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대법이 금강 같은 의지를 길러주어, 생사를 내려놓고 법을 실증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동북지역 대법제자로 올해 70대입니다. 1999년 1월에 법을 얻었고, 1999년 3월 8일 현지 연공장에서 단체 법공부와 연공에 참여했습니다. 20여 년의 수련과정에서 줄곧 사부님의 가르침을 명심하며 조금도 나태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있든, 상황이 순조롭든 어렵든 항상 사부님께서 제게 배치해주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저는 두 차례 마싼자(馬三家) 노동수용소 박해와 한 번의 불법 징역형을 경험했으며, 총 9년 반을 검은 소굴에서 고통받았습니다. 매번 박해마다 수없는 구사일생을 겪었지만, 대법이 만들어준 금강 같은 의지로 당당하게 걸어왔습니다.

1. 3년간의 첫 번째 박해 – 사악이 온갖 박해 수단을 동원해 ‘전향’시키려 했으나 모두 실패

마싼자에서 처음 1, 2년간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매일 사악한 자들이 바오자(包夾, 수감자로 이뤄진 감시원)를 시켜 대법을 모독하는 음성이나 영상을 틀거나 대법과 사부님을 모독하는 글을 읽게 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는 큰 소리로 법을 외웠습니다. 사악한 소리보다 더 크게 내어 그들이 저를 방해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악한 자들은 저를 재우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두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침대에 눕게 하고, 5시쯤 다시 끌어일으켜 이런 식으로 순환반복하며 정신적 박해를 가했습니다. 이 기간에 제가 졸려서 살짝 눈을 감으면 바오자가 손가락으로 제 눈꺼풀을 긁어 억지로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수단으로 제 정신을 계속 고도의 긴장 상태에 두어 저를 무너뜨려 전향 목적을 달성하려 망상했습니다.

한번은 바오자가 제 정신이 좀 혼미한 틈을 타서 미리 써놓은 ‘전향서’를 탁자에 놓고 제 손을 억지로 꺾어 강제 서명시키려 했습니다. 그 순간 어디서 힘이 나는지 모르지만 온 힘을 다해 주먹을 움켜쥐었습니다. 박해로 매우 허약해진 상태였지만, 사악한 자들이 아무리 해도 제 주먹을 펼 수 없어서 결국 실패했습니다.

제가 자주 공개장소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를 외쳤기 때문에 마싼자 엄중관리반의 중점 감시대상이 됐습니다. 한번은 사악한 자들이 저를 끌고 가 대회를 열었는데, 회의장에서 몇몇 수련생들을 불법적으로 판결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대법제자는 죄가 없다! 이것은 박해다!” 사악한 자들이 제 외침을 듣고 순간 화가 나서 급히 저를 다른 방으로 끌고 가 독방에 가뒀습니다.

또 한번은 불법 관계자들이 저를 심문하며 옆에서 녹화까지 하면서 물었습니다. “왜 연공을 하지?” 저는 답했습니다.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데 왜 연마할 수 없습니까? 장쩌민(江澤民)이 질투심 때문에 대법을 박해하니 반드시 업보를 받을 겁니다.” 불법 관계자가 제가 장쩌민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듣고 겁이 나서 급히 녹화 중인 경찰에게 “녹화 중단하고 빨리 삭제해”라고 말한 후 급히 저를 끌고 돌아갔습니다.

마싼자에서 저는 ‘전형적인 인물’로 완전히 고립되어 ‘중점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만약 수련생이 감히 저를 동정해 한마디라도 해주면 즉시 여러 사람에게 맞아 쓰러지고 독방에 갇혀 박해받았습니다. 마싼자의 사악한 경찰들은 제가 굴복하지 않아 그들의 상금에 영향을 주자 악독하게 저를 때렸습니다.

장옌(張燕)이라는 사악한 경찰 대장이 있었는데, 그녀는 마음이 독하고 잔인했습니다. 한번은 저를 난방기에 수갑을 채워 3일 밤낮 동안 돌보지 않았습니다. 음식도 물도 주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 한번은 그녀가 많은 사람을 데려와 저를 때려 쓰러뜨렸습니다. 제 키가 160도 안 되는데 그들은 키가 크고 덩치가 커서 저를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찼습니다. 그때 특별히 흉악하게 때려서 저는 현장에서 기절했습니다.

깨어난 후 사악한 자들이 이렇게 거리낌 없이 악행을 저지르게 할 수 없다고 결심하고 반항해야겠다고 생각해 단식으로 박해에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 마싼자 정치위원이 저를 찾아와 “왜 밥을 먹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장옌의 악행을 폭로했고, 그가 돌아가서 처리하겠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것이라고 보장했습니다. 나중에 장옌이 한 달 넘게 출근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악질 경찰들이 저에게 “맞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때린 사람이 쓰러졌네, 정말 이상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그녀가 대법을 모독하고 악독하게 대법제자를 때린 업보임을 알았습니다.

제가 자주 독방에 갇혔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독방에서 보냈습니다. 밤에 일어나 연공하다 발각되어 독방에 갇히고, ‘파룬따파하오’를 외쳐 독방에 갇히고, 아침 식사 때 일어나 “수련생들이여, 우리는 ‘대법수련 견정히 하고 사부를 바짝 따라야’[정진요지2-심자명(心自明)] 한다!”고 외쳐 독방에 갇히는 등등이었습니다.

한 기간 독방에서 오랫동안 감금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쇠의자’에 묶였습니다. 두 손을 쭉 뻗어 고정해 움직일 수 없게 하고, 두 다리도 묶어서 활동할 수 없게 했습니다. 엉덩이는 계속 의자에 앉은 채로 이 자세를 장시간 유지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화장실 갈 때 손발을 한 번씩 풀어주는 것 외에는 다른 시간은 모두 고문받는 중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앉아 있어서 제 엉덩이가 썩기 시작하며 고름이 나고 피가 흘렸습니다. 간수가 제 손발을 풀어준 후 저는 이미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흘러나온 고름과 피가 모두 의자에 달라붙어 제 엉덩이와 의자가 붙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노동수용소 병원 외과 주임이 보고 깜짝 놀라며 “이 사람은 너무 심각해, 내가 직접 치료해야겠어”라고 했습니다. 경찰들도 상황이 심각함을 알고 겁이 나서 급히 저를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병원에서 검사할 때 의사가 “이 사람은 이렇게 좋은데 왜 이런 큰 고생을 당하는가? 이것도 겨울이라서 그렇지 여름에 이렇게 앉아 있었다면 엉덩이에 구더기가 생겼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마싼자 수용소가 저에게 가한 박해라고 말했습니다.

제 두 다리가 오랫동안 결박되어 걸을 수 없었습니다. 의사가 촬영해서 제 다리가 불구가 됐는지 확인했습니다. 제 엉덩이 살이 이미 썩어서 뼈가 드러났기 때문에 수술하기로 하고 메스로 제 엉덩이의 썩은 살을 모두 긁어내고 꼬리뼈도 손상됐는지 검사했습니다.

수술 후 매일 링거를 맞혔는데, 링거를 맞으면 온몸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병원 의사에게 “링거 맞히지 마세요. 저는 연공하면 좋아질 수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의사가 듣고 제가 바보 같은 소리를 한다며 웃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사부님께 청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 주임이 일주일간 외출하게 되어 저는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감방에서 저는 여전히 앉아서 결가부좌를 했습니다. 수술 후 엉덩이가 아픈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밤에 바오자가 잠들기를 기다려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서서 동공(動功)을 연마했습니다. 한 번만 연마하면 순간 몸에 즉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아프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후 병원 주임이 돌아와서 제가 정말로 많이 좋아진 것을 발견하고 불가사의하게 여겨 더 이상 링거를 맞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사악한 자들이 제 육체에 가한 박해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2. 2년간의 두 번째 박해

이 2년 동안 저는 하루도 고문당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매일 팔다리 늘리기, 매달기, 수갑채우기, 강제 음식물 주입 등의 고문 속에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법을 명심하여 사악한 자들에게 털끝만큼도 타협하지 않았고 대법에 먹칠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박해로 제 척추가 억지로 10센티미터 굽어지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평생의 장애를 남겼습니다. 이는 주로 두 가지 고문 때문이었습니다.

수갑형: 제가 전향하지 않아서 마싼자의 중점 인물이 됐습니다. 제 신앙을 강제로 포기하게 하려고 악질 경찰들이 수갑형을 가했습니다. 먼저 저를 침대 한쪽 끝에 서게 하여 고정시키고 두 다리를 묶어 움직일 수 없게 한 다음, 두 손에 각각 수갑을 채우고 수갑의 다른 끝을 각각 침대 철제 틀에 채웠습니다. 이렇게 저는 두 팔을 벌리고 앞으로 내밀며 상반신을 모두 침대 머리 가로대 아래로 굽혀야 했습니다.

악인들이 침대 양쪽 가로대에 많은 눈금을 그어서 수갑을 다른 위치에 채우면 제 몸은 더 심한 고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앞으로 채울수록 더욱 괴로웠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같은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경찰들이 교대할 때 제 수갑을 한번 느슨하게 하고 있는 힘을 다해 제 팔과 어깨를 때렸습니다. 수갑이 채워져 있어서 제 팔이 오랫동안 혈액순환이 안 됐는데, 때릴 때 극심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제가 불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였습니다.

이런 고문으로 제 두 손은 억지로 앞으로 늘어지고, 허리 부위가 앞으로의 당기는 힘의 압박을 받아 오랫동안 앞으로 굽어졌습니다. 고문받는 시간이 1, 2년에 달해 마싼자에서 나온 후 척추가 앞으로 10센티미터 굽어져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 손목이 부어서 이런 수갑형을 가할 수 없을 때는 매달기 고문으로 바꿨습니다. 제 두 손을 합쳐 침대 한쪽 끝의 가장 높은 가로대에 채우고 팔은 들어 올린 채 역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 한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늘리기 고문: 악질 경찰들이 한 가지 고문이 저에게 통하지 않으면 수단을 바꿔서 저에게 다른 고문을 가했습니다. 늘리기 고문은 제 왼손을 침대 가로대에 채우고 오른손 수갑 한쪽 끝을 밧줄로 묶어 천천히 당겨서 제 두 팔이 일자로 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온몸은 또 오른쪽으로 기울어야 했습니다. 제 두 팔이 이미 늘어날 수 없게 된 후 사악한 자들이 밧줄을 매듭지어 고정했습니다. 이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같은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오랫동안 고문을 받아서 제 온 상반신 골격이 척추부터 갈비뼈, 어깨뼈까지 이미 모두 비틀어져 변형되어 오른쪽 앞으로 기울어졌습니다. 마싼자에서 나온 후 제 온 상반신은 이미 완전히 변형되어, 걷거나 서 있을 때 모두 저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며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2년간 단식으로 박해에 반대: 제가 막 마싼자에 도착했을 때 사악한 자들이 저를 창고에 가두자 저는 큰 소리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습니다. 다음날 두 경찰 대장이 들어오자마자 제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바닥에 넘어뜨리고 아침 출근부터 점심 식사까지 계속 때렸습니다. 중간에 저는 계속 대법이 좋다고 외쳤는데 그들이 저를 외치지 못하게 하려고 강제 음식물 주입용 입 벌리개로 제 입을 막으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단식을 시작해서 마싼자에서 나올 때까지 꼬박 2년간 단식했습니다.

3. 4년 반의 불법 징역형, 선양(瀋陽) 여자감옥서 구타당하다

감옥에 있는 동안 저는 계속 정신적 박해와 구타 속에서 지냈습니다.

감옥에 처음 도착했을 때 경찰들은 저를 ‘전향’시키기 위해 제가 다른 수련생들과 접촉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가족 면회도 허용하지 않고 세면도 하지 못하게 했으며, 매일 벌세우기를 시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서 있게 했습니다. 제 다리가 모두 서 있어서 부어올랐고 이런 박해가 거의 7, 8개월간 지속됐습니다. 오랫동안 옷을 갈아입거나 세면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바오자들이 자주 제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법이 있어서 매일 모든 시간을 붙잡고 법을 외웠으며,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제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사악한 자들의 이런 수단으로 저를 타협하게 하려던 방식이 깨어졌습니다.

저는 감옥에서 계속 정시에 발정념할 것을 자신에게 요구했습니다. 밤 12시에는 일어나 앉아서 손을 세우고 발정념했으며,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결가부좌를 하고 6시에 다시 정시 발정념을 했습니다. 감옥은 360도 사각지대가 없으므로 사악한 자들이 영상을 통해 제 행동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악당 상급 기구가 감옥에 와서 업무 검사를 할 때 제가 발정념하는 것을 보고 바오자에게 알렸습니다. 바오자는 흉악하게 저에게 “만약 나에게 형이 가중되면 너를 때려죽이겠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동요하지 않고 할 일을 했습니다.

바로 제가 사악한 자들의 어떤 지시, 지령, 명령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들이 죄수들을 사주해서 저를 구타하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매번 저를 때리는 자들이 몇 명 이상이었고 많을 때는 10여 명에 달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제 옷을 벗겨내고 화장실에 던진 후 신발 바닥으로 제 얼굴을 때리고 발로 갈비뼈를 찼습니다. 저는 큰소리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 대법제자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한번은 제가 일찍 일어났다고 해서 또 감방 우두머리와 죄수들에게 구타당했습니다. 그들은 제 머리카락을 잡고 힘껏 벽에 부딪혔는데, 제 머리는 윙윙거렸고 머리에 한꺼번에 여러 개의 큰 혹이 생겼습니다. 악인들이 때린 후 저는 기어 일어났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들 수 없었으며, 마지막에는 세면대를 들 힘도 없어서 대야를 들고 걸을 때 계속 한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당직 경찰은 또 저에게 작업장에 나가 일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머리가 어지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그럼, 병원에 가서 검사해 봐”라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날이 이 감옥 구역의 진료일이 아니어서 가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여전히 그녀가 당직이어서 저를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그녀가 병원의 감옥 의사에게 무언가 말했는데, 잠시 후 검은 옷을 입은 ‘간호사’ 두 명이 와서 제 허리를 마사지해 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차림새를 보자 이 두 사람이 폭력배이지 감옥 의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저는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으로 병이 없습니다. 지금 제 상황은 모두 박해로 조성된 것입니다. 당신들은 빨리 가서 감시기록을 조사해 보세요. 누가 저를 때렸는지, 제 어느 부위를 때렸는지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들에게 “파룬궁수련생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니 언론 선전을 믿지 마세요. 모두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전염병이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제 선한 마음에 감동됐을 것입니다. 제가 하는 말을 들은 후 저를 복도에서 잠시 서 있게 하고, 다시 저를 불러들일 때 그들의 태도가 크게 변했습니다. 이번에는 흰 가운을 입은 감옥 의사로 바뀌어 저를 진료해주고 심전도도 찍어주었으며, 저와 함께 온 사람에게 돌아가서 저를 휴식하게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돌아온 후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의 다른 죄수들이 일할 때 저는 몰래 공장 구역의 가장 안쪽으로 달려갔는데, 그쪽에 기둥이 하나 있어서 저는 기둥 뒤에서 동공을 연마했고 빠르게 몸이 정상으로 회복됐습니다.

감방 우두머리가 아무리 구타해도 저를 굴복시킬 수 없었고, 저는 매일 여전히 5시에 일어났으며, 그들이 저를 때리는 것도 감옥 구역의 다른 사람들의 휴식에 영향을 주므로 경찰에게 보고했습니다. 마지막에 경찰이 그들과 합의에 도달해서 저는 매일 5시에 일어날 수 있었고 더 이상 저를 때리지 않게 됐습니다. 이렇게 몇 년간의 항쟁을 거쳐 저는 마침내 어떤 교란도 받지 않고 일찍 일어나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검은 소굴을 떠날 때가 가까워진 전 한동안, 한번은 경찰 대대장이 저에게 “당신은 떠날 건데 할 말이 없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저는 여기서 불법적인 구금과 박해를 받았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경찰은 듣자마자 “당신 같은 이런 사상은 ‘개조와 학습’을 받아야 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바오자를 배치하고 방을 배치해서 저에게 ‘사상공작’을 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보니 이것이 바로 진상을 알리는 기회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바오자가 방에 와서 제 상황을 알아본 후 모두 “당신은 마싼자에서도 전향되지 않았는데 우리에게 무슨 재주가 있어서 당신을 전향시키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악당이 반드시 멸망할 것이며 삼퇴(중국공산당의 당·단·대 조직 탈퇴)만이 평안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듣고 나서 작은 소리로 “동의합니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물론 듣지도 믿지도 않는 사람도 있어서 제가 진상을 알리는 일을 경찰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러고는 또 다른 무리의 바오자로 바꾸었고 저는 계속 진상을 알렸으며, 총 10명이 안 되는 사람을 권유해서 탈퇴시켰습니다. 마지막에 경찰이 보니 소위 ‘학습’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제가 그것을 이용해서 진상을 알리게 되므로, 마지막에는 더 이상 바오자를 저와 함께 ‘학습’시키지 않았습니다. 제가 검은 소굴을 떠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4. 검은 소굴에서 계속 법을 외우며 정념을 굳건히 하고, 대법이 날 이끌어 어둠의 세월을 지나 광명을 다시 보게 하다

제가 마싼자 수용소에서 두 번 박해받을 때 밖의 수련생들이 매우 지혜롭게 면회 기회를 이용해 저에게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내주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이 면회할 때도 다른 방식을 통해 경문을 얻었고, 받은 후에는 각종 방식을 통해 저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 가장 사악한 검은 소굴에서 사부님의 경문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는 마치 칠흑 같은 밤에 새벽빛을 본 것 같았고, 가장 막막하고 무기력할 때 희망을 본 것 같았습니다. 제 왼손이 오랫동안 수갑에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저는 몸으로 가려서 오른손으로 침대의 깔개를 당겨 열었는데, 그러면 아래 감춰진 경문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최대한 빨리 암송했는데, 한 번 보고 기억해서 이불을 덮고 다시 당겨서 열어보곤 했습니다. 그때 법을 외우는 것이 매우 빨라서 기본적으로 몇 번 보면 모두 외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한 수련생이 조심하지 못해서 사악한 자들이 감춰둔 경문을 발견했고, 사악한 자들이 감옥 전체를 대대적으로 수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악한 자들이 제 침대를 수색할 때 깔개를 당겨서 열어보니 아래 감춰진 경문이 수량이 많아서 서로 쳐다보며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믿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계속 이렇게 엄격한 감시 상태에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경문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사악한 자들이 각종 수단을 이용해서 저에게 어느 수련생이 준 것인지 알려고 했지만, 저는 모두 한결같이 답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수련인들의 일이니 당신들에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헛수고 하지 마세요.” 제가 마싼자에서 사악한 자들의 지속적인 박해에 반대하고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악한 자들은 저를 어떻게 할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5. 검은 소굴에서 나온 후 온몸과 마음을 세 가지 일에 투입하다

검은 소굴에서 나온 2년여 시간 동안 저는 기본적으로 매일 나가서 진상을 알렸으며 하루도 헛되이 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날이든 날씨가 어떻든,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혹독한 더위나 혹독한 추위든 모두 제가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발걸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저와 함께 협력하는 수련생이 피곤함을 느낄 때 저에게 이틀 쉬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만약 이틀 쉬면 사흘 쉬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해이해질 수 없으며 반드시 정진을 유지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와서 계속 분발하여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견지했습니다.

제 매일 작업 시간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하는 것입니다. 아침밥을 먹은 후 9시에 법공부를 하러 가거나 집에서 ‘전법륜’을 배우며 12시까지 했습니다. 정시 발정념을 마친 후 오후에 나가서 대면으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했습니다. 돌아온 후 6시 발정념을 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수련생과 함께 계속 ‘전법륜’을 배우거나 혼자서 사부님의 해외 설법을 배웠습니다. 11시부터 12시까지 휴식하고 12시에 일어나 계속 정시 발정념을 했습니다. 이튿날도 똑같은 일정으로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몇 년간 견지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피곤해도 저는 절대 해이해지거나 자신을 느슨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제 생활은 매우 간단했고 식사는 매우 간편해서 자주 한 번 만들어 두 번 먹었습니다. 옷차림은 매우 평범해서 어떤 치장도 없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오직 대법만 있었고, 그 밖의 어떤 생활상의 치장도 모두 집착이라고 생각했으며 모두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법과 비교하면 모두 미미한 것이어서 저는 이런 일들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습니다.

2024년 여름 랴오닝성에 큰비가 내렸는데, 특히 우리 시에 비가 특히 많이 내려서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번 큰비가 농촌의 많은 집들을 무너뜨리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비가 내리던 그날 법을 배운 후 수련생이 저에게 “오늘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또 나가서 사람을 구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비가 와도 갑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천 신발을 신고 우비 한 벌을 걸치고 수련생이 자전거로 저를 시내 중심가에 데려다주게 했습니다.

비록 그날 이렇게 큰비가 내렸지만 여전히 많은 인연 있는 사람이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상점가 문 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중생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그들에게 삼퇴가 평안을 보장한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날씨가 좋을 때 사람이 많을 때는 4~5명을 탈퇴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날은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저도 매우 순조롭게 5명을 탈퇴시켰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고, 이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제가 사람을 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저를 도와서 해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면으로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저는 온갖 형태의 중생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표현이 어떻든, 모독하고 협박하든 감사하고 고마워하든 저의 계속 사람을 구하는 마음가짐은 조금도 영향받지 않았습니다. 중생이 구원받은 후 대법제자에게 보여주는 감사는 자주 저를 매우 감동하게 했고, 저는 진심으로 오직 위대하신 사존과 위대한 불법(佛法)만이 이런 위덕이 있으며 오직 대법제자만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보답을 구하지 않으며 한 마음으로 중생을 구한다고 느꼈습니다.

한번은 제가 학생 두 명에게 삼퇴를 말한 후 그들은 진상을 명백히 알고 매우 감사해하며 몰래 제 주머니에 5위안을 넣었습니다. 저는 발견한 후 달려가서 그들을 따라잡아 돈을 돌려주며 그들에게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는 것은 돈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중생이 구원받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어떤 보답도 구하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번은 제가 한 노인을 만났는데 그가 제가 진상을 말하는 것을 듣고 삼퇴한 후 꼭 저에게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 저는 또 사람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없이 자신이 막 산 구운 고구마를 제 가방에 넣고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진상을 알리다가 일부 위험을 만나기도 했지만, 저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히 대면했으며 매번 모두 위험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한 사복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당시 저는 그의 진실한 신분을 몰랐습니다. 그가 들은 후 제 손을 잡고 놓지 않으며 저에게 “누가 당신에게 돈을 줍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놓아주었고 저는 돌아서서 갔습니다. 또 한번은 제가 두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은 함께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중 한 사람을 탈퇴시켰지만 다른 한 사람은 탈퇴하지 않고 제 손을 잡고 “누가 당신에게 돈을 줍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없습니다. 놓으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서서 갔습니다.

악당은 거짓말 중에서 대법제자의 사람을 구하는 이타적이고 신성한 행위를 금전 목적의 ‘반중국 세력’으로 누명을 씌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진상을 모르는 중생들을 미혹시켰으니 슬프고도 가련합니다.

때로는 이런 구원받은 중생들이 다시 저를 볼 때 멀리서부터 저를 부르며 또 소책자가 있는지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최신 것을 또 보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비교적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라 남이 지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지적하면 화를 내는 집착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급해지면 수련인이 자비를 품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대화 속에 꾸짖음이 섞여 다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없게 했습니다. 저와 협력하는 수련생이 자주 저에게 안으로 찾게 하고 이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때때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어 이 때문에 매우 괴로워했습니다.

사부님의 경문 ‘각성하라(驚醒)’이 발표된 후 저는 한순간에 ‘각성’했고, 자신이 반드시 결심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모두 사부님의 요구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심성을 지키지 못할 때 저는 이 경문을 꺼내서 읽었고, 점차 자신이 화를 내는 횟수가 줄어들었으며 심성을 자극하는 말을 만나도 참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대법의 위덕 아래서 반드시 이 집착을 제거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대법을 얻은 그 순간 저는 생명이 세상에 온 근본 목적이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저는 수련하러 온 것이며 중생을 구하러 온 것이고 신의 서약을 실현하러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매 시각 자신에게 상기시킵니다. 확고하고 정진하는 의지를 유지해야 하며, 절대 자신을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1분 1초의 시간도 놓칠 수 없으며, 더욱이 털끝만큼 해이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저는 용맹정진하겠으며, 반드시 많은 사람을 구해 세상에 온 홍대한 서약을 실현하고, 저를 구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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