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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당서기 부인 “친척 중에 파룬궁수련생이 있는데 매우 선량해요”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여성 대법제자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지 27년이 됐습니다. 수련 과정에서 사부님의 보호를 느꼈고, 대법의 신기하고 비범함을 체험했으며, 수많은 민중이 대법에 대해 지지하고 감복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위대한 사부님의 탄신일이자 세계 파룬따파의 날이 다가옴에 따라, 제자는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직장에서 수련하며 겪은 점점의 이야기들을 써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위대함과 중생의 각성, 그리고 파룬따파가 인간 세상에 널리 전해진 진실한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당서기의 부인 “친척 중에 파룬궁수련생이 있는데 매우 선량해요”

제가 새 직장에 막 갔을 때는 중국공산당 악당이 파룬따파에 대해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중상모략하며 가장 심각하게 박해하던 시기였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저는 자신이 대법을 수호하고 동료들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려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출근한 지 며칠 후, 저는 동료들에게 당당히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파룬궁은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파룬궁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게 하며,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기이한 효과가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것은 모두 중상모략과 기만입니다. 저는 이전에 신경쇠약, 신장염, 쇼크 등의 병이 있었는데, 수련 후 모두 좋아져서 더 이상 약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동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이 있었고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며, 긴장하지 않고 저에게 매우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때 당서기는 여러 차례 직장에서 파룬궁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문건을 전달했습니다. 회의가 끝날 때마다 저는 과일을 사가지고 그의 집에 가서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대법 사부님은 가장 정의로우신 분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이 중공이 제조한 거짓말을 믿고 대법을 모독하여 죄를 범하게 내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서기 집에 갔는데 그가 꽃에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꽃을 기르고 있었고, 저에게 꽃의 품종과 습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직장에서 언제나 찡그린 얼굴을 하던 서기에게 이런 우아한 취미가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는 서기와 그의 부인에게 ‘천안문 분신자살’ 날조극의 진상을 알려주고, 위조 사건의 허점을 분석한 뒤 그들에게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를 해주었습니다. 서기의 부인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외지에 있는 친척이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사람이 매우 선량해요.”

그때 저는 중공 악당이 빨리 멸망하기를 바라며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산당은 몇 년 안에 멸망할 것입니다. 사람이 다스리지 않으면 하늘이 다스릴 것이고, 그것이 계속 존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서기가 말했습니다. “10년 내에 멸망할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체제 내부 사람들도 중공 악당에 대해 믿음이 없는 것 같았고, 그것의 멸망은 시간문제라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연구토론회에서 교실이 조용해지다

한번은 교과과정 개혁 연구토론회를 개최했는데, 오전에는 교과과정 개혁 전문 강좌가 있었습니다. 제가 원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법의 내용과 전통문화 등을 가능한 한 많이 녹여 넣어 교사들의 선한 마음을 일깨우려고 했습니다. 오후에는 소범위 교류회가 있었는데 30여 명의 일선 핵심 교사들이 참가했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잡아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외지 시와 현에서 온 사람들이므로, 만약 진상을 안다면 학생들을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마음속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에게 부여하신 역사적 사명임을 알았기에 의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加持)해 주시고 지혜와 힘을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오후에 교사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자 저는 용기를 내어 제가 준비한 화제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자연스럽게 ‘천안문 분신자살’ 날조극으로 화제를 돌려 그들에게 분신자살의 의혹스러운 점들을 분석해주었습니다. 이때 제 옆에 앉아서 진상을 들었던 여교사가 손을 제 의자 등받이에 올리고 손으로 저를 꼬집으며 멈추게 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동작도 하지 않고 계속 말했습니다. 교실은 완전히 조용해졌고, 그들은 매우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그들은 내심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여교사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들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이런 상황에서 만약…” 저는 “고마워요! 괜찮습니다. 그들도 모두 당신처럼 머리가 있고 모두 선량한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일부 교사들은 제 강연 원고를 복사해 가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반드시 진상의 씨앗을 그들의 교실로, 사방팔방으로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과과정 개혁 강좌는 확실히 저에게 진상을 알리는 플랫폼을 제공해 주었고, 때로는 일대일로, 때로는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알릴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현급 중학교에서 조사연구를 했는데, 당시 부교장과 주임, 교사 두 명이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지혜를 주셔서 교재와 현실을 신묘하게 결합하여 진상을 분명히 알렸습니다. 당시 그들은 모두 기꺼이 삼퇴했고, 구원받은 심정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돌아올 때 그들은 모두 나와서 열정적으로 저와 악수하며 작별했습니다.

각종 형식의 교류를 통해 저는 젊은 교사들이 기존의 교학 프로그램을 타파하고, 권위를 미신하지 않고, 서적을 미신하지 않으며, 이미 있는 지식과 경험, 결론을 미신하지 않도록 격려했습니다. 과정을 중시하고 객관성을 중시하며, 대담하게 실천하고 널리 의견을 수렴하여 진정한 재능과 실학을 배양할 수 있는 교학의 길을 모색하도록 했습니다. 그해 저는 시급 교과과정 ‘개혁 선진 개인’으로 평가받았는데,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격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유일하게 선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몇 년간은 교과과정 개혁이 막 시작되고 새로 편집된 교재도 나오던 시기였습니다. 어떤 판본의 교재를 사용할지는 지방에서 결정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각 출판사들이 모두 경비를 마련하고 전문 인력을 각지에 파견하여 인맥을 맺고 교재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출판사의 남자 직원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집에 보러 오고 싶다고 했는데, 이전에 저와 같은 고향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교재를 정하러 온다는 것을 알고 “오실 필요 없습니다. 당신들 교재를 보니 꽤 실용적이고 좋은 것 같습니다. 제 쪽은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럼 잠깐 나오세요.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도 인연 있는 사람이고, 이전에 그에게 진상을 알릴 기회가 없었기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그와 만나 차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만난 후 그는 1만 위안의 현금이 들어있는 봉투를 저에게 내밀었지만 저는 사양하며 “저는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기에 어떤 선물도 받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그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천안문 분신자살’은 가짜이고 파룬궁을 모함한 것이라고 말해주며 ‘분신자살’의 의혹을 분석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렇군요! 아직 아무도 저에게 이런 일을 말해주지 않았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꼭 돈을 주겠다고 고집하며 “우리는 매년 활동 경비가 있으니 누님이 가져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는 신앙이 있습니다. 받지 않겠습니다. 당신도 제 성의를 보았으니, 다른 지도자들을 찾아가세요. 그들이 동의한다면 제 쪽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깊은 감동을 받은 듯 말했습니다. “이 몇 년간 선물을 받지 않는 사람은 만난 적이 없는데, 누님이 유일하게 선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누님!”

‘보선(保先)’에서 악당에서 탈퇴하다

2004년 11월, 《9평 공산당(九評共産黨)》(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이 세상에 나와 중공 악당의 죄악적 행위와 십악구전(十惡俱全)의 본질을 폭로했고, 이어서 ‘삼퇴’ 붐이 세차게 몰아치며 막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진상을 알리는 데 또 새로운 내용이 생겼습니다.

제가 한 남교사에게 진상을 알릴 때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9평》을 봤는데, 정말 잘 썼습니다. 모두 사실이고 모두 평소에는 감히 생각하지 못할 내용입니다. 매우 존경합니다. 파룬궁에는 정말 인재가 많습니다! 정말 대작입니다!”

중국인의 각성에 직면하여 중공은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소위 ‘보선’(공산당원들의 ‘선진성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진행된 정치 교육 활동)을 시작했는데, 저희 직장은 2005년 하반기에 시작했습니다. 제가 당비를 내지 않자 주임이 쫓아와서 내라고 했습니다. 저는 “반년간 내지 않으면 자동으로 탈당하는 것인데, 저는 이미 반년을 넘었으니 당원이 아닙니다. 내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임은 “당신 당비는 제가 대신 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돈을 드리겠습니다. 다음번부터는 대신 내지 마세요. 저는 이미 탈당했으니 저와는 관계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선’에서는 필기를 하라고 요구했지만 저는 쓰지 않았습니다. 지부서기가 “모두 써야 합니다. 위에서 검사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저는 이미 당원이 아닙니다. 반년 넘게 당비를 내지 않아 자동으로 탈퇴했으니 쓸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럼 신청서를 써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저 역시 그가 이것으로 저를 핍박하여 필기를 하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별다른 생각 없이 바로 신청서를 써서 제출했습니다. 대의는 부패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실각한 사람들은 모두 공산당의 고위관리, 당서기들입니다. 그들의 소행이 저를 실망시켰고 탈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장에 따르면 반년 이상 당비를 내지 않으면 자동으로 탈당하는 것으로 간주되니 이에 신청합니다.”

제출한 후 많은 동료들이 저를 걱정했습니다. 지금 ‘보선’을 하고 있는데 탈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괜찮습니다. 제가 먼저 본보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당비로 내던 돈으로 간식이나 사 먹읍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지부회의가 열렸고, 각 지부에서 이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동료가 저에게 몰래 “누군가 당신을 찾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왜 저를 찾겠습니까? 탈당은 자발적인 일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정치활동 간부가 “직장 당위원회에서 연구한 결과, 신청서를 당신의 당안(인사기록부)에 넣어두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보호라는 것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제자를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중생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양심을 보다

첫 번째 당서기가 은퇴하자 또 다른 서기가 왔는데, 50여 세에 당문화(공산당 문화)가 매우 심했습니다. 그는 이전에 현장과 조직부장을 지냈고,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관리했습니다. 이전에 저는 사무실에서 할 일이 없을 때 《전법륜》 보서를 보곤 했는데, 아무도 아무 말 하지 않았고 매우 정상적이었습니다. 매번 강좌 원고를 지도자들이 심사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서기는 강연 원고를 모두 미리 제출해서 심사하라고 요구했고, 무엇을 말할지, 어떻게 말할지, 심지어 말할 때 누가 감독할지까지 안배해야 했습니다. 저는 과일을 사가지고 그의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린 적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의 사무실에 갔는데 그가 온라인에서 누군가와 채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아직 온라인 채팅을 하고 있을 때 저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제가 문화대혁명이 10년 내란이었다고 말하자 그는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것이 옳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가 “당신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이 당신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습니까?! 왜 스스로 고생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수련한 후 몸이 좋아졌고 몇 년간 약을 먹지 않았는데, 파룬궁은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신기한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치고, 저는 사람이 되는 도리를 명백히 알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마음이 딴 데 있는 것을 보고 저는 일어서서 “저는 가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하시죠”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동료와 파룬궁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명혜망을 열어서 그녀에게 보라고 했습니다. 웹페이지를 열고 얼마 되지 않아 서기가 왔습니다. 그는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떠났습니다. 이것은 제가 처음으로 직장에서 명혜망에 접속한 것인데 직장이 지역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2, 3일 후 저와 직장의 또 다른 수련자 한 명이 현지 ‘610사무실’(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에 납치됐습니다. 그때 우리는 아직 악과 협력하지 않는 법을 몰랐기에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구류소에 15일간 불법 구금됐습니다. 당시 제 가방에는 진상 소책자가 10여 권, 진상 스티커도 몇 장 있었습니다. 동료들이 소책자를 숨겨주었고, 610 직원들이 가방과 서랍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수련자들이 과일과 기타 물건을 사가지고 우리를 보러 와서 정념을 확고히 하도록 격려했습니다. 직장 동료들도 구류소에 우리를 만나러 갔습니다. 어느 날은 모두 20여 명이 갔는데, 그들은 모두 우리를 동정했습니다. 몇몇 동료들은 우리가 거기서 제대로 먹지 못할까 봐 걱정해서 돈을 넣어두고 갔습니다.

제 동료 중에 불교를 믿는 사람이 있는데, 평소 제가 파룬궁에 대해 이야기하면 매우 기꺼이 들어줍니다. 그녀는 사부님의 《홍음》을 봤는데, 이전의 중병이 많이 완화됐습니다. 한번은 우리가 그녀 남편의 차를 타고 갔는데, 저는 그에게도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부국장이었는데 매우 시원하게 중공 악당에서 탈퇴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는 “당신들 파룬궁이야말로 진정한 전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연 있는 사람이 대법의 제도를 받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뻤습니다.

이번에 이 동료는 구류소에서 자신을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두 사람을 더 찾아서 소통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사과와 수건, 비누, 칫솔 등을 신중하게 골라서 샀습니다. 그녀는 “특별히 당신을 위해 산 사과입니다. 당신이 빨리 평안히 나오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과는 받겠습니다. 나머지는 이미 있으니 이렇게 고급스러운 물건은 여기서 쓸모가 없습니다. 가져가세요. 마음은 받겠습니다!” 제가 구류소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와 다른 두 동료가 저를 집까지 호송해 주었습니다.

또 어떤 동료들은 고향 지인을 통해 자발적으로 숙인을 찾아 ‘610 사무실’에 사람을 석방하는 데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구류소에 온 한 동료는 말했습니다. “직장 모 지도자도 개인적 관계를 통해 610 상급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장래에 영향이 있을까 봐 두렵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한 동료는 제가 납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울었습니다. 나중에 610에서는 보증인 두 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이혼했고 현지에 친척도 없었습니다. 그녀와 다른 언니가 즉시 나서서 서명해서 저를 보증하겠다고 했습니다. 610이 위협하며 “당신들 둘이 그녀가 이후에 수련하지 않는다고 보증해야 합니다. 만약 다시 일이 생기면 당신들 둘도 함께 체포하고 공직에서 쫓아낼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시 이 일을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서명하지 않게 했을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은 당시 부교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득실을 고려하지 않고 제가 가능한 한 빨리 석방되도록 단호하게 보증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들의 선량하고 정의로운 행동은 모두 하늘의 복을 받았고, 가정과 사업이 모두 순조로웠습니다. 한 부교수의 아들은 IT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연봉이 200여만 위안(약 4억 원)입니다. 그 후 그녀는 정교수로 평가받았습니다. 다른 언니는 성외에 살고 있는데 지금까지 아무 병이 없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직장암에 걸렸는데, 저는 전화로 그녀에게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동의하고 매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몇 차례 추적검사를 거친 후 괜찮아졌습니다. 그해 부활절에 그녀가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녀는 매우 흥분하여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 축하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은 정의롭고 선량한 사람입니다. 대법이 당신과 당신 온 가족을 보호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렇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610에 전화를 걸어 저를 도우려고 했던 직장 모 지도자도 최고 지도자가 됐습니다. 제 주변에는 복을 받은 사례가 매우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보호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법 진선인의 이념이 이미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혔습니다.

제가 구류소에서 나오기 전에 610은 직장에서 저를 대신해 소위 6천 위안의 벌금을 내라고 했습니다. 주임이 이 일을 말하자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돈을 꺼내어 잠깐 사이에 모아서 보내주었습니다. 610 직원들이 모두 매우 감탄하며 “파룬궁은 정말 인기가 많군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두 번째 당서기는 오래지 않아 베이징에 가서 심장 우회술을 받았는데 업보를 받은 것입니다. 몇 년 후 제가 거리에서 그를 보았는데 이전보다 훨씬 검고 말라 보였습니다. 그의 눈빛이 좀 피하는 듯했는데, 저는 다가가서 주동적으로 그와 말을 걸었습니다. 또 그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는데 이번에는 그가 동의했습니다. 그가 구원받을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안 돼! 안 돼! 가면 안 돼!”

2015년 상반기에 610 직원 두 명이 제 직장에 와서 진상 소책자 두 권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저희 직장과 가까운 곳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제가 배포했다며 학습반을 열겠다고 했습니다. 직장 여성 지도자와 보위과장이 나와서 그들과 교섭했습니다. 여 지도자는 제가 직장에서 표현이 어떻게 좋은지, 명예와 이익을 다투지 않고 불평불만이 없으며 인품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매일 출근하는데 어떻게 전단지를 나눠줄 시간이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들은 직장에서 협조하지 않는 것을 보고 무리라고 느껴서 돌아갔습니다. 보위과장이 와서 이 일을 전하며 “610이 방금 나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두 지도자를 모두 삼퇴시켜 주었습니다. 관건적인 시각에 그들은 모두 정의의 편에 섰습니다.

어느 날 서기가 저를 보고 따로 불러서 말했습니다. “지난주에 610이 와서 학습반을 열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자리에 없어서 두 지도자가 나서서 그들을 막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보위 책임자에게서 들었습니다. 지도자들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그는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가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그는 소위 학습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가서 뭘 하겠습니까?! 그건 세뇌반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180도 돌아서서 “안 돼! 안 돼! 가면 안 돼!”라고 말했습니다. 말하면서 매우 단호한 손짓과 부정하는 몸짓 언어를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정의로운 행동에 깊이 감동받았습니다.

몇 년간 여 지도자는 한 번도 저에게 이 일을 언급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퇴직하는 연회에서 주동적으로 그녀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파룬궁 문제에서 자신을 바로 놓고 명석한 선택을 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날 말하지 않았다

제가 퇴직하기 전에 직장에서 시 순시조 10여 명이 주둔하며 한 달간 검사했습니다. 순시조는 먼저 대회에서 동원하고 이어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저는 수련자이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선인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매일 일대일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 동료가 돌아와서 직장에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불교를 믿는 사람은 있지만 다른 것은 없어요”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동료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믿는지 물어봤다는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동료들은 모두 없다거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한 달간 ‘채로 거르기’를 거쳐 거의 모든 사람과 면담했고, 면담하지 않은 사람은 소수였으며, 두 번 면담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사무실의 동료와는 면담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원이 ‘체를 거쳤는데’ 어떤 동료도 저를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순시조 조장은 이미 제 상황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 달 후 순시조는 떠났고 저도 퇴직했습니다. 이로써 이곳에서의 20년 근무가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것이 또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신 것이고, 또한 세상 사람들이 대법에 대해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보호해주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명혜망 2025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5년 5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5/18/49406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5/18/4940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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