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쓰촨성 통신원) 쓰촨성 쑤이닝시 파룬궁수련자 궈춘팡(郭春芳·여)는 2024년 10월 14일 쑤이닝시 촨산구 톈펑가 임대주택에서 쑤이닝시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공안과 다잉현 경찰에 납치돼 쑤이닝 융싱 구치소에 불법 구금돼 박해를 받았다. 2025년 4월 말 알려진 바로는 궈춘팡이 현지 법원에서 부당하게 4년형을 선고받았다.
궈춘팡은 올해 56세로, 원래 쑤이닝시 다잉현 후이마진 제2중심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녀는 1998년 7월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해 진선인(眞·善·忍) 법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으며, 여러 차례 ‘우수 지도원’ 등으로 평가받아 학생과 학부모들의 사랑을 받았다.
중공 악당의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 속에서 궈춘팡은 여러 차례 납치되고 불법 구금됐으며, 강제노동과 불법 판결을 받았고 구치소, 세뇌반, 노동수용소, 감옥에서 박해를 받았다.
다음은 궈춘팡이 중공 악당에 의해 박해받은 일부 경험이다.
박해 초기, 괴롭힘과 납치, 불법 구금 당해
1999년 7월 20일, 중공 악당이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시작한 후 다잉현 공안국, 후이마 파출소, 사법소 및 진 정부는 계속해서 궈춘팡을 박해했다. 그들이 소위 말하는 ‘민감한 날’마다 궈춘팡의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거나, 괴롭히고, 미행하며 그녀의 정상적인 생활과 업무를 심각하게 방해했으며, 학교의 교육 질서도 크게 교란했다.
2000년 6월, 궈춘팡은 쑤이닝 공원에서 단체 연공을 하다가 쑤이닝시 공안국 촨산분국 난먼 파출소 경찰에 납치됐다. 그날 오후 그녀는 후이마 파출소로 끌려갔고, 소위 ‘보증서’를 쓰기를 거부하자 다잉현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가 이틀 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2000년 7월 1일, 학교가 막 여름방학을 시작했을 때 궈춘팡은 다잉현 민중 세뇌반에 끌려가 구금돼 박해를 받았다.
2000년 말, 후이마 파출소와 교육국 정법위 서기가 궈춘팡의 집에 침입해 파룬궁 수련서 《전법륜》을 빼앗고, 그녀의 어린 아들을 위협했으며, 결국 가족들이 1,000위안의 보증금을 내고 나서야 그만뒀다.
불법 강제노동, 난무쓰 여자 노동수용소에서 박해 받아
2001년 11월 11일, 궈춘팡은 쑤이닝 남부 교외에서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밀고로 쑤이닝시 공안국 촨산분국 난창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다음 날 그녀는 쑤이닝 링취안쓰 구치소로 끌려가 한 달간 구금돼 박해를 받았다. 12월 12일에는 우자완 구치소로 옮겨져 계속 구금과 박해를 받았다.
2002년 3월 7일, 궈춘팡은 쓰촨성 쯔중 난무쓰 여자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1년간 불법 노동교육을 받았다.
궈춘팡이 난무쓰 여자 노동수용소에 끌려간 후, 그녀는 신앙을 포기하기를 거부했고, 그날 밤 바로 작은 방에 갇혀 3일밤 고문을 당했다. 궈춘팡은 강제 세뇌, 장시간 군인 자세로 서 있게 하는 처벌, 몇몇 여성 마약 중독자들이 번갈아 감시하며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눈을 감기만 하면 주먹과 발로 때리는 등의 박해를 받았다. 옷을 빨거나 목욕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밥을 먹은 그릇도 씻지 못하게 해 파리와 벌레가 기어다니게 했다. 더욱 심한 것은 그녀가 대변을 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2년 10월 1일, 심신에 극심한 상처를 입은 궈춘팡은 집으로 돌아왔다. 노동수용소에서 나온 후 그녀는 후이마진 제2중심초등학교로 돌아가 계속 가르쳤다. 현지 파출소와 사법소는 여전히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부당한 5년형 선고, 청두 여자 감옥서 박해 받아
2006년 2월 19일, 개학한 지 며칠 지난 후 다잉현 공안국 국보대대 경찰이 차를 타고 학교에 와서 궈춘팡 반의 몇몇 학생들을 찾아내 거짓말로 유인해 모함하려 했다(당시 궈춘팡은 쑤이닝에 있었다). 20일 정오, 궈춘팡이 숙소에서 학생들의 방학 숙제를 채점하고 있을 때, 한 무리 경찰이 실내에 침입해 그녀를 폭력적으로 납치했다. 이후 이 경찰들은 또 가택수색을 해 대법 서적, MP3, 녹음기, 휴대폰, 시계 등 개인 물품을 빼앗았으며, 집안의 기구들을 쇠 도구로 부숴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이 경찰들은 파출소로 돌아와 경찰차를 타고 궈춘팡을 다잉현 구치소로 끌고 가 연속 10일간 불법 심문했다. 그들은 또한 궈춘팡의 가족들 앞에서 거짓 소문을 크게 퍼뜨리고 가족들이 궈춘팡을 미워하도록 선동했으며, 궈춘팡의 부부 관계(2007년 4월 감옥에서 강제 이혼)와 모자 관계를 이간질했다.
2006년 2월 30일, 궈춘팡은 다시 다잉현 공안국 국보대대 경찰에 의해 쑤이닝시 융싱 구치소로 끌려가 구금돼 박해를 받았다. 궈춘팡이 박해에 저항하자 여성 경찰 진후이는 10여 명의 남성 죄수들에게 지시해 ‘용(龍) 의자’(고문 도구)를 가져오게 하여 궈춘팡을 의자에 수갑으로 묶고 3일밤 동안 고문했으며,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내려주지 않았다. 궈춘팡이 의자에서 내려왔을 때는 양쪽 발이 부어 서 있지 못하고 걷지도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도 그녀는 강제로 노예 노동을 하고 감옥 규칙을 외워야 했다.

2006년 9월, 궈춘팡은 다잉현 법원에서 불법으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2007년 1월 15일, 궈춘팡은 쓰촨 룽취안이 청두 여자 감옥으로 끌려갔다.
청두 여자 감옥은 파룬궁수련자들에게 구타, 전기 충격, 매달기, 등 뒤로 수갑 채우기, 달리기, 냉동, 햇볕 노출, 벌로 서있기, 군인 자세로 앉아있기, 독약 주사, 천으로 묶기, 야만적 강제 급식, 강제 훈련, 강제 혈액 검사, 바늘 찌르기, 물 뿌리기, 벽에 부딪히기, 독방 감금, 노예 노동, 면회권 박탈 및 생활 학대 등 잔혹한 고문을 가했다.

2011년 2월 19일, 궈춘팡은 5년간의 억울한 감옥 박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궈춘팡은 이미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이 노쇠했으며, 청력과 기억력이 감퇴하고, 반응이 둔해지고, 신체가 허약해진 상태였다.
13년 넘게 유랑 생활, 다시 부당한 4년형 선고
2011년 3월 8일, 궈춘팡이 감옥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19일 만에, 다잉현 정부, 후이마진 정부, 후이마 파출소 여러 사람들이 그녀에게 최저생활보장과 일자리를 해결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그녀를 세뇌반으로 납치해 구금하려 했으나, 가족들이 제때 도착해 그녀는 기회를 잡아 도망칠 수 있었다.
궈춘팡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타향으로 떠나 외지에서 전전하며 어려운 생활을 했다.
2024년 10월 14일, 궈춘팡은 쑤이닝시 촨산구 톈펑가 임대주택에서 쑤이닝 국보, 공안과 함께 다잉현 여러 경찰에게 납치됐다. 동시에 납치된 사람들 중에는 16년 동안 유랑 생활을 해온 쑤이닝시 파룬궁수련자 샤오원쉐(肖文學), 양쓰전(楊思珍) 부부도 있었다. 임대주택 집주인 부부도 경찰에 납치됐다. 경찰들은 집 안과 주변에 매복해 있다가 60대의 파룬궁수련자 양이화(楊義華, 양밍화)가 그곳에 오자 그도 납치했다.
2024년 11월 중순에 알려진 바로는 궈춘팡과 양쓰전이 쑤이닝 융싱 구치소에 불법 구금돼 있었다.
2025년 4월 말에 알려진 바로는 궈춘팡이 현지 법원에서 불법으로 4년형을 선고받았고, 양쓰전과 양이화는 각각 1년 10개월 형을, 샤오원쉐는 1년형에 2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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