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내가 막 법을 얻었을 때 중공 악당이 박해를 시작했다. 당시는 정말 법학습을 너무나 적게 해서 수련에 대해 이성적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일이 생기면 안으로 찾을 줄 모르며 그저 감성적인 인식에 의존해 처리했다. 그 결과 직장을 잃고 경제적으로 엉망이 됐으며, 몸도 병마에 시달리고 집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비할 바 없는 원망이 생겨 거대한 업력을 만들었는데, 그런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사흘이 멀다 하고 병에 걸려 병원에 가야 했고, 나는 또한 주변 사람들의 차별적인 시선을 견뎌야 했다. 중생을 구하기는커녕 인간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1. 정신을 차리고 처음부터 다시 수련하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서 나는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대법을 만났는데 만약 정말로 법을 떠난다면 그것은 죽느니만 못할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길이 이렇게 된 것은 분명히 내가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니,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법 학습도 하고, ‘전법륜(轉法輪)’을 한 번 다 읽어도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고, 머릿속은 온통 잡념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나는 법 암기를 시작했다! 나는 법을 외우면 늘 표면적인 의미는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처음에는 ‘전법륜’을 외울 계획은 없었다. 난이도가 비교적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부님의 다른 설법부터 외우기 시작했다. 사부님의 일깨움을 통해, 당초 천상에서 뛰어내린 그 일념만으로도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사부님께 매우 감사드리며 정신을 차리고 처음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매우 한가한 직장을 다녔는데, 근무 시간 중 전화 몇 통을 받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법을 외우기 시작했고 출퇴근은 기본적으로 아침 8시와 오후 5시였으며, 대량의 시간을 법 학습에 할애했다. 사부님의 설법을 한 권씩 계속 외웠는데, 외우는 과정에서 많은 법리를 깨달아 갈수록 의욕이 나고 배울수록 더 배우고 싶었다. 2년의 시간을 들여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허기진 듯 갈망하며 법을 학습했고, 기본적으로 사부님의 모든 설법 중에서 ‘전법륜’을 제외한 대부분 설법을 한 번씩 외웠으며, 사부님 평어(評語) 문장 중의 사부님 평어도 포함했다.
나는 주로 이렇게 외웠다. 한 단락의 법을 외우고 나면 다시 복습하지 않고 넘어가서 다음 단락을 외우는 것이다. 즉 연결해서 외우지 않았는데, 연결해서 외우는 것은 내게 정말 너무 어려웠다.
이번 법 암기는 나의 향후 수련에 매우 좋은 기초를 다져주었다. 나는 드디어 수련이 느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법리에 의존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만날 수 있는 문제들을 사부님께서 법 중에서 모두 다 말씀하셨음을 알았다. 다시 말하면 법 학습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문제를 만났을 때 분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다 외운 후 나는 정말로 대오각성한 느낌이었다. 일찍 이렇게 많은 법리를 깨달았다면 길을 그렇게 엉망으로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다시 문제를 만나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수련생들 사이의 많은 바르지 못한 문제들도 분별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법이 직접 나타나서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 이 법문은 ‘법이 사람을 연마하는(法煉人)’ 것으로 자동적인 수련이기 때문이다. 나는 수련이 간단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2. 어려움을 돌파하고 ‘전법륜’ 암기
어떤 수련생이 수련을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것은 ‘전법륜’이기 때문에 역시 ‘전법륜’을 외우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해서 ‘전법륜’을 외우기로 했다. 이전에 잘못된 길을 걸어서 만든 업이 매우 컸기 때문에, 내가 ‘전법륜’을 외우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머리에 업력이 있었기에 주요한 어려움이 머리에 나타났는데, 외우면 머리가 아팠다. 외울수록 더 아팠고, 머리에 긴고주(緊箍咒, 손오공 머리에 씌운 고리)를 쓴 것 같았으며, 특히 심하게 졸렸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일깨워주셨는데 사악한 공산당 당문화(黨文化)의 교란이었다.
당시 나는 출근하지 않았다. 시간을 다그쳐 법을 외우고, 안일함을 구하지 않기 위해, 법을 외우는 2년 동안 나는 오후에 진상을 알리러 가는 것과 꼭 해야 하는 집안일 외에는 기본적으로 늘 책상 앞 의자에 앉아 보냈다. 반가부좌나 결가부좌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법을 암송하고 한편으로는 가부좌를 연마했다. 밤에 잠잘 때도 책상에 엎드려 잤는데, 이렇게 하면 침대에 누워서 너무 편하여 일어나기 싫어하는 현상을 피할 수 있었다. 봄 여름 가을은 괜찮았는데, 겨울은 비교적 힘들었다. 관리사무소의 난방이 좋지 않아 야간에는 집에 난방이 안 됐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은 정말 추웠다. 나는 더 두껍게 입고 전기방석을 깔고 견뎌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부님께서 내 마음, 잘 수련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시고 나의 고생하는 능력을 증가시켜 주신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간에 몇 번 포기하고 싶었는데,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법을 외우는 수련생을 만나서 격려를 받았다. “꼭 외워야 해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그래서 나는 다시 견뎌냈다.
어느 해 여름 정오에 법을 외우고 외우다가 잠이 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꿈에서 나는 10대 형상이었고, 다리를 벌린 채 작은 자전거에 걸터앉아 있었다. 이때 키가 크고 흰 셔츠를 입으신 사부님께서 오셨는데, 내 머리를 자애롭게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셨다. 대략 “너는 업력이 비교적 크니까 여름방학에는 여행 가지 말고 법 학습을 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깨어났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사부님께서 이미 나를 위해 비할 바 없이 거대한 업력을 감당해주셨는데, 나는 감히 태만할 수 없어서 다시 책을 들었다.
약 2년 넘는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전법륜’을 이어 외웠다. 물론 잊어버리는 부분도 있었는데, 늘 외우고 있어도 역시 잊어버리는 부분이 있었다. 대략 제9강 서두를 외울 때, 나는 갑자기 내 신체 변화가 매우 크다는 것을 느꼈는데, 표면공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법 중에서 모두 알고 있듯이, 사람의 몸은 표면 이 한 층만이 아니라 표면은 단지 인체 세포이고, 아래로는 분자, 원자부터 무한히 미시적인 것까지 모두 사람의 몸이다. 사람 표면이 법의 내용을 기억함에 따라 미시적인 몸이 신속하게 바로잡히고 동화되며, 이에 대응하는 우주 천체도 법에 의해 바로잡히고 동화되는데, 사실 이것이 바로 수(修)의 과정이고, 또한 자신의 천체 중생을 제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가장 큰 고통의 원천은 역시 두통이었는데, 곧 머리의 업력이었다. 매일 법을 외울 때 나는 머리 부분의 통증을 참을 수밖에 없었지만, 아픔도 사실 소업의 과정이다. 때로는 아파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두피를 뜯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법 암기에 따라 머리의 긴고주가 갈수록 작아지고, 두통의 범위도 갈수록 작아져서 마지막에는 온 머리의 통증에서 달걀 하나 크기로 축소됐고, 통증 정도도 원래보다 약해져 견디기 쉬웠다. 동시에 오후에도 나가서 진상을 알렸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세 가지 일을 잘했다.
어느 날 사부님께서 내 상황을 보여주셨는데, 이전에 그 원한으로 만든 거대한 업력이 이미 소멸되어 얇은 한 층만 남았고, 마치 직사각형 초콜릿 케이크 같았는데 아래는 하얗고 두터운 덕(德)이었다. 이것은 자신이 세 가지 일을 하면서 고생하고 감당한 것에서 온 것이었지만, 물론 주요하게는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거대하게 감당해주신 것과 바꾼 것이었다. 나는 매우 희망이 있다고 느꼈으며, 예전처럼 희망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의 고통 중에 견디는 것과는 달랐다.
3. 마음에 법이 있으니 시비를 명확히 분별하다
법 암기를 통해 나는 법리를 깨달았고, 많은 바르지 못한 일과 말을 대부분은 비교적 쉽고 분명히 볼 수 있어서, 많은 문제에서 무조건적으로 대세를 따르지는 않게 됐다. 일부 문제에서 나는 주변 수련생의 인식이 틀렸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명백히 교류할 수는 없었다. 이럴 때 나는 침묵을 유지했지만 맹종하지는 않았다. 주요하게는 마음에 법이 있어서 다른 수련생들이 어떻게 말하든 나는 알고 있었다. 법은 바꿀 수 없고, 수련은 지극히 엄숙하며, 대법제자의 표준은 극히 높다는 이것은 그저 당연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나는 법 학습에 조금 더 공을 들이면 이런 문제들에서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표준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하면 그 자신의 정진 의지를 늦추기 쉽기 때문이다.
1) 두려움 타파
중국의 잔혹한 박해 하에서 가장 쉽사리 생기는 마음은 두려움이다. 법 학습을 통하여 나는 이번 박해가 사람이 사람을 박해하는 것이 아니라 구세력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이고, 그 과정 중에 많은 것이 대법제자의 업력과 심성상의 부족함을 구실로 한 것임을 깨달았다. 법은 나 자신이 박해받는 과거의 원인을 깨닫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일부 수련생들이 박해받은 원인도 보게 해주었고, 법에는 당사자가 어떻게 이 박해를 타파할 것인지, 다른 수련생들이 어떻게 박해받는 수련생과 협조해서 반(反)박해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나와 있으며 다 해결 방법이 있다. 이런 법리들은 모두 내 두려움을 타파했고, 구세력의 안배가 매우 질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으며, 동시에 어떻게 구세력의 안배를 깨뜨리는지도 깨닫게 하여, 정념을 증강하고 앞으로의 길을 잘 걷도록 도와주었다.
때로는 어떤 일에 대해 생각이 안 통하면 곧 통하게 할 수 있고, 정말 안 통하면 사부님께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깨닫게 해주셨다. 이렇게 법과 대조하면서 수련하니 수련이 비교적 간단하고 가볍게 느껴졌다.
2)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는 문제 정리
물론 비교적 어려운 고비도 넘었다. 한 가지 일이 있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20년을 들여서야 명백해져 걸어나올 수 있었다. 나는 줄곧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나는 오성이 이렇게 좋지 않은 것일까?’ 나중에 원인을 알았다. 하나는 구세력이 내게 업력이 있다는 것을 빌미로 내 오성을 가로막고 있었고, 둘째 이 문제에서 내가 역시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아서 항상 주변 수련생들의 의견을 들었는데, 결과적으로 줄곧 바르게 깨달을 수 없었다. 나는 이런 박해 중에서 업력을 거의 다 갚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일에서 나는 사람에게 이끌리지 않고, 일이 생기면 자신이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했다. 사부님은 매 대법제자마다 자기 세계의 왕으로 수련 성취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런데 나는 문제를 만나면 여전히 다른 사람과 상의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며, 나 자신이 법과 대조해서 해결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사실 이 문제에서 역시 빈틈이 있었다. 비록 많은 문제에서 나도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역시 의존하는 마음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서 항상 다른 사람의 말이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느끼고, 항상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해서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는 이 문제를 철저히 해결하지 못했다.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는 문제에서 나는 사고를 거쳐 한 가지 문제를 깨달았다. 나에게 있어서 무엇이 법인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몇십 권의 법, 이것이 바로 법이다. 또 내가 법 학습 중에서 깨달은 법리는 나의 수련을 지도하는 것이므로, 나에게 있어서는 법이다. 다른 사람이 깨달은 법리는 그에게 있어서는 그의 수련을 지도하는 것으로, 그에게 있어서는 법이다. 만약에 상대방이 깨달은 법리를 나에게 말해준다면, 그것은 개인 인식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깨달은 법을 다른 수련생에게 말해줘도 역시 개인 인식에 속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법리다. 때로는 수련생이 사부님의 법을 많이 인용해서 자신의 관점을 증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상황은 그에게 있어서는 맞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많은 경우 단장취의(斷章取義)일 수 있다.
나는 매우 힘들여 드디어 이 둘의 차이를 깨달은 후, 나를 여러 해 동안 괴롭힌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은 문제’가 드디어 해결됐다. 적어도 주요 부분이 해결됐다. 내 마음에 법에 대한 매우 견고한 정념이 생겨났고, 어떤 문제를 만나든 법으로 가늠하고, 강대한 법 학습의 기초가 있어서 많은 일은 정말로 생각해보면 명백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매우 간단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내가 아는 한 수련생이 있는데, 여러 방면에서 우리 둘은 비교적 말이 통했다. 이 수련생은 여러 해 감금됐다가 나온 후 속인 사회의 많은 일에 대해 비교적 낯설어했는데, 나도 열심히 그녀에게 의견을 주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물론 효과면에서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었다. 나중에 법과 대조해보니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매 대법제자가 모두 독립적인 왕과 주(主)로 수련 성취하기를 요구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그렇게 한 것은 사실 이 수련생의 수련의 길을 막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물며 이 수련생은 나온 지 몇 년이 되어 사회에서 그만큼 단련했으니 완전히 혼자서 당해낼 수 있었다. 나는 예전에 느낌에 의존해 수련하는 일이 많았고 이를 열정이 좋은 것으로 느꼈지만, 법으로 가늠해보니 좋은 일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나는 우연히 명혜망의 한 글을 보았는데, 뜻인 즉, 자신을 해친 사람에게 ‘덕으로 원한을 갚아야 한다(以德報怨)’라는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 문장을 다 본 후 분명히 이 수련생이 정말 잘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사람을 배우지 않고 법을 배운다는 것을 깨달은 후, 생각해보니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서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다른 사람과 견식을 같이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마음으로는 상대방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란과 박해에 대하여 사부님께서 표면적으로는 선해야 하지만 그 배후의 사악을 깨끗이 제거할 때는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우선 부동심(不動心)을 해야 함을 깨달았다. 만약 덮어놓고 무작정 덕으로 원한을 갚는 것을 강조한다면 한 가지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속인들은 현재 도덕적 최저선이 없어서 마음속으로 대법제자가 연약하고 괴롭히기 쉽다고 인식하여 사악한 염두를 발생시킬 수 있고, 동시에 대법제자를 정 중에 빠뜨리고 구체적 일에 빠뜨리며 좋은 사람 되기에 빠뜨려서 시간과 노력을 지체시키기 쉽다. 즉 어떠한 일도 과하게 할 수 없고, 과하게 하면 당시에는 부정적 효과가 없어도 향후 수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모든 면에서, 아주 세세한 말 하나라도 법 중에서 모두 나에게 맞는지 틀린지를 알려준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틀림없이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인데, 내 생각에 법공부를 통해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구체적인 문제가 오로지 당신들이 법공부만 하면 모두 해결될 것이다.”(각지 설법2-미국 플로리다법회 설법)
4. 법 학습이 마음에 들어오는 신성한 체험
법 학습 중에 몇 번 비교적 깊은 인상이 있었다. 이 몇 번은 모두 내가 법 학습에 마음을 들여 열심히 할 때 나타난 것이었다.
한 번은 법 암기를 매우 마음에 들어오게 하는데, 매 구절의 표면 의미를 다 알았고, 조금도 다른 생각이 없었으며 잡념이 없었다. 두 강(講)을 외운 후 침대에 앉았는데, 그 순간 갑자기 자신의 온몸이 법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으며, 사람의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나는 단번에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그런 세계는 바로 법이 구성해 낸 체현이기 때문”의 한 층 함의를 깨달았다. 모두 법이고, 모두 에너지였다.
또 한동안 매우 정진했는데, 법 학습을 매우 진지하게 했다. 발정념할 때 막 손바닥을 세우는데 갑자기 자신의 온몸이 순금이 된 것을 느꼈다. 그런 순정한 에너지 물질은 언어로 형용할 수 없었고, 단지 “와, 수련은 정말 신기하다!”라고 느꼈을 뿐이다.
또한 많고 많은 감각이 있었는데, 모두 마음이 매우 순정할 때 나타난 것이었다.
5. 법을 잘 배워야 진상을 잘 알릴 수 있다
다시 진상 알리기에 대해 말해보자. 당시 나는 전화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진상 알리기를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할 줄을 아는 상태가 될 때까지 사부님의 끊임없는 일깨움과 격려에 의존해 걸어왔다. 나는 많은 수련생이 모두 나보다 잘한다고 생각한다. 진상 알리기에 대해 내가 가장 깊이 체험한 것은 진상 알리기는 사부님께서 주신 공(功)이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만약 오전에 내가 법 암기를 마음에 들어오게 하면, 법이 바로 에너지이고 공이므로 직접 사악을 깨끗하게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후에 가서 진상을 알리면 들으려는 사람이 있고 탈퇴하려는 사람도 있으며, 기본 진상부터 상세히 투철하게 설명해도 모두 듣는 사람이 있다. 만약 오전에 집에서 속인 일을 하면 오후에 진상을 알릴 때, 중생들이 들으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개를 돌리거나 입을 삐죽거리거나 욕설을 하는 등 갖가지 반응을 보인다. 에너지가 없으면 사악을 해체할 수 없고 중생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이 바르지가 않으면 사람을 구할 수 없다. 나는 매일 꾸준히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그런 수련생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법 학습을 하지 않고 직접 진상자료 한 뭉치를 가지고 작은 골목에 가서 나눠줬다. 이튿날 한 수련생이 말하기를, “누가 작은 골목에서 진상 자료 나눠줬는지 모르겠지만, 속인들이 온 바닥에 다 내던져 버렸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어제 내가 갔던 것이 아닌가? 정말 부끄러웠다. 이렇게 많은 손실을 입혔다니. 일반적으로 진상 자료를 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비율이 그처럼 높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이후 진상을 알리러 갈 때 순정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데 매우 주의했고, 가능한 한 법을 잘 배운 뒤에 나가려고 했다.
한번은 법을 매우 잘 배우고 나가니 하늘도 투명해진 느낌이었고 온 세계가 달라진 것 같았다. 내가 손을 내밀어 한 노점상에게 주자 그는 한마디도 하지를 않고 번화한 대로에서 즉시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는데, 매우 집중해서 봤다. 법의 위력이 정말 크고, 효과가 정말 달랐다!
6. 법을 잘 배워야 강대한 정념을 발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하기로 발정념은 사부님께서 주신 공(功)을 운용해서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는 것이고, 관건은 자신의 공을 움직여 동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며, 얼마나 강한 정념이 있느냐에 따라 얼마나 강한 공을 동원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그래서 법을 잘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법을 잘 배우면 사람 표면의 정념이 강해지고, 표면의 정념이 강해야 주요한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공을 동원하는 관건이다.
내가 발정념할 때 정념이 강한지 강하지 않은지는 자신이 안다. 힘이 강할 때는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힘이 산을 가를 수 있고(力可劈山)’로써 그 힘이 가히 산을 무너뜨릴 수 있다. 정념이 강하지 않을 때도 자신이 아는데, 자신이 사람의 사상으로 ‘멸(滅)’ 자를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법학습할 때 잡념이 없을 때만 정념이 강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한번은 법 학습할 때 일심불란(一心不亂)하고 매우 집중했다. 발정념 시간이 되어서 내가 손을 세우자 즉시 강대한 공이 동원되는 것을 느꼈다. 그런 거대한 에너지를 나와 함께 발정념한 수련생도 느꼈는데, 발정념할 때 강대한 공이 밀려와 그녀의 몸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사실 이는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으로, 우리가 쓰느냐 안 쓰느냐에 달려 있다. 나중에 나는 조금씩 알게 되어 법을 잘 배우는 것이 공을 동원하는 관건임을 깨달았고, 정념이 강할 때도 많아졌다. 이러한 강대한 공은 많은 일을 할 수가 있는데, 만약 지속적으로 박해를 겨냥해서 발한다면 각종 박해를 해체할 수 있다. 어쨌든 사부님께서 주신 공이라 힘이 너무 크다.
현재의 상태는 이미 나의 최초 상태에 비해 정말로 천양지차다. 각 방면에서 모두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허약하고 병이 많던 아이는 현재 이미 대학을 다니는 청년으로 자라서 몸이 건강하고 매우 철이 들었다. 기타 방면에서 경제 상태, 수련 환경을 포함해서도 매우 큰 변화가 발생했다.
나는 법을 잘 배우면 수련 중에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나는 또한 어떤 수련생들이 법 학습을 매우 잘해서 매일 양도 매우 많고 효과도 매우 좋으며 세 가지 일도 매우 잘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심득체험은 써내지 않았는데, 그들과 비교해서 나는 사실 너무 멀리 뒤처져 있고 사부님의 요구와 비교하면 나는 더욱더 자격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 체험담을 써낸 것은 수련생들과 함께 정진하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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