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의 원망은 어린 시절부터 쌓이기 시작했다. 청소년 시절을 괴로움 속에서 자랐는데, 할머니는 내가 딸이라고 좋아하지 않으셔서 이로 인해 어머니까지 함께 학대를 받으셨고, 아버지는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의 정치운동으로 억울하게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나는 ‘흑오류(黑五類: 지주·부농·반혁명 분자·악질 분자·우파 분자)’의 자녀가 됐다. 18세 때, 지역 교육국에서 사범학교 입학을 위한 우수학생 선발 기회가 있었는데 이는 권력 있는 사람이 차지했고, 나중에 나는 한 기업에 취직했다. 시골 출신이라 경력이 없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업무 성과가 뛰어나 상사의 인정을 받았다. 상사가 내 병든 몸을 배려해주어 관리직 업무를 맡게 됐고, 이로 인해 오래 다닌 여직원들의 배척과 압박을 받았다.
내 전반 생은 너무나 많은 불공평함과 억울함이 있었고, 마음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원망, 질투, 복수의 악념이 쌓여 내 건강을 무너뜨렸다. 원망과 관련된 많은 이기심과 집착은 나중에 수련에 많은 번거로움을 주었다.
1. 며느리가 들어오다
2000년, 친척이 며느리를 소개했는데 우리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아가씨는 좋은 처녀로, 도시에서 미용을 배우고 건강식품 사업을 겸하고 있었으며 비교적 전통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인연은 전생에 정해진 것임을 알았기에 이 혼사는 성사됐다.
며느리는 2002년에 우리 가족에게 귀여운 손자를 낳아주었다. 손자가 세 살 때 내 남편이 세상을 떠났고, 며느리와 며느리 친정 가족은 모두 사업으로 바빴기 때문에 손자는 내가 혼자 키웠다. 며느리는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고, 손자가 나와 함께 있으면서 15년 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악당에 의해 교란을 당할 때, 며느리는 모든 대법 서적과 자료를 잘 보관해주었고, 집안의 쇼핑은 모두 며느리가 관리해주어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며느리는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단정한 것을 좋아했으며 양가 부모님께 효도했다. 우리는 이웃들에게 모녀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2. 집 매매로 풍파를 맞다
2009년 어느 날, 며느리는 손자가 점점 자라고 물가가 크게 오르는데 아들의 월급은 그대로라며, 당시 우리가 가진 유일한 140㎡ 주택을 팔아서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자고 말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우리집에서 단체 법공부를 하고 있고, 아들도 사업 위험이 크다며 반대했으며, 집을 팔기는 쉽지만 다시 사기는 어렵다고 했다. 며느리는 또 우리 가족이 임시로 집을 임대해서 살다가, 사업이 확장되어 돈을 벌면 새집을 사자고 했다. 그러나 결국 집 매매 문제가 잘 의논되지 않자 며느리는 그때부터 집에서 말이 적어졌다. 예전의 즐거운 분위기는 점점 사라졌고 며느리의 원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안으로 찾아보니 내게 조급한 마음이 있었고, 며느리와 집 매매 문제를 인내심 있게 소통하지 않아 가정에 갈등이 생긴 것이었다. 체면 때문에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서로 양보하고 다투지 않았지만, 마음은 계속 가로막혀 있었다.
3. 며느리가 변했지만 나는 안으로 찾지 않았다
1) 2021년 겨울, 우리 가족은 아들이 주택담보대출로 구입한 새집으로 이사했다. 집의 소유권은 아들과 며느리 공동명의로 했다.
어느 날, 아들이 출근하고 나서 며느리가 손자(겨울방학이 되어 집에 있었음)에게 자기가 그를 키웠다며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했다. 손자는 말이 없었고, 나는 옆에 있었는데 며느리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입으로는 반박하지 않았지만, 당문화(공산당 문화)의 조롱하는 마음으로 며느리를 힐끗 보며 마음속으로 분개했다.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며느리가 어떻게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변했을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다니. 이웃, 친구, 며느리의 친정 가족 모두가 내가 손자를 키운 것을 알고 있고, 학비를 제외한 손자의 모든 비용도 내가 부담해 지금까지 받는 퇴직금은 2000위안에 불과하며 저축도 없는데, 며느리가 왜 이런 거짓말을 하고, 또 일부러 내가 들으라고 한 이유를 모르겠네.’ 나는 이 일을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없다.
나중에서야 나는 표면적으로만 안으로 찾았고, 내가 닦아야 할 마음이 분명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로를 바라는 과시심, 보답을 바라는 마음,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마음, 질투심 등이 있었는데, 사실 나는 자신을 깊이 파헤치지 않았고, 속으로 며느리를 더욱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2) 며느리는 내 수중에서 새집 출입 카드를 회수했다. 새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며느리는 내 옛집이 있으니 새집 출입 카드를 돌려달라고 했다. 며느리가 나를 더 이상 새집에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나는 아들이 알게 되면 곤란해질까 봐, 옛집으로 돌아가 혼자 살았다. 옛집은 시내에 있고 새집과 그리 멀지 않았으며, 우리 지역에서 일주일에 두 번 있는 단체 법공부를 옛집에서 계속했다. 아들도 알고 있어서 내가 새집을 떠난 이유를 묻지 않았고, 주말에만 나를 데리러 와서 함께 식사했다. 며느리는 아들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나를 다르게 대했다. 새 아파트 단지는 매우 컸고 많은 외지인이 진상을 모르고 있었기에, 진상 알리기 편하도록 나는 아들의 출입 카드로 밖에서 새로 출입 카드를 복제해 새집에 드나들며 진상을 알렸다. 그래서 억울함을 느끼지 않았고, 게다가 며느리도 나를 쫓아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당문화로 며느리를 판단했고, 며느리가 아들 앞뒤에서 다르게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당문화 교육으로 생긴 원망을 소홀히 하여 습관적으로 덮어 감췄고, 며느리가 집 매매 문제로 나에게 원망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3) ‘고자질’할 생각을 버리다
2022년, 우리 지역에 중공 바이러스(코로나)가 계속되어 아들은 내가 혼자 옛집에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새집으로 돌아오게 했다. 전염병으로 며느리의 사업도 문을 닫았기에 나와 며느리는 매일 함께 있게 됐다. 나는 수련인으로서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며느리의 냉담한 태도를 못 본 척했다. 최대한 며느리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고, 생활 면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일상적인 쇼핑을 포함해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최대한 며느리의 뜻을 충족시키려고 했다. 며느리는 식사에 많은 그릇을 사용하여 매일 설거지 시간도 길어져 인내심이 부족할 때, 나는 내가 ‘작은스님’이라고 생각하며, 고생하여 소업(消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며느리가 요리하는 것을 배워 알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먹기 힘들었지만, 내 식욕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공은 배를 채우기 위해 무엇이든 잡히는 대로 먹었다’가 떠올랐다. 집안일을 어떻게 하든 며느리는 여전히 불만스러워했고, 내가 하는 모든 집안일을 꼼꼼히 검사했다. 창문 닦기, 빨래 말리는 방식, 신발 정돈 등 모든 것을 확인했고, 바닥에 물 몇 방울이 떨어져도 뭐라고 했으며, 설거지할 때 세제를 쓰지 말라고 하고는, 사용하지 않으면 설거지가 깨끗하지 않다고 트집을 잡았다. 그때 나는 내 노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꼈고, 마음속으로 며느리가 너무하다고 원망했다. 나 자신의 억울함만 생각하고 며느리의 장점을 등한시했다. 며느리는 일을 진지하게 하고, 청결하며, 주거 공간 배치에 신경을 쓴다. 그녀의 행동은 마치 거울처럼 나의 많은 부족한 점을 비췄다. 예를 들면, 나는 일을 대충하고 아무렇게나 하며 진지함이 부족했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을 실천하지 못했다. 며느리가 만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사실 맵고 향이 강한 음식에 대한 나의 집착을 버리라고 한 것이다. 비록 자신을 찾아보며 버려야 할 사람마음이 있는 것을 알았지만, 관념이 자신을 바꾸는 것을 방해했고, 어쨌든 내가 시어머니이고 전통 예의와 부모 공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는 기회가 있을 때 며느리의 친정 식구들에게 며느리가 너무하다고 이치를 따져보고 싶었다.
저녁에 법공부할 때, 이런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사람을 구하라, 사람을 구하라.’ 차분히 생각해보니, 며느리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속인처럼 ‘고자질’을 하려고 했을까. 게다가, 대법제자의 책임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며느리의 친정 가족 수십 명이 진상을 알고 있고, 많은 사람이 실명으로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했다. 며느리의 친정 가족들은 나를 보기 드문 시어머니라고 칭찬했고, 며느리가 우리집에 시집온 것은 복이라고 말했다. 내가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비이성적인 일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어떻게 볼까. 며느리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지 간에 지금까지 사부님과 대법에 불경한 말을 한 적이 없고, 예전에는 사부님의 법상 앞 큰 꽃병에 정성스럽게 연꽃을 꽂아 사부님을 공경하기도 했다. 2015년 장쩌민 고소 붐이 일었을 때, 며느리는 대법제자를 지지하는 장쩌민 고소 명단에 실명으로 서명을 했다. 만약 내 원망 때문에 비이성적으로 고자질한다면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아래로 밀어내는 것이다. 나는 ‘고자질’할 생각을 버렸지만, 여전히 진지하게 안으로 찾아보지 않았고, 내면에서 자신을 바꾸지 않았다.
4. 사람의 관념을 고수하여 며느리와의 갈등이 계속되다
최근 이전과 달리 점점 검어지고 수척해지는 며느리의 안색을 보고, 사람의 관점에서 나는 약간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원망 등 좋지 않은 물질을 며느리에게 쌓아 온 것이 원인이라고 인식하지 못했고, 동시에 며느리가 어처구니없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손자는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에서 취업을 준비 중이었고, 아들은 출근하느라 집에서 식사를 자주 하지 않았다. 세 끼 식사는 모두 며느리가 준비했다. 매번 음식을 준비한 후, 특히 점심에는 손자만 불렀고, 나는 밥을 지을 필요가 없어 방에서 법공부를 하다가 비록 나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가서 식탁에 앉았다. 자리는 기본적으로 고정되어 있었는데, 며느리는 항상 맛있는 음식을 그들 모자 앞에 놓고, 내 앞에는 남은 음식이나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놓았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사람마음이 드러났다. 음식이 맛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는 체면을 중시했다. 손자가 집에 있어서 며느리의 행동이 이미 손자에게 영향을 미쳐 손자도 나에게 부정적인 의견이 생겼다. 몇 달 동안의 억울함과 며느리에 대한 원망을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일반 사람의 논리대로라면 어떻게 보아도 며느리가 잘못했지만, 나는 수련인으로서 사람의 이치와 신의 이치가 반대임을 알고 있었으나 나는 원망의 함정에 빠져,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 날 시장에서 시동생과 동서를 만나 가볍게 몇 마디 하소연했지만, 체면 때문에 며느리가 나에게 한 구체적인 일들은 감히 말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후, 잇몸 아래 부분에 궤양이 생겨 물 마실 때 조차 아팠다. 수십 년 동안 치통을 경험한 적이 없었는데, 나는 자신이 수구(修口)하지 않고 뒤에서 며느리에 대해 몇 마디 말해 업을 지었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법공부와 발정념을 하고, 사부님께 요청해 3일 만에 치통이 사라졌다.
며칠 후, 나는 새집을 떠나 옛집으로 돌아가 혼자 있고 싶어서 옛집으로 돌아간 후 식사를 한 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랫배가 찌르는 듯이 아팠고, 이어서 소변 실금이 시작됐으며,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이전에 심성 고비를 넘을 때 이런 증상이 있었다). 나는 즉시 경계하고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나는 시련을 피하기 위해 화가 난 채로 옛집으로 돌아오지 말아야 했고,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하고, 자신을 깊이 파헤치지 않았으며, 안으로 찾지 않아 구세력이 틈을 탄 것이다. 나는 즉시 사부님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고 합장한 후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했다. “사부님! 제자가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수련자는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합니다. 저는 반드시 사부님의 가르침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명심하겠습니다.” 몇 분 후, 갑자기 나타난 모든 괴로운 가상이 모두 사라졌다. 감당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제자를 위해 다시 한번 대신 감당해주신 자비로운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정말 자신을 닦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
5. 안으로 찾으니 새로운 경지가 열리다
새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돌아가서 어떻게 마음 깊은 곳에서 며느리와 소통할지를 생각했고, 자아를 내려놓고 수련인의 자비와 선한 마음으로 며느리를 잘 대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법을 위해 온 생명이며, 나와 큰 인연이 있다. 나를 성취시키기 위해 며느리는 내 옆에서 나에게 보여주며, 내가 사람마음과 집착을 버리고 심성을 제고하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정법이 거의 끝나가는데 이 못난 제자가 사부님께 걱정을 끼쳐드렸고, 며느리도 나를 위해 감당하고 소업하느라 고생했다.
나는 가는 길에 계속해서 자신을 바로잡았다. 새집에 돌아오니 며느리가 나를 보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상쾌하게 말했다. “어머님, 돌아오셨어요, 오늘 저녁에 뭘 드시겠어요?” 며느리의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정말 신기했다. 나는 가볍게 “네가 알아서 하렴”이라고 대답했다. 게다가 며느리의 오랫동안 찌푸렸던 미간이 펴졌고, 안색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가정이 예전의 평온을 되찾았다. 사부님께서 내가 진심으로 자신을 잘 수련하려는 마음을 보시고, 그 순간에 며느리에게 쌓였던 내 원망을 녹여주셨다.
자비로운 사부님의 무한한 법력과 가없이 넓고 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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