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올해 여든한 살인 나는 1996년 8월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 전 내 인생은 고난으로 가득했고 가정은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내 인생은 마치 마른 나무에 봄이 찾아온 듯했고, 자손들 중 여러 명은 대법을 존경하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진심으로 외움으로써 전화위복을 체험했다. 더욱 뜻밖이었던 것은 식량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우리집이 부유한 가정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1. 수련 전 극도로 괴로웠던 인생
1940년대, 나는 충칭에서 멀지 않은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결혼 후 시댁이 중공(중국공산당) 토지개혁 때 지주로 분류되면서 가족 모두가 각종 차별을 당했다. 남편은 늘 생산대에서 힘들고 고된 일을 맡았지만 받는 보수는 남들보다 적었다. 나는 딸 둘과 아들 둘을 낳았는데, 네 자녀 모두 집안 성분 때문에 초등학교만 마치고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두 아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병을 앓기 시작했다. 큰아들 병이 막 나으면 둘째가 아팠고, 한번 앓으면 2년 넘게 계속됐다. 나는 아픈 아들을 돌보면서 생산대의 무거운 농사일까지 해야 했기에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심한 위장병, 부인병, 빈혈, 간경화 등 여러 질병에 시달렸고, 사흘이 멀다 하고 마을 장(張) 의사에게 달려가야 했다. 치료비로 집안 돈을 다 썼고, 결국 식량까지 팔아야 했다. 그래서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질 때가 많았다. 다행히 이웃들이 순박하고 선량해서 자주 식량을 빌려줘 그 어려운 시기를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상당한 돈을 들였지만 내 병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 매일 병고에 시달리며 밥도 제대로 못 먹었고, 몸은 허약해져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일은커녕 집안의 짐이 됐다. 남편도 과로로 몸이 좋지 않았다. 집에 일할 사람이 부족해 큰딸은 겨우 열 살 남짓한 나이에 어른처럼 일해야 했다.
이렇게 10여 년간 병을 앓으며 고통 속에서 힘겹게 버텼다.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를 정도였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이들을 보며 ‘내가 죽으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라는 걱정에 마음이 무너졌다. 자주 눈물로 얼굴을 적시며 슬픔에 잠겼고, 삶에 대한 희망도 앞날에 대한 기대도 전혀 없었다.
2. 파룬따파가 내게 새 생명을 주었다
장 의사는 기공(氣功) 애호가였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10여 종의 기공을 배웠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1995년 그는 노점에서 파룬궁 서적을 보고 단번에 ‘파룬궁이야말로 자신이 찾던 정법(正法) 수련’임을 깨달았다. 파룬궁은 곧 우리 지역에 빠르게 퍼졌고, 장 의사 집에 연공장이 생겼다.
1996년 8월 장 의사가 우리집에 와서 말했다. “파룬궁을 수련해 보세요. 예전에 온갖 병을 앓던 사람들이 파룬궁 수련 후 금세 나았고, 약이나 주사도 필요 없었어요. 당신도 수련하면 분명 나을 겁니다.” 나는 그런 좋은 일이 있을 리 없다며 말했다. “내 병은 수년간 치료해도 낫지 않았는데, 기공을 수련한다고 낫는다고요? 약도 주사도 필요 없다니, 믿을 수 없어요.” 남편이 말했다. “한번 해봐. 어쩌면 정말 나을 수도 있잖아.”
남편의 지지로 나는 장 의사 집에 가서 파룬궁 동작을 배우기 시작했다. 배운 지 얼마 안 돼 두 번째 공법을 할 때, 눈앞에 찬란한 색채가 끊임없이 꽃처럼 피어나는 것을 보았고, 파룬(法輪)이 끊임없이 회전하는 모습도 보았다.
한 달 후 집을 수리하게 됐는데 큰 힘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문득 내 몸에 힘이 생겼음을 발견했다. 일할 수 있었고 무거운 것도 들 수 있었다. 식욕도 늘어 정상인처럼 식사할 수 있게 됐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병들이 어느새 사라졌고, 병 없는 홀가분한 상태를 처음 느꼈다. 그 감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10여 년간 치료해도 낫지 않던 병이 파룬궁 수련 한 달 만에 모두 나은 것이다. 우리 가족과 이웃들 모두 파룬궁의 놀라운 효과에 깊이 감탄했다.
3. 대법이 우리집에 내린 복
둘째아들은 10여 살에 사촌형을 따라 베이징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철근 작업을 배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학력에 순해 보인다는 이유로 어리석은 줄 알고 제자로 받으려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기술을 배웠다. 능력이 뛰어나 금세 평범한 철근공에서 수십 명을 이끄는 반장으로 승진했다.
다른 사장들이 고액 연봉으로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현재 사장은 그가 의리 있는 사람이라며 더욱 키워주기 시작했다. 둘째는 일 규모를 점점 키워 훗날 베이징에서 비교적 큰 인력업체를 세웠다. 회사 직원이 한때 1만 명을 넘었다. 재산이 우리 현에서 손꼽힐 정도지만 항상 겸손하고 과시하지 않으며 검소하게 산다.
둘째는 내 대법 수련을 매우 지지한다. 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한 초기, 내가 대법을 위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불법 구금당했을 때도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고, 내 수련이 자신에게 누가 될 거라 생각한 적도 없었다. 자주 내게 돈을 줬고 나는 모두 자료점에 기부했다. 둘째는 평소 자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마음속으로 외운다. 비행기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이 구절이다.
둘째는 자신이 초등학교 학력의 철근공에서 오늘날 부동산 회사 사장이 된 것이 모두 파룬따파가 내린 복 덕분임을 안다. 요즘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음에도 그의 회사는 같은 업계에서 여전히 좋은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4. 거액의 재산 손실을 면한 작은딸
작은딸은 결혼 후 남편과 시내 시장에서 수산물 장사를 했다. 20년 전 어느 날, 작은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우리집에 도둑이 들 뻔했어요. 돈을 거의 다 도둑맞을 뻔했어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랬다. “원래 매일 아침 아래층 시장에 출근해서 오후 2시쯤 문 닫고 집에 돌아와요. 그런데 그날은 나간 지 30분밖에 안 됐는데 몸이 불편하고 마음이 답답했어요. 날씨도 덥지 않은데 온몸에 열이 나는 것 같아서 집에 가서 찬물로 얼굴을 씻으려고 했어요.”
“막 올라왔는데 현관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집에 도둑이 든 걸 직감했어요. 급히 아래로 내려가 경비와 남편을 데리고 올라왔죠. 침실에 있던 금고가 거실로 옮겨져 문에서 2미터도 안 되는 곳에 놓여 있었고, 금고에는 뜯으려 한 흔적이 있었어요. 금고를 열지 못해 통째로 들고 나가려 했던 거죠. 제가 몇 초만 늦었다면 도둑이 성공했을 거예요. 우리 건물은 짐 옮기는 일이 많아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망을 보던 공범이 제가 올라오는 걸 보고 급히 알려서 다른 통로로 도망친 것 같아요.”
금고 안에는 수십만 위안의 현금과 타인에게 빌려준 돈의 차용증과 채무증서가 들어 있었다. 당시 수십만 위안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사위는 ‘큰일 났다. 그간 힘들게 번 돈이 다 날아갔구나’ 했는데, 놀랍게도 한 푼도 도둑맞지 않았다. 시장 사람들 모두가 신기해했다.
나는 말했다. “네가 대법을 지지하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했으며 마음이 선량해서 대법의 보호를 받아 손실이 없었던 거야.” 2000년 내가 베이징 청원 후 현지 경찰에게 납치되어 불법으로 구치소에 감금됐을 때, 작은딸은 나를 구하려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한 번은 몇만 위안을 주워서 주인에게 돌려주기도 했다.
5. ‘파룬따파하오’를 정성껏 외워 우울증이 빠르게 회복되다
5년 전 어느 날 작은딸이 갑자기 전화했다. “엄마,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너무 괴로워요. 밤새 잠 못 자고 하루 종일 기운이 없어요. 너무 힘들어요.” 장사 스트레스에 사위가 남에게 많은 돈을 빌려준 일이 겹쳐, 돈을 못 받을까 봐 걱정하다 우울증이 됐다. 병원에서는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집에서는 연달아 세 명을 불러 돌봄을 받았다.
나는 반드시 성심껏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워야 한다고 했다. 우울증은 반드시 나을 수 있다고 했다. 작은딸은 반신반의하며 이따금 며칠에 한 번씩 외웠다. 마음을 다해 하지는 않았지만 병세가 점차 호전됐고, 예전 같은 극심한 고통과 강한 자살 충동도 사라졌다.
2019년 말 중공 바이러스(우한폐렴) 감염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작은딸이 일하던 시장도 봉쇄됐다. 먼저 사위가 감염되고 이어 작은딸도 감염됐다. 그날 오후부터 열이 나기 시작해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그때 내가 해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9자 진언이 떠올랐다. 밤새도록 쉬지 않고 외웠다. 날이 밝을 무렵 열이 내리고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작은딸이 기쁘게 전화로 이 일을 말해줬다. 나는 말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9자의 신기한 위력을 이번에 직접 체험했구나. 이제는 예전처럼 대충하면 안 돼. 반드시 매일 정성껏 진심을 다해 외워야 해. 그러면 우울증도 틀림없이 나을 거야.”
그때부터 작은딸은 9자 진언을 정성껏 외우는 데 매우 마음을 쏟았다. 얼마 안 가 우울증이 완전히 나았고 더 이상 돌봄도 필요 없게 됐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진지하게 9자 진언을 외우고 있으며, 때로는 잠에서 깨어나 보면 자신이 여전히 외우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큰아들의 아들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며느리가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고, 부작용이 강해 아이에게 영향을 줄까 봐 임신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손자가 며느리에게 말했다. “이렇게 약을 많이 먹어도 소용없잖아. 할머니랑 잠깐 이야기해 보는 게 어때?”
부부가 차를 몰고 와서 나는 며느리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줬다. 며느리는 말했다. “어릴 때부터 부처님과 인과응보를 믿어왔어요. 말씀이 다 믿어져요.” 그래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권했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열흘 남짓 후 증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얼마 후 나는 말했다. “9자 진언 외우기 전후를 비교해 보렴. 대법은 누구에게도 약을 먹지 말라 강요하지 않아. 약을 계속 먹을지는 네가 결정해.” 며느리는 말했다. “안 먹을래요. 이제 다 나았어요.”
며느리 우울증이 완전히 나은 후 얼마 안 가 아이를 가졌다. 나는 말했다. “태교는 매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꾸준히 외우는 게 무엇보다 좋아.” 며느리는 매일 꾸준히 외웠다. 출산 당일 산부인과 의사가 말했다.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본 산모 중 태위가 가장 정확한 분이세요.” 아이는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다.
한번은 며느리가 시내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치며 폭우가 쏟아졌다. 많은 차가 멈춰 설 정도였지만, 며느리는 빨리 집에 가야 했다. 그 순간 대법 사부님께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부님,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갈 수가 없어요. 집에 가야 하니 도와주세요.’ 대법 사부님께 간청한 직후 그녀 주변의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차를 몰고 지나가는 곳마다 비가 저절로 약해졌고, 다른 지역은 그대로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순조롭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6. 9자 진언을 성심껏 외워 손녀의 난치병이 나았다
둘째아들 딸이 태어난 지 3개월 후 호흡이 비정상임을 발견했다. 병원 검사 결과 손녀의 심장과 폐 사이에 종양이 자라고 있다고 했다. 수술한다면 매우 고난도여서 아이가 수술대에서 내려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제거하지 않으면 점점 커져 결국 폐를 압박해 질식하게 된다고 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수술을 받기로 했다.
수술 당일 아이의 생사를 알 수 없어 손녀의 부모와 고모 등 열여 명이 수술실 밖에서 울었다. 잠시 후 큰딸이 가족들에게 말했다. “아기 할머니는 파룬궁을 수련하세요. 우리집에서도 여러 사람이 할머니 말대로 위험하거나 힘든 일을 겪을 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는데 매번 기적이 일어났어요. 지금 우는 건 소용없으니 모두 함께 조용히 외워봐요.” 그녀의 제안에 따라 모두가 함께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기 시작했다.
수술은 몇 시간 걸렸지만 매우 성공적이었다. 의사는 손녀 가슴에서 오리알만 한 종양을 꺼냈다. 수술 후 일반적으로 마취가 풀리면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데, 손녀가 통증 때문에 몸에 꽂힌 관들에 영향을 줄까 봐 의사들이 손발을 고정했다. 하지만 손녀는 울지도 떼쓰지도 않았으며, 큰 눈을 반짝이며 마치 아무 고통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병원 사람들이 모두 보러 왔다. 생후 몇 개월 아기가 온몸에 온갖 관을 꽂은 채 조용히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모두 안쓰러워하면서도 놀라워했다.
주치의는 말했다. “수술 고비는 넘겼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았습니다. 이 병은 재발률이 매우 높아서 앞으로 반년마다 병원에 와서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고, 18세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재발이 없어야 완전히 위험에서 벗어난 겁니다.” 둘째 며느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아프면 주사 맞고 약 먹으면 금세 낫는데, 우리 아이는 정말 걱정이에요. 18세까지 계속 걱정해야 하잖아요.” 나는 말했다. “온 가족이 삼퇴했고 대법을 지지하니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손녀가 두 살이 조금 넘었을 때 둘째 며느리가 갑자기 손녀를 베이징에서 우리집에 데려오기로 했다. 처음엔 ‘여긴 이렇게 더운데 베이징은 훨씬 시원하잖아. 왜 이런 더운 때에 아이를 데려오려고 하지?’ 했다. 손녀가 도착한 후 나는 말했다. “이렇게 큰 고비도 잘 넘겼으니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꼭 기억해야 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손녀가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외쳤다. 너무 갑작스럽고 목소리도 커서 깜짝 놀랐다. 그제야 깨달았다. 손녀는 이 두 마디를 외치러 온 거구나. 그 말을 똑똑히 외친 순간, 손녀의 병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이틀 후 손녀는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그 후 부모는 더 이상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고 손녀는 단 한 번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 재작년 17살이 됐을 때 학업 스트레스로 몸이 조금 불편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매우 건강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금 손녀는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랐고 그 가족 모두가 대법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7. ‘파룬따파하오’를 정성껏 외워 손자의 ADHD가 나았다
내 손자는 비교적 심한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행동을 자주 했다. 코를 계속 만지거나 입을 함부로 움직이고, 걷다가 몇 걸음마다 멈춰서 뒤를 돌아보곤 했다. 의사는 말했다. “이 병은 생명에는 위험하지 않지만 보기 좋지 않아서 또래들의 놀림과 차별로 자존감 저하 같은 심리적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약을 먹는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엔 ADHD가 단지 산만하고 장난꾸러기인 줄 알았는데, 의사는 손자의 경우 신경계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료가 쉽지 않다고 했다.
더 심각한 것은 손자가 계속 대변을 가리지 못하는 문제였다. 처음에는 일부러 장난치는 줄 알고 부모가 꾸짖고 매까지 들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나중에야 그것도 병이고 ADHD와 마찬가지로 신경계 문제라는 걸 알았다.
나는 손자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했다. 한동안 외운 후 ADHD 증상도 사라지고 대변을 가리지 못하던 문제도 함께 나았다.
맺음말
파룬따파는 내 생명을 구해주고 새 삶을 주었다. 우리 가족과 친척, 친구들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정성껏 외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고, 여러 차례 전화위복을 경험했다.
나는 진심으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파룬따파를 지지하고 존경하며, 파룬따파의 보호와 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명혜망 2025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5년 5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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