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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보호로 거대한 난관을 걸어 지나오다

글/ 내몽골 대법제자

[명혜망] 1996년 6월 29일, 어떤 사람이 파룬궁은 사람에게 ‘진선인(真·善·忍)’을 가르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특별히 선량해 보여서 저는 눈물이 날 정도였고, 그래서 파룬궁을 배우러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가서 설법 영상을 보았는데 사부님께서 즉시 제 몸을 조절해주셨습니다.

당시 저는 온몸에 병이 있었습니다. 신경성 두통, 간질환, 위장병, 월경불순, 좌골신경통, 관절염, 심장병, 불면증, 온몸의 뼈마디 통증, 손 통증 등이었고 머리가 심하게 아플 때는 구토까지 했습니다. 키는 172cm인데 체중은 고작 46kg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한 후 병이 없는 것이 얼마나 상쾌한지 체험했고, 일할 때도 피곤하지 않았으며 체중이 75kg까지 늘었습니다. 저의 변화를 보고 어머니와 딸도 대법을 수련하게 됐습니다.

1. 가정 분위기가 달라지다

수련 전에는 시댁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시아버지는 은퇴 후 남편이 일을 이어받지 못하게 하고 남편의 작은아버지에게 이어받게 하셨습니다. 시어머니도 집과 땅을 모두 작은아버지에게 주어서 저와 남편은 맨몸으로 밖에서 셋방살이를 했습니다. 저는 그때 오기로 돈을 벌었고 잘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생활은 좋아졌지만 제 몸도 망가져 온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후 모든 병이 없어지고 마음이 상쾌해졌습니다.

저는 시댁 사람들에 대한 태도도 바꾸기로 했습니다. 설이나 명절에는 시부모님을 저희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했고, 생신도 챙겨드렸습니다.

제가 반찬가게를 하고 있어서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대접하곤 했는데, 그분들은 매우 기뻐하셨고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과거의 문제를 기억하지 않고 아주 착해졌으며 몸도 건강해진 것을 보시고 “이 대법은 분명 좋은 거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시누이는 “우리도 가서 대법에 대해 들어보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설법 영상반에 가서 대법 수련을 시작했고, 저는 그들에게 공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후 시어머니의 대상포진이 나았고 괴팍한 성격도 좋아지셨습니다. 이 집안에 전례 없던 화목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저는 반찬가게를 운영하면서 진선인의 마음가짐으로 장사했고, 손님들도 저와 거래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제가 식당에 배달을 갔을 때 한 손님이 돈을 줄 때 300위안을 더 주었는데 저는 그대로 돌려주었습니다. 그 손님은 기쁜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모두 파룬궁을 연마한다면 이 사회는 좋아질 거예요. 문을 열어놓고 생활할 수도 있겠죠. 앞으로는 아주머니께 물건을 사겠습니다. 품질과 값이 정직하니까요.”

2. 흔들림 없이 수련의 길을 걷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과 중공은 대법을 박해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선량하고 화목하며 아름다웠던 가정들이 마수에 의해 찢겨졌는지 모릅니다. 대법제자들의 수련 환경이 파괴됐습니다. 양심과 정의를 위해 저는 그때부터 실제 행동으로 대법을 수호하고, 진상을 알리고 거짓을 폭로하며 사람을 구했습니다. 잔혹하고 사악한 박해 앞에서 저는 주저 없이 대법을 실증하는 후회 없는 길을 걸어왔고, 이미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1999년 7월 23일, 우리 10여 명 수련생이 함께 베이징에 가서 청원했습니다. 베이징에 거의 다다랐을 때 경찰이 버스를 검문했는데, 한 무장 경찰이 버스에 올라와 “누가 파룬궁을 연마하지? 말해봐, 말 안 하면 총으로 쏴버릴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런 말은 안 통한다”라고 생각했는데 그 경찰은 즉시 차에서 내렸습니다.

우리는 톈안먼광장에 도착해서 한 바퀴 돌았지만 어디로 청원을 가야 할지 몰랐고, 밤에는 길가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인민대회당 앞으로 갔는데, 경찰이 우리가 파룬궁수련생인 것을 알고는 억지로 차에 태워 펑타이 체육관으로 끌고 갔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대법은 사람에게 진선인을 가르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신기한 효과가 있다는 점, 그리고 제 개인적인 연공 후의 변화에 대해 말했습니다. 경찰은 알아듣고는 “그럼 집에서 연마하세요”라고 하며 우리를 풀어주었습니다.

셋째 날, 우리는 또 톈안먼광장에 갔는데, 저를 찾으러 온 남편이 절 발견하고는 억지로 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태웠습니다. 베이징을 떠나는 기차 안에서 저는 베이징 방향을 바라보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사부님, 이 법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저는 다시 오겠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경찰이 저를 속여 구치소에 3개월 동안 감금했고, 또 저를 시 구치소로 끌고 갔습니다. 기자가 와서 인터뷰를 하며 파룬궁을 모함하는 영상을 제작하려 했지만 저는 거부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원래 몸이 좋지 않아 말라비틀어진 목에 근육이 세 줄밖에 없었고, 170cm가 넘는 키에 체중이 46kg밖에 안 됐어요. 대법을 수련해서 건강해졌고 진선인에 따라 살면서 마음이 가볍게 살게 됐죠. 이 공법이 얼마나 좋은데요.” 경찰이 “당신 사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말해봐”라고 하자 저는 “대법 사부님은 인간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듣고는 모두 떠났습니다.

저는 곧바로 연공을 했습니다. “머리가 떨어져도 몸은 여전히 가부좌를 하고 있을 것”(정진요지-대폭로)이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10분도 안 된 것 같았는데 경찰이 문을 열고 저에게 물건을 챙겨서 집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현지 세뇌반으로 끌고 갔습니다.

세뇌반에서는 대법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제 전향시키려 했습니다. 매일 배불리 먹지 못하게 하고 밥그릇에 담긴 밥은 파리가 먼저 먹게 한 후 우리에게 먹였습니다. 매일 체벌을 했는데 달리기, 햇볕 아래 서 있기, 쪼그려 앉기, 족쇄를 채우고 벽 옆을 걷기 등을 시켰습니다. 제 뒤꿈치는 벗겨졌고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대법을 위해 태어나 대법을 위해 죽는다. 난 수련을 포기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 후 그들은 다음 날 저를 풀어주었습니다.

저는 현지에서 중점 박해 대상으로 지정됐습니다. 일이 있을 때마다 저를 붙잡아 구치소에 가뒀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경문 ‘대폭로’, ‘위치’를 외우고 ‘홍음(洪吟)’도 외웠으며 연공도 했습니다. 나중에 그곳에 감금된 수련생들은 모두 불법 강제노역을 하러 갔고 저는 집으로 돌려보내졌습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베이징에 갔을 때 또 다른 여성 수련생을 만났는데, 그녀는 지린성 시골 출신이었습니다. 그녀는 차비가 없어서 정법을 위해 베이징에 오기 위해 집의 유일한 소 한 마리를 팔아서 겨우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톈안먼광장에 앉아 연공을 했고 경찰이 우리를 붙잡아 가라고 했지만 우리는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우리를 한 파출소로 끌고 갔습니다. 신체검사를 하는데 시어머니가 검사실에 들어서자마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검사 결과 분당 맥박이 200회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그 방에서 나오자마자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서 다시 검사했는데 또 검사 전에는 심장이 요동치다가 검사가 끝나자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어머니가 어디서 왔는지 말하지 않아서 경찰은 시어머니를 억지로 기차역으로 데려가 표를 한 장 사서는 기차에 밀어 넣고 가버렸습니다.

저는 창핑 구치소로 끌려갔고 이름을 대지 않아서 180번이라고 불렸습니다. 20여 일을 단식했는데 경찰이 제 발을 묶고 강제로 위장관을 삽입했습니다. 코를 통해 관을 집어넣자 단번에 폐로 들어갔고 저는 아파서 소리도 지를 수 없었습니다. 관을 통해 주입한 것들이 모두 역류해 나왔고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관이 폐로 들어간 것을 알고는 소금물을 또 주입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깁니다’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소리 내지 않았습니다. 제 입과 코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고 저는 휴지로 닦았습니다. 경찰은 보고는 급히 저를 기차역으로 데려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지만 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남자 경찰이 표를 사러 가고 여자 경찰이 저를 부축해 승강장으로 걸어갔는데, 그들은 아무 표나 사서는 저를 밀고 당겨 기차에 태우고는 승무원에게 좀 봐달라고 하더니 남자 경찰은 급히 내렸고 여자 경찰은 눈물을 글썽이며 저에게 “앞으로 몸조심하세요”라고 하고는 내렸습니다.

저와 시어머니는 사부님의 인도 아래 몸에 아무 이상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에 올랐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남편은 크게 울면서 저에게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저는 친척 집에서 한동안 살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경찰이 와서 저를 붙잡아 갔는데 길에서 경찰차 타이어가 터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저를 붙잡으러 왔습니다. 집에 없었을 때 어디에 갔냐고 물었지만 저는 말하지 않았고 그들은 저를 감금했습니다. 저는 단식을 했고 경찰은 저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2000년 9월, 우리 지역의 10여 명의 대법제자들이 시의 세뇌반으로 끌려가 강제 전향을 당했는데, 고문과 속임수를 당한 후 마지막에는 저만 전향하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자식들이 와서 제게 빌었지만 저는 “제가 원래 온몸에 병이 있었는데 이 대법이 저를 고쳐줬어요. 다른 사람들이 대법에 더러운 물을 끼얹는데 제가 따라서 끼얹을 수 없죠”라고 말했습니다. 경찰 대대장이 듣고는 저를 노동수용소로 보냈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 저는 단식을 했고 간수들은 저에게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는데, 제 배를 밟고 코를 움켜쥐고 억지로 넣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저절로 소변이 나왔습니다. 경찰은 저를 때리고 매달고 수갑을 채우고 걷어차고 벌을 줬으며, 각종 고문이 멈추지 않고 가해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매 순간이 목숨을 건 투쟁이었고 전향하지 않으면 생명을 짓밟는 행위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서서 기절했고 수용소 의사가 와서 검사했는데 심박수가 분당 200회가 넘었고, 그들은 더는 저를 고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날 저를 다른 노동수용소로 보냈습니다. 이 수용소에서는 폭력으로 저를 전향시키려 하지 않았고 감금을 6개월 연장했습니다. 2년 6개월 박해를 겪은 후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이미 외도를 저지르고 있었고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법원은 강제로 이혼 판결을 내렸고 저희 집의 아파트와 단층집, 생활용품은 모두 남편에게 주도록 판결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다투지 않고 맨몸으로 친정으로 돌아와 늙으신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3. 거짓을 폭로하고 세상 사람들을 구하며 큰 난을 넘다

집으로 돌아온 후 어머니는 “몸을 잘 조정하고 법공부도 하고 연공도 해서 사람을 구하러 가자”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저는 어머니와 함께 손수레에 가득 대법 진상 자료를 싣고 갔습니다. 우리는 낮에 큰 가방에 자료를 넣고 마른 식량과 물을 갖고 자료를 배포할 마을 근처에 가서 산기슭에서 기다렸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마을로 들어가 밤새 자료를 배포했고 날이 밝으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발가락은 걷다 보니 발톱까지 푸르게 멍들었지만 어머니는 “나는 조금도 피곤하지 않아. 발이 땅에 닿지 않은 것 같구나”라고 하셨습니다. 그 시기에 저와 어머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반경 50km 이내의 마을들에 모두 대법 진상 자료를 한 번씩 배포했습니다.

진상을 알게 된 형부는 “이렇게 계속하는 건 너무 힘들어요. 장모님은 가지 마시고 제가 오토바이에 태워 처제랑 갈게요”라고 했습니다. 형부는 오토바이에 자료 가득 담은 큰 가방과 저를 태우고 한 마을에 가서 내려주면 저는 내려서 배포하고, 배포가 끝나면 다음 마을로 가서 배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일대 반경 50km 내의 모든 마을에 다시 한번 진상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는 자료를 배포하다가 경찰에게 납치돼 4년 형을 받으셨습니다.

어머니가 납치된 후 저는 혼자서 자료를 배포하고 스프레이로 글자도 썼습니다. 시골은 밤에 전등이 없습니다. 어떤 곳은 마을 주변이 바로 무덤이라 밤에는 귀신까지 보인다고 했습니다. 밤에 혼자 자료를 배포하러 가는 것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가야 했습니다. 저는 자료를 메고 스프레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대법을 외웠습니다. 밤에 바람이 매우 세게 불어 휘이휘이 소리를 냈는데, 저는 바람의 신에게 “바람이여, 불지 마라.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는 중이니 바람이 불면 쓴 글자가 다 변형된다”라고 했더니 바람이 즉시 멈췄습니다. 저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글자를 써 붙이면서 자료도 배포했습니다. 날이 밝아서야 제 두 손에 모두 붉은 페인트가 묻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사부님, 제 손이 빨간데 이건 안 되겠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은혜를 회상하며[憶師恩]’에서 본 적이 있는데, 한번은 사부님이 타신 차가 고장 나서 사부님께서 내려 수리를 하셨는데 수리를 마치고 나서 사부님께서 손에 묻은 검은 기름때를 두 손으로 씻는 시늉을 하시자 손이 깨끗해졌다고 했습니다. 저도 비벼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땅에서 흙 한 움큼을 쥐어 손에 비벼보니 손이 깨끗해지면서 붉은 페인트가 없어졌습니다.

어머니가 출소하신 후 경찰의 교란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함께 시 구역으로 가서 셋방을 얻었습니다. 경제적 수입이 없어서 생활이 매우 간소했습니다. 저는 때로는 심지어 채소시장에 가서 버려진 채소를 주워 오기도 했는데 부드러운 것은 어머니께 드리고 질긴 것은 제가 먹었습니다.

이 지급(地級)시에서 저도 진상을 알렸지만 주로 자료 배포가 위주였습니다. 저 혼자 시 구역 전체에 자료를 한 차례 배포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한 차례 더 배포를 마쳤습니다.

시 구역에는 건물이 많은데 30층 높이도 있어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30층까지 한 층 한 층 기어올라갔다가 꼭대기 층에 도착하면 다시 내려오면서 배포했습니다. 사부님은 제게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도와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30층 건물에 갔을 때 6층에 막 도착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고 불렀더니 안에 있던 사람들이 마침 30층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29층에 간다고 하면서 30층에 올라가서 내려오면서 배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부님께서는 제가 그렇게 많은 층을 오르내리지 않게 해주셨고 사람 구하는 일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료 배포 나갈 때마다 사부님께 “사부님, 제 몸이 안 보이게 해주시고 다른 공간으로 걸어가게 해주세요”라고 간청합니다. 건물 복도에서 자료를 배포할 때 사람을 만나면 그들은 저에게 인사하며 “이제 돌아왔네요!”라고 합니다. 저는 “그렇죠”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여기 사는 사람처럼 만들어주신 것을 압니다.

한번은 경찰이 제 아들 휴대폰을 도청해서 제가 사는 곳을 찾아냈고, 그들은 제가 사는 집 밖에서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밖에 갔다 돌아올 때 번호판 없는 차 안에 있는 경찰을 봤는데 그도 저를 봤습니다. 저는 그의 차 옆을 지나갔고 그는 저를 쫓아왔지만 저는 무사히 도망쳤습니다. 사부님께서 또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사부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매년 연말이면 저는 시장에 가서 대면해 대법 진상 달력을 배포합니다. 달력이 든 상자를 내려놓고 사람이 보이면 건네주면서 진상을 알리는데, 때로는 제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달력을 모두 빼앗깁니다. 한 해는 가장 많이 배포했는데 대략 16상자쯤 됩니다. 한번은 한 청년이 다가와서 제가 달력 하나를 건네주자 그가 받더니 “아주머니, 제가 뭘 하는 사람인 줄 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경찰인 것 같았지만 제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고 “당신은 좋은 분이라 나쁜 짓은 안 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저는 전문적으로 당신들을 붙잡는 사람입니다”라고 했고 저는 “좋은 사람은 평생 평안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가세요”라고 했습니다.

4. 대법을 선하게 대하자 하늘이 행복과 평안을 내려주시다

1) 형부 가족이 복을 받다

형부는 저와 어머니가 대법 진상 자료를 배포해 사람을 구하는 것을 도와서 복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형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가다가 차에 치여 날아갔는데 그의 오토바이는 박살 났지만 그는 마치 무엇이 그의 몸을 받쳐주는 것 같이 몸이 가볍게 떠서 천천히 인도 위에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운전사는 너무 놀랐지만 형부는 운전사에게 “괜찮아요. 당신한테 보상하라고 안 할게요”라고 했답니다. 형부는 집에 돌아와 우리에게 “리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어요. 저는 훨훨 날아서 인도 위에 앉았어요. 이 대법은 정말 대단해요. 리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사부님 법상 앞에 가서 절을 올렸습니다.

한번은 형부의 딸이 두통 때문에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불렀습니다. 제가 “사부님 법상이 저기 있는데 사부님께 구하지 않고 엄마를 부르면 무슨 소용이야”라고 하자 조카딸은 듣지 않고 엄마만 불렀습니다. 조카딸은 너무 아파서 뒤척이다가 견딜 수 없게 되자 사부님 법상 앞에 엎드려 “사부님!”하고 소리치며 두 번 머리를 조아렸는데 바로 일어나더니 “안 아파요! 안 아파요!”라며 웃었습니다.

형부의 아들은 대법을 믿고 집을 깨끗이 치워 몇몇 집 없는 대법제자들에게 묵을 곳을 제공했으며 먹을 것도 제공했습니다. 그는 도료를 파는 인테리어 노동자인데 대법제자들이 그의 집에 묵게 된 후 한 달 만에 20만 위안(한화 약 4천만 원)을 벌었고 인테리어 시공팀을 차렸으며 지금은 수천만 위안의 재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늘 대법제자들을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2) 집주인네 가족이 복을 받다

저와 어머니는 한 가정집 방을 빌려 살았는데 제가 집주인 언니네 마당이 청소가 안 된 것을 보고 큰 빗자루를 하나 사서 마당 앞뒤로 구석구석 깨끗이 쓸고는 빗자루를 걸어두고 나중에 또 쓸었습니다. 집주인이 보고는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좋은 분은 처음 봤네요!”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일하러 갔을 때 제가 집에서 국수를 만들었는데 그녀가 돌아오자 “딱 맞춰 오셨네요. 밥하지 마시고 국수 드세요”라고 하니 그녀가 “제 친동생보다도 낫네요!”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집주인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녀는 매우 인정했습니다. 이후 온 가족이 모두 공산당 조직을 탈퇴했습니다.

2011년에 중공 경찰들이 제가 머무는 곳을 찾아냈는데 마침 저는 집에 없었습니다. 집주인은 제게 전화해서 돌아오지 말라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제 전화번호를 몰라서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집주인은 경찰에게 “당신들에게 말해주겠는데, 그 방에 묵는 노모님은 심장병이 있어. 당신들이 저분을 깜짝 놀라게 해서 우리집에서 돌아가시면 당신들과 끝까지 갈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몇 명의 경찰은 감히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경찰이 가고 난 후 제가 돌아왔는데 집주인이 “제가 당신 전화번호만 알았어도 화장실에 가서라도 전활 걸었을 텐데요”라고 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방 안에서 대법 책과 사부님 법상을 잘 챙겨 가방에 넣으셨습니다. 경찰이 간 후 어머니는 가방을 집주인에게 주면서 잘 숨겨달라고 했고 그녀는 “우리 방에 놓으세요!”라고 했습니다.

집주인은 매우 가난했고 두 아들도 모두 장가를 가지 못했습니다. 이번 일이 있고 난 후 두 아들이 모두 장가를 들었습니다. 한 명은 며느리 집으로 들어갔는데 그 집안은 재산이 많아 집주인 집에서는 혼수 비용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집주인은 기쁜 마음에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습니다. 집주인의 오빠네도 제게 진상을 듣고 온 가족이 공산당 조직을 탈퇴했습니다. 제가 이사할 때 집주인네에 신탕런(新唐人) TV를 설치해주었습니다.

맺음말

20여 년간의 수련 중에 무수한 거대한 관문과 난관들은 모두 사부님의 끝없는 법리의 깨우침 속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걸어 지나온 것입니다. 사부님은 제자를 위해 마음을 다 쓰셨습니다. 정말로 불은(佛恩)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제자의 감사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사부님 말씀대로 제자가 해야 할 일을 잘 해내어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따름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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