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오랜 친구가 며칠간 자기 집에 머물러 달라고 초대했다. 그녀는 연로하신 어머니와 함께 살며 외출이 불편해, 나와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혼자 두기 어려워 이런 일석이조의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나는 기꺼이 응했다. 친구와 함께 어르신을 모실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87세이시다. 깔끔하고 단정하며, 그 나이에는 드물게 희고 맑은 얼굴에 온화하고 선량하신 모습으로, 말씀하실 때마다 항상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나는 그 집에서 나흘을 머물렀다. 그 사이 친구가 반나절 외출할 일이 생겨 나와 어르신만 집에 남게 됐다. 나는 “괜찮아, 안심하고 다녀와”라고 말했다. 그 집 방식에 따라 어르신께 식사를 준비해드렸고, 식사 후에는 주방을 정리하고 따뜻한 물을 따라드리며 어르신이 약을 챙겨 드시도록 지켜보았다. 초겨울 날씨로 밖은 꽤 추웠지만 우리는 따뜻한 실내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나는 어르신께 NTD TV 프로그램 ‘전설의 시대 – 천국악단’ 영상을 보여드리고, 전통문화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독한 맹세가 지닌 위험성도 설명해드렸다. 어르신은 현명한 분이셔서 바로 이해하시고, 과거 공청단 가입 시 했던 맹세를 폐지하겠다고 동의해주셨다. 대화가 점점 즐거워지자 어르신은 아이처럼 웃으시며 “넌 어떻게 그렇게 많은 걸 아니?”, “미국에도 파룬궁이 있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어르신도 젊은 시절 이야기, 돌아가신 남편 이야기, 그리고 근심거리를 털어놓으셨다. “며칠 뒤 아들 집에 가야 하는데 정말 가고 싶지 않구나. 며느리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식사할 때 내 옆에 앉지도 않고, 내가 찐빵을 다 못 먹어 반을 남기면 그 반쪽은 건드리지도 않아. 한번은 저녁을 먹으러 밖에 나갔다가 날이 어두워졌는데, 모두 앞서 걷고 나 혼자 맨 뒤에서 가다 발밑이 안 보여 넘어졌어. 팔이 부러져 더 폐를 끼쳤지. 아, 정말 오래 살고 싶지 않아. 자식들에게 짐 되기 싫어.” 나는 서둘러 어르신을 위로했다.
이 일은 오래전이지만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나 역시 며느리인 입장에서 우리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나와 남편은 계속 타지에서 일하며 고향을 오래 떠나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 몇 년간 시어머니를 모셨다. 일반인에게 고부관계는 큰 난제지만, 수련인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됐다. 나는 시어머니의 생활을 돌보고, 시어머니는 내 수련을 지켜보며 서로 도움이 됐다. 그동안의 희로애락이 지금도 생생하다.
“찐빵은 밥만 못하고, 여자는 남자만 못하다”는 말에 깨달음을 얻다
한때 나는 큰아주버니의 초등학생 외손자 온라인 영어 수업을 도와주었다. 첫 수업 날, 시어머니의 저녁 식사를 늦게 준비했다. 시어머니는 서재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자 내가 전화로 잡담하며 밥을 안 한다고 생각하셨다. 수업이 끝난 후 시어머니의 불쾌한 표정을 보고 급히 설명했다. “수업이 1시간이라 중간에 끊을 수 없어서 수업 후에 밥을 하니 좀 늦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증손자 수업을 도와준다는 말에 더는 뭐라 하지 않으셨지만, 곧바로 “넌 강의를 잘 못하더라!”라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시어머니는 글도 모르시는데 내 영어 강의가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아실까?’라고 생각하며 뭐가 안 좋았냐고 물었다. 시어머니는 “넌 웃고 떠들며 강의하는데, 그런 태도는 좋지 않아”라고 하셨다. 나는 자랑스럽게 “아이들 수업은 생동감 있게 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내 말을 끊으며 “찐빵은 밥만 못하고, 여자는 남자만 못하다. 이건 옛 어른들이 전해주신 말이야”라고 하셨다. 나는 그제야 시어머니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이해했다. 내가 시어머니 아들처럼 강의할 수 있지만, 여자는 여자일 뿐 남자와 동등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겉으로는 웃으며 넘겼지만 속으로는 오래 곱씹었다.
집안일을 할 때 나는 늘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를 들었다. 명혜라디오 ‘신전문화(神傳文化)’ 프로그램에서 반소(班昭)의 ‘여계(女誡)’ 이야기를 듣고 반성하게 됐다. 반소는 동한(東漢)의 여성 사학자이자 문학자로 중국 여성의 공자라 불린다. 자주 궁에 불려가 황후와 귀인들에게 경전을 가르쳤다. 그녀가 쓴 ‘여계’는 중국 최초의 완전한 여성 예교서로, 여성의 품덕과 행동 규범을 정립했다. 이 유교 고전을 기준으로 보니, 사악한 공산당 문화에 젖은 중국 여성의 행동은 중화 전통 여성의 규범과 완전히 달랐다. 시어머니 세대 여성들에게는 전통문화의 영향이 남아 ‘여계’의 이념과 일치했다. 나는 시어머니가 옳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중국공산당(중공)의 ‘반쪽 하늘’ 이론을 들었고, 가정에서 남녀가 동등하다고 여겼다. 남편과 의견이 다르면 논쟁하고, 옳다고 생각하면 양보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아마 오래전부터 이런 내 태도를 못마땅해하셨겠지만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나를 일깨워주신 것이었다.
나는 줄곧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식사 때는 항상 시어머니와 남편이 앉은 뒤에야 앉았고, 밥도 시어머니부터 떠드렸으며, 시어머니가 젓가락을 드신 후에야 나도 들었다. 시어머니가 앉았는데 남편이 다른 일로 아직 못 앉았다면 시어머니와 함께 먼저 식사했고, 남편이 급한 일로 먼저 식사해야 한다면 남편이 먼저 식사를 마치도록 한 뒤 시어머니와 함께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단지 표면적인 예의일 뿐, 진심에서 우러난 공경은 아니었다.
시어머니께 감사해야 한다. 시어머니 덕분에 나에게 겸손한 태도와 자신을 낮추는 덕목이 부족함을 알게 됐다. 그제야 왜 이렇게 강한 시어머니를 만났는지 이해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 수련을 위해 맞춤 배치하신 환경이었다.
또 다른 일이 떠올랐다. 우리는 시어머니를 모시려고 고향에 새 집을 샀다. 원래는 형제자매들이 돌아가며 어머니를 돌보는 데 사용하려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결국 우리 부부가 시어머니를 모시게 됐다. 자식들이 시어머니께 양로보험을 들어 매달 연금이 나오지만 시어머니는 모두 막내아들에게 주시고, 본인의 모든 생활비는 우리 부부가 부담하게 됐다. 시어머니는 “내 연금은 막내아들에게 주고, 나는 어느 집에 가면 그 집에서 먹는다”고 당당히 말씀하셨지만, 속으로는 미안해하셨다. 한번은 남편이 집에 없을 때 시어머니가 어디 갔냐고 물으셔서 남편이 장을 보러 갔다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는 “또 장을 보러 갔구나. 쌀밥은 반찬이 많이 들지만, 면은 그렇지 않아”라고 하셨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나중에야 시어머니가 우리집에 머무는 것이 우리에게 부담될까 봐,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게 아끼자는 뜻임을 알았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분명 내가 잘못해서 시어머니가 위축되신 것이었다. 안으로 찾아보니 나에게 줄곧 감추고 있던 불선(不善)이 있었다. 새 집 입주 후 누가 시어머니를 모실지 논의할 때, 각자 어려움을 내세우며 결국 우리 부부가 최적임자라고 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맡았지만 내 마음은 평온하지 않았다. 집은 우리가 샀는데 다른 이들은 돈을 안 내고, 지금 시어머니도 우리가 돌보는데 다른 이들은 힘을 안 보태니 마음 한구석에 불평이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공로를 내세우는 마음이 드러나 어르신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다행히 수련인은 매일 법을 배우고, 문제가 생기면 법에 비춰보면 다 알게 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악자(惡者)는 질투심 때문에 자신만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정진요지-경지) 이게 바로 내 마음 상태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악자였다. 그제야 사실 형제자매들도 모두 효도하고 있지만 내가 못 본 척한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은퇴하기 전에 그들이 이미 오랜 세월 봉양해왔지만 나도 아무렇지 않게 여겼다. 시어머니의 무심한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언제까지 흐리멍덩했을지 모른다. 나이가 들면 스스로 생활할 수 없고 모든 것을 남에게 의존해야 하니 마음이 몹시 괴로우실 것이다. 강한 사람일수록 더 고달프다. 내 착하지 않은 마음이 어르신께 부담을 주었고, 정말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나는 시어머니가 어른으로서 느끼는 감정에 매우 주의를 기울였다. 남편이 장보러 나가면 산책 나간다고 말했고, 시어머니 용품을 살 때도 모두 조용히 했다. 예를 들어 옷을 살 때는 시어머니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몰래 치수를 재어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배송이 오면 기존 옷과 비교해 치수를 확인한 뒤, 세탁해서 몰래 옷장에 넣어두었다. 90세 어르신은 최근 기억이 거의 없어, 꺼내 입혀드리면 본인 예전 옷인 줄 아신다. 시어머니는 소변실금이 있어 오랫동안 기저귀를 착용하셨다. 종이 기저귀를 싫어하고 순면 천 기저귀를 좋아하셔서 기저귀를 자주 빨아야 했다. 시어머니는 보통 직접 빨았지만 맹물로만 빨아 사실 깨끗하지 않았고, 때로는 귀찮아서 그냥 말려서 다시 쓰기도 하셨다. 나는 몰래 깨끗이 빨아 말렸고, 얼룩이 지워지지 않으면 산소 표백제에 담갔다가 다시 빨아 하얗고 산뜻하게 만들어 어르신이 쾌적하게 착용하도록 했다.
이 외에도 자손들이 시어머니께 드린 현금이나 담배(시어머니는 담배를 피우심) 등은 절대 손대지 않았고, 시어머니가 피우시는 담배도 우리가 샀다. 어르신은 외출하지 않아 돈 쓸 일이 없기에 현금과 담배는 감정 교류의 도구가 됐다. 시어머니는 주고 싶은 자손에게 마음껏 주셨다. 명절이나 결혼 등 집안 경사가 있을 때면 미리 시어머니 주머니에 빨간 봉투를 준비해 넣어드렸다. 어르신은 무척 기뻐하며 천륜의 즐거움을 누리셨다.
바르지 못한 일념이 큰 문제를 일으키다
노인은 넘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시어머니는 90세 고령에 소뇌가 위축되고 다리에 힘이 없어 걷는 것이 불안정하셨다. 시어머니가 넘어지지 않도록 나는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밤에는 함께 자고, 낮에도 늘 시야에 두고 집안일을 했다. 신발에는 방울을 달아 시어머니가 일어나시면 바로 알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결국 넘어지셨다.
어느 날 오후, 나는 후드 기름때를 청소했고, 2시 반부터 시작해 5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오후 5시부터 시어머니의 저녁을 준비했는데, 당시 시어머니는 변비 때문에 저녁에 우유와 과일주스, 바나나 하나만 드셨다. 내가 한참 청소하자 시어머니는 4시쯤 주방 입구에 오셔서 “뭐하니?”라고 물으셨다. 나는 “후드 청소하고 있어요”고 답했다. 5시 7분에 청소를 마쳤지만 세제 냄새가 심해 후드를 켜 환기시키고 작업대를 정리하면서 주스 만들 준비를 했다. 그때 거실에서 ‘쿵’ 소리가 났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하고 달려가 보니 시어머니가 바닥에 넘어져 계셨다! 나는 손에 든 물건을 던지고 달려가 시어머니를 부축했고, 남편도 소리를 듣고 뛰어왔다. 시어머니는 상반신이 커튼에 감겨 한참을 지나야 커튼을 풀 수 있었다.
우리는 시어머니를 소파에 앉히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시어머니는 화를 내며 “주스를 일찍 만들어줬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야!”라고 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디가 아프시냐고 여쭈었다. 시어머니는 허리가 아파 움직일 수 없다고 하셨다. 우리는 시어머니를 침대에 눕히고 몸을 살폈는데 별다른 문제는 발견하지 못했다. 어떻게 넘어졌는지 물으니 혼자 거실에 가서 높은 곳의 바나나를 꺼내려다 몸을 젖히며 균형을 잃었고,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돌리다가 뒤에 커튼이 있어 커튼에 감기셨다고 했다. 그래서 머리는 보호받아 TV장 모서리나 바닥 타일에 다치지 않았지만, 엉덩방아를 찧으며 허리가 충격을 받았다.
다음 날 아침, 시어머니는 허리가 심하게 아프다고 하셨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의사는 허리뼈에 금이 간 곳이 보이지만 새 상처인지 옛 상처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일로 온 가족이 놀라 형제자매들이 모두 시어머니를 찾아왔다. 나는 죄송하다며 제대로 모시지 못해 시어머니가 다치셨다고 사과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탓하기 않고 시어머니께 말을 안 듣는다며 꾸중했다. 뭐든 본인이 하지 말고 일이 있으면 며느리에게 시키고, 꺼낼 것이 있으면 며느리에게 얘기하라고 그토록 말했는데 왜 굳이 혼자 바나나를 꺼내려다 다쳤냐고 했다. 그럴수록 내 마음이 더 편치 않았다. 시어머니가 답답해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넘어져 다쳤는데 자식들에게 꾸중까지 들으니 얼마나 속상하실까? 손님들이 다 떠난 뒤 나는 남편 앞에서 시어머니께 “어머님, 제가 제대로 모시지 못해 넘어지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일을 너무 늦게 해서 어머님이 직접 바나나를 꺼내시게 했어요. 제가 더 일찍 주스를 만들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화를 내며 “그만해라!”라고 하셨다.
며칠 동안 나는 이 일을 곱씹으며 내 잘못을 찾았다. 이 큰 소동은 내 일념이 바르지 못해서 생긴 것이었다. 매번 시어머니가 “뭐하니”라고 물으실 때는 뭔가 부탁이 있을 때였다. 예를 들어 내가 주방에 있으면 시어머니는 오셔서 “뭐하니?”고 물으신다. 그러면 나는 돌아서서 “어머님, 냄비를 닦고 있어요. 뭐 필요하세요?”라고 묻는다. 시어머니가 “발을 담그고 싶고, 발톱을 깎고 싶어. 요즘 발이 아프구나”라고 하면, 나는 “네, 곧 갈게요!”라고 답했다. 금방 끝낼 수 있으면 5~6분 안에 마치고, 안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먼저 시어머니 요구를 들어드렸다. 화장실에 가서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시어머니를 작은 의자에 앉히고, 나중에 수건을 건네 발을 닦게 한 뒤 밝은 거실 의자에 모시고 발톱 손질용 가위로 발톱을 깎아드렸다. 특히 살에 박힌 부분을 파내야 했다. 만져서 아프지 않다고 하면 깨끗한 양말을 신겨드리고, 발 씻은 물을 버리며 바닥을 정리하고, 발 닦는 수건과 더러운 양말을 깨끗이 빨았다. 그러면 시어머니는 만족해하며 누워서 쉬셨다.
그날 시어머니가 “뭐하니”라고 물으신 것은 점심 반찬이 입에 맞지 않아 적게 드셔서 오후에 일찍 배가 고파 저녁을 빨리 준비해주길 바라셨기 때문이다. 나는 알면서도 그때 의자 위에 올라가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높은 곳의 기름때를 닦고 있었고, 주방은 한동안 쓸 수 없으니 시어머니 요구를 들어드릴 수 없었다. 시어머니 요구에 대해 순간적으로 미묘한 거부감이 생겼다. 평소 같으면 일을 멈추고 시어머니께 가서 “어머님, 후드가 너무 더러워서 금방 못 끝나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얼른 끝내고 주스 만들어드릴게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나쁜 생각이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가 경계하지 못했고, 행동이 그 생각에 지배되어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후드 청소하고 있어요”라고만 하고, 시어머니가 무엇을 원하시는지 묻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재촉하셨지만 내가 반응하지 않자 화가 나서 직접 거실에서 바나나를 꺼내려다 넘어지신 것이다. 시어머니가 화가 나면 더 쉽게 넘어지신다. 그때 나는 막 후드를 켜서 윙윙 소리에 방울 소리가 완전히 묻혀 시어머니의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사고가 난 것이다.
시어머니는 한 달 반 동안 허리 통증에 시달리셨다. 온 가족이 시어머니의 허리를 걱정하며 병원 진료, 상담, 마사지, 약 구입, 허리 보호대 구입 등 온갖 수고를 했다. 친척들까지 위문하러 왔다.
이번 사고는 내가 쟁투심을 닦아버리지 못해서 생긴 일로, 깊은 교훈이 됐다. 시어머니께 정말 죄송했고, 심성을 잘 지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수련은 매우 엄숙한 것으로 정진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느슨해지면,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붙잡고 수련하지 못하며 온갖 교란과 번거로움이 생긴다. 사실 한동안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전법륜』의 한 구절을 외웠다. “우리 연공인(煉功人)에게는 모순이 갑자기 생길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이 평소 늘 慈悲(츠뻬이)한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늘 慈悲(츠뻬이)하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지 없는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비록 매일 이 구절을 외웠지만 진정으로 수련해내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내가 이 방면에 부족하니 착실한 수련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일깨워주셨다. 하지만 나는 깨닫지 못했고, 넘어지고 나서야 알게 됐다.
점차 순종을 배우다
명혜라디오의 『여계』를 들으며 ‘순종’이 무엇인지 알았다. “시부모님 말씀이 옳으면 따르고, 틀리면 특히 따라야 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것이 이른바 순종이다. 순종은 겸손하고 낮은 태도이며, 어른을 공경하는 덕목이자 모욕을 참는 덕목이다.”
『전법륜』을 세 번째로 외울 때, 정말로 외우는 부분마다 수련이 그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 그 시기에 제9강의 ‘대인지심(大忍之心)’ 부분을 외웠고, 생활 속에서 시어머니가 실천할 기회를 주셨다.
둘째 시누이와 시동생은 평소 성도[省城]에 살았고, 가끔 휴가 때면 돌아와 어머니와 며칠을 보냈다.
시어머니는 아침 세수에 매우 신경을 쓰시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서 있을 때 불안정해 우리는 높은 의자 세 개를 샀다. 첫 번째는 너무 낮고, 두 번째는 너무 높으며, 세 번째가 드디어 딱 맞아서 높은 의자에 앉아 세수하실 수 있게 됐다. 그전에 시어머니가 세수하실 때 내가 항상 뒤에 서 있었는데, 한번은 시어머니가 고개를 젖혀 양치하는 것을 보고 나는 재빨리 달려가 뒤에 섰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즉시 돌아서서 성난 목소리로 “비켜!”라고 외치셨다. 그날 마침 둘째 시누이가 집에 있었고, 옆방에서 통화하다가 소리를 듣고 바로 전화를 끊고 달려와 시어머니를 꾸짖었다. “나이 들어서 왜 이렇게 몰지각해요? 보호해 주려고 뒤에 서 있는 사람을 그렇게 쏘아붙이다니요!” 나는 웃으며 “괜찮아요, 쏘아붙이시면 어때요!”라고 말했다.
시동생은 세심한 편이다. 식사할 때 시어머니가 다 못 드신 음식을 곧장 내 밥그릇에 부어놓고, 먹다 남은 만두 간장도 그냥 나에게 주는 것을 보고는 시동생은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마세요.” 시어머니와 나는 모두 “이게 뭐 어때서”라고 말했다. 그러자 시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시어머니가 나에게 자주 무례한 말을 하는 것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요즘 사회를 보세요. 부모를 돌보지 않는 자식들이 수두룩합니다! 사람은 만족할 줄 알아야지 남에게 수발을 받으면서도 그렇게 거만하게 굴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말했다. “어머니가 계속 말을 안 들으면 떠난다고 하시고, 모시지 않겠다고 하세요. 버릇없이 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시동생은 그런 말을 할 수 있지만 저는 안 됩니다.” 시어머니도 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성격을 고칠 수 없었다. 가끔 자신의 실언에 대해 나에게 사과하며 화내지 말라고 했다. 나는 늘 “어머님, 저는 영원히 어머님에게 화내지 않을 거예요. 저는 어머님의 자식입니다”라고 말했다.
시어머니를 화장실로 모시고 갈 때 변기 앞에서 돌아 앉힐 때 넘어지기 가장 쉬웠다. 나는 두 손으로 시어머니 어깨를 잡고 천천히 앉혀드렸다. 한번은 막 앉혀드린 후 시어머니가 “앞으로 안 도와줘도 돼. 나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있어”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님, 부축하지 않으면 넘어지시면 어떡해요?”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네가 내 어깨를 잡으면 네 몸인지 내 몸인지 모르겠고, 냄새도 나서 못 참겠어”라고 하셨다. 한참 생각하다가 내가 시어머니 어깨를 잡고 얼굴을 너무 가까이 대서 시어머니가 내 구취를 싫어하신다는 걸 알았다. 그 뒤로는 시어머니를 화장실에 모셔갈 때 뒤에서 어깨를 잡았다.
이 일이 지나간 후 나는 스스로 곱씹었다. 안으로 찾아보니 두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식탐으로 인한 소화불량이고, 다른 하나는 수구(修口)하지 못한 것이다. 보기에 크지 않은 집착을 오랫동안 닦아버리지 못했고, 식탐 배후에는 안일함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식사할 때만 잠시 앉아 쉴 수 있었고, 마지막 한 입을 먹고 나면 바로 일어나 설거지를 해야 했다. 그래서 이미 배가 불러도 더 앉아 있고 싶어 몇 입 더 먹었다. 수구하지 못한 것도 스스로에 대한 요구가 느슨해진 탓이다. 시어머니를 보러 집에 손님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세상사 이야기를 하게 되고, 자신을 일반인으로 여겨 함께 어울리며 수련인임을 잊었다. 내가 정진하지 못한 것이고, 시어머니 말이 듣기에는 날카로웠지만 사실 내 수련을 일깨워준 것이기에 오히려 감사해야 했다.
나는 이런 일을 남(남편 포함)에게 말하지 않았다. 남이 시어머니를 꾸짖을까 봐 걱정됐고, 아랫사람이 어른을 꾸짖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남에게 요구할 수 없으니 최대한 조용히 넘겼다.
모욕을 참는 수련에는 과정이 있었고, 가끔은 속으로 화가 치밀기도 했다. ‘어머님이 체했을 때 나는 묵묵히 소화제를 건네주고, 꼭 먹으라고 챙겼어. 토하고 설사할 때는 구토물을 닦아드리고, 오줌 묻은 옷을 빨고, 몸을 씻겨드리고, 침대 시트도 갈아드렸지. 매일 화장실 갈 때 부축해서 대소변을 보게 하고, 침을 뱉은 세면대도 닦았어. 어머님은 식사 후 이를 쑤시고 가글도 안 하셔서 피 섞인 침이 여기저기 튀었지만 나는 몰래 다 닦아드렸어. 이 모든 일들이 냄새도 나고 힘든데 나는 한 번도 싫다고 한 적이 없어. 그런데 어머님은 전혀 모르고 그런 말까지 하시다니.’
이때 사부님의 법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전법륜) 즉시 마음이 탁 트였고 모든 원망이 사라졌다. 수련이란 정말 오묘하다. 어떤 고달픔이든 법을 만나면 순간 기적처럼 온 마음이 행복으로 넘쳐난다.
자비는 천천히 수련해 내는 것
집안 사정으로 우리는 고향을 잠시 떠나야 했고, 시어머니는 잠시 다른 형제자매가 모시기로 했다. 논의할 때 둘째 아주버니가 말했다. “내가 어머니를 모실 테니 기저귀 한 박스 사줘. 한 번 쓰고 나면 그대로 버릴 거야.” 큰 시누이가 말했다. “누구(나를 가리킴)는 똥 기저귀도 빨았는데, 너는 소변 기저귀도 안 빨 거야?” 둘째 아주버니는 말했다. “다들 누구(우리 부부) 같으면 가정에 갈등도 없을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갈등이 없는 게 아니라 갈등이 있어도 문제가 없었다. 확실히 우리 부부가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문제가 없었고 화목했다.
현지인들은 풍수를 중시해 집안이 평안하면 집 풍수가 좋다고 했다. 우리는 고향에서 여러 번 이사했지만 어디서나 평화롭고 순조로워서 좋은 풍수를 가져왔다. 작년에는 집에 우담바라꽃이 피었다.
매일 오후,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아홉 글자 진언을 외웠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시어머니는 아홉 글자를 외우며 콩을 세셨고, 하루 수백 번 외우셨다. 아홉 글자를 외운 콩으로 두유를 만들어 드셨고, 너무 기뻐서 두유를 마시면서 “이거 우리가 아홉 글자를 외운 콩이지?”라고 물으셨다. 시어머니는 무척 정성스러워, 매번 진언을 외우기 전에 꼭 손을 씻으셨다. 나이 들어 자주 누워 계셔서, 누워서 외우시라고 했지만 “안 돼. 그건 불경이야”라며 늘 앉아서 외우셨다. 힘껏 외우시는 모습에 피곤할까 봐 마음으로 묵념하셔도 된다고 했지만 묵념은 못 한다며 옆에 아무도 없는 듯 큰 소리로 당당히 외우셨다.
시어머니는 눈에 띌 정도로 복 받으셨다. 90세 나이에 몸이 건강하시고, 내장에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잘 먹고 잘 주무시고, 치아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넘어지셔도 아무 일 없었고,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감염되지 않으셨다.
시댁은 대가족이라 무슨 일이든 소문이 금방 퍼진다. 연세 드신 친척들은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날 볼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작은 이모부는 “이런 며느리를 평생 처음 본다”고 하셨고, 둘째 시누이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며느리라며 남들에게 “그분은 수련인이라 경지가 달라”라고 자주 말했다.
수련하지 않았다면 절대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수련 전 심성이라면 강한 시어머니와 약한 며느리 사이에 쌓인 불만을 모두 남편에게 쏟아냈을 것이고, 이 집안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시어머니에게 그 어떤 원망도 없고, 오직 시어머니의 점점 쇠약해지는 몸을 보며 연민만이 남았다.
시어머니와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면 감사한 마음뿐이다
어느 날 나는 신기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대학 동창이 “교수님이 우리에게 자비(慈悲)죽을 주신다”고 외쳤고, 곧 죽이 보였다. 푹 익혀 쌀알이 보이지 않았고, 흰색에 옅은 연두색이 비쳤다. 그릇이나 숟가락 없이 바로 입에 들어왔고 입에 넣자마자 녹아내렸다. 향긋하고 인생에서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맛이었다. 세네 모금쯤 마시고 이게 무슨 곡물로 만든 죽인지 물어보려다 꿈에서 깨어났다.
오랫동안 나는 자비가 추상적으로만 느껴졌고, 그건 내가 자비를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이 꿈은 수년간의 수련 속에서 내가 조금이나마 자비를 수련해 냈다고 사부님께서 제자를 일깨워주신 것 같았다. 내가 마신 죽은 내가 수련해 낸 자비였고, 아직은 매우 적다. 나는 자비란 천천히 수련해 얻는 것임을 깨달았는데 마치 죽을 끓이듯 약한 불로 천천히, 오래도록 견지해야 한다. 무슨 곡물로 만들어졌는가? 오직 선(善)뿐이다.
(명혜망 2025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5년 5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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