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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상태도 일종 ‘난관’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에 법공부를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니 새로운 체득이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수련을 시작할 당초에, 마음이 아주 견정했다. 어떤 사람은 장기간 형성된 각종 집착을, 수련 중에서도 내려놓기 아주 어려워했고, 시간이 길어지니, 어떤 사람은 자신을 느슨히 했다.”(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상황이었다.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하는데, 줄곧 정진하지 못하고 느슨할 때가 많았으며 늘 기운이 없는 상태였다. 이런 나태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이것이 바로 ‘난관’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했으며, 확고한 정념으로 진정 부정하고 돌파하지 못했다.

지금 나는 최후의 관건은 절대로 느슨해져선 안 된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반대로 느슨한 수련을 초래하고, 오랫동안 형성되어 버리지 못한 각종 집착은 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며칠 전, 수련생이 쓴 ‘원망’에 관한 체득 문장을 보면서 자신의 문제를 생각해보았다. 갑자기 보따리가 열리면서 한 무더기 ‘원망’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전에는 명확히 의식하지 못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많은 일에서 이 ‘원망’이 나타났다.

이 원망을 한마디로 개괄하자면 자신의 사람 생각[人念]을 고수하는 것인데, 여러 측면에서 표현된다.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면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만이다. 예를 들어 욕망(듣기 좋은 말)이 충족되지 않거나,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거나, 평형심이 충족되지 않거나, 남보다 못한 자신에 대한 불만, 타인의 결점에 대한 불만, 지속되는 박해 속에서 시간에 대한 집착, 법공부할 때 한눈팔고 연공할 때 기운 없음에 대한 낙담, 진상을 알릴 때 거절당하고 화를 내는 사람을 만나서 낙심하는 것, 수련생들과 협력할 때 원망을 들으면 생기는 불만 등이 있다. 사실 불만이나 불쾌함이 생기면 바로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며, 곧 집착이다. 법공부를 잘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없고, 일을 할 때면 흐리멍덩해져 집착에 이끌린다.

이런 원망은 사욕, 정, 질투에서 비롯된 것으로, 자신이 생생세세 누적해 온 업력이기도 하다. 수련하면 그것이 제거되겠지만, 또 그것은 수련을 가로막으려 한다. 내려놓지 않으면 점점 더 두꺼워져 그것이 당신을 조종하기 쉬워진다. 어떤 일념이 나오느냐에 따라 사람과 신이 나뉜다. 정념(正念)이 나오지 않으면 곧 인념(人念)이며, 사람을 자주 ‘느슨함’이라는 난관에 처하게 한다. 정념이 없으면 수련할 결심을 내릴 수 없다. 낙담에다 안일함까지 만족하게 되면, 진정으로 그것을 집착으로 여기고 결심해서 없애지 못하게 된다. 이는 이 난관을 넘기 싫어하는 것과 다름없고 이 업력을 없애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집착심들의 뿌리를 보면 모두 ‘사욕(私)’이며, ‘나’를 중심으로 도는 것들이다. 사(私)를 위하는 것은 구(舊)우주의 특성인데, 인간 세상에서는 사(私)에 정(情)이 더해져 각종 사람의 관념이 형성된다. 수련인이 법에 동화되어 신(新)우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모두 집착이자 난관이다. 난관 속에서 집착을 잘라내지 않으면 제고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대법제자의 사람마음이 너무 많고・너무 중하여 일에 부딪히면 법에 있지 않고 사람마음으로 문제를 보기에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하지 못한 사람은 난이 큰데, 이대로 가다가는 매우 위험하다!”(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왜 위험한가? 내가 깨달은 바로는 느슨함 때문에 “수련을 처음과 같이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는 것을 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공부를 잘하지 않아 마음에 와 닿지 않으면, 수련 중에서 잘 해내기가 어렵고 진정하게 수련[眞修]하고, 착실하게 수련[實修]하려는 의지도 약해진다. 느슨한 상태가 아니라면 고생스러운 상태일 텐데, 편할 수 있겠는가? 몸이 편치 않으면 마음도 편치 않다. 불편함을 다 참아낼 수 있어야 한다. 내려놓지 못하면 수련이 어렵다고 느끼는데, 업력이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정말로 의지가 강해야 내려놓을 수 있다.

편안함과 고통도 아마 살아있는 것일 것이다. 우주의 법리와 대조해 보면 인간의 이치는 반대이다. 느슨해지면 물질적 신체에 편안함을 주고, 정진하며 집착을 제거하면 고통스럽고 심지어 심장을 도려내고 뼈를 꿰뚫는 느낌을 준다. 미혹 속에서, 반리(反理) 속에서 당신이 어떻게 수련하는지 본다. 정신이 맑지 못하면 사람마음을 자신으로 여기기 쉽고 좀처럼 제고되어 올라가지 못한다. 생생세세 따라다니는 업력은 육신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기에 주의하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고, 발견하지 못하면 이끌려 가게 된다. 법의 요구에 따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수련인데, 내가 그 속에서 느슨해지고 안일해진다면 어찌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는가? 수련이 안 되는 것이다.

난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수련생 여러분, 우리 모두 법 속에서 함께 정진합시다.

층차의 한계가 있으니 법에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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