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일등을 다투지 않고 기꺼이 꼴찌가 되다

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2016년에 진정으로 수련의 길에 들어선 청년 대법제자입니다. 저는 원래 말주변도 없고 글도 잘 쓰지 못해, 매체에서 일하면서 방송 화면을 통해 중생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날을 맞으며, 저는 제 수련 경험을 이야기하여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대법이 지혜를 주어 새로운 분야에서 일하다

저는 5년 전 중국에서 경제 전문 기자로 처음 언론에 발을 들여놨고, 2년 전 미국으로 건너와 수련생 매체에 합류했습니다. 거기서 저는 영상 제작팀 원고 작성을 담당했는데, 인력 재배치로 2023년 7월부터 경제 프로그램 진행을 맡게 됐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에는 주 1회였지만 점차 주 6회로 늘어난 데다, 녹화방송에서 생방송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맡은 후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쯤 새로운 진행자가 나타나서 이 일을 넘겨 줄 수 있을까? 나는 그냥 원고만 쓰고 싶은데.’

2024년 6월, 저는 소업으로 한동안 매체 일을 쉬었는데, 그때는 경제 뉴스를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또 생각했습니다. ‘이제 프로그램 진행은 그만둘까? 나는 마흔이 다 돼 가는데, 매일 화장하고 피부 관리까지 하려면 너무 힘들다. 젊고 예쁜 수련생이 진행을 맡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차라리 경제 분야를 더 공부해서 원고의 질을 높이고 싶다.’

제가 방송을 못하자 한 수련생은 제가 소업 중이라는 걸 알아채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항목마다 재무 인재가 부족해요. 원래 분야로 돌아가는 것도 좋은 일이에요.” 저도 속으로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움직이자 정말 한 수련생이 기업 내부 감사와 재무 관리에 대해 저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매체로 돌아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즈음, 다른 항목의 한 수련생이 저에게 사부님의 경문 ‘더 정진하자’를 꼭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한 매체 수련생도 저를 격려해 줬습니다. 그녀는 중국 본토 방송사 기자 겸 앵커 출신인데, 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면서 제가 경제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타고난 뉴스 진행 능력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제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녀는 덧붙였습니다. “대법 수련생의 타고난 능력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잖아요. 사부님께서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에게 이 능력을 주셨겠어요?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고 서약을 실천하라는 뜻 아닌가요?”

저는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사부님의 경문 ‘더 정진하자’를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다음 날부터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머리가 아프지 않으니 마음도 차분해지고, 안으로 제 문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 머리에는 그 며칠 동안 있었던 일들, 떠올랐던 생각들, 수련생이 해준 말들 하나하나 떠올랐는데, 사람의 생각과 신의 생각을 오가며 그야말로 한 차례 전쟁을 치렀습니다. 결국 사람의 생각을 하고 사람의 마음에 따라 가느냐, 아니면 대법제자의 책임을 인식하고 정법의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느냐의 문제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경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싫어하는 마음과 소업이라는 가상 뒤에 숨어 있는 교활한 집착심이 무엇인지도 똑똑히 보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명리(名利)심이었습니다.

당초 제가 모 상장회사를 떠나 매체로 가려 할 때, 사장님은 저를 붙잡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남아 있으면 10년 안에 우리 그룹의 CFO가 될 수 있을 텐데요.”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젊은 사람은 자신을 파악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당신이 보라. 그는 평소 아주 좋으며, 속인사회 중에서 무슨 능력이 없을 때, 그의 명리심은 아주 담담하다. 일단 사람이 두각을 나타낼 때면, 흔히 명리적인 교란을 받기 쉬운데, 그는 남은 생애에 아직 먼 길이 있다고 느껴, 더욱 보람차게 해보려 하며, 한번 분투하여 속인의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한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알고 보니 저는 대법 항목을 임시직으로 생각해왔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속인의 목표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신사신법(信師信法)의 문제였습니다. 저는 원고 작성이나 재무 관련 업무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를 내서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는 사람의 능력을 대법과 중생구도의 사명보다 위에 둔 것입니다. 저는 이번 관을 넘으면서 사부님의 법을 통해 제 사명을 분명하게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다음 결정은 자연히 쉬웠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도전은 계속 됐습니다.

2. 일등에서 꼴지가 되기까지

저는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는, 공산당 당문화에 오염되어 무엇이든 일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일등 장학금을 받아야 했고, 직장에서는 최우수 사원이 되어야 했으며, 급여도 매년 가장 많이 인상 받아야 만족했습니다… 이번에 마음을 내려놓고 경제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제게 이렇게 큰 집착이 있었다는 걸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경제 뉴스는 전문성이 강하고 따분한 데다, 뉴스 채널의 시청자들은 대부분 경제 분야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와 다른 한 경제 프로그램 진행자의 동영상 조회수는 번갈아 가며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2025년 초, 회사에서는 한때 대기업 관리 방식을 도입해, 각 프로그램에 목표를 설정해 놓고 서로 경쟁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큰 압박감에 시달렸는데, 다른 한 경제 프로그램 수련생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특별히 말은 안 했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제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바닥을 깔아주면 되잖아. 그러면 그들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꼴지가 되기 싫어하니 내가 꼴지를 하자.’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정말 내 생각이야? 이게 나라고?’ 저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회수 때문에 전전긍긍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떠오른 후, 저는 정말 조회수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예전에는 조회수를 볼 때마다 변동이 심한 미국 증시를 쳐다볼 때처럼 기분이 요동쳤습니다. 사부님께서 경문 ‘각성하라(驚醒)’에서 하신 말씀을 알고 있어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 경문에서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매우 많은 사람이 각종 매체를 하는데, 이를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과 연계해야 한다. 단지 클릭 수만 늘리려 함인가? 이것이 대법제자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인가? 이는 말후에 겨우 남아있는 요만한 사람 구하는 시간을 대량으로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장래에 후회할 것이다! 대법제자의 책임은 사람을 구하는 것인데, 장기적으로 이렇게 나가면 慈悲心(츠뻬이씬)마저 없어지게 된다!”

그 후에도 저는 여전히 질투심에 이끌려 계속 조회수를 살펴봤습니다. 꼴찌가 되기 싫어하는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사실 많은 자아를 내려놓는 것이었고, 순위를 비교하고 조회수를 비교하는 질투심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매일 방송을 준비하면서, 늘 사부님께서 ‘각성하라(驚醒)’에서 하신 말씀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사람을 구하러 온 것으로, 真善忍(쩐싼런)을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당신들이 쓴 것, 말한 것은 최소한 세인들이 구도 받는데 계발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법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착실하게 수련하면서 진정으로 법에 용해되어야 세인에게 대법의 힘을 느끼게 할 수 있고, 그래야만 자신이 아닌 법을 실증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후, 제조업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하고, 경제를 전통으로 이끄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금융을 공부하고 제조업에 몸담았던 경험이 있기에, 트럼프의 경제 철학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저는 프로그램에서 제조업을 되살리는 것이 전통으로 돌아가는 길임을 강조했고, 지난 100년 간 권력을 휘둘러 온 자본도 이제는 신(神)이 인도하는 대로 전통의 길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점심, 구내식당에서 수련생들과 몇 마디 나눠보니, 그들은 저의 프로그램을 보고 제조업과 자본을 대립되는 관계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낮에는 일이 너무 바빠 그들의 반응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사부님의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을 두 번 읽고 나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건 사부님께서 저에게 점화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를 수련생들조차 대립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수련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게 받아들였을 것인데, 그들이 저의 프로그램에 반감이 생긴다면 어떻게 그들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비로소 늘 자비로움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생명이 진정으로 진선인(眞·善·忍)에 동화된 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상태입니다. 사람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진선인에 동화된 부분이 작용할 수 있고, 대법의 자비로운 힘이 비로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중생을 구하는 것은 대법이기 때문입니다.

3. 관념을 바꾸자 얼굴에 웃음이 넘치다

매일 원고 작성 시간이 촉박하고 생방송 진행까지 하다 보니, 저는 늘 얼굴을 찡그리고 원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연말, 저는 법원(法源) 서점에서 열린 9일 학습반에 참가했습니다. 이번에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부님께서는 정말 유머가 넘치신다는 점이었습니다. 듣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으니까요. 제7강, 제8강을 들을 때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경제 뉴스는 따분한데, 어떻게 하면 깊이도 있고 재미도 있게 만들까? 나도 유머가 좀 있어야겠다.’

하지만 한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지 실행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밀크티 가게에서 한 서양인 수련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그녀는 고향 이야기를 하면서, 거기는 일 년 내내 햇살이 가득하고, 사람들 얼굴에도 늘 웃음이 넘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 각자들은 상호 간에 만나 두 사람이 웃기만 하면 무엇이든 모두 안다. 왜냐하면 이것은 무성(無聲)의 사유전감(思維傳感)으로서, 접수한 것은 입체적인 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둘이 웃을 때 이미 의견 교환이 끝났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하, 각자들은 늘 웃고 있구나!’

저는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정말 고생을 낙으로 생각하는가? 매일 원고를 쓸 때, 웃으면서 쓸 수는 없나? 당연히 그동안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의 선의와 미소를 단지 카메라 앞에 서있는 20분 동안 잠깐 드러내고 말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진선인에 동화되고, 그 경지에 도달하면 평소 생활에서도 선의와 미소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야만 시청자들도 자연스럽게 대법의 힘을 느낄 수 있고, 선의와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깨달은 후, 저는 매일 원고 쓰는 일이 즐거워졌고 유머 있는 대사와 영감이 수시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심지어 카메라 앞에 서기만 해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4. 수련과 중생구도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더 정진하자!

사부님께서 ‘법난(法難)’과 ‘각성하라(驚醒)’ 두 편의 신경문을 발표하신 후, 주변의 많은 수련생들이 1999년 7.20 이후의 수련의 길을 되돌아보았는데, 마음이 흔들리거나 수련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신수련생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거대한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혹시 느끼셨어요?” 저는 속으로 ‘아, 이 수련생은 중공이 해외에서 벌이고 있는 초한전에 큰 충격을 받았구나.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홍콩으로 갔다가, 홍콩에서 다시 미국으로 왔어요. 중공의 박해로 많은 중국 수련생들이 대륙과 해외에서 부평초 같은 생활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부평초가 아니에요. 제가 알고 있는 매체 수련생들은 모두 어떻게 하면 더 정진하고 어떻게 하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그 신수련생의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록 저는 1999년 7.20 이전에 수련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저 역시 7.20을 직접 겪었습니다. 7.20 이전에 외할머니 댁은 법공부 장소였습니다. 주말이 되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다른 어른 수련생들이 제 방에서 법공부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매일 밤 벽에 걸려 있는 사부님의 법상과 파룬(法輪) 도형을 바라보며 잠이 들곤 했습니다.

7.20이후, 저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갔고, 어머니께서는 “앞으로 외할머니 댁엔 절대 가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땐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몇 달 후 다시 외할머니 댁에 가보니 너무나 낯설었습니다. 마치 도둑들이 수탈해간 듯, 마루며 벽장이며 다 뜯겨서 엉망이 됐고, 제 방에 있던 사부님의 법상과 파룬 도형도 사라졌습니다. 외할머니 댁은 조용했습니다. 예전에 매주 찾아오던 수련생들이 더 이상 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저는 알게 됐습니다. 경찰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파출소로 연행해 갔고, 이후 몇 달간 가택 연금을 했으며, 그 이후에도 사복 경찰들이 수시로 아파트 단지를 오가면서 감시했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정념을 잃지 않고, 매일 아침 방에서 작게 연공 음악을 틀고 연공을 견지했습니다. 두 분은 낮에도 시장이나 시골 친척집에 찾아가 진상을 알렸습니다.

두 분은 또 다른 수련생들과 ‘명혜주간’, 사부님의 신경문을 은밀하게 주고받으셨습니다. 제가 중국 대륙을 떠나기 전, 외할머니는 80세가 넘으셨고 다리에 심각한 병업이 있었지만, 어느 겨울날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5층까지 좀 부축해 줄래? 병업으로 누워 계시는 할머니에게 발정념을 해줘야 해.”

이것이 7.20 박해 전과 후 저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안배해주신 이 모든 경험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고 있는가? 그 속에서 어떤 것을 배웠는가?’ 다시 생각해 보니 저는 수련을 시작한 후, 이런 과거의 경험이 제게 어떤 계시를 주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처럼 엄혹한 환경 속에서도, 병업의 고통 속에서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정진과 중생구도의 정념을 지켜냈지만, 오늘날 자유로운 미국 땅에서 나는 과연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수련생의 말은 저에게 반성해야 한다는 경고인 것 같았습니다. 수련과 중생구도에 대한 의지가 해이해진 것은 아닌지? 법 공부를 형식적으로 한 것은 아닌지? 법이 정말 마음에 들어오게 했는지? 사부님께서 주신 매체 환경을 소중히 여기고, 1초라도 아껴가며 중생을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지?

5. 가족에 대한 중공의 위협 앞에서 위치를 바르게 놓다

제가 방송 진행자로 활동하기 시작한 후, 공안은 중국에 계신 부모님을 여러 차례 찾아가 괴롭혔습니다. 아버지는 심장병과 고혈압이 있으신데, 몇 차례 암실로 끌려가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공안은 아버지에게 저의 상황을 캐묻고, 저를 ‘반역자’로 몰면서 협박했습니다. 그들은 또 부모님께 저를 귀국하게 하는 ‘정치 임무’를 맡겼습니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건강이 악화되어, 매달 병원비로 1만 위안(한화 약 190만원)씩 쓰고 계십니다.

부모님은 극심한 압박감 때문에 가끔 잘못된 일을 하셨지만, 그래도 저를 위해 잘 버텨내고 있습니다. 그분들도 대법을 수련한 후 제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보셨기 때문입니다. 수련 전에 저는 용돈을 받을 때만 말을 곱게 했고, 평소 부모님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수련을 시작한 후라 달랐습니다. 당시 저는 홍콩에 있어서 어머니 곁을 지켜드릴 수 없었지만 처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엄마에게 대법에서 수련해낸 나의 자비를 느끼게 해드리자!’

그래서 저는 따뜻한 말투로 어머니와 통화했습니다. “엄마, 엄마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실 때 외동딸인 제가 곁에 있어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혹시 저를 원망하고 미워하신다 해도 다 이해할 수 있어요. 제가 잘못했으니까요. 하지만 대법을 원망하지는 마세요. 대법은 저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줬고, 우리 가족을 갈라놓은 건 중공 때문이에요.” 그러자 예상과 달리, 어머니께서는 매우 차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엄마 아빠는 이미 다 받아들였단다. 우리는 부처님의 딸을 낳았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너만 무사하면 됐다.” 그 때 저는 형언할 수 없는 감사를 느끼면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하신 말씀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

반본귀진(返本歸眞)의 길에서 계속 정진하며 대법을 실증할 수 있도록 해주신 사부님과 대법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대법을 선의로 대하고, 대법이 세상에 널리 전해진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기를 바랍니다. 또한 수련생들께서 모두 함께 반본귀진의 길을 잘 걸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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