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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팀을 소중히 여기고 사부님께서 배치한 수련의 길을 바르게 가자

글/ 헤이룽장(黑龍江)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A 수련생과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법공부를 함께 해왔으며, 계산해보니 지금까지 15년이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서로 성격적으로 충돌하고 여러 마찰을 겪었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부족함을 깨닫고 점차 성숙해졌습니다.

A 수련생은 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접했으며, 자연스럽게 우리 현의 협조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부드러운 말투를 가졌고 일처리에 있어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특이’하고 생활 면에서 결벽증이 있습니다. 그녀는 누구와 지내든 항상 담담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기억하건대 2000년대 초반, 우리는 매주 7~8명이 큰 그룹으로 법공부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게 됐습니다. A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상태가 매우 뚜렷했고, 제 성격으로는 그녀 앞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활 환경이 우리를 점점 더 가깝게 만들었고, 그녀도 저에 대해 약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저는 직설적으로 말하고 돌려 말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비록 대법을 여러 해 접했지만 수련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게다가 당시 가족으로부터 겪은 경제적 난관으로 인해 거의 길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이때 그녀는 법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저와 함께 법공부하기를 원했습니다. 사실 당시 제 수련 상태로는 그녀가 저와 함께 법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심 약간 부담감이 있었고, 그녀에 대해 다소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 앞에서는 편하지 않고 말을 많이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A는 저녁에 제 집에서 법공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2010년경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그녀는 아직 은퇴하지 않았고, 매일 가방을 메고 휴대폰을 들고 왔습니다. 매일 우리가 법공부를 하다가 7시쯤 되면 그녀의 아들(다른 지역에 거주)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특별한 일은 없었고, 단지 습관적인 생활 안부 인사였습니다. 저도 그들을 이해했습니다. 낮에는 일로 바쁘게 지내다가 저녁 식사 후에 약간의 여유 시간이 생기면, 자녀들이 부모를 생각하며 연락하고 안부를 묻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녀가 이런 방식에 이미 익숙해진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아들에게 말씀하셔야겠어요. 이제 매일 저녁 법공부를 하고 있으니 이 시간에는 전화하지 않게 하면 어떨까요? 수련환경은 우리 스스로 만들고 변화시켜야 하는 거잖아요…” A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다음날 저녁에는 법공부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가 다른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틀림없이 심성관을 넘고 있을 거라고 알았습니다.

다행히 당시 저는 자책하는 상태에 빠지지 않고, 그저 그녀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반드시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루, 이틀, 그리고 4~5일이 지난 후 그녀는 마침내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법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모두 약간 어색했습니다. 법공부를 마친 후 저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제 말하는 방식이 이래요. 어떻게 말하고 싶으면 그냥 그렇게 말해요. 당신이 저처럼 할 필요는 없어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며칠 동안 당신이 한 말을 계속 곱씹어 봤어요. 사실 당신이 한 말에는 문제가 없는데 왜 제가 그렇게 불편해했을까요?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이게 바로 ‘다른 사람의 지적을 싫어하는’ 태도였던 거예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사실 제 말투가 너무 거칠어서 그랬을 거예요.” 우리가 속마음을 터놓고 나서, 그때부터 A는 더 이상 갈등을 피하지 않았고, 우리는 함께 진정하고 착실한 수련 상태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제 집은 단층집이고 자주 자료를 만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대문은 항상 잠겨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아직 문을 열기도 전에 A가 법공부하러 왔는데, 쾅쾅 문을 두드려서 저는 급히 열쇠를 찾아 뛰어나갔습니다. 이때 A는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철문이라 두드리면 소음이 매우 컸습니다. 저는 문을 열면서 말했습니다. “왔어요!” 이때 A는 즉시 저에게 쏘아붙였습니다. “당신이 정말 오는지 안 오는지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당시 저는 멍해졌고, 속으로 ‘망했구나, 이 말이 또 그녀를 화나게 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곰곰이 생각해보며 당시 문 여는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려봤습니다. 사실 A는 그런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고 함께 지내기에도 매우 좋은 사람인데, 왜 “왔어요”라는 한마디에 그녀가 또 화를 냈을까요? 차분히 생각한 끝에 저는 마침내 문제의 원인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그녀의 급한 문 두드리는 소리에 반감을 느꼈고, 그래서 불평하는, 짜증난, 그리고 매우 답답한 어투로 “왔어요”라고 말했던 것입니다(그 숨은 뜻은 ‘더는 두드리지 마’였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제 말투, 성격, 기질이 이미 자연스럽게 굳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어떤 상황에서든 그 조급함과 짜증스러운 어투가 숨김없이 즉시 드러났습니다. 저와 비교적 가깝게 지내는 수련생도 저에게 좋은 말도 좋게 하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부님도 여러 번 저에게 “선(善)을 수련하라”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당문화(공산당 문화) 속에서 자라고, 사랑과 따뜻함을 느낄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 성장했으며, 결혼 후에는 남편과도 맞지 않아 공통언어가 없었습니다. 남편의 쉽게 화내고 폭발하는 성격은 점차 저를 ‘강화’시켜 이에는 이로 대응하게 만들고, 악을 악으로 다스리게 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영향을 받은 저는 선량한 본성이 이미 묻혀버렸고, 심지어는 선이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해 어디서 선을 수련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정말 뼈에 사무치는 깊은 교훈을 얻었고, 마침내 제가 반평생 동안 말해온 어투가 정상인의 사고방식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좋은 수련생을 안배해 주시고, 직지인심하여 제 수련을 도와주셨습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저는 제 말투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깨달았다면 실천해야 하지만, 그것 역시 매우 어려웠고, 이는 제 수련 여정에서 오랫동안 가장 고통스러운 큰 난관 중 하나였습니다. 한번 느슨해지거나, 제멋대로 하거나, 심성을 지키지 못할 때마다, 다시 A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종종 그녀를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에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책망하고 미워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때때로 저는 A에게 마(魔)가 되어주었고, 매번의 마찰이 100% 제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저를 떠나지 않았고,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일을 협력하는 데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법공부에도 지장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A가 점차 포용력을 넓히고, 제 말투에 신경 쓰지 않으며, 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수련이 성숙해짐에 따라 지금은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사람을 상처 주는 말투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때로 자제하지 못하고 말이 나오자마자, 즉시 그것을 인식하고 붙잡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도록 억제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함께 법공부를 해온 지 15년이 됐습니다. 이 15년 동안, 매번 갈등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항상 각자의 부족함을 진심으로 마주하고, 서로 토론하며, 도망치거나 감추지 않았습니다. 교류 중에 정말로 사부님의 법광(法光)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고, 항상 대법에 의해 씻겨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또한 매일 명혜망의 교류 문장을 읽으면서, 우리가 안으로 찾는 것이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한 수련생이 두 번이나 웃으면서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당신들 두 사람은 성격이 잘 맞아서 이렇게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함께 할 수 있었네요…” 그렇습니다. 만약 사부님의 깨우침과 대법의 지도가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하루도 함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매일 수련에 있어서 함께 제고할 수 있는 주제가 있다고 느끼며,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이 수련 환경을 점점 더 소중히 여깁니다. 저는 A의 수련이 성숙해진 것을 보고, 또한 조용히 제 자신을 격려하며 정진하고 있습니다. A는 세 가지 일을 할 때 발을 땅에 단단히 딛고 진지하게 하며, 대충 하지 않습니다. 삼퇴를 권유할 때도 숫자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집에 특별한 상황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녀는 매일 나가서 삼퇴를 권하고 진상을 알립니다. 삼퇴 후의 이름은 98%가 본인의 실명입니다(이는 상대방이 삼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비록 매일 탈퇴하는 사람 수는 많지 않지만 A는 매일 변함없이 꾸준히 실천하고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법난(法難)》, 《각성하라(驚醒)》 두 편의 경문을 발표하신 이후,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 마음이 계속 괴로웠고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을 떠올리면 눈물이 났으며, 5~6일이 지나서야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간곡한 가르침과 거듭된 정성 어린 지도는 20여 년간 수련해 온 저와 같은 오래된 제자를 무척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제게 부족했던 것은 바로 ‘선의와 사랑’이었기에, 저는 제 수련 상태를 위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부님께서 명확히 말씀하신 이 부분의 법은 정진하지 못했던 제자인 저에게 다시 한번 수련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제가 이 교류 글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 아이가 타지에서 돌아왔습니다. 아이도 수련생입니다. 사실 아이가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대화하면서 충돌했고, 저는 이것이 제가 관념을 바꾸고 사람마음을 버리는 좋은 시기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아이가 저에게 말할 때 끈질기게 지적하며, 항상 저를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제가 말할 때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고, 말할 때 감정이 실려있으며, 제 말투가 아빠와 똑같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한 말에 대해 저는 마음으로 완전히 인정했고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여러 해 동안 말해온 방식이 어느새 남편과 같아졌고, 말할 때 정상적인 방식으로 하지 않고 항상 비틀어 말했습니다. 저는 매일 남편의 말투가 거칠다는 것만 보았고(때로는 반격하고 복수했습니다), 정작 자신은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제가 아이와 남편 앞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이 있어서였고, 바로 이 마음이 저를 방해해 표면적으로 완전히 대법에 동화되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이가 이번에 돌아온 것은 저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로,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저에게 수련할 기회를 거듭 주셨으니, 제자로서 감사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자는 반드시 고생스럽게 마음을 수련하여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보답하겠습니다.

저의 언어로 상처를 입은 수련생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진심으로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4/30/4930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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