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수련자가 소설 『현목기』를 보는 것에 대한 약간의 인식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주위에 수련자들이 『현목기(玄木記)』를 돌려보고 있으며, 때때로 만나면 재미있게 담론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약간의 개인적 인식을 말하고자 하는데, 단지 교류 참고용이다.

사부님께서 ‘소설 『창우겁(蒼宇劫)』에 관하여’에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소설은 바로 소설로서, 대법제자가 각종 방식을 이용해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원하는 한 가지 형식이다. 그중 대법제자의 수련 소득이 있지만 역사로 간주할 수는 없다. 정법의 과정은 내가 말하지 않으면 신(神)마저도 단지 그중의 한둘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당신들은 혹독한 시련을 거쳐 걸어온 것으로 절대 마음이 바람만 불면 따라서 흔들리는 부평(浮萍)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정진요지3-소설 『창우겁(蒼宇劫)』에 관하여)

여기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소설은 바로 소설”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역사가 아니며, 더욱이 과거 전체 우주의 진실한 역사도 아니고, 더더욱 사부님의 ‘정법 과정’도 아니다. 그렇다면 소설 『현목기』도 역시 같은 것이 아닐까?

비록 이런 소설들 속에 우주 역사의 그림자가 있다 하더라도, 어떤 것이 참이고 어떤 것이 그림자이며 어떤 것이 허구인지 당신이 정말 구분할 수 있는가? 더구나 왜 시간을 들여 이런 것들을 분별해야 하는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과거의 우주 역사는 그 모두가 구세력이 안배한 것이 아닌가? 정법 수련 중에서 철저히 부정하고 버려야 할 것들을, 우리가 왜 여전히 그것을 가져와서 승인하고 음미하며 강화해야 하는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과거의 우주와 아무런 관계없는 완전히 새로운 우주의 법이다. 우리는 구우주 법리의 이 껍질을 극력 벗어던지려 해도 늦을까 봐 두려운데, 어떻게 또 자발적으로 그것을 붙잡고 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해 “인간 세상과 각 층 공간의 은혜와 원한(恩怨)과 각종 연원(淵源)관계를 매듭지어 주셨는데”(휴스턴법회 설법), 우리는 왜 여전히 이미 존재하지 않는 그런 것들을 붙잡고 놓지 않으며, 자신을 구세력이 안배한 거대한 고비와 난 속에 빠뜨려 ‘수련’하게 하는가? 이는 사부님 정법과 배치되지 않는가?

이런 수련자들께 명혜망 2003년 8월 29일자 ‘사부님과 대법을 찬송한다 ◎사부님 평어’를 보시기를 건의한다.

약간의 소견이므로, 법에 맞지 않는 곳이 있으면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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