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 자비로 세인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7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로, 현재는 교육 관련 업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여 년의 수련 과정에서 감격과 평온함, 시련을 경험했고, 중공(中共,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 이후에는 방황과 시련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남은 것은 대법에 동화되는 기쁨과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행복뿐이었습니다. 제 마음은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존경과 감사로 가득합니다. 아래에서는 제가 생활과 일 속에서 진선인을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자비롭게 세인을 구도한 일화를 적어 수련생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1. 순조롭게 일자리를 찾다

사악이 파룬궁을 박해했기에 저는 2년 넘게 억울한 옥고를 치렀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제가 원래 다니던 대형 국유기업은 이미 파산을 선언한 상태였고, 저는 새 직업을 찾아야 했습니다. 친척과 친구들은 제가 2년 넘게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기에 중공 경찰들이 겁주던 것처럼 현실 사회와 단절되어 길거리에서 신호등만 봐도 당황할 거라 생각해 저를 피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언제나 ‘진선인(眞·善·忍)’,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자리하고 있었고,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다른 공간의 여기에는 담장이 없다”라는 가르침을 굳게 믿었습니다. 노동수용소의 담장은 대법의 홍은(洪恩)을 막을 수 없었으며, 사부님의 우주 정법은 어디서나 동시에 이루어지기에 어느 곳도 빠뜨리지 않으십니다.

무일푼에 휴대폰도 없던 저는 거리에 나가 구인광고를 찾아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지원한 곳은 고급 가죽신발 가게였습니다. 면접 때 제가 파룬궁 수련생이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화 중에 파룬궁에서 배운 타인을 위한 배려심을 자연스레 보여주었습니다. 사장님이 저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으나 근무 시간이 너무 길어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사장님과는 평생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그 짧은 대화 후에도 그는 나중에 저를 볼 때마다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것이 제 능력이 아닌 사부님의 보살핌과 격려이며, 제 내면의 파룬따파 진선인의 빛이 그를 감동시켰음을 저는 깊이 알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지원한 곳은 유명한 보석 체인점이었는데 입사하려면 2천 위안의 보증금이 필요했습니다. 제게는 그런 돈이 없었고, 관리자가 특별히 천 위안으로 깎아주겠다고 했지만 그조차도 마련할 수 없어 무산되었습니다. 몇 군데 더 지원했으나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고, 결국 교육 관련 기업을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직장생활도 하면서 아이의 학업도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생각했습니다.

2. 일을 통해 대법을 실증하다

이 회사의 직원들은 대부분 고학력자였습니다. 제 학력은 높지 않았고, 게다가 공장에서 십수 년간 일하다 보니 학교에서 배운 지식도 대부분 잊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출근 후에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고, 솔직히 말해 마음은 두근거렸으며 과연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제가 취업에 성공한 것은 사부님의 안배이고 주신 기회라 믿었기에,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잘 수련한다면 반드시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일할 때는 항상 진지하고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었고,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작은 공책에 적어 퇴근 후 스스로 공부하거나 참고서를 찾아 해결했습니다. 업무가 다소 버겁긴 했지만 큰 실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속에는 늘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젊은 동료가 모두에게 “어젯밤 꿈에서 이 언니가 하늘에 있었어요. 앞으로 이 업계의 대가가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하늘에 있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것이 사부님께서 속인의 입을 빌려 저를 깨우치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로서 단순히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니라 법을 실증하는 사명이 있음을 상기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대법 서적을 읽고 법공부를 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정말로 다시 정상적으로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은혜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법이 지혜를 열어주셔서 그 이후 업무 모든 면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고, 자연스럽게 학과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제가 회사에서 진상을 알리는 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기업은 교육 출판 관련 업계에서 전국 10위권 안에 드는 회사로, 관리 체제가 상당히 엄격했습니다. 예를 들어 근무 시간에는 회사 문을 잠그고, 직원들은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었으며, 흡연이나 통화도 금지됐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은 출근할 때마다 억압감을 느꼈고, 이직률이 높아 오래 남은 직원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들 말로는 이런 상황에서도 몇 년마다 전 직원이 집단적으로 소동을 일으킨다고 했는데, 저도 그런 경험을 한 번 했습니다.

그때 모든 학과 책임자들에게 통지가 갔지만 저는 예외였습니다. 아마도 제 마음속에 ‘진선인’이 있고 폭력적인 혁명 사상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나중에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들이 저를 이질적 존재로 여겨 사장에게 제가 파룬궁수련생이라고 고발했습니다. 마침 계약 기간이 끝나자 회사는 저에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습니다.

평소 업무에서는 성실했고 허위 보고나 과장된 보고를 하지 않았으며, 동료들에게는 친절했고, 업무 배분에서는 공평했습니다. 항상 ‘진선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했기에 저를 아는 동료들은 대체로 우호적이었습니다. 권고사직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억울함과 분노도 느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시련을 담담히 마주했습니다. 사장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기에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며 소위 파업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그런 이유로 저를 해고한다면, 귀하의 직원 선발 기준은 무엇입니까? 귀사는 어떤 미래를 지향하는 겁니까?” 사장은 이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를 위로하려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마 그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제 사무실 동료들도 모두 저를 위해 항의했고, 일부는 심지어 ‘삼퇴(三退, 중공의 당·단·대 조직 탈퇴)’를 통해 저에 대한 지지를 표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그 회사를 떠났습니다. 아쉬운 점은 당시 사장에게 파룬궁 진상을 더 자세히 알려주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회사 사장이 사람을 보내 저를 다시 불렀을 때, 저는 전체적인 환경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느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3. 대법이 은원(恩怨)을 풀다

중공 당서기가 교체되던 해, 일부 정책 결정이 지연되면서 우리 업계는 큰 타격을 받았고, 저는 세 번째 회사로 옮기게 됐습니다. 회사 책임자는 제 이력서를 보고 수습 기간 없이 바로 일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첫 출근일, 상사가 업무를 내 앞에 던져놓고 그냥 가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셔야죠”라고 말하자, 그는 고개를 들며 “당신이 경험 많은 베테랑 직원 아닌가요? 이런 일도 못하나요?”라고 반박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경험은 있지만, ‘입향수속(入鄕隨俗, 그 지역에 들어가면 그 지역의 풍속을 따른다)’이라고 현지 관습도 따라야 하니,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에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 돌아서서 업무 요건을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이 대응이 그에게는 신선했던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입향수속’이란 말을 언급할 때마다 재미있다며 한참을 음미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비교적 정진했고, 일할 때도 마음이 순수하여 득실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평범한 일들이 상사들에게는 놀라운 일로 보였습니다. 한번은 사장이 매우 까다로운 일을 맡겼는데, 매니저는 밤 10시까지 야근해도 끝내기 어렵다고 예상했습니다. 아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고, 모두가 시도해보니 뜻밖에도 저녁 8시에 모든 작업이 완료됐습니다. 매니저의 업무 강도도 줄이고, 업무 배분의 어려움도 덜어주고, 동료들의 야근 시간도 단축시켜 모두가 기뻐하며 환호했습니다.

이로 인해 회사는 저를 중점 육성 대상자로 선정하여 견문을 넓힐 수 있게 출장을 주선했습니다. 사부님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저는 북쪽 노선을 선택했습니다. 가는 동안 법공부와 연공 조건이 되지 않아, 매일 일과를 마친 후 《전법륜》의 《논어》를 암송하고 그날 제 언행이 ‘진선인’ 표준에 맞는지 점검했으며, 잘못된 점을 발견하면 즉시 바로잡았습니다.

열흘 남짓한 여정 동안 낮에는 고객 만남이나 시장 조사를 하고, 밤에는 기차에서 쉬었습니다. 침대칸을 구하지 못하면 일반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기차에서도 사적인 대화는 하지 않았고, 잠이 오지 않으면 발정념으로 정화했습니다. 동행한 매니저는 여정이 힘들다고 했지만, 저는 대법이 함께하기에 괜찮았고 오히려 충실한 시간이라 느꼈습니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후, 매니저가 출장 보고서를 작성하려고 제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흔쾌히 주었는데, 그는 다 쓴 후 아무 말 없이 옆에 버려두었고 저는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이미 먼지가 쌓인 것을 보고 물어보니 더 필요 없다고 하여, 화내지 않고 조용히 자료를 회수했습니다. 그의 행동이 지나쳤는지, 보고서 작성 후 그의 한쪽 팔에 갑자기 감각이 없어졌고 의사도 원인을 찾지 못해 그는 두려움에 울었습니다. 저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과일을 사서 문병했습니다.

이후 사장이 저를 관리자로 발탁하려 했지만, 과거 공장에서의 여러 직책 경험에도 회사 관리 측면에서 수련의 길을 잘 찾지 못했기에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이 관리자에게 전해져 그는 저를 곳곳에서 방해했습니다. 한번은 외부 가공업체에 부품을 전달했는데도 불구하고, 납기가 지연됐고 미완성된 부품이 제 책상에서 발견됐습니다. 매우 당황했지만 평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어주는 동료들 덕분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 한번은 출판사 강사가 직원 교육 후 제게 느낌을 물었는데, 제가 대답하기도 전에 관리자가 달려와 제 손에 과일접시를 밀어넣고 강사의 팔을 끌고 가버렸습니다. 영문을 모르고 잠시 멍했지만 화가 나기보다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현실에서 벌어져 웃음이 나왔습니다.

비록 개의치 않고 화도 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관리자에게 직접 진상을 알리려 했으나 그는 겁을 먹고 도망쳤습니다. 나중에 그의 딸이 회사에 왔을 때, 그녀가 무용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션윈(神韻)을 소개해줬고, 이를 계기로 우리 사이의 갈등이 완화됐습니다.

그 후 누군가 파룬궁을 이유로 회사에 문제를 일으키려 했고, 심지어 경찰을 선동해 회사에 와서 심문하게 했지만 이 관리자는 협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법 사부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빈부귀천을 가리지 말고 모든 생명을 보물처럼 여기고, 자비롭게 대하며, 세심히 보호하라고 하십니다. 중국 대륙 동포들과 전 세계의 선량한 사람들이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알고, 이를 추구하며, 이를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4/29/492511.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4/29/492511.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