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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타후아(先他後我)’의 기쁨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2023년 말에 나는 한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느낀 것은 갈등이 올 때 일의 옳고 그름에 집착하지 않고, 제 마음에 어떤 느낌과 사람마음이 있는지에 집중해, 집착심을 찾아 똑바로 인식한 후 단호히 억제하고 제거해야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문제를 바라볼 때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정진요지-불성무루)해야 한다는 것은 마치 구호 같고, 어떻게 선타후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며칠 뒤 저녁, 나는 한 부부 수련생 집에 갔다. 여자 수련생은 팔을 다쳐서 고비 중에 있었다. 그녀는 날 보고 매우 기뻐하며, 집안일도 많이 했고 정진하며 착실히 수련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 기뻐했다. 얼마 후 남편 수련생이 퇴근하고 돌아왔는데, 아내에게 일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일한다며 원망했다. 그가 출근 전 부탁한 일을 아내가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상황을 보고 머리가 하얘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웃으며 그들 부부에게 “집에 돌아가서 왜 제게 이 일(부부간의 갈등)을 보게 하셨는지 잘 깨달아야겠어요”라고 말하고 돌아왔다.

집에 와서 이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부님께서 내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는 걸까?’ 다음 날 오전, 집안일을 하던 중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남자 수련생의 법에 부합하지 않는 표현을 나도 하고 있었고, 그를 통해 내 부족함도 많이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자 수련생은 어디가 잘못된 걸까? 자세히 생각해 보니, 평소 나도 그녀처럼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면서 남의 일은 때로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신경 쓰지 않았다.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고 남의 간섭을 싫어하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그것을 잘하는 거라 여기고 스스로 고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그 일이 다시 내게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법 안에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선타후아’, 즉 먼저 남이 부탁한 일을 하고 내가 하려던 일을 나중에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이 생각에 이르자 마음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지난 2년간 남편과 갈등 속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내가 동쪽으로 가면 남편은 서쪽으로 가는 식이었고, 나는 늘 “우리 둘은 왜 전혀 호흡이 맞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남편이 하는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그가 표현하려는 뜻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근본적인 문제를 발견했는데 바로 이기심 때문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만 집착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타인 것이다! 이를 깨닫고 나자 너무 부끄러웠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튿날은 섣달 그믐이었다. 남편이 마당을 청소하는데, 구석이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부족한 부분은 내가 청소하자. 이것이 바로 수련이고 이타심의 발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순간 비난, 깔봄, 원망, 다툼, 조급함, 질투 등 마음은 사라지고 법 안에 용해된 아름다운 경지만이 있었다.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

그 이후로 남편의 관계는 단번에 많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내가 시키는 일도 잘 하지 않던 남편이 지금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그리고 책임감 있게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정진요지-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라는 말씀의 체현이 아닌가! 사존께 감사드린다!

이상은 개인적인 체득이니 적절치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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