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검은 소굴을 벗어난 이야기

글/ 중국 대법제자 정련(淨蓮)

[명혜망] 저의 20여 년간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제자는 매 순간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있었으며, 사부님의 불은(佛恩)은 끝이 없습니다! 특히 수련 초기에 경험한 사악한 ‘610’(파룬궁 박해를 전담한 사악한 조직) 인원들에게 세뇌반 검은 소굴로 납치돼 박해받았던 때와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던 나날들에서, 만약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자비로운 보호가 없었다면 제자는 헤쳐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1. 세뇌반에 납치되다

2001년 9월 하순 어느 날, 저는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610 일행이 저희 직장으로 난입하여 직장 지도부를 협박해 저를 지역 세뇌반으로 납치했습니다. 직장에서 610 업무를 담당하는 부책임자가 차를 몰고 함께 세뇌반에 갔는데, 저는 그에게 가족들에게 알려서 옷과 침구를 가져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막 입학한 아들이 떠올라 마음이 쓰라렸지만 억지로 참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 부책임자가 “그러지 마세요, 수련하는 거 아닙니까? 사부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괜찮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문득 이것이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려 일깨워주시는 것임을 깨달았고, 곧이어 한 단락 법리가 제 뇌 속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인연과 모든 원한을 다 해결해주었으니, 그저 수련만 하면 된다.’ 그렇습니다,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는데 제가 무엇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부님께서 반드시 모든 것을 잘 안배해주실 것입니다. 곁에 사부님의 법신이 보호해주시고 있고 천룡팔부가 호법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속에 즉시 정념이 솟아올랐고 눈앞에 발생하는 모든 것을 담담하게 대할 수 있다고 느꼈으며, 아들에 대한 정도 많이 내려놓게 됐습니다.

사악한 세뇌반은 한 시골 마을 가장자리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폐기된 학교나 공장 같았습니다. 당시 610 직원들은 대부분 차출되어 온 교사들이었고, 전체 세뇌반에는 저 혼자만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빈 방에 가두고 벽을 마주보고 서 있게 했는데, 잠시 후 부주임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신문을 읽어주었습니다. 제가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대화하고 싶다고 하자, 그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친근한 척하지 마! 당신은 범죄자이고, 인민의 공적이며, 탄압의 대상이니 반드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여 수련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써야 해!” 그런 다음 저를 방에 가두고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밤 10시가 지나서 또 저를 한 기숙사에 가두었는데,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저를 보호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런 후 제 부원신과 제가 수련 중에 수련해낸 모든 생명체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내 몸의 일부분이고, 지금 내가 잠을 자려 하는데 나는 미혹 중에 있고 너희들은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니, 너희들이 내 몸이 사악한 생명의 침해와 박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며, 만약 내가 박해를 받으면 너희들도 미래가 없게 된다.’

이튿날, 그들은 저를 쪼그리고 앉게 하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잡으라고 했는데, 제가 협조하지 않자 누군가 제 뒤에서 두 손으로 제 무릎 뒤를 눌렀습니다. 저는 무방비 상태였기에 한 번에 땅에 주저앉았고, 제가 일어선 후 그들은 주임이 저를 부른다고 했습니다. 제가 주임실에 들어가자 그 610 두목은 즉시 고함을 지르며 저를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또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했는데, ‘보고’라고 외친 후에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엄숙’하게 합니까? 여기는 학교도 아니고 저도 학생이 아닌데, 무슨 보고를 외치겠습니까?” 뜻밖에도 그 610 두목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 머리카락을 잡고 양쪽으로 뺨을 두 대 때렸습니다. 저는 아직 무슨 일인지 반응하지 못했는데, 그가 화난 모습을 보니 분명히 팔을 크게 휘둘렀을 텐데, 저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단지 그가 그렇게 했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나중에야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곳에는 세 명의 배반자가 있었는데, 감금된 파룬궁수련생들을 전향시키는 전문 인원들이었습니다. 한 배반자는 제가 막 들어가자 핑계를 대며 떠났는데, “저 사람은 제 말을 듣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그 후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배반자는 제가 두 손으로 머리를 잡고 땅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때 사부님의 설법인 ‘대원만법’을 읽어주었는데, 저는 “읽지 마세요, 당신 입에서 나오면 변질되니 제가 스스로 읽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읽다가 또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세로 법을 읽는 것은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큰 불경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땅에 앉아서 책을 가져와 스스로 읽었는데, 610 인원이 보고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누가 앉으라고 했나?” 이튿날 이 배반자도 떠났습니다. 나머지 한 배반자가 좋지 않은 것들을 읽어줄 때 저는 ‘홍음’을 외웠습니다. 그녀가 저와 대화할 때 저는 물었습니다. “애초에 왜 수련을 했습니까? 그때 수련의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어떤 말에 속았습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고는 “왜 아직도 그렇게 고집스럽게 빠져있습니까? 정말 완고하네요”라고 말하며 더는 저를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 온몸에 붉은 반점이 가득 났는데, 연결되어 한 덩어리씩 이루어져 두껍고 매우 가려웠습니다. 긁을수록 더 가려워서 아예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밤 10시가 됐는데도 그들은 저를 마당에 서 있게 했습니다. 그 610 두목이 의자 하나를 들고 물 한 컵을 가지고 제 앞에 와서 “앉아서 설탕물을 마시세요”라고 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이곳에 온 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밥 한 톨도 먹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물컵을 들어 입에 가져가려 하는데, 그 두목이 득의양양하게 뒷짐을 지고 돌아서서 가슴을 펴고 머리를 들고 오페라 창법으로 마오 악마의 시를 부르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후드득’ 물을 땅에 쏟아버리고 마음속에서 힘차게 말했습니다. ‘내가 불러야 해!’ 그때는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이라는 책이 아직 나오지 않았고, 저도 자신에게 심각한 당문화(공산당 문화)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으며, 투쟁심이 극히 강했습니다. 사실 이번 난은 자신이 악당 문화에 너무 깊이 중독된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떤 수련생이 학습반에 가서 며칠 만에 전향하고 또 텔레비전에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매우 화가 났으며, 수련생과 함께 저라면 어떻게 할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과시했는데, 이는 개인영웅주의로 모두 악당 문화의 요소였습니다. 자아에 집착하고 자아를 실증하는 것이지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는 나중에 깨달은 것입니다.

2. 검은 소굴을 벗어나다

밤에 저는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여기서는 말을 못하게 하니 여기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사부님, 전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의 방법을 생각하며 밤새 뒤척거리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깨어나서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생각했는데, 새벽 6시, 7시, 8시 세 정시는 전세계 대법제자들이 정체(整體)로 발정념하여 사악을 제거하는 시간이니, 저는 정체의 힘을 빌려 반드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발정념을 마친 후 저는 방문을 당겨봤는데, 문이 아직 밖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자물쇠를 가리키기만 하면 곧 열려서, 나가버린다.” 저는 한 번 시험해보려고 했는데, 열 수 있는지 보려고 했지만 결과는 뻔했습니다. 시험해보는 것 자체가 사부님과 법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오전 8시 반경, 그들은 저를 뒷마당의 한 방으로 데려가서 텔레비전을 켜고 대법을 더럽히고 사부님을 비방하는 녹화영상을 보게 했는데, 저는 눈을 감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그들은 “소용없어요”라고 말하며 돌아서 나갔습니다. 저도 일어나서 문밖으로 나가 사방을 둘러봤는데, 뒷마당에는 집이 한 줄밖에 없고 집 한쪽에는 매우 높은 담벼락이 있었는데, 집 높이와는 처마 하나 정도의 차이였습니다. 담벼락 꼭대기에는 모두 유리가 박혀 있고, 높은 담벼락 밖에는 전봇대가 하나 있었는데, 전봇대에는 세 가닥의 철사가 있었습니다. 한 가닥은 담벼락 안쪽에, 두 가닥은 담벼락 바깥쪽에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앞마당에서 “왜 아직 가지 않지?”라는 목소리를 들었고, 저는 “네, 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가야 할까요? 저는 앞마당 뒤쪽 담벼락 모서리에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고, 잡동사니 옆에는 손가락 굵기의 참죽나무가 있었습니다. 저는 잡동사니 위로 뛰어가서 손으로 참죽나무를 잡고 두 손으로 기어올랐는데, 거의 담벼락을 잡을 뻔했을 때 마음속으로 ‘이게 내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딱’ 소리와 함께 참죽나무가 부러지며 저는 심하게 떨어졌습니다.

저는 바로 일어나서 계속해서 이용할 수 있는 물건을 찾으며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말했습니다. ‘사부님 도와주세요! 저는 반드시 나가야 합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고, 아직 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이 진상을 모르고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방에서 의자 하나를 가져다가 높은 창대 위로 올라가서 발로 힘껏 차며 옆으로 몸을 기울여 손으로 2미터 밖의 전봇대 당김줄을 잡고, 두 발로 벽을 차며 기어올라갔습니다. 제가 한 손으로 담벼락 꼭대기를 잡았을 때, 다른 한 손은 담벼락 꼭대기를 잡을 수 없었고 몸도 넘어갈 수 없어서, 저는 벽돌 몇 장과 함께 떨어졌습니다. 저는 다시 일어나서 이전 동작을 반복했는데, 이번에는 한 번에 처마 아래 전선을 감은 흰색 도자기병을 잡았습니다. 속으로 ‘전기가 있어도 날 감전시키지 않네’라고 생각했고, 다른 한 손으로 담벼락 꼭대기를 잡으며 마음속으로 ‘유리가 있어도 날 찌르지 않네’라고 말했습니다. 몸을 위로 솟구쳐 두 다리로 담벼락 꼭대기에 무릎을 꿇었는데, 실제로는 유리 파편 위에 무릎을 꿇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많이 생각할 겨를 없이 손을 뻗어 담벼락 바깥의 한 가닥 당김줄을 잡고 뛰어내렸습니다. 이번에는 제 허리와 오른발이 다친 것 같아 매우 아팠는데, 저는 사부님께 구해달라고 하면서 동시에 허리와 오른발에게 말했습니다. ‘내 허리, 내 발, 지금 너희는 날 걸어서 나가게 해주어야 하니 좋아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의 정체이니 반드시 위험한 곳을 떠나야 한다.’ 저는 또 한 담벼락을 기어 넘고 도로를 가로질러 옥수수밭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이때의 저는 사고가 매우 맑았고, 빠르게 횡방향으로 동쪽으로 이동하여 이 범위를 벗어나야 했습니다. 마음속에 사부님의 설법을 떠올리며 생각했습니다. ‘맞다, 나는 다른 공간으로 가겠다.’ ‘그런데 그들이 경찰견을 데리고 추적해오면 어떻게 하지?’ 저는 즉시 몸 뒤로 손으로 그어 대법에서 수련해낸 공능으로 모든 정보를 차단했습니다. 제가 횡방향으로 가야 했기에 손으로 끊임없이 옥수수 줄기와 옥수수 잎을 헤치며 가야 했는데, 발밑은 울퉁불퉁했고 밭의 풀이 때로는 제 발에 걸렸습니다. 저는 그것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과정 중에 내게 상처받은 모든 생명들은 훗날 모두 내 우주체계의 중생이 될 것이다.’ 매우 넓은 큰 도로를 횡단할 때 저는 자신에게 경고했습니다. ‘뛸 수 없고 당당하게 걸어서 지나가야 한다.’

정오가 되어 저는 이미 추격 범위를 벗어났다고 느꼈고 방향을 바꾸어 곧장 걸었는데, 안전을 위해 여전히 도로 가장자리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옥수수밭에서 걸었습니다. 저는 군복을 입고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가 한 노인에게 무언가 말하는 것을 봤는데, 노인이 고개를 흔들자 젊은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앞으로 갔습니다. 직감적으로 저와 관련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사부님, 제가 어디로 가야 합니까?’ 또 생각했습니다. ‘저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면 사악이 알게 되니 사부님께서 어디로 가라고 하시면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걸으면서 어디든 추수하는 사람들을 봤는데, 한 조각 한 조각의 옥수수 줄기가 베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고립된 옥수수밭 한 곳에 왔는데, 앞뒤좌우가 모두 빈 땅이어서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도로 가장자리에서 대략 일곱여덟 개 이랑 떨어진 곳에 누워 쉬며 오가는 농부들을 봤는데, 사부님의 보호가 있어 사람들이 저를 볼 수 없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밤이 내리고 달이 떠올랐는데, 밭에는 아직 산발적으로 집에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일어나서 계속 길을 갔습니다. 한 묘지를 지날 때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돌봐주시니 여기서 자더라도 무섭지 않을 거야.’ 큰 도랑을 넘어가니 멀리 한 마을이 있었는데, 마을 가장자리의 한 집에 등이 켜져 있었습니다. 사부님, 저는 이 등불을 향해 가겠습니다. 사람들이 베어놓은 옥수수 줄기의 이랑을 따라 앞으로 갔는데, 등불이 멀리 비추어 한참 걸어서야 가까이 갔습니다. 마침 집주인 아주머니가 나와서 등을 끄려 하는데, 저는 “언니, 길 좀 물을게요. 어디어디로 어떻게 가나요?”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아직 멀어요, 이렇게 늦은데 어떻게 가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방향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언니, 물 한 모금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우리집에 마침 큰 쌀죽 두 그릇이 남았는데, 들어와서 드세요”라고 했습니다. 아주머니의 선량함에 저는 매우 감사했는데,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저는 그릇을 들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때 그녀의 남편이 다가와서 “우리가 데려다드릴게요”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들이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저는 그들에게 50위안을 주려 했지만 그들은 무엇을 해도 받지 않으며 “돈 때문이라면 애초에 데려다드리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선량한 가족입니까! 저는 마음속에 이 마을 이름과 그 남자의 이름을 기록해두었습니다. 마지막에 부부가 비상등을 들고 손수레를 몰면서 제게 요를 깔아주었고, 심야 11시에 저를 인근 현의 한 친척집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친척집에 도착해 저는 몸과 마음에 팽팽했던 줄이 마침내 느슨해졌고, 온몸에 흙이 묻은 옷을 벗자 즉시 기진맥진함을 느꼈습니다. 허리와 오른발이 아파서 참을 수 없었는데,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어서 이불에 엎드려 한밤중까지 기침했고, 휴지를 철 쓰레받이 하나 가득 버렸습니다. 친척이 “내일 병원에 가봅시다, 이건 갈비뼈가 부러진 거예요”라고 했는데, 저는 “괜찮아요, 며칠 지나면 좋아질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이튿날 제가 빨래를 할 때 쪼그리고 앉을 수도 일어날 수도 없어서 저는 말했습니다. ‘사부님, 전 쪼그리고 앉아야 합니다.’ 그러자 쪼그리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 전 일어나야 합니다’라고 생각하자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날, 친척이 610과 경찰들이 곳곳의 친척집에 저를 찾으러 다닌다고 들었다며 저를 그의 친척집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보아하니 당분간은 집에 돌아갈 수 없겠군.’

3.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던 생활을 끝내다

보름 후, 저는 여러 곳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늙은 아버지가 상황을 알아본 후, 한 순간도 제가 집에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몇 백 위안을 주시며 남동생에게 저를 5km 밖의 친척집에 데려다주게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법공부도 연공도 하지 못하고 법을 떠나 있으니 사람의 마음이 올라왔고, 사람의 마음이 올라오자 제 두려운 마음이 나왔습니다. 오토바이를 봐도 무섭고 사이렌 소리를 들어도 무서웠으며, 낯선 사람을 만날 용기도 없었습니다. 제 몸에는 쌀알 크기의 뾰루지가 가득 났는데 극도로 가려웠고, 대략 보름 정도 지나서야 좋아졌습니다. 마침 가을 농번기 철이라 친척집에서 저는 돼지에게 먹이 주기, 밥하기, 땅콩 따기, 옥수수 껍질 벗기기, 콩 따기, 냄비 닦고 그릇 씻기 등 무엇이든 다 했습니다. 남동생이 이 친척집에서 저를 데려다가 또 저 친척집에 보내기를 보름, 열흘씩 왔다 갔다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몰래 고향의 수련생과 연락을 취했는데, 수련생이 대법서적 몇 권을 주었습니다. 밤에 저는 책을 펼쳐 사부님의 사진을 보자 사부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부님께 많은 번거로움을 끼쳐드렸다며 울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얼굴에도 눈물자국이 있는 것을 봤는데, 사부님께서 이 못난 제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때 저는 입체적인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무서워하니, 생겨난 이 집착심을 더 많은 고생을 겪어야 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곁에 계시니 제가 무엇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고향의 수련생이 대법서적을 다 갖춰주었고, 고향의 친척이 자전거 한 대를 주어서 저는 행각하듯 이 친척집에서 보름 열흘, 저 친척집에서 열흘 보름씩 머물렀는데, 30년간 가보지 않았던 친척집에서도 일주일을 머물렀습니다. 이 친척집에 간 첫날 점심 후, 한 수련생이 점심을 먹고 나서도 어째서인지 집에 있을 수 없어서 제 친척집 문앞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친척이 나가서 물을 뿌리다가 수련생을 집안으로 맞아들이며 저에게 “이분은 당신들과 같은 동행이에요”라고 말했는데,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수련생은 매우 기뻐하며 눈에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이 마을에는 원래 여섯일곱 명이 수련했는데, 악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그들과 연락하던 수련생이 악당에 납치되어 그때부터 외부와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밤에 제가 수련생집에 가서 네다섯 명의 수련생을 만났는데, 그들 모두 사부님의 안배라고 하며 사부님께서 그들을 잊지 않으셨다고 감사드렸습니다.

그해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에, 저는 노모가 밖에서 주워오신 바람에 떨어진 ‘온 천하가 경축한다, 파룬따파하오’라고 쓰인 현수막을 마을에서 1.5km 떨어진 나뭇가지에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분명한 꿈을 꾸었는데, 푸른 하늘에 몇 사람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별들을 움직여서 별들을 층층이 쌓아 은빛으로 빛나는 큰 글자 세 자 ‘진선인(眞·善·忍)’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가다가 갑자기 생각했습니다. ‘사부님, 전 돌아가야겠습니다. 대략 두 달이 지나서 악당이 무슨 회의를 열려는 것 같았는데, 집에 없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찾아오라고 요구했습니다. 제 늙은 아버지가 예전에 제 고향에 온 적이 있는 공안 부국장에게 신중히 전화를 거셨는데, 상대방이 차를 보내서 데리러 가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안 됩니다! 우리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막 집에 들어서자 우르르 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방 가득 들어왔는데, 저는 그들이 공안국 사람들임을 알았습니다. 그 부국장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직도 연공합니까?” 저는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떠돌아다녔는데, 집도 이제야 겨우 알아보겠고 엉덩이도 아직 안정되지 못했는데 이렇게 민감한 질문을 하시니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더 묻지 않겠습니다. ‘610’에 가서 보증서를 쓰고 내일 출근하세요”라고 하고는 모두 떠났습니다.

나중에 저희 직장의 수련생이 제게 알려주었는데, 직장에서 회의를 열어 지도부가 누구누구가 돌아올 것이니 아무것도 묻지 말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날들을 끝내게 해주셨다는 것을.

맺음말

우리 온 가족이 차를 몰고 저를 데려다준 아주머니를 찾아뵙기 위해 갔을 때,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아주머니가 나와서 맞이하며 놀라서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어머, 오셨네요!” 집에 들어가서는 쉴 새 없이 최근에 그들 집이 어떻게 어떻게 순조로웠는지 말했는데, 양을 길러서 좋은 값에 팔았고 목공 일도 잘 됐으며 총괄해서 말하면 순조로웠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천천히 한 마디 했습니다. “공산당에게 박해받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에요!” 알고 보니 그들은 이미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6/1/4956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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