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지난 1년 동안 마음을 다해 법을 배우며 반년 동안 ‘전법륜’을 두 번 외웠습니다. 첫 번째는 3개월 넘게 걸렸고 두 번째는 2개월 넘게 걸렸습니다. 법 속에 녹아드는 느낌이 정말 좋아 외우면 외울수록 더 외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법공부는 제고를 위한 것이며, 법 뒤에는 수련을 지도하고 심성을 시험하며 층차를 높이고 공이 자라는 기제와 요소가 있습니다. 최근 제 심성 시험과 업력(業力) 전환 형식이 가정에서 나타났는데, 바로 배우자와의 마찰로 종종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발생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그날, 남편이 전화를 끊고 말했습니다. “일요일에 아들과 며느리가 점심 먹으러 올 거야.” 그래서 일요일 오전에 찌개, 생선구이, 반찬 등 음식을 준비하느라 무척 바빴습니다. 부엌이 작아서 냄비와 그릇들이 한데 쌓여 있어 이것저것 가리고 방해가 됐습니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며 필요 없는 몇 가지를 치워 공간을 확보하라고 소리쳤지만 응답이 없었고 오랫동안 오지 않았습니다.
전에도 그에게 도움을 청하면 듣지 못했거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틱톡을 보느라 도와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매일 그랬습니다. 하지만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름이 연기를 내고 있는데 파는 아직 썰지도 못했으니까요! 참을 수 없어서 짜증스럽게 그를 한 번 더 불렀고 불평하며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그가 왔는데 문간에 멀리 서서 큰 소리로 따졌습니다. “제대로 말할 수 없어?” 그는 두 번이나 반복하며 계속 소리쳤습니다. 제 마음도 평형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뛰어다니는데 그는 태연히 서서 도울 생각은 않고 트집만 잡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없어요.”
이게 문제였습니다! 그는 성큼성큼 앞으로 와서 제 팔을 들고 말했습니다. “확 때릴까보다!” 또 제 코를 가리키며 위협했습니다. “한 마디만 더 해봐!” 이때 저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고 그의 눈조차 바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크게 화를 낼 줄은 몰랐습니다. 그가 소리를 지르고 간 후에도 계속 일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아들과 며느리가 와서 식사했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진행됐습니다.
겉으로는 ‘참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내려놓지 못했고 그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이 생겼습니다. 문득 그가 한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몇 달 전 그가 아파서 행동이 불편하고 설사도 했을 때, 밤낮으로 그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닦아주었으며 밤에도 여러 번 일어나 그를 돌봤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는 깊이 감동하며 말했습니다. “당신도 70대인데, 앞으로 더 잘해줄게.” 당시 이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은 남을 위해 좋게 해야 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아야 하니까요. 하물며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데 억울한 마음이 생기자 “더 잘해줄게”라는 이 말이 생각났습니다.
며칠 동안 그의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고 평소처럼 그와 함께 앉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간격이 생겼고 심지어 극단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수련하는 사람만 아니었다면 그와 맞설 텐데! 난 그가 두렵지 않아. 어떻게 이런 억울함을 참겠어!’
차분해진 후에 업력의 전환과 일거사득(一擧四得)의 법리를 생각했습니다. ‘아! 사부님께서 내가 법을 잘 외웠으니 제고할 때가 됐다고 보시고, 심성을 시험하고 공이 자라는 기회를 주신 것이니 좋은 일이다. 그의 무서운 모습은 표면적인 것이고 심성 제고가 실질적인 거야. 오히려 남편에게 감사해야 해.’
이번 마찰을 통해 원망심, 억울함, 쟁투심, 그리고 가족 정에 대한 집착이 드러났습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이 있다면 ‘참음(忍)’을 논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참음은 순정한 것으로 사람의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부족한 점을 찾고 법리에서 향상한 후 배우자도 변했습니다. 때때로 자발적으로 부엌에 와서 청소를 도왔고 식사 후 그릇을 치웠으며 평소처럼 발정념 시간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간격을 없앴습니다.
참음은 아름다운 것이므로 고비를 넘지 못할 때 생각하는 억울함을 참고 삼키거나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참음은 사상의 승화이고 경지의 제고이며 동시에 공(功)의 제고입니다. 그래서 수련인이 진정으로 참음을 행할 때 본성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평소 진상을 알릴 때도 사람들에게 ‘진선인(眞·善·忍)’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합니다. 참음은 갈등을 해소하고 원한을 끝내며 업을 갚을 수 있습니다. 참음은 웃는 얼굴로 부를 가져다주며,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잘됩니다.
대법제자는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진선인의 실천자이며 진선인에 동화됩니다. 관용과 양보의 내포는 가정과 사회에 조화와 복을 가져올 것이며 세계는 진선인이 필요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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