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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수련생들과의 갈등 속에서 자신을 제고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얻은 지 거의 30년이 된 대법제자로, 수련의 길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번은 제가 처음으로 투고하는 글이며, 주로 수련생들과의 갈등 속에서 저 자신을 수련한 체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점은 수련생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법제자들이 여전히 박해받고 있는 중국 대륙에서는 과거처럼 대규모로 모이거나 교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교류하는 수련생은 한정적이며, 게다가 병업(病業) 고비나 불법 구금 등의 이유로 수련생들이 계속해서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이 생겨 쉽게 교류를 끊게 되면, 수련 환경이 변하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계속 걸어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몇 명의 수련생들과 연락이 끊어진 적이 있습니다. 제가 먼저 그들과 연락을 끊은 경우도 있었고, 다른 사람이 저와 연락을 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서로 간의 갈등이나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해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어떤 수련생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제게 동등한 도움을 주지 않았고 제가 먼저 연락하고 도와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결국 제 마음이 균형을 이루지 못해 더 이상 그 사람을 찾지 않았고 상대방도 저를 찾지 않아 연락이 끊겼습니다. 몇 년 후 우연히 다른 자리에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그녀는 제게 분명한 감정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그녀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한 명은 오랫동안 함께 협력했던 수련생인데, 제가 그녀의 한 문제에 대해 제 의견을 말했을 때 그녀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같은 문제를 말했을 때도 그녀는 마찬가지로 거부감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매우 사랑해서 누구도 자신의 아이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그녀는 저와 멀어졌고, 결국 연락이 끊겼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저는 그 지역에서 함께 협력할 수련생을 잃었고 결국 그곳을 떠나게 됐습니다.

수련생의 소개로 지금 함께 법공부를 하는 수련생들을 알게 됐습니다. 사부님의 배치에 감사드립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결국 홀로 수련하는 신세가 됐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수련생들과의 인연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대법제자들은 모두 하늘에서 대법을 얻기 위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바로 이 성스러운 인연입니다. 층층이 내려와 인간 세상에 윤회하는 과정에서 대법제자들 사이에 맺어진 인연은 선한 인연일 수도 있고, 원한과 원망이 있어 업력의 윤회 속에서 갚아야 할 빚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은 성스러운 인연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부정적인 것들이 존재하며, 게다가 이러한 것들은 구세력이 일부러 우리에게 강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안으로 찾고 서로를 포용하며, 갈등을 자신이 넘어야 할 심성 고비로 여기고 서로 잘 협력한다면, 중생을 구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구세력의 독한 계략에 빠져 대법제자들의 수련 환경이 파괴되고 우리가 하나의 정체(整體)를 이루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직장에 한 수련생이 있는데, 그녀는 박해가 시작되기 전에 잠시 수련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와 여러 해 동안 같이 일하면서도 그녀가 수련했다는 사실을 몰랐고, 나중에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그녀가 점차 수련으로 돌아왔습니다. 알 수 없는 전생의 인연으로, 우리는 서로를 거의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이였습니다. 그녀의 모습이 저는 마음에 들지 않았고 수련하는 사람이 어떻게 속인과 똑같을 수 있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제 모습 또한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제가 말하는 방식이 너무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런 불만을 마음속에 간직했고 저는 그녀에게 정말 문제가 있을 때만 말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제가 다른 수련생에게 법을 전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저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녀의 비난에 저는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수련생으로서 그녀와 다투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울었습니다. 그 후로 마음속에 장애물이 있어도 저는 여전히 그녀에게 ‘명혜주간’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그녀가 보고 싶어 하지 않고 때로는 볼 시간도 없었지만, 사부님께서 그녀를 관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를 수련생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수련생으로서의 본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우리 사이의 인간적인 갈등이 어떤 것이 있더라도 대법에서의 협력에 영향을 미치지 말자고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수련생들 사이는 감정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인간 세상의 것이며,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서로 같은 마음으로 이 세상에 와서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성스러운 인연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에서 제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는 제가 배운 또 다른 교훈, 즉 자기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인간 세상에서 능력이 부족한 평범한 사람입니다. 표현하거나 반응하는 것이 느리고 종종 괴롭힘을 당하고 얕보이며, 한때는 매우 자존감이 낮은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자신이 세상을 품을 수 있고 내적 성품이 뛰어나다고 생각했고 특히 법을 깨달은 후에는 더욱 자만심이 강해져 수련생과 세상 사람들에게 과도한 ‘열정’을 가졌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에게 어디가 잘못됐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어 했고, 자신이 남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남을 가르치려 하고 간섭하는 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이 내 말에 반감을 느끼거나 오해할 때면, 제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졌고 결과적으로 오히려 상대방의 더 강한 반감을 샀습니다. 결국 자신과 수련생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수련생을 대할 때는 상대방에게 집중해서 어떻게 수련하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수련 중인 사람들입니다. 제가 수련생의 본질적인 상황을 명확히 볼 수 있을까요? 그의 전생에 걸친 복잡한 인연 관계를 알 수 있을까요? 수련생에게는 사부님이 있어 관리하고 계시며, 그에게는 그만의 길이 있습니다. 단지 그가 대법에서 벗어나지 않고 원칙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격려해야 합니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기준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수련이 좋아질수록 오히려 다른 사람을 더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깊이 생각한 후, 직장 동료인 수련생과 더욱 신중하게 교류하게 됐습니다. 특히 그녀가 아직 저에 대해 의견이 있는 상황에서는 제가 무심코 한 말 한마디가 그녀를 자극할 수 있으므로, 더욱 말을 조심하고 대화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그녀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더는 남을 가르치려 강요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하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기공사가 사람을 치료하는 것과 같아 상대방을 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오염시키게 됩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건 사부님이시며 대법입니다. 사부님의 제도 없이는 우리는 자신의 안전조차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저는 이성적으로 대처하며,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선에서 멈추고 진정으로 상대의 입장에서 수련생을 돕고자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수련생에게 다가가려 합니다.

또 다른 깊이 있는 깨달음은 질투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질투심은 매우 강했고 심지어 수련 후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버리지 못했습니다. 질투심 때문에 많은 잘못된 행동과 말을 했습니다. 이 마음은 동료 수련생과의 갈등 속에서 드러났고 이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 이를 제거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이 수련생에게 감사하며, 그녀와의 갈등을 통해 많이 성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수련생은 거짓말을 통해 혹서기와 혹한기에 집에서 휴식을 취하면서도 출근 기록을 조작했고 평소에도 늦게 오고 일찍 가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녀는 영리한 사람으로, 자주 이익을 위해 상사와 논쟁하며 손해 보기를 꺼렸고 상사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 저는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며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안으로 찾아보니 질투심을 발견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도 이러한 이익을 얻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더 많은 휴가를 원했던 건 아닐까요? 다만 제가 대법제자로서 이익을 위해 거짓말하거나 다투지 않을 뿐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그녀의 현재 수준에서의 선택이며, 그녀의 수준에서는 이러한 행동에 큰 문제가 없다고 느낍니다. 제가 무엇을 질투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이는 제가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없애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속인의 옳고 그름은 매우 복잡합니다. 그녀는 집에서 쉬는 동안 해야 할 일이 있을 수 있고 그녀가 얻은 이익은 아마도 그녀의 몫일 수 있습니다. 설령 그녀가 잘못했더라도, 그녀는 수련 중이며 사부님께서 관리하실 것입니다. 그녀가 이러한 마음을 버려야 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입니다.

저의 질투심은 인간관계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현재까지 저는 친구가 거의 없어서 홀로 지내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지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특히 다른 수련생이나 동료들이 서로 친밀하게 대화하고 웃으며 지낼 때, 저는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들 속에 섞여들기 위해 저는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좋지 않은 습관을 기르게 됐습니다. 다른 이의 눈치를 살피고, 타인의 감정에 좌우되며, 억지로 말을 걸어 대화를 시작하고, 지나치게 다른 사람들을 배려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노력해도 여전히 그들은 저와 가까워지지 않았고, 제가 상처받았다고 느끼는 일들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마음이 슬퍼지고 균형을 잃게 됐으며, 이러한 질투심은 강한 과시욕과 원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바로 이 질투심 때문에 제가 수련생들에게 지나치게 헌신했던 것인데, 상대방은 마치 그것이 당연한 듯 여겼고, 결국 저는 그들과의 관계를 끊게 됐습니다.

수련을 통해 저는 이런 문제들을 점차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사람마다 생생세세(生生世世)의 인연은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좋은 것은 그들의 전생에서 맺어진 인연이며, 서로 주고받은 것의 결과입니다. 제가 무엇을 질투할 이유가 있을까요? 왜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작은 집단에 억지로 끼어들려고 했을까요? 결국 이것은 외로움과 적막함을 견디지 못해 우정의 따뜻함을 얻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수련생들 간의 인연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수련생들이 있다는 것은 그들 사이에 성스러운 인연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사부님께서 정법(正法)의 필요에 따라 배치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관계에서 질투하지 않고, 아부하지 않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대법제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자존감과 평화로운 마음을 보여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수련 과정에서는 주변에 다른 수련생이 있든 없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진지하게 수련해야 합니다. 본래 수련이란 자신을 확실히 향상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외부 환경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명백히 알아야 할 이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실 것이며, 명혜망(明慧網)은 대법제자들의 교류 플랫폼입니다. 제가 무엇을 더 추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부님께서 최근에 발표하신 ‘각성하라(驚醒)’ 경문은 제가 가진 문제들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해주었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이래로 수련생들과 발생했던 갈등들을 돌아보니, 표면적으로는 제가 매우 옳아 보였지만, 사실은 저의 여러 집착과 이기심으로 인해 수련생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들을 자비롭고 포용적으로 대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부님께서 이 글을 발표하시기 직전, 직장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진상을 알고 있는 속인 동료가 세 개의 과일을 따서 자신이 하나를 갖고, 저와 다른 수련생에게 각각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과일에서 저는 우연히 우담바라 꽃을 발견했습니다. 매우 흥분된 마음으로 그 과일을 가져가 깊이 생각한 후, 저는 그 과일을 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위에 핀 우담바라 꽃은 세 송이가 매우 가깝게 피어있었고, 특별히 아름답게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우리가 이 세 송이 우담바라 꽃처럼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상은 수련생들과의 갈등 속에서 수련하며 얻은 약간의 깨달음, 또는 교훈입니다. 수련의 향상은 끝이 없으며, 집착심 역시 계속해서 한 층 한 층 제거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저의 향상 역시 제한적입니다. 사부님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운 제도에 감사드리며, 수련생 여러분의 진심 어린 도움에도 감사드립니다.

글에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3/26/4919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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