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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모녀 간의 원한을 풀고 득실을 담담히 보다

글/ 유럽 대법제자

[명혜망] 2002년, 유럽 유학 중에 저는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서는 행운을 얻었고, 어머니와의 원한을 선하게 풀어 수심향선(修心向善, 마음을 닦아 선으로 향함)의 귀로(歸路)에 들어섰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건강한 몸과 화목한 가정, 고귀한 가치관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많은 신기한 일들을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명혜망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 원고 모집을 맞아 대법이 제게 가져다준 아름다운 일들을 기록해봅니다.

어머니와의 원한 맺음과 원한 풀기

저는 지난 세기 80년대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지식청년이었고, 저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자랐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할머니는 학교를 다니신 적이 없었지만 성경을 암송하실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경의 “남이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는 가르침을 받아, 남과 다투지 않고 어려움을 만나면 양보하는 처세 방식이 형성되었습니다. 또한 남을 돕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동네의 어르신들께서 모두 저를 착한 아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다소 외로웠지만 가볍고 자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제가 열두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동생을 데리고 베이징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 후 제가 그분들과 함께 지냈던 몇 년은 제게 악몽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다툼을 잘하셨기에, 저는 어머니에게 “죽은 사람보다 숨만 더 쉬는” 겁쟁이로 불렸으며, 어머니는 자주 할머니가 저를 잘못 가르쳤다고 탓하셨습니다. 제가 책 읽기를 좋아하자 어머니는 제가 책벌레라며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제 기억 속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냈던 그 몇 년 동안, 거의 매일 어머니의 매와 꾸짖음이 끊이지 않아 밥을 먹을 때도 자주 울며 먹었고, 잠을 잘 때도 눈물을 머금고 잠들곤 했습니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저는 위장병, 비염, 비낭종, 요추 디스크 등 여러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저에게 무심했으며, 모든 면에서 동생만 편애하셨습니다.

온기 없는 그 집에서 저는 여러 번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머릿속에는 “하늘이 큰 임무를 맡기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 근골을 피로하게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궁핍하게 한다”라는 옛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여러 차례 다른 공간의 생명체를 보거나 느꼈기에, 늘 하늘의 신이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제가 중요한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반드시 강인하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저는 마침내 부모님에게서 벗어나 이모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거의 집에 돌아가지 않았고, 어머니와는 관계가 단절된 것처럼 전혀 연락하지 않았으며, 가끔 아버지에게만 소식을 전했습니다. 몇 년 후 저는 마침내 해외 유학을 떠나 유럽으로 갔습니다. 실습 기간에 저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를 통해 저는 인생의 보서(寶書)인 ‘전법륜(轉法輪)’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다른 차원의 생명체에 관한 많은 신비한 일들을 경험했기에, 중국공산당(중공)이 선전하는 무신론을 전혀 믿지 않았고, 이것이 제가 대법에 빠르게 동화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음 ‘전법륜’을 읽을 때, ‘논어’를 읽자마자 사부님께서 평범한 부처님이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책을 절반도 읽지 않아 이미 깨달았는데, 어머니와의 은원(恩怨)을 빨리 해결해야 하며, 모든 경험은 업력의 순환이므로 본성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먼저 모든 원한을 내려놓고 어머니를 선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주도적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시고 제 목소리를 듣자마자 전화를 아버지께 건네며 “당신 딸 전화예요”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전화를 받으신 후, 제가 안부를 여쭙고 “아빠, 엄마와 통화하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멍하니 계시더니 자신의 귀를 믿기 어려워하는 듯했습니다. 정신을 차리신 후 기뻐하며 전화를 어머니께 건네며 “딸이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 해”라고 하셨습니다. 전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두어 마디 말씀하시더니 곧 저에게 소리 지르며 꾸짖기 시작하셨지만, 그때 저는 이미 어떤 분노나 원망의 감정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머니의 꾸짖음이 매우 재미있게 느껴져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고, 어머니도 당황하시다가 이내 함께 웃으셨습니다.

그 이후로 제가 어머니께 전화드리면 어머니는 더 이상 그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습니다. 2년 후 제가 아들을 낳고 첫 전화를 어머니께 드려 저를 낳고 기르신 어려움에 감사드렸을 때, 어머니는 전화 너머로 우셨습니다…

뜻하지 않게 요추 근육 손상이 사라지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는데, 이후에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몇 년 동안 정신적 압박으로 위장병, 비낭종 등 여러 질병이 생겼습니다. 그중 비낭종은 시신경을 압박할 뻔했는데, 다행히 친구를 만나러 병원에 갔을 때 그가 전신 검사를 해주어 발견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늦게 발견됐다면 실명할 수도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제 허리 문제가 매우 심각해 60세의 허리뼈 근육 손상처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제 허리가 너무 심하게 손상되어 그런 큰 무게를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겨우 18살 정도였습니다.

허리 문제는 중학교 때 높이뛰기 연습 중 사고로 꼬리뼈가 금이 간 후 방치하다가 심각한 허리 디스크로 발전한 것이었습니다. 걸을 때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었고, 오래 서 있거나 걷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매년 겨울이면 일정 기간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했고 활동할 수 없었습니다. 중의학과 서양의학 전문가들 모두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고 했기에, 저는 이미 젊은 나이에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 지 겨우 2주 만에, 한 동급생이 저에게 그녀의 물건으로 가득 찬 가장 큰 수하물 가방을 4층 다락방에서 아래층으로 옮겨달라고 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저 혼자 그것을 들고 내려갔는데, 허리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문득 깨달았습니다. ‘어머, 내가 어떻게 이걸 들고 내려왔지?’ 이것은 수련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저는 매우 감격스러워 곧바로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그런 완고한 병들이 모두 사라졌음을 발견했고, 심지어 열 달의 임신 기간에도 허리의 어떤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으며, 배의 무게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습니다. 저는 이전에 베이징에서 제게 엑스레이를 찍어준 의사 친구에게 이 일을 말했는데, 그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전혀 믿을 수 없었지만, 이 기적은 실제로 제 몸에서 일어났습니다.

지금 아들은 이미 스무 살이 되었으며, 제가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아들도 혜택을 받아 약 한 알 먹지 않고도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친척과 친구들 눈에는 나이가 들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아들과 외출할 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남매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제 밝은 성격과 외모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제가 어릴 때부터 호화롭게 자란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익과 득실을 담담히 보다

10여 년 전, 부모님은 기존의 두 채의 집 외에 베이징에서 200평방미터의 복층 구조 건물을 또 구입하셨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저에게 집주인을 동생 이름으로 할 수 있는지 물으셨고, 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물론 문제없어요. 저는 부모님 곁에 있지도 않고 부모님은 주로 동생의 도움을 받으시니까요. 게다가 중국 전통적으로 봐도 이상할 것 없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노후를 고려하여, 저는 당시 그들에게 모든 재산을 너무 일찍 다 내놓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저는 유럽에 있어 돌봐드리기 어려울 테니까요.” 당시 부모님은 모두 동생에게 다 주지 않을 것이며 분명히 저에게도 일부를 나눠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몇 년 후 부모님이 유럽에 저를 방문했을 때, 어머니가 실수로 말씀하셔서 저는 그중 집 한 채를 팔아 얻은 수백만 위안(십수억 원)을 동생에게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집은 리모델링 후 동생과 동생 부인이 현재 살고 있습니다. 즉, 세 채의 집 모두 저와는 관계가 없어진 것입니다. 당시 저는 놀랐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아버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저를 존중하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반본귀진을 결심했으니 인간 세상의 모든 이익을 담담히 봐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 년이 지났어도 저는 부모님께 이 일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모르는 척했습니다. 나중에 제 초등학교 친구(우리 두 아버지는 절친한 친구)가 말하길, 이 일을 아는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불공평하다고 느끼며 아버지의 처리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이러한 물질적 재산은 모두 덕(德)으로 교환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제가 부귀영화를 누리지는 않지만 의식주에 걱정이 없고 건강하며 가정이 화목하니, 이것들은 모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녀는 제 몸에서 대법의 위대함을 보고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신기한 언어 능력

아들이 몇 개월 되었을 무렵, 한번은 연방 의원 회의가 있어서 지역 연공장 자원봉사 책임자가 누가 의원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서명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우리는 당시 연방 의회 건물이 있는 도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도시에는 세 쌍의 부부 대법 수련생이 살고 있었는데, 우리 외에도 한 쌍은 중국 본토에서 온 노년 수련생으로 외국어를 모르셨고, 다른 한 쌍은 서양인 수련생으로 그들은 모두 여러 이유로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출근해야 했고 저만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 독일어를 한 달만 배웠고 독일어로 거의 대화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약간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대법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요? “우리 우주의 모든 공간을 구성하는 물질이 이 공(功)에 거의 다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에너지장이라고 함이 비교적 적합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상 그것을 에너지장이라고 한다.” 우주의 모든 공간을 구성하는 물질이 이 공 속에 다 있다면 언어도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도 신께서 부여한 것이 아닐까요?! 저는 법을 얻었고 몸과 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는데, 이렇게 작은 언어 문제가 진상을 알리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을까요? 또한 저는 이번 기회가 귀중하니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단순한 생각 하나로 저는 진상 자료가 가득한 유모차를 밀고 의회 건물 정문 앞 광장으로 갔습니다. 당시 두려움은 없었고, 의원 한 분이 오면 한 분에게 말하고 말이 술술 나왔으며, 모든 사람의 질문에 저는 어려움 없이 대답했습니다. 한 의원은 당시 제 독일어가 매우 좋다고 칭찬하며 제가 현지 대학을 졸업했는지 물었고, 다른 의원은 심지어 제가 독일에서 자란 화교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독일어를 한 달만 배웠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모두 믿기 힘들어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이 오늘 성과가 어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름이 가득 찬 서명지를 보여주었고, 남편은 매우 놀라며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냈어요? 그들이 질문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들의 질문에 대답했어요?” 저는 남편에게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남편도 믿기 힘들다며 언제 이런 단어들을 배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배운 적이 없지만 당시에는 매우 자연스럽게 말했다고 하며, 사부님께서 이 지혜를 열어주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로 여러 이유로 저는 독일어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지만, 사회의 다양한 진상을 알리는 활동과 생활, 일에서 장애가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이 문을 열어주신 것 같았습니다.

몇 년 후 스위스 프랑스어 지역에서 션윈(神韻)을 홍보하는 과정에서도 같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프랑스어를 배운 적이 없고, 션윈을 홍보하기 위해 션윈의 기본 요소를 소개하는 몇 문장만 외웠습니다. 수련생들은 모두 제가 말하는 몇 문장의 발음이 매우 표준적이며 모국어처럼 들린다고 칭찬했습니다. 한번은 인력이 제한되어 협조인이 저 혼자 쇼핑몰의 티켓 판매대에서 표를 팔도록 배치했고, 저는 ‘무조건 협조한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어떤 의문도 품지 않았습니다.

아침 5시가 조금 넘어 집에서 출발하여 임무 배치 장소에 도착해 제가 가져가야 할 홍보 자료를 받아 다시 차를 한 시간 타고 그 쇼핑몰에 도착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날 모든 사람이 저에게 한 프랑스어를 저는 다 이해했고, 그들의 질문에도 모두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질문은 거의 프랑스어로 바로 대답했습니다. 특히 수다스러운 사람들은 더 오래 말했는데, 제 프랑스어 어휘가 따라가지 못할 때는 독일어나 영어로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일어나 영어로 말하고 상대방은 프랑스어로 저와 대화했지만, 우리는 매우 순조롭게 소통했으며 의사소통에 장애가 없었습니다. 지금 그 장면을 생각하면 매우 우습지만, 바로 이렇게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加持) 아래 저는 그날 성공적으로 16장의 표를 팔았고, 지금까지도 제 최고 판매 기록입니다.

맺음말

법광 속에서 지낸 23년 동안, 사람의 집착심을 버리고 마음을 수련하여 선하게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 식구 모두 대법 수련생이 되어 가정이 화목하고 매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부모와 함께 살기 싫어하는 나이에, 철이 든 아들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좋은지 말하며, 동시에 여러 방법으로 또래들에게 진상을 알립니다. 저는 계속해서 부족함을 찾고 계속해서 심성을 향상시키며, 끊임없는 승화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고 있습니다.

(명혜망 2025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5년 5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5/15/4936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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