돌아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원래 법을 위해 오셨다. 사람 세상에 너무 깊이 빠지셨고 지금 이 상태도 참 불쌍하신 상황이야. 어떻게든 내가 가야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실 수 있어. 내가 가지 않으면 아마 법공부가 완전히 끊기고 말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어머니 곁으로 가도록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어머니는 법공부가 부족하고 관념이 강하신 분입니다. 함께 공부할 때 『전법륜』 8강에 나오는 “어떤 사람은 몇 년이나 십몇 년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지만, 오히려 생활하는 것이 아주 좋다”라는 구절을 읽으면 어머니께서는 자주 “그런 사람이 누가 있어? 나는 못 봤는데”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는 입을 다물고 기다리곤 합니다. ‘어머니께서 법을 더 공부하시면 이런 무신론적이고 사악한 당의 관념을 깨뜨릴 수 있으실 텐데.’ 때로는 제가 화가 나서 “어머니 시력으로 뭘 보시겠어요? 가까운 것도 잘 안 보이시는데, 안 보이는 것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 식으로 의심하시면서 뭘 공부하시려고 하세요?”라고 말씀드린 적도 있습니다. 저는 제 안에서 원망심이 솟아오르고 지적하는 마음도 함께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머니께서 법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시고 사부님을 의심하시는 마음, 낮은 깨달음 상태 등에 대해 원망하며 논쟁하곤 했습니다. 때로 목소리가 커지고 원망심도 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어머니께 차분히 정중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일이 지난 후 저 역시 후회했습니다. 저 자신도 온몸에 공산당 당문화가 배어 있어 평화롭지도 자비롭지도 못한 행위를 했음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에 대한 원망심, 지적하는 마음,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대법이 널리 전해지면서 누구나 잘 수련해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후천적으로 형성된 의식이 너무 많아 본성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자신의 본래 의지가 아닌데, 어찌 남의 집착 속에 빠져 있을 수 있겠습니까? 조금씩 자신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오면 말을 최대한 줄이고 수구(修口)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음 스스로에게 조용하고 평화롭게,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지적하지 않고 말하려고 다짐했습니다.
자신이 바뀌면서 어머니에 대한 정과 각종 집착도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아무런 기대 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어머니 댁에 가서 함께 공부하고 격려합니다. 어머니께서 더 알고 싶어 하시는 한 함께 공부할 것입니다. 결과에 대해 기대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배움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머니께서 꾸준히 공부하셔서 법정인간(法正人間)까지, 저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함께할 것입니다.
3.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심과 깔보는 마음을 수련으로 없애다
결혼 후 저는 시어머니와 거의 교류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는 혼자 사셨기에 명절이나 설날에만 가끔 뵐 수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1999년 7월에 법을 얻으셨는데, 수련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본격적으로 수련하지는 않으셨지만 ‘대법이 좋다’는 마음은 그대로 있어 몇 권의 대법 서적을 보관하고 계셨으나 읽지는 않으셨습니다. 2019년, 길거리에서 수련생이 시어머니에게 진상을 알린 것을 계기로 다시 대법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때 저는 또 수련을 떠난 상태였는데, 시어머니가 법을 다시 접하시자 저도 다시 대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저와 시어머니는 거의 같은 시기에 다시 대법 수련으로 돌아왔고, 그 후부터 교류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관념이 무겁고 주변에 함께 수련할 분도 적어 거의 혼자 수련하셨습니다. 매일 사부님의 설법 한두 강만 들으셔도 많이 배운 것처럼 느끼셨고, 실제로 연공하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함께 정진하는 환경이 없어도 스스로 매우 정진한다고 여기셨습니다.
올해 5월, 남편이 시어머니의 혈압이 200이 넘는다고 알려왔습니다. 누군가가 “뇌혈관이 터지기 쉽다”라고 겁을 준 뒤로 시어머니께서 겁을 내셨고, 동생들의 권유도 있어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저에게도 함께 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제 안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시어머니는 수련을 제대로 하지 않으시고 다리도 5년 넘게 절뚝거리며, 2년 전 뇌졸중 증세도 있었는데 우리집에서 3개월 함께 공부하고 연공하실 때는 조금 좋아지셨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정진하지 않으셨고 여전히 연공도 하지 않으셨다. 이제는 또 이런 가상(假相)이 나타나 병원에 가야 한다니, 더 나빠질 것이다.’ 저는 한꺼번에 많은 원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원하셔서 병원에 가시려는 것이니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와 남편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습니다. 간호사가 혈압을 측정하는데 275나 나왔고 의사들도 너무 놀라며 그렇게 높은 혈압은 처음 본다며 당장 입원을 받을지 망설였습니다. 한참을 논의한 끝에 입원을 결정했습니다. 이 순간 저는 사부님께서 시어머니를 돌보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일반 사람이 이 정도 혈압이면 혈관이 터졌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이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겨야 한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입원한 밤, 제가 간병을 해야 했습니다. 솔직히 마음이 전혀 내키지 않았습니다. 평소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해야 정법시기에 발맞출 수 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수련도 제대로 못 해 더 뒤처질까 봐 걱정됐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다음 날 출근해야 하고 시어머니의 동생들도 고령이며 몸이 좋지 않아서, 제가 퇴직 후 집에 있는 상황에서 누가 이 일을 맡겠습니까? 결국 마음의 거부감을 억누르고 가야 했습니다. 병원에서 저는 밤마다 사부님의 강연 녹음을 듣고, 시간이 날 때마다 발정념을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집에 들어와 먼저 연공하고, 점심에는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한 뒤, 오후에는 진상 알리기를 위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병원으로 향하는 일상이었습니다. 거의 11일 동안 저는 마치 팽이처럼 쉬지 않고 돌았습니다.
병원에서 듣는 법은 집에서 법을 외우는 것과는 효과가 비교가 안 됐습니다. 병원 환경 자체가 불편했고 환자들이 일찍 자서 발정념도 자주 방해받았습니다. 저녁이면 잠이 와서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고 제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오후에 진상을 전하고 병원에 돌아가면 다리를 들 수도 없을 정도로 무거웠고 마음은 무척 침울했습니다. 원망심이 날로 깊어졌습니다. 시어머님이 젊고 건강하실 때는 하루도 아이를 돌봐주신 적이 없으셨고, 저희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단 한 점의 혜택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연로하시고 건강이 나빠지시자 오히려 제가 모셔야 하니, 힘든 건 차치하고라도 무엇보다 수련이 따라가지 못하고 점점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제 마음이 얼마나 조급했는지요. 조급할수록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고 가슴이 꽉 막혀 목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수련은 원래 어려운 것입니다. 괴로울수록 더욱 자극을 받습니다. 시어머님의 막내아들과 며느리가 어느 날 병원에 와서 시어머님께 2천 위안을 드렸습니다. 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 저와 상의하며 “우리도 좀 드리자. 어머니께서 돈이 없으시니 입원비도 많이 들 테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제 원망심이 폭발해 버렸습니다. “당신 동생 부부가 와서 조금 드리는 건 당연하죠. 나는 매일 밤 병원에서 간병하는데, 내가 뭘 더 낸단 말이에요? 사람을 써서 모시면 돈이 안 드나요?” 이렇게 한바탕 쏟아내고 나서 저도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저는 수련하는 사람인데 어찌 속인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법을 외웠습니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정진요지-경지) 외우고 또 외우다 보니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습니다. 그날 밤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2천 위안을 드려요. 어머니가 기뻐하시면 그걸로 된 거예요.” 이번에는 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내심 깊은 곳의 이기적인 마음이 또 한 겹 제거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병원에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을 때마다 저는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사부님의 이 말씀을 반복해서 외웠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님이 퇴원하실 때까지 간병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병원 검사 결과, 시어머님의 고혈압은 목에 있는 두 개의 주요 동맥 혈관이 심하게 막힌 것이 원인이었고 스텐트 시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서는 11일간 안정을 취하신 뒤 퇴원하셨고, 한 달 이상 집에서 요양을 더 하신 후에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또 한 달 넘게 시어머님을 모시게 되었고 식사 준비, 목욕, 머리 감기는 물론, 때때로 실수로 소변을 보시거나 대변을 바지에 보실 때도 모두 제가 닦고 씻어드려야 했습니다. 매일 많은 일이 생겼지만, 다행히 밤에 남편과 시어머님이 주무신 후에는 저는 법을 배우고 연공할 수 있었기에 병원에 있을 때보다 환경은 훨씬 나았습니다.
한 달 후 시어머님은 스텐트 시술을 받으셨고 병원에 다시 11일간 입원하셨습니다. 그 기간에도 매일 밤 제가 간병했습니다. 퇴원하신 뒤에는 일상생활을 스스로 하실 수 없어 계속 우리집에 머무르게 되셨습니다. 시어머님은 수련생이시긴 하나 관념이 강하고 법공부를 적게 하며 안으로 찾지도 않으셔서, 때때로 마성이 크게 발할 때는 오히려 마음 상태가 좋은 속인보다도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원래 낮에 집에 혼자 있을 때 조용한 걸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시어머님은 집에서 자주 혼잣말을 하시고, 뭐라 중얼거리며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떠드셨습니다. 아니면 “아야, 아야” 하시기에, 어디가 아프시냐고 여쭤보면 온몸이 다 불편하다고 하셨습니다. 조금만 아파도 견디지 못하시고 조금이라도 고생이 있으면 못 참으시니, 저도 마음속으로 시어머님을 무시하고 좋게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시어머님에 대한 원망심이 너무 크다 보니 평소에 시어머님이 하시는 말소리조차 듣기 괴로웠고 마음이 막힌 듯 답답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주 제 작은 방 안에 혼자 들어가 문을 닫고 차라리 눈에 안 보이면 마음이 덜 불편하다고 여겼습니다.
저도 제 심성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꾸 남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신, 남이 좋든 나쁘든 사실 저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제가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왜 자꾸 밖을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요. 저는 시어머님에 대한 이 좋지 않은 마음들을 반드시 수련하여 없애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시 짜증이 나거나, 원망이 올라오거나, 마음이 막히는 느낌이 들 때마다 저는 그것을 제거하려 애썼습니다. 저는 이런 좋지 않은 것들이 제 천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로막게 둘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제 본래의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기에 저는 반드시 없애야만 했습니다.
저는 매일매일 이런 좋지 않은 마음들을 없애는 데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점점 시어머님이 그렇게까지 성가신 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많은 장점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차분한 마음으로 시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마음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여전히 시어머님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고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법 위에 있지 않고 모두 속인의 것처럼 느껴져 수련이 너무 부족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저는 아직도 제 안에 원망심, 불평, 자비롭지 못한 마음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수련하고, 다시 제거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층층이 쌓인 원망심과 좋지 않은 마음을, 수련을 통해 없애다 보니, 제 마음도 더 이상 그렇게 답답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평온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좋지 않은 마음들이 여전히 때때로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금세 원망하고 비난하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은 사람을 대하는 데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면에서도 드러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여름철에 집 앞 도로 공사를 했는데 한 달 넘게 해도 끝나지 않아 길가에 먼지도 많았습니다. 하루는 차를 몰고 외출하다가 도로가 울퉁불퉁해 차가 계속 흔들려서 저는 속으로 ‘이 도로는 이렇게 오랫동안 공사하면서도 아직도 안 끝나다니, 정말 성가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저는 곧바로 깨달았습니다. ‘이건 원망심이 아닌가?’ 저는 즉시 그 마음을 없앴습니다. 제 안에 원망심이 이렇게 깊었구나,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원망하고 있었던 겁니다. 앞으로는 반드시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닦는 것을 중시하고 최후에 완전히 제거하고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다시는 이런 것들이 자라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이상은 제가 원망심을 수련으로 제거하며 얻은 작은 체득입니다. 앞으로 더 정진하여 모든 좋지 않은 마음을 없애고 세 가지 일을 잘 완수하며,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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