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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을 처음처럼 하면서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에 대법 수련에 입문했습니다. 속인 직업은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당시 몸이 극도로 허약해 정상적으로 수업이 불가능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에는 병 없이 몸이 가벼워져 결석한 적이 없었고, 학교에서 병가를 신청한 적도 없었습니다. 사부님의 은혜는 끝없이 크고 넓어 천만 마디 말로도 사부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최근 들어 사부님의 수련을 처음처럼 하라는 법이 자주 제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어떤 일이든 성공하려면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노력해야 하며, ‘삼일은 고기를 잡고, 사일은 그물을 말리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압니다. 대법 수련은 전 우주에서 가장 신성한 일이므로, 수련생들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속인의 이치보다 훨씬 높습니다.

아래는 제가 세 가지 일을 잘 해나가는 과정에서 수련을 처음처럼 한 것에 대한 깨달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법공부와 연공, 처음처럼 수련하기

처음 보도소에서 수련생들과 단체 법공부를 했을 때, 저는 대법 서적을 청했습니다. 그날 밤 꿈에서 제가 양손을 합장하고 있었는데 온몸이 특별히 편안했습니다. 다음날 저는 귀중한 책 ‘전법륜(轉法輪)’을 손에 들고 단숨에 전부 읽었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매일 황금 시간을 ‘전법륜’을 읽는 데 썼습니다. 읽을수록 더 편안해졌고, 마치 전혀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 듯했으며, 인생의 수많은 풀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한동안 지속됐지만, 점차 법공부할 때 처음 그런 상태가 사라졌음을 발견했습니다. 정신 집중도가 처음만큼 되지 않았고, 생각도 처음만큼 순수하지 않았으며, 법공부 중에 정신이 산만해지고 자주 속인의 일들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때로는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가정환경에서는 수련을 지지하지 않는 가족이 대법에 무례한 말을 하는 등의 교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매우 비정상적인 현상이었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결가부좌를 하고 ‘전법륜’을 손에 들고 읽어보았더니 이때 정신이 특별히 집중됐고, 정신 산만함이 사라졌으며, 머리가 맑고 순수한 상태를 느꼈고,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법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계속해서 결가부좌로 법공부를 했습니다.

가정환경에서는 가족들이 대법 수련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더 이상 제 대법 수련을 방해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후 2006년경, 명혜망에서 수련생들의 법 암기 체험담을 보고 영감을 얻어 저도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문장씩 외우다가, 이어서 전체 단락을 연결해 외웠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한 구절을 보고 나서 계속 외우고, 외우지 못한 구절은 잠시 보고 다시 계속 외우는 식으로 순환하여 대법의 모든 구절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했습니다.

저는 보통 저녁에 한 시간의 황금 시간을 법공부에 배정했는데, 이 정도 법공부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퇴직 후에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 식사 후 시간을 활용해 법공부를 했고, 이렇게 하루에 네 번의 시간대에 법공부를 했습니다.

이제 연공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법 수련에 입문했을 때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아침에 그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서 제가 학교에 출근해야 했습니다. 속인 일이 많아서 연공장에 갈 시간이 적었지만 저는 느슨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이 결가부좌하는 것을 보고 너무 부러워서 꼭 결가부좌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다리를 올리면 높이 들려 있어서 저는 낙담하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앉아서 다리를 눌렀습니다. 한 달 넘게 이렇게 한 후, 마침내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다리를 올리면 너무 아파서 1분도 시험이었지만 저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약 6개월 후에는 결가부좌로 한 시간을 할 수 있었고, 점차 시간을 늘려 마침내 결가부좌로 두 시간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보통 저녁에 결가부좌로 한 시간 법공부를 하고, 제5장 공법은 결가부좌로 한 시간 연마합니다. 아침에는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서 동공만 서둘러 연마하고 정공은 거의 연마하지 않았는데, 명혜망에서 전 세계 단체 연공 공지가 나온 후, 저도 단체 연공에 참여하여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연마하게 됐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가부좌가 매우 편안해져 거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게 됐습니다. 그러나 정공 중에 저도 모르게 졸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법공부와 명혜망 수련생들의 글을 통해 한 가지 원인을 찾았습니다. 졸릴 때 저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고 등을 구부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허리를 곧게 펴라고 요구하셨는데, 제가 왜 주의하지 않았을까요?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이후 연공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허리를 곧게 폈더니 졸음 현상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이란 서서히 해야 하는 것이기는 하나, 당신은 느슨하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말한다. “스승님께서 수련은 서서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우리는 서서히 하자.” 그건 안 된다! 당신은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해야 하며 불법(佛法) 수련에서 당신은 용맹정진(勇猛精進)해야 한다.”(전법륜) 제 체득은, 비록 사부님께서 매 제자에게 법공부와 연공에 시간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 규정하지 않으셨지만 느슨해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법공부와 연공 시간을 늘리면 본체(本體)의 전화(轉化)와 수련 상태의 호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2. 정념정행(正念正行), 처음처럼 수련하기

명혜망에서 전 세계 동시 발정념 공지가 나온 후 저는 발정념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때는 머리가 매우 순수하여 에너지가 매우 강한 것을 느꼈고, 다른 공간의 사악이 제거됐습니다. 저는 매일 네 번의 전 세계 동시 발정념에 참여했고, 지역 발정념에도 참여했으며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그에 대응해 발정념을 했습니다.

발정념으로 사악한 깃발이 떨어지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에 사악한 깃발 게양식을 진행했는데, 이는 실제로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사악한 장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때마침 명혜망에서 수련생들이 발정념으로 사악한 깃발을 떨어뜨린 경험을 보고 저도 시도해 보고 싶었습니다. 제 기숙사는 깃발을 게양하는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어느 월요일 아침, 학교 방송이 울리자 저는 결가부좌를 하고 자신의 공간장을 정화한 후 5분 후에 대법을 파괴하는 모든 사악을 제거하고, 목표를 설정하여 사악한 깃발이 떨어지게 하라고 생각하면서 정법 구결 ‘파쩡쳰쿤, 셰어췐몌(法正乾坤, 邪惡全滅)’를 외웠습니다. 방송에서 ‘깃발 게양’이라는 단어가 들린 후 강력한 염력(念力)으로 ‘멸(滅)’자를 외웠습니다. 제 기숙사가 운동장과 거리가 있어서 당시에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학교 교사와 학생들로부터 당시 깃발이 올라간 후 빠르게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일은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어서 학교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는 큰 격려를 받았고, 계속해서 그 시간에 발정념을 했지만 첫 번째와 같은 현상이 다시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안으로 원인을 찾았는데 아마도 제가 환희심이 일어나 첫 번째처럼 염력이 강하지 않았거나, 또는 구세력이 이 미혹을 깨지 못하도록 교란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실망하지 않고 계속 그 시간에 발정념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현상이 다시 발생하여 학교 책임자들은 당황하여 해결책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지역에 점을 잘 본다는 무당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무당을 학교로 데려와 해결책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 이후로 소위 깃발 게양식을 할 때마다, 깃발이 기둥에 묶여 움직이지 않아 위로 올라가는 과정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당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정말 깊이 생각해볼 만한 일입니다.

이후에는 깃발이 떨어지는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학교 방송이 울릴 때마다 저는 결가부좌하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비록 인간세상의 공간에서는 변화가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공간의 사악은 제거됐으리라 믿습니다.

발정념으로 박해를 부정하다

사악이 대법을 박해한 초기에 제 이름이 파출소에서 파악한 명단에 없어서 많은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대법에 손실을 끼치는 일을 해서 매우 후회했기 때문에, 성명서를 작성하여 명혜망에 보내면서 뒤에 제 이름을 썼습니다. 2년 후 사악은 이 성명서를 통해 저를 찾아냈습니다.

어느 날 오전, 수업이 없어서 교과서를 가지러 도서관에 갔을 때 부교장이 전화를 걸어 저를 교장실로 오라고 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방 안에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리에 앉은 후 한 사람이 일어나 그들이 구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서기, ‘610’ 주임, 교육국 기율검사조 조장 등이라고 소개했습니다. ‘610’ 주임이 먼저 파룬궁(法輪功) 문제에서 제게 입장이 바뀌었는지 물었는데, 저는 직접 대답하지 않고 선과 악에는 응보가 있다는 이치를 설명했더니 그들은 모두 말이 없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선생님을 제압하지 못하면, 시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선생님을 제압하라고 할 겁니다.” 저는 눈을 살짝 감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갑자기 한 사람이 “집에 가서 쉬세요. 시간이 늦었으니 우리는 퇴근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차례로 교장실을 나갔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즉시 결가부좌하고 발정념하여 사악의 박해를 부정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도 계속 발정념을 했습니다.

약 보름 후, 한 부교장이 저를 찾아와 함께 교육국에 가자며 저에게 “만약 누군가가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물으면, 예전에는 했지만 지금은 안 한다고 말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교육국에 도착하니, 정법위 서기와 몇몇 사람이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몇 마디 대화 후, 정법위 서기가 저와 함께 다른 방으로 가서 대화하자고 요청했습니다. 제가 그와 대화하는 동안 한 사람이 펜과 종이를 들고 옆에 앉아 기록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는 인터넷에 있는 성명서에 제 이름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저는 “세상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그것이 제가 쓴 것인지 알 수 있나요?”라고 말했습니다.

정법위 서기는 “좋아요, 그럼 차를 타고 정법위로 가서 이 성명서를 꺼내 선생님이 쓴 것인지 확인해 봅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는 모호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그럴 필요 없어요, 저는 성명서가 제가 쓴 것임을 인정합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법위 서기는 놀랐습니다. 이전에 그들은 학교 지도자들에게 물어봤지만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마침내 제 입에서 확인을 얻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파룬궁 수련이 중국의 현행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대법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셨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때 기록하려던 사람은 즉시 종이와 펜을 치우고 멀리 한구석에 숨었습니다. 정법위 서기는 “선생님이 진선인을 실천할 수 있다면, 선생님은 신이 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는 진선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단속할 거예요. 만약 진선인에 부합하지 않으면,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고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정법위 서기는 “그럼 교장에게 확인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즉시 교장을 불러 제가 방금 한 말을 반복하고 제게 그렇게 말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네”라고 말했습니다. 교장은 제 말을 부정하지 않고, 몇 마디 관련 없는 말만 했습니다.

정법위 서기는 이번 대화가 성과 없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즉시 결가부좌하고 발정념을 하여 사악의 박해를 부정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꿈을 꿨는데, 꿈에서 저는 한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맞이했고 제가 도착했을 때 환호성을 지르며, 사람들이 저를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이전에 누군가가 저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지를 물으면 저는 항상 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제 신체 변화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데 왜 제가 당당하게 대법 수련으로 얻은 복을 표명하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제가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제 신분을 밝히고 파룬따파를 수련한다고 표명한 것입니다. 저는 꿈속의 장면은 다른 공간의 표현이며,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꿈을 통해 저를 격려하신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약 일주일 후 학교 직원이 저를 교장실로 오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저를 찾아온 사람은 시 정법위와 시 세뇌반의 책임자였습니다. 시 정법위 책임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정부에서 수련하지 말라고 하면 수련하지 않는데, 왜 선생님은 우리에게 법률을 이야기합니까? 선생님은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의 사법 해석을 보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봤어요. 하지만 해석권은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민대표대회에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총구를 1cm 높이는’ 이야기를 소개하며 “하급자가 상급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총구를 선량한 사람에게 겨누지 말아야 합니다. 이 순간, 총구를 1cm 높일 권리가 있으면, 이것은 선생님이 능동적으로 감당해야 할 양심의 의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 정법위 책임자가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어 제가 즉시 발정념을 했더니 그는 말을 멈추고 세뇌반 책임자와 함께 밖으로 나갔습니다.

잠시 후, 저도 나왔습니다. 아래층에 도착했을 때, 시 정법위 책임자가 한 방에서 교육국 기율검사조장, 구 정법위 서기, 그리고 교장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방금 저와 대화한 상황을 보고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문 앞에 서 있었더니 정법위 책임자는 즉시 말을 멈췄습니다. 교육국 기율검사조장이 저에게 손을 흔들며 “선생님과 상관이 없으니 돌아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즉시 결가부좌하고 반 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발정념을 했고, 오후에도 한 시간 동안 발정념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정법위 사람들은 더 이상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공의 민감한 날이나 중공이 무언가를 통일적으로 계획할 때마다, 주민위원회와 파출소의 관련 인원이 때때로 저를 찾아왔는데 저는 항상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작년 연말에 파출소 직원이 전화를 걸어 저에게 아직도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헌법은 신앙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기에 저는 파룬궁을 수련할 자유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파룬궁은 진선인을 말하고, 파룬따파는 사람을 구하러 온 것입니다. 선생님은 대법의 진상을 이해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좋아요, 그럼 우리 위챗을 추가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럴 필요 없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발정념으로 잃어버렸던 오토바이를 되찾다

어느 날 밤, 오토바이를 세운 후 한 자동차에 진상 자료를 놓고, 몸을 돌릴 때 한 사람이 저를 향해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빠르게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한 바퀴 돌고 돌아와 오토바이를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볼 수 없었습니다. 오토바이 뒤 상자에는 진상 자료가 있었고, 또한 몇 개의 속인 자료가 있어 제 정보가 누출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악한 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즉시 결가부좌를 틀고 한 시간 이상 발정념을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6시 발정념을 마친 후 원래 장소로 가서 찾아보니, 오토바이가 원래 자리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즉시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손실을 피했고 구세력이 안배한 교란이 부정됐습니다.

3.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며, 수련을 처음처럼 하다

사부님의 설법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진상을 알리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꾸준하게 진상을 알려야 하고 수련을 처음처럼 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대법제자가 워낙 적은데 최전선에서 진상을 알리는 대법제자는 더욱 적지만 수련하지 않는 속인의 수는 매우 많습니다. 각 대법제자에게 몫을 평균하면 담당해야 할 수량이 크기 때문에 꾸준히 견지해야 더 많은 중생이 진상을 알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속인들이 현대 사회의 오염, 특히 중공의 세뇌 선전에 중독되어 변덕스러운 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한 동료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도와주고, 그에게 둥타이왕(動態網)에 접속해 진상을 알아보도록 안내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이 동료는 다시 중공에 중독된 말을 하며 둥타이왕에 접속하길 두려워했습니다. 이는 대법제자가 지속적으로 진상을 알려야 하며, 한 번의 노력으로 끝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처음으로 진상 자료를 배포한 것은 사악이 대법을 박해한 지 2년이 넘었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명혜망에 접속할 수 없어 직접 진상 자료를 다운로드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보도원 집에서 진상 자료를 보았는데 좋다고 생각되어 보도원에게 100위안을 주고 누군가를 찾아 수십 부를 인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농촌 마을로 가서 배포했는데, 처음이라 조심스럽게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을 때 진상 자료를 주택 문 앞이나 공공장소에 놓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련생이 소프트웨어를 전해주어 명혜망에 접속할 수 있게 됐고, 직접 진상 자료를 다운로드하여 인쇄한 후 다른 수련생들에게 전해주거나 가끔 직접 속인들에게 보도록 전해주었습니다.

초기에 제작하고 배포한 진상 자료는 정보량이 많고 제작이 쉬우며 배포하기 편리한 진상 CD가 위주였습니다. 저는 제가 사는 도시 지역에 진상 CD를 배포하는 것 외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인근 농촌에도 배포했습니다. 때로는 속인 집에 방문했을 때 그들이 진상 CD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대법제자들이 배포한 진상 CD가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나중에는 음성 전화로 진상을 알리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몇 년 후 전화 카드가 실명 인증을 해야 했기에 구매하기 어려워지자, 진상 정기간행물 배포와 진상 스티커 부착 등 활동으로 변경했습니다. 저는 몇 곳에서 몇 년 전 부착한 스티커가 여전히 온전히 보존된 것을 발견했고, 속인들이 스티커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도 들어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는 다른 수련생과 협력하여 명혜망에서 진상을 알리기 위한 많은 스티커를 다운로드하고 도시 지역의 많은 공공장소에 부착했고, 동시에 오토바이를 타고 인근 농촌에도 부착했습니다. 저는 일반인이 많이 다니고, 깨끗하며, 눈에 잘 띄는 장소를 선택하여 가능한 한 빨리 부착했으며, 동시에 스티커가 반듯하게 부착되도록 했습니다. 기울어지거나 삐뚤어지지 않도록 좋은 마음가짐을 유지하면 자연히 스티커가 반듯하게 보입니다.

한번은 전봇대에 스티커를 부착하고 막 떠나려 할 때, 갑자기 오토바이를 탄 두 사람이 제 앞길을 막았습니다. 그중 제복을 입은 한 경찰이 “파룬궁”이라고 외쳤고, 다른 한 명은 제 오토바이 열쇠를 빼앗았습니다. 경찰복을 입은 사람이 휴대폰을 꺼내 파출소에 전화를 걸며 말했습니다. “여기서 파출소 차가 아주머니를 데려갈 때까지 기다리세요.” 저는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며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그들은 대법을 비방하는 말을 했습니다.

이때 저는 급박한 상황에서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발정념 구결이 떠올라 큰 소리로 ‘파쩡쳰쿤, 셰어췐몌’를 외쳤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 모두 멍해졌고, 더 이상 기세등등하지 않았으며, 태도가 확연히 부드러워졌습니다. 저는 그들 뒤에 있는 사악이 제거됐음을 알았습니다. 전화 받은 상대방은 몇 가지 간단한 질문만 했을 뿐, 데리러 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경찰복을 입은 사람이 휴대폰으로 저를 사진 찍으려 하자 저는 발정념하여 그가 찍지 못하게 했고 오토바이 열쇠를 되찾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시간이 없었지만 그들이 스티커 내용을 보는 것도 진상을 알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스티커를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스티커를 가지고 떠났고 저는 뒤에서 다시 한번 큰 소리로 “파쩡쳰쿤, 셰어췐몌”를 외쳤습니다. 그들은 감히 뒤돌아보지 못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빠르게 떠났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30분 동안 발정념했습니다. 그 후로 아무도 저를 찾아오지 않았고, 저는 이것이 정념의 작용으로 사악의 박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음을 알았습니다.

매년 설날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기로, 진상을 알리기 좋은 시기입니다. 저는 대법제자로서 속인처럼 집에 숨어 편안한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월 초하루 새벽, 가족들이 아직 잠든 시간에 밖은 조용했습니다. 저는 가족들 모르게 진상 자료를 가지고 조용히 집을 나섰습니다. 길에서 가끔 아침 운동을 하는 속인을 만나거나 사원에 향을 피우러 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7시가 넘어 자료를 모두 배포하고 집에 돌아와 아침 식사를 준비했을 때까지 가족들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 정월 초하루 새벽에 밖에 비가 내렸는데, 이것도 시험이었습니다. 저는 영향 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비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단지 정문을 나와,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는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휴대폰이 빠르게 보급되어 거의 모든 사람이 한 대씩 휴대할 정도입니다. 속인들은 시간이 나면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거나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QR코드로 진상을 알리는 것이 좋은 항목이 됐고, 저는 QR코드 디자인 방법을 배우고, 직접 링크를 얻어 QR코드를 제작하여 저 자신과 다른 수련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경로를 제공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매일 연공과 진상을 알리는 데 쓰는 시간이 적지 않지만, 속인들과 비교하면 매일 몇 시간 적게 자도 충분한 에너지를 유지했습니다. 속인의 오락이나 사교 활동이 없기에 제 학교 업무에 영향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제 업무 진도는 종종 다른 교사들보다 빨랐으며, 동시에 집에서도 해야 할 일을 모두 완수했습니다.

정진하는 수련생들과 비교하면 저는 여전히 차이가 크고 잘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앞으로의 수련 길에서 계속 바르게 잘 걸어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4/30/49047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4/30/4904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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