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대법을 이용하는 나쁜 마음을 발견해 제거하다

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이후로 직장에서 압박감이 느껴지고 아무리 바쁘더라도 작은 시간이라도 놓치지 않고 늘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그러나 집에 혼자 있고 여유 시간이 많으면 긴장이 풀려 집안일을 마치고 늘 핸드폰을 들고 온라인 뉴스나 소설, 무협 드라마를 보거나, 다른 사람의 핸드폰으로 쇼핑을 했습니다.(폴더폰으로 바꿨지만 뭔가를 검색해야 한다는 핑계로 스마트폰은 버리지 않았음) 그래서 법공부를 할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는 나중에 후회하곤 했습니다.

결국 정진하지 않을 때마다 번거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들 부부가 화를 내지 않으면 손녀가 병에 걸렸습니다. 특히 잘하지 않았을 땐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오고 콧물이 나며 재채기를 하는 등, 신체적 문제가 발생했고 오랫동안 정진하지 않으면 박해가 찾아왔습니다.

최근에는 TV를 켜고 조금만 보려다 결국 밤새 온라인 드라마를 보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고, 배후의 마에게 통제당해 자신을 관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에는 계속 콧물이 흐르고 재채기가 났습니다. 친척 수련생은 제가 자진해서 하늘에서 뛰어내려 진흙탕에서 노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계속해서 저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저는 휴대폰과 TV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했고 반복해서 봤습니다. 정진하지 않는 제자들 때문에 사부님께서 감당하실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매우 괴로웠고, 제가 대법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심했습니다. 대법이 좋다는 걸 알고 개인적으로 여러 차례 기적도 경험했는데, 왜 정진하는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걸까요? 왜 두 걸음 걷고 나면 쉬려 하고, 소설과 TV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버리지 못할까요? 왜 수련을 엄숙하게 대하지 못하고 이 천재일우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지 못할까요?

법공부가 적은 게 한 가지 원인이라면, 왜 시간이 있을 때 법공부를 하지 않을까요? 사부님께서 ‘로스앤젤레스 법회 설법’에서 질문에 대답하신 부분을 보았습니다. “만약 수련을 아주 잘한 대법제자라면 대법이 무엇인지 이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그럼 반드시 힘을 내어 할 것인바, 반드시 이 방면에서 태만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말한다면 정진하지 않는 사람도 여전히 법 공부를 하고 있고 또 법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법에 있지 않으며 정념도 부족하기에 인식이 자연히 높지 않은데, 곧 진정으로 법의 진귀함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맞습니다. 저는 대법을 이성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법의 진귀함을 진정으로 깨닫지 못해 시간과 기연을 낭비했던 것입니다. 왜 법의 진귀함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할까요? 저 자신의 편안함을 중히 여기고 대법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는 대법을 이용해 제 삶의 향락을 추구한 겁니다.

2016년에 장쩌민을 고소하다 불법 수색을 당하고 구치소에 갇혔던 때를 돌이켜 보니, 그때는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수련의 엄숙함을 깨달은 것 같았습니다. 정진하지 않으면 큰 고난이 닥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어려움이 닥칠까 봐 정진했지만 고난이 없으면 느슨해집니다.) 그 시기에 저는 정말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했습니다. 매일 눈뜨자마자 주의식(主意識)이 매우 또렷했고, 씻고 청소하고 일하고 당직 설 때도 발정념으로 악을 제거하고 쓸어버렸습니다. 손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악을 멸하고,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악을 짓밟았으며, 시간 나면 법을 외우고 베꼈고, 같은 감방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아침 운동 시간에는 뒷줄에 서서 제1장 공법을 연마하며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했습니다.

감방 사람들은 제가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나갈 수 없을 거라고 했지만, 저는 쓰지 않아도 나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속인들이 박해를 인정하는 그런 관성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사부님께 어떤 보증서도 쓰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명혜망 기사에 나온 어린 대법제자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할머니에게 “대법제자가 끊임없이 발정념을 하고 법을 외우며 자신을 제고한다면 사악이 감금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 게 떠올랐습니다. 몇 차례 불법 감금을 당하는 과정에서 저도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2-사도은)라는 법의 위력을 진정으로 체험했습니다.

한 달 만기 마지막 날, 감방 동료는 제가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출소하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예감이 들었습니다. 출소할 것 같았고 아침에 까치 우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부님, 어디를 가든 사악을 뒤집어엎고 철저히 제거하겠습니다.’

결국 정오 12시가 되기 전 구치소에서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둘러 나오려는 사람의 마음이 있어서 문 앞에서 서명을 했고, 경찰의 불법 수색 명세서에도 서명하며 악에게 협조하는 등 바르게 걷지 못했습니다.

사악의 여러 차례 박해를 돌이켜보면, 법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고 발정념도 게을리했으며, 휴대폰으로 소설을 보느라 수련 시간을 허비해 사악에게 빈틈을 내준 겁니다. 평소에는 긴장을 늦추다가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으면 주의식이 강해지고 법 속에 있게 되면서 법리도 분명해지고 오성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편안할 때는 속인의 즐거움을 찾고 수련을 느슨히 하며, 마치 수련을 절 보호해주는 방패처럼 여겼습니다. 늘 제가 먼저였고, 저 자신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마치 속인 생활을 잘하려고, 이기심을 위해 수련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대법에 들어왔을 때를 돌이켜보면, 병 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수련이 좋아 보여서였습니다. 생명이 윤회에서 벗어나길 바랐고, 인생이 너무 고달프고 행복이 오래가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한번 수련해서 모든 고생을 다 겪고 신선이 되면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해탈을 추구한 셈입니다. 지금은 수련으로 대법에 동화되고 중생을 구하려는 마음도 있지만, 자신의 행복만큼 중요하진 않았습니다. 그 속에는 여전히 대법을 이용해 개인의 목적을 이루려는 이기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도 대법을 이용하려는 좋지 않은 마음이 있다는 걸 의식하고 계속 부정하고 제거하려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더러운 마음을 완전히 돌파하지 못하고, 느리게 향상하거나 정체되고 심지어 퇴보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늘 법의 진귀함을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고 꾸준히 정진하는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 겁니다.

최근 사부님 경문을 통해 법정인간(法正人間) 시기가 멀지 않고 시간이 더욱 긴박해졌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더 많이 법을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려면 법을 많이 배워야 합니다. 법 속에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이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끄시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면 법에서 답을 찾고, 만약 신이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봅니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는 이것이 대법이 요구하는 건지,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사부님께선 이렇게 알려주셨습니다. “대법제자가 어떤 일을 할 때, 모두 법(法)을 가장 크게 보아야 하며, 무슨 일을 처리할 때에도 당신은 모두 우선 법을 생각해야 한다.”(각지 설법2-2002년 보스턴법회 설법)

구우주의 위사위아(爲私爲我)를 완전히 버리고 대법에 동화되어 사명을 완수해 정각(正覺)으로 수련성취하는, 이것이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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