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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관념을 돌파한 수련 과정

글/ 산시(陝西)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다섯 살 무렵에 대법을 얻고 지금까지 거의 30년간 수련해왔습니다. 어릴 적엔 착실한 심성 수련의 기초가 탄탄하지 못했습니다. 1999년 중공이 박해를 시작하면서 긴 시간 동안 법공부가 불규칙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에야 다시 가정 수련 환경을 얻게 되어 대법 수련을 새롭게 열심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파룬궁수련생과 가정을 이뤘고, 지금까지 꾸준히 수련의 길을 걸어올 수 있어 다행입니다.

지금 저는 청년 대법제자로서, 일상에서는 위로는 부모님, 아래로는 자녀를 돌보며 무거운 책임과 짐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수련하고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는 책임이 더욱 막중합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에서 저는 최근 1~2년간의 수련 심득을 공유하여 수련생 여러분과 함께 향상하고자 합니다.

아버지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관념을 돌파하다

정진하는 많은 수련생과 비교하면 제게는 수련이 필요한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배우자가 속인인 수련생 가정과 비교하면 제 가정의 수련 환경은 비교적 좋은 편이지만, 속인 사회 속에서 살면서 제 여러 집착과 얽매임, 그리고 중국공산당(중공)의 가족에 대한 끊임없는 박해로 인해 한때 의기소침하고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2022년 겨울, 7년간 피신 생활을 하던 아버지가 납치됐을 때 그것은 청천벽력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제가 잘하지 못해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자책했고, 그런 자책이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 기간에 저는 제 수련을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평소 개인 사업을 하던 중이었는데, 코로나19 봉쇄 기간에는 경제적인 압박이 상당했고, 수련에 정진하지 못하면서 여러 문제가 쌓였지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박해가 다시 가족에게 닥쳐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걸까요? 큰 측면에서는 친정에 대한 집착과 의존이 하나고, 명리심(名利心,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에 대한 고수가 또 하나였습니다. 작은 측면에서는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쉽게 격해지는 감정, 안일함, 질투심, 경쟁심, 두려움 등이 계속해서 제 수련을 막았고, 법공부를 할 때도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없었으며, 진상을 알리는 일도 불규칙하게 했습니다. ‘왜 내 사람의 마음은 이리 무거울까? 이렇게 오래 수련했는데 왜 아직도 이토록 많은 인간적인 마음을 버리지 못할까? 사부님께서는 날 더 이상 돌보지 않으시겠지?’ 하는 의심이 자주 들면서 구세력의 함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사부님께서 제가 여전히 잘 수련하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보시고, 기회가 무르익었을 때 수련생들을 통해 도움을 주셨을 것입니다. 한 수련생이 제 문제를 발견하고 법리에 더 밝은 다른 수련생을 불러 저와 교류하게 했습니다.

그날, 그 수련생의 말투는 매우 날카로워서 일반인이라면 그런 어조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당시 13살이던 제 딸아이가 옆에서 반발했습니다. “어떻게 우리 엄마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제 마음은 무척 평온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보내 저를 도와주신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수련생의 법리적인 교류를 받아들였고, 그가 말한 모든 것이 이치에 맞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딸에게 말했습니다. “그분들 말씀이 다 맞단다.” 그 순간, 마치 제 몸을 감싸고 있던 한 겹의 막이 벗겨지는 듯했고, 마음속에서 전에 없던 기쁨과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점차 법공부할 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게 됐고, 한 번에 세 강의를 교란 없이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전에는 책을 집으면 이런저런 잡념이 들거나 생활의 사소한 일들에 방해받아 법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법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번 큰 돌파를 통해 저는 한 가지 법리를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화타는 조조(曹操)의 머릿속에 종양이 있는 것을 보고 두개골을 열고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자고 했다. 조조는 듣자마자 화타가 그의 머리를 자르려 한다고 생각해 화타를 가뒀으며, 화타는 결국 감옥에서 죽었다. 조조가 병이 재발했을 때, 화타가 생각나서 화타를 찾았으나 화타는 이미 죽었다. 후에 조조는 정말로 이 병으로 죽었다.”

저는 당시 제 문제가 조조의 종양과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신의 관념을 고집하며 문제 해결을 거부하고 변명하며 미뤘다면, 아마 저는 여전히 돌파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다른 공간에서 모든 것을 명확히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수련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여전히 수련할 수 있는지, 모두 사부님께서 살펴보고 계십니다. 사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계속해서 자신의 집착(종양)을 제거하고 매일 법공부 시간을 확보하며 정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진상을 알릴 때 사람들을 구할 수 있고, 구원을 위한 모든 활동이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번 돌파 이후 제 두려움이 예전만큼 강하지 않게 됐고, 제한된 근무 시간 속에서도 한동안 매주 한 번씩 밖에 나가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했습니다. 그 기간 수련생들과의 협력이 원활했고, 매번 나갈 때마다 인연 있는 이들에게 진상을 명확히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당·단·대 조직 탈퇴)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진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만나면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기뻐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차분하게 텔레비전 선전물이 모두 거짓임을 알려주면서 제 쟁투심을 억제했습니다. 가족이 박해받은 이후로 거리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계속 제게 장벽이었지만, 실제로 나가보니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점차 끊임없는 향상을 통해 제 능력 범위 내에서 진상 알리기 항목을 조직할 수 있게 됐고, 자녀도 정진하도록 이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수련 상태를 계속 돌파하는 과정에서 저는 아버지를 구출하고 아버지가 받는 박해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과정에서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항상 적절한 시기에 도움의 손길이 있어서 아버지가 구치소에 갇혀 있을 때도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몇 편의 새 경문을 볼 수 있었고, 이로써 아버지의 수련 의지도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현재 이 시점에서는 대규모 박해가 줄어들었지만, 사악은 여전히 극악하며 박해는 주로 감옥에 집중돼 있습니다. 수련생이 감옥에 들어가면 가족과의 면회가 매우 어렵고, ‘전향’하지 않는 많은 수련생들이 상당히 오랜 기간(1~2년, 심지어 몇 년 동안) 가족을 만나지 못하며 감옥에서 심각한 박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불법적으로 매우 무거운 형(12년)을 선고받으셨습니다.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간 첫날부터 저는 감옥 당국과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계속해서 제 두려움을 수련으로 제거했고, 감옥경찰들을 대할 때는 최대한 그들의 부정적인 요소를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며, 인정과 윤리적 측면에서 그들을 감화시키려 했습니다. 한 달 반 동안 네 번의 왕복 끝에, 저는 마침내 장벽을 허물고 감옥에서 아버지를 면회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상태도 점차 호전되어 몇 달간 잃었던 청력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감옥 면회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심성 시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감옥 행정관리과 사람들과 협상할 때, 그들은 제게 파룬궁을 수련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직접 대답하지 않고 인간적인 효도와 윤리 측면에서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감옥 상황을 걱정하는 건 우리의 책임이며, 자녀로서 피할 수 없는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며, 이웃들도 다 알고 있고, 파룬궁 서적들은 모두 합법적이라고 했습니다. 잠시 대화한 후, 그들은 아마도 우리 가족에게 아버지를 ‘전향’시키도록 도움을 요청하려 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들 앞에서 저는 계속 발정념을 했고, 나중에 한 과장이 더는 말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나중에 절 괴롭히려고 면회 수속을 제출할 때 감옥 직원들이 지역 파출소에서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는다는 증명서’를 가져오라고 요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면회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반문했습니다. “이런 요구에 법적 근거가 있나요? 어떤 법 조항에 명시돼 있나요? 그 법 조항을 보여주세요.” 면회 대기실에는 많은 재소자 가족들이 있었고 모두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봤습니다. 감옥 대기실의 몇몇 직원들은 할 말을 잃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갔을 때, 감옥직원들은 이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 심성을 시험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두려워하는지, 물러서는지, 사부님과 법을 믿는지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제 의존심도 발견했습니다. 오빠가 속인이라 그에게 나서서 해결하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이 옳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대법제자가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이 기간에 저는 오빠에 대한 불평과 조바심도 있었습니다. 제가 계속 아버지의 일을 처리하는데, 오빠는 소극적일 뿐 아니라 계속 포기하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수련인으로서 이런 태도는 명백히 옳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선해야 하고, 가족에게는 더욱 선해야 합니다. 나중에 오빠가 무슨 말을 하든 저는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함께 문제 해결 방안을 상의했으며, 마음을 가라앉힐 때는 발정념을 통해 그의 뒤에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상황이 갑자기 호전되어 순조롭게 면회할 수 있게 됐고, 오빠도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다가 적극적으로 바뀌어 정념을 갖게 됐으며, 저와 함께 아버지의 상황에 적시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주변의 속인들이 대법제자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속인들은 항상 눈에 보이는 것을 현실로 여기는 기준을 가지지만, 수련인으로서는 정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장애가 있든 자신의 정념을 굳건히 하고 행동해야 하며, 결과만을 좇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결과는 오히려 ‘산 첩첩 물 겹겹이라 길 없을까 의심됐지만, 버들 우거지고 꽃 만발한 마을 또 있구나(山重水複疑無路,柳暗花明又一村)’(역주: 송나라 시인 육유의 시)라는 말처럼 될 것입니다.

모든 경험은 인간적인 마음과 집착을 버리는 과정입니다. 이번 일을 통해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마음과 정념의 힘을 느꼈습니다. 이번 감옥 면회 돌파로 인해 여자 감옥에 불법적으로 구금된 다른 수련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지역 내 여자 감옥에 불법적으로 구금된 한 수련생은 2년간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 아버지 면회가 성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 감옥에 불법적으로 구금된 몇몇 수련생의 가족들이 통지를 받았고 감옥에서 스스로 가족 면회를 허락했습니다. 여자 감옥은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항상 극도로 심했는데, 아마도 이번 돌파가 감옥의 사악한 요소들에게 위협과 제거 효과를 가져와 여자 감옥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사부님과 법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니, 우리는 자신을 잘 수련하고 해야 할 일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현지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고 착실하게 수련해 제고하다

2024년부터 저는 지역 수련생들의 단체 법공부 소모임에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제가 어떤 법리를 깨달았더라도 수련생들에게 많이 이야기하지 않고 일부 수련생과만 교류했으며, 그마저도 불규칙했고 다른 수련생들 앞에서 제 집착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법공부 모임의 수련생이 왜 말을 안 하느냐고 물었을 때, 저는 항상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기에 제고도 매우 느렸습니다. 한번은 제가 스쿠터를 타다가 넘어졌는데 저는 왜 넘어졌는지 깨달았습니다. 이 일을 법공부 모임에서 나눴을 때, 수련생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저는 순간적으로 교류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속인들도 아는 ‘문을 닫아걸고 수레를 만들면 실패한다(閉門造車)’는 말처럼, 저는 계속 제 고집에 집착하며 자신을 고립시켜왔습니다.

나중에, 마침 한 수련생이 제가 넘어진 일과 관련이 있었는데, 그를 만났을 때 저는 이 일에 대해 그와 교류했고 그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곧 저는 수련생들에게 여건이 되는 한 함께 법공부를 하면 제고가 더 빠를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합의한 후, 우리는 아침과 저녁 두 개의 법공부 소모임을 구성했습니다. 아침에는 손자를 돌보는 노년 수련생과 함께 공부했는데, 매일 함께하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매일 이어갔습니다. 노년 수련생은 이 기간에 제고가 매우 빨라서 (힘이 생기고 몸이 가벼워져) 걸을 때마다 뛰고 싶어 하고, 생각의 변화도 크며, 정념도 점점 강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저녁 모임에는 세 명의 어린 대법제자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숙제하는 데 시간을 끌어 밤 11시가 되어도 끝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매주 이틀은 저녁 9시경에 숙제를 마치고 함께 한 시간가량 법공부를 합니다. 어린 수련생들은 매번 법공부가 끝난 후 ‘홍음’ 한 편을 암송합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도 어린 수련생들이 점차 정진하게 됐습니다.

한 수련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999년 그때 단체 법공부 환경으로 돌아간 느낌이라 정말 좋아요! 항상 이런 소망이 있었는데, 정말로 실현될 줄은 몰랐어요.”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10년 동안 기다렸어요.” 사실 10년뿐만 아니라, 천만 년의 인연이 있어야 함께 모여 정진할 기회를 갖는 것인데, 지금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 아쉬움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저는 수련 중에 여전히 많은 부족함이 있고 많은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앞으로의 수련에서 법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고 자신을 제고하며, 더 많은 중생을 구하고 마지막 수련 길을 잘 걸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부끄럽지 않게 하겠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4/3/4922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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