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5월의 단상

글/ 유럽 대법제자

[명혜망] 5월은 대법제자들이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기념하고 사부님께 감사드리는 계절이다.

최근 몇 주 동안 날씨가 매우 좋았고, 하늘은 맑으며, 기온도 적당해서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우리가 거주하는 곳은 작은 나라이고 대법제자도 많지 않다. 우리의 대법의 날 기념행사 공연은 두 가지 프로그램뿐이다. 남성들의 용춤, 여성들의 연꽃 무용에 공법 시연이 더해져서, 우리는 여러 차례 반복해서 공연을 선보인다.

우리는 대법의 날 여성 무용 공연을 몇 년간 중단했었다. 앞 세대의 대법제자들은 연세가 많이 드셨고, 다음 세대 중에는 어떤 이들은 유학을 위해 이 나라를 떠났고, 어떤 이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게 되어 몇 년간 중단됐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새로 온 사람들이 있어서, 약간의 훈련을 거쳐 공연을 성사시킬 수 있게 됐다.

내가 본 현장 효과는 정말 훌륭했다. 20년 전에 보았던 그 장면이 다시 재현된 것 같았다. 관객들이 정말로 매료됐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며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나는 이렇게 체험했다. 대법제자가 창작한 곡에는 사부님 법력의 가지(加持)가 있어서, 사람의 신성한 면을 깨울 수 있는 힘이 있다. 여기에 시각적인 무용 표현이 더해지면,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남성의 용춤 공연은 양기가 넘치고 강인하며 열렬하고, 여성 무용 공연은 완전히 상반돼, 매우 고요하고 부드럽고 아름답다. 사람의 영혼이 난세 속에서 잠시라도 고요해질 기회를 얻게 하고, 사람의 신성한 면이 깨어나서 방해받지 않고 대법이 제도하는 소리를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여성 무용의 이러한 효과는 남성의 공연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고전적이고 대표적인 공연이다.

올해 무용 공연팀의 일원으로서, 안무가부터 출연자까지 모두가 마음을 다해 임했고, 그 결과 작은 향상을 이루어냈다. 박해가 막 시작됐을 때는 아무도 파룬궁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우리가 진상을 알릴 때 기본적인 부분 중 하나는 단지 대법이 무엇인지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대법 수련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알리는 것이었다. 우리의 예술 공연은 비록 션윈 공연처럼 큰 작용은 없고 전문 무용수의 수준은 아닐지라도, 원래 그대로의 진짜이다. 녹화 영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현장 공연으로, 이것이 가장 직접적이고 진실하게 사람들에게 당신이 매우 진실하고, 자신만의 전통문화를 가진 바른 사람들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법의 날 축하 행사에서 내가 계속 사고해온 한 가지 문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축하 행사가 형식에만 그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의 사상은 억제된 것”(유럽법회 설법)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사람이 무언가를 기억하려면 잊기 전에 반복해서 읽고 반복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 않으면 곧 잊어버린다. 아주 적은 사람만이 한 번 본 것을 잊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러한 억제된 상태는 이 미혹된 환경의 일부이며, 신께서 바로 이렇게 배치하신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도덕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술만 너무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 최종적으로 핵전쟁, 행성 간 전쟁을 초래하여 인류가 스스로를 멸망시키고 우주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방지한다. 그러나 이런 억제된 상태는 신앙인이 신앙을 실천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조성했다. 신앙인이 종교 창시자의 모습, 했던 말, 나타낸 기적, 사람에 대한 큰 은혜에 대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흐려지고, 심지어 잊어버리게 된다. 박해가 시작됐을 때 나는 바로 이런 상태를 보았다. 당시 직접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던 사람들, 심각한 만성병을 사부님께서 치료해주셨던 분들이 있었다. 사람은 심각한 질병 중의 고통을 뼈에 새기듯 기억한다. 사부님께서 그를 치유해주셨지만, 중공이 온갖 거짓 선전을 펼치자 당시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며 받았던 그 충격,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주신 후의 병 없이 온몸이 가벼운 상태도 잊어버리고 수련을 견지하지 못했으며, 어떤 이들은 심지어 거짓말을 믿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보면서 나도 매우 놀랐다. 이것도 사람의 사유 상태 자체가 가져오는 어려움에서 조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의 사상이 억제받는 상태에서, 수련인으로서 수련을 견지하고 최후에 수련성취, 원만에 이르러 세상에 온 진정한 소원을 완성하려면, 개인적인 체득으로는 하나는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해야 하고, 또 하나는 착실히 수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할 수 없고 착실히 수련할 수 없다면, 우리가 하는 이런 축하 활동들은 아마 단지 하나의 형식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감성적으로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한 것에 대한 감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잊혀진다. 이에 비해 법리에 대한 이성적 인식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사존의 저작을 자세히 통독한 제자들은 모두 안다. 사부님의 설법은 대부분 인류사회 이전의 모든 지식 범주를 초월한 것으로, 각 대정교 창시자들, 역대 성현들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고, 인류가 지금까지 알 가능성이 없었던 것이다. 속담에 “강산은 바꾸기 쉬워도 본성은 바꾸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사부님의 대법이 중국에서 전해지자마자 진리의 힘을 체현하여 큰 범위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었다. 이 법리는 속인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가져온 수련인의 심신 변화도 보통의 권선(勸善)학설로는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착실한 수련에 대해 말하면, 기본적으로 『전법륜(轉法輪)』과 기타 사존께서 각지에서 하신 설법이 지도가 되지만, 착실한 수련 중에는 많은 의문이 나타날 것이다. 개인적 체득으로는 역시 사부님의 일깨움에 의존해야 하고, 당신의 심성이 도달해야 하며, 신이 당신에게 알려줘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 자신도 수련 중 사부님과의 이런 상호작용은 매우 많았다.

사부님께서 각자의 상태에 대해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동시에 천만 명 사상의 세밀한 활동을 아실 수 있다고 하셨으므로, 사부님과의 상호작용에서 이 방향은 매우 편리하다. 마음속으로 말씀드리면 사부님께서는 아시게 된다. 그러나 다른 방향에서, 우리 대법제자 절대다수는 모두 폐쇄된 상태에서 수련하므로, 우리가 사부님의 응답을 체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쉽지 않다. 내 체득은 사부님께서 스스로 접촉할 수 있는 어떤 형식으로 명백해지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공부 중에 어떤 단락을 배우면서 바로 자신을 말하는 것 같다고 느끼며, 문제를 의식하게 되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답을 찾게 되거나, 명혜망에서 수련생들의 교류 문장을 읽을 때, 자신은 수련생의 경험이 매우 계발적이라고 느끼며, 깨달은 것도 바로 자신의 수련 중 문제라고 여기게 된다. 또는 청정한 상태에서도 사상 중의 일깨움을 체득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표면적인 도리의 인정이 아니라, 사부님의 가지 하에서 그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나에게 일깨워주신 것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총체적 상태가 청정할수록, 수련 중에 있을수록 사부님의 일깨움을 체득하기 쉽고, 속인 일에 바쁠수록, 청정하지 않을수록, 수련 상태를 벗어날수록 사부님의 일깨움을 체득하기 어렵다. 물론 우리는 사부님과 같은 세상에 있어서 사부님을 뵐 기회가 있고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으니, 이것은 하나의 편리함이다. 내가 얻은 어떤 응답은 매우 명확한데, 사부님께서 때로는 나와 농담도 하시고 매우 유머러스하시다.

나는 이것도 진(眞)을 수련하는 한 방면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사부님께서 신의 상태임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모든 공간 몸의 각개 공(功)의 입자의 연화(演化)가 모두 사부님께서 해주시는 것에 의존한다는 것과, 사부님께서 각개 제자에 대해 모르심이 없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적어도 사부님에 대한 마음가짐에서 매우 솔직해야 하고, 감출 것이 없어야 하며, 적어도 문제에 직면하고 진실한 자신에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체득으로는 만약 이 점을 해낼 수 있다면, 일부 불필요한 장애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고, 일부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다.

덧붙여 말하면, 평상시 집에서 나는 매일 사부님 법상에 향을 피우고, 대법의 날에는 사부님께 과일, 쌀밥, 차를 공양한다. 중국은 무신론 사회로서, 모든 정교 신앙을 공산당이 오자마자 모두 없애버렸으므로, 전통적인 의식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고, 다만 가능한 한 자신의 이해에 따라 사부님에 대한 경의를 표현할 뿐이다. 명나라 성조가 국가급 공불 의식을 할 때는 담백한 음식을 공양하고 전문 창작한 음악을 연주했다고 보았다. 나도 이를 본받아 사부님께 쌀밥, 차를 공양하고 대법제자가 창작한 사부님께 바치는 음악 몇 곡을 틀어드린다.

개인적인 체득이므로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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