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조카딸(시동생의 딸)이 결혼하게 되어 아주 먼 다른 성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보름 전에 출발하시겠다고 했고, 시동생 집에서는 시부모의 기차표도 책임지지 않았기에 남편이 대신 표를 예매했다. 시어머니는 우리 부부에게 언제 갈 거냐고 물어보셨다. 우리는 철없는 시동생 가족에게 많은 것을 해 주었는데도 결국 고맙다는 소리 한 마디 듣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그들 가족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첫째, 시동생 가족은 외지에서 일하고 있는데, 조카딸이 호적지에서 대학 입시를 보려면 전학을 와야 했고, 그 일로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남편은 사람을 통해 전학 수속을 밟아 주었고, 선생님께 식사 대접도 해야 했으며, 모든 비용은 우리 부담이었다. 둘째, 조카딸은 이 4년 동안 방학 때마다 우리집에 와서 지냈고 우리는 항상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동안 그들 가족이 준 선물이라곤 찹쌀떡 한 상자와 스테이크 소스 한 병(스테이크를 해달라는 뜻)이 전부였다. 셋째, 조카딸은 졸업하고 취직한 후에도 우리와 연락하지 않았고, 명절이나 설날에도 세뱃돈 받을 때 외에는 안부 인사 한 마디 없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니 더욱 불공평한 마음이 들었다. 나 혼자 비행기 왕복만 해도 거의 3천 위안이 드는데, 그 돈이면 축의금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의 이런 태도로 보아 내가 결혼식에 가도 그리 반갑게 맞이하지는 않을 것 같고, 게다가 나는 시간도 없다. 남편이 날 대신해 참석하라고 했다. 나는 직장에서 바쁘니 휴가도 내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내가 꼭 가기를 원했다. 처음에는 나도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들 가족 네 명 모두에게 이미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해 성공했으니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가지 않는 것도 괜찮고, 가면 시간 낭비고 법공부와 연공도 지장받는다고 여겼다. 그런데 점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집안에서 조카딸은 첫 번째로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기에 가족들이 특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내가 안 간다면 체면이 서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은 속인이기에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나는 수련인이다. 나도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잘못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왜 가기 싫은 걸까? 결국 내 노력과 헌신이 보답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바로 이 마음이 동요된 것이다. 불만, 질투… 이런 것들은 수련자가 내려놓아야 할 집착심 아닌가? 게다가 전생에 우리가 그들에게 빚진 게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정말 수련하는 사람인가? 수련인이라면 집착을 내려놓고 올라서야 한다. 선한 마음과 관용을 실천해야 한다. 비록 그들 가족 네 명은 모두 삼퇴를 했지만, 결혼식에 참석한 친척과 친구들도 많으니,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은가!
이번에 헛되이 가서는 안 된다. 사람을 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원한을 풀어야 한다. 이전에 내가 젊고 철이 없어서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나, 누군가에게 잘못된 말을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결혼식에 참가할 준비를 했다. 일정을 검토하고, 휴가를 내고, 항공권을 예약하고, 옷을 준비했다. 옷과 액세서리를 고르는 과정에서 예쁜 것을 좋아하는 마음, 허영심, 과시심이 다시 나타났다. 깨달았을 때 나는 얼른 바로 잡았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기본적인 예절이며, 대법제자를 대표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법제자의 풍모를 보여주고 사람을 구하기 위한 포석을 깔기 위해서다.
우리는 결혼식 이틀 전에 도착했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을 보니 모두 기뻤다. 나는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잘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기회를 봐서 따로따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조카의 남자친구는 점잖고 말도 조심스럽게 하는 아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상견례 돈(붉은 봉투)을 주며, 그가 참 마음에 든다고 했다. 뭔가 자연스럽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중국공산당(중공)의 인권 박해, 대법의 기본 진상부터 시작해서 ‘삼퇴’ 이야기까지 했다. 그 아이는 순수하고 진지하게 내 말을 들었고, 악당의 악행을 듣고 매우 놀라며 즉시 조직에서 탈퇴하겠다고 동의했다.
결혼식 전날 친척들도 속속 도착했다. 저녁 호텔 식사 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일일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가정사를 이야기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나는 그들의 일정을 명확히 묻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누가 ‘삼퇴’했고, 누가 하지 않았는지, 누가 며칠 머물고 언제 떠나는지, 먼저 누구에게 말하고, 나중에 누구에게 말할지, 잘 준비해서 할 말은 다 할 수 있도록 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큰 테이블 몇 개에 가득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표현에 서툰 사람이라 두뇌 반응도 느려 대화 중에 전혀 말을 잇지 못하고 종종 지나간 후에야 그때 그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이 났다. 하지만 나에게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기에 사부님이 나를 가지(加持)해 주시고 지혜를 주셨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대범하게 담소하며, 유머러스하게 사람들을 끊임없이 웃게 만들었다.
고모와 두 명의 사촌 여동생은 저녁을 먹고 곧 그녀의 남동생 집에 가서 묵고, 다음 날 오전 결혼식만 참석하고 바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간이 좀 촉박했다. 나는 예전에 진상을 설명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바로 자리를 박차고 그들에게 갔다. 우리는 로비에서 식사를 했고, 그녀들은 싱글룸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먹고 나서 복도와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방에는 시고모와 두 사촌 여동생만 있어서 나에게 독립된 대화 공간을 주었다. 시고모는 연세가 많고 가정 형편도 별로 좋지 않아, 나는 처음 만난 시고모에게 큰 봉투를 드렸다. 시고모는 받으려하지 않으셨지만 나의 진심 어린 설득 끝에 겨우 받으셨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방문을 닫으며 큰 일을 하나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녀들 셋에게 진상을 알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먼저 내가 직접 경험한 것과 본 것에 대해 말했다. 악당이 백성들에 대한 탄압과 박해, 중공이 일으킨 역대 운동, 그리고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들을 박해한 것, 그녀들은 모두 인정했다. 마지막 ‘삼퇴’를 권하는 중요한 시기에 방해가 생겼다. 누군가가 들어와 잡담을 하며 우리의 대화를 끊었고, 복도에서 그녀의 남동생은 집에 가자고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잠시 후에 그 몇 사람은 나갔다. 큰 여동생이 “형님, 방금 우리가 문 닫고 하던 이야기를 빨리 하세요”라고 말했다. 중생의 명백한 일면은 구원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삼퇴’를 말했고, 그녀들은 모두 대에서 탈퇴하는 것에 동의한 후 기쁘게 남동생네 집으로 갔다.
또 한 명의 사촌 오빠와 올케가 있는데 10년 전에 우리집 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사촌 오빠는 성격이 순박하고 정직한 사람이었고, 올케는 아주 영리한 스타일이었다. 당시 올케는 월급이 적다고 느껴 인상을 원했지만, 나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매니저를 통해 돌려서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일로 그들을 한바탕 꾸짖었고, 결국 월급도 올려주지 않았으며 얼마 후 그들은 일을 그만뒀다. 그때는 내가 아직 수련을 하지 않던 젊은 시절이라,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 처세도 미숙했다. 실수가 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 그 부부와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사과하고 싶었다. 나는 올케의 손자에게 첫 만남의 선물로 돈을 주었고, 올케는 처음에는 여러 번 사양했지만 내가 계속 권하자 결국 받아주었다.
그날 밤, 친척이 많아서 우리 부부는 사촌 오빠 부부와 함께 민박에 머물며 저녁 시간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도 있어서 방 3개에 거실 1개인 집이 좀 비좁았고, 남자들은 잠을 자지 않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올케와 한 방에 들었고, 침대에 누워 잠이 오지 않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옛일을 말하면서 내가 젊고 철이 없을 때 말과 행동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오빠와 올케에게 용서를 구하고, 올케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올케는 기뻐하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또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촌 오빠와 올케는 복이 많다. 아들은 출세하고 효도하는 며느리도 얻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이렇게 활발하고 사랑스럽고 건강한 어린 손자를 뒀다. 집안 조건도 좋아지고 사촌 오빠의 건강도 예전보다 좋아졌다. 우리는 매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주제에 접근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이야기하자 올케는 흔쾌히 동의했다. 또 아이들에게도 반드시 ‘삼퇴’의 중요성을 알려야 밝은 미래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올케는 동의했다. 다음 날,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로 가는데 차로 대략 20분 거리였다. 나는 사촌 오빠 옆에 앉아 어젯밤 올케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삼퇴’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몇 년 전 우리 집에서 일할 때, 우리 어머니(수련생)가 이미 그에게 탈퇴시켜주었다고 말했다.
또 큰조카딸 가족 세 식구가 있었는데, 조카딸과 그녀의 어머니는 예전에 이미 ‘삼퇴’했고, 사위만 아직 진상을 들은 적이 없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 모두 작은 여동생 집으로 갔고, 온 가족이 큰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마침 그날은 조카사위의 생일이었다. 나는 조카사위 옆에 앉아 생일 세뱃돈을 주었고, 그는 매우 기뻤다. 그 후 자연스럽게 진상을 이야기했고, 아주 순조롭게 ‘삼퇴’에 동의했다.
그리고 둘째 오빠네 작은 조카는 내 아들에게 매달려 밤에 꼭 형과 함께 자겠다고 졸랐다. 나는 사부님이 안배하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잠자기 전 시간을 이용하여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탄이 어떻게 고귀하고 성스러운 천사장에서 악마로 전락했는지, 또 어떻게 붉은 악룡으로 변해 사람을 해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카는 매우 진지하게 듣고 유쾌하게 사악한 소년선봉대에서 탈퇴했다. 또 큰 오빠 부부, 조카 부부에게도 각각 진상을 알렸다.
결혼식에 참석했던 모든 과정을 돌이켜보면, 사부님의 자비롭고 절묘한 안배 덕분에 무사히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사실 수련 중에서 통과하지 못하거나 고비를 넘지 못할 때는 매우 고통스럽다. 머릿속에는 온통 다른 사람이 어떻게 잘못했고, 어떻게 나에게 상처를 주었는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려놓기를 선택할 때, 고통은 오히려 나에게서 멀어지고 마음은 홀가분하며 기쁘고 즐겁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수련의 오묘함이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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