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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배우고 나와 아들의 운명이 바뀌다

글/ 산둥성 대법제자 정련(淨蓮)

[명혜망] 나는 1998년에 대법과 인연을 맺었다. 어머니는 199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셨는데, 그때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사부님의 설법 동영상을 보러 갔고, 어머니와 함께 사부님의 설법 책을 샀다. ‘전법륜’을 조금 보았는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무슨 일이나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뿐, 아쉽게도 그 당시 진정으로 법을 얻지 못했다.

1999년에 어머니와 멀리 떨어진 다른 곳으로 갔는데, 차멀미가 심해서 집에 거의 돌아가지 못한데다가 물질주의적인 세상 속에서 선한 사람이 되는 이치를 오랫동안 잊어버렸기에 조금만 손실을 보아도 화가 나서 밤에 자지 못했다. 그 당시 내 인생의 좌우명은 ‘남이 날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건드리지 않으며, 남이 날 건드리면 반드시 나도 건드린다’였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날 포기하지 않으셨다. 나는 인생의 밑바닥에서 험난한 길을 걸었지만 아들의 건강이 좋지 않아 대법 수련에 들어서게 됐고, 굳건한 대법제자가 되어 정법 수련의 길을 걸었다.

아들의 출생 후 이어진 절망적인 삶

2004년 1월, 아들이 태어난 후 내 절망적인 삶이 시작됐다. 아들을 낳고 나서는 앉으면 바늘로 찌르는 뜻한 고통으로 감히 앉지도 못해서 산후조리 기간 계속 무릎을 꿇고 앉아야 했다. 의사는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어머니가 계시는 도시로 막 이사한 참이었다. 시댁은 외지에 있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아들은 우유를 먹기만 하면 뿜는 듯이 토했는데 우유를 다 먹인 후 등을 토닥여주면 계속해서 딸꾹질을 했다. 매번 트림하는 데 30분 정도가 걸렸다. 시간이 짧으면 또 토할까 두려워 내려놓지 못했다. 너무 어려서 토하다가 잘못하면 질식할 수 있었다. 언니는 밤에 아이에게 더 신경을 쓰라고 하면서, 어떤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코와 입에 토한 우유가 묻어 있었고 이미 숨이 멎어있었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이 말을 듣고 겁이 나서 한 사람은 이른 밤에 자고, 다른 한 사람은 밤늦게 자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늦게 자든 일찍 자든 일어나서 모유 수유를 해야 했다. 밤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통증으로 앉지도 못하면서 일어나자마자 재빠르게 아기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결국 피로는 사라지지 않았고 잠이 부족해 낮에도 항상 머리가 멍했다. 늘 감기에 걸리고 약을 먹어도 열이 내리지 않았으며,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야 열이 내렸다. 그 당시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말 괴로웠다!

아들은 자라면서도 건강이 늘 좋지 않았다. 그가 두 살 반이 됐을 때 그의 겨드랑이 밑에 메추리알 크기의 덩어리가 생겼다. 의사가 진단한 결과 림프 결핵이라고 했다. 신생아는 출생 후 예방접종을 2회 맞는데 그중 하나가 BCG(결핵 예방 백신)다. 그런데 아들이 접종한 백신은 억제 효과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체내에서 활성화됐다. 결국 아들은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에도 절개 부위가 잘 아물지 않았다. 매일 병원에 가서 약을 갈아줘야 했는데 약을 갈아주는 동안 아들의 극심한 울음소리에 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 당시 내 몸도 너무 허약해서 매일 병원에 갈 때마다 온몸이 떨고 있었고, 아들을 안고 달래며 이런 고통을 견뎌야 했다.

하루에 네 번씩 약을 먹여야 했는데 어려서 약 먹이기가 어려웠다. 의사는 약물 내성이 생길 수 있으므로 하루도 빼놓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내성이 생기면 더 장시간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한번은 오전 10시가 됐는데도 아들이 약을 먹기를 거부했다. 나는 급한 나머지 아들에게 소리치고 발로 찼으며, 아들은 울면서 약을 먹었고 나도 따라서 울었다. 이 약은 부작용이 심각해 간 손상이 두려워 매달 혈액검사를 받아야 했다. 1년 반이 지나서 의사는 약을 중단해도 된다고 했다.

마침내 더 이상 이 약을 먹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아들은 1년 반 동안 치료받은 후 매우 허약해졌고 알레르기성 천식에 걸렸다. 감기는 더욱더 일상적이었고 열이 내리지 않아 보름씩 수액을 맞아야 했으며, 증상이 한 달씩 갈 때도 있었다. 알레르기성 천식은 아주 무서운데, 창문 커튼을 당겨도 숨쉬기 어려워했고, 두 걸음을 달려도 숨이 찰 정도였다. 먹는 음식에 더 신경을 써야 했는데 생선, 새우, 달걀, 초콜릿, 과자, 설탕 등 많은 음식은 숨이 차서 먹을 수 없었다. 감기에 걸리면 천식은 더 악화되는 데 정말 두려웠다. 우리 동네 작은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어서 다른 곳에 있는 큰 병원에 가서 정기적인 치료와 검진을 받아야 했다. 갈 때는 괜찮았으나 병원에서 돌아올 때면 지친 아이가 잠들면 안고 와야 했다. 그 당시에 나는 바로 앉지도 못하고 항상 옆으로 앉았고, 시간이 길어지면 통증을 참을 수 없어 자세를 바꿔야 했다. 차멀미가 심해서 토할까 봐 온 힘을 다해 입을 막아야 했다. 내 몸과 마음은 한계에 달했다.

밤에 아들이 코를 씰룩거리고 기침하는 소리를 들으면 내 심장도 빨리 뛰고 겁에 질려 온몸의 기운이 빠졌다. 두려움 때문에 다시 잠들기 어려웠고, 깨어나면 피곤하고 극도로 불안해서 멀리서 아는 사람이 보이면 빨리 도망가고 말도 하기 싫었다.

남편도 고생이 많았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느라 바빠서 우리를 돌볼 수 없었다. 주택담보대출, 병 치료, 식사 등 모두가 돈이 있어야 했다. 나는 마음의 아픔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고, 아이의 병이 언제 나을지 알 수 없어 속만 탔다. 한번은 다른 곳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나 우울해요”라고 했더니 남편은 “나 화나게 하지 마. 그건 부자들이나 걸리는 병이야. 우리는 가난해”라고 했다. 남편은 전혀 믿지 않았다. 그날 나는 어머니에게 “저 우울증에 걸렸어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는데 어머니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라”라고 했다. 어머니도 믿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괴로웠다. 혼자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내가 억울했던 일을 생각하면서 울기만 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차가 다가오고 있어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마비된 상태였다.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은 죽을 용기는 있지만 살아갈 용기가 없다는 것을 정말 체험했다. 나는 산송장처럼 인생의 목표가 없었고 자녀, 남편, 부모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책임감도 없었다.

대법을 만나 인생이 바뀌다

어느 날 밤 갑자기 내 눈앞에 뭔가가 번쩍했다. ‘이건 뭐지? 파룬궁 설법 테이프?’ 어머니가 가져오신 것이었다. 마침 집에 플레이어가 있어서 꼭 듣고 싶었다. 나는 급히 앉아서 듣다가 지치면 누워서 들었다.(그때는 누워서 듣는 것이 사부님과 법에 대한 불경한 일이라는 것을 몰랐음) 언제 잠들었는지 몰랐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 개운하고 몸의 피로가 갑자기 사라졌으며 걸을 때 펄쩍펄쩍 뛰고 싶었고 그냥 웃고 싶었다.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느낌이었다! 내가 어머니께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시며 “대법은 그렇게 신기하단다! 사부님께서 널 보살펴주신 거야. 너는 인연이 있으니 대법을 배워라!”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웃었다.

다음 날 밤에도 사부님 강의를 계속 들었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여전히 그 느낌이었다. 머리가 아주 맑고 몸이 가벼웠으며, 마치 다시 18살이 된 것 같았다. 아주 행복했다! ‘이 파룬궁은 정말 신기하구나. 나는 꼭 배워야겠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탈출구야.’ 당시 나는 건강을 위해 파룬궁을 배웠지만, 사실 이것은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보물책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소중한 수련서 ‘전법륜’을 주시면서 책을 읽기 전에 손을 씻고, 양손으로 받쳐 들고, 글자를 만지지 말며, 누워서 보지 말고, 페이지를 건너뛰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법공부를 한 후 내 망가졌던 몸은 금세 180도 바뀌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나에게 “연공을 해볼래?”라고 물으셔서 나는 “좋아요”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생리 중이었다. 수련하기 전에는 생리가 오는 7일 동안은 누워있어야 했고 너무 피곤해 자고만 싶었다. 제2장 공법은 나에게 조금 어려웠으나 사부님께서 힘을 주셨다. 네 가지 공법을 마친 후 몸이 피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편안해져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또 한번은 남편이 보고도 믿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그날 친정아버지가 산에서 샘물을 가지고 오셔서 물을 받아 가라고 하시기에 나는 급히 신발을 신고 달려 내려가는데 남편이 날 쫓아오며 “기다려!”라고 소리쳤다. 나는 큰 물통을 어깨에 메고 빠르게 위층으로 다시 올라왔다. 우리는 6층에 살고 있었다. 물통의 무게는 약 15㎏이다. 남편은 날 따라잡지 못했다. 집에 들어선 후 숨을 아주 고르게 쉬고 있는 날 보고 남편은 헐떡거리며 “태연한 척 말아”라고 말했다. 나는 “다른 건 속일 수 있어도 숨 쉬는 걸 속일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이전에는 내가 이렇게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은 상상도 못 했으며 맨몸에 걸어 올라오는 것도 힘들었다. 이전에 나는 등뼈가 튀어나오고 허리 디스크에 꼬리뼈가 어긋나고, 심장이 나빠서 집 문 앞까지 걸어 올라가면 빨리 문을 열고 들어가야지, 아니면 숨이 차서 문 앞에서 기절해 쓰러질 것 같았다.

한번은 시아버지가 전화로 나에게 “자네는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네. 딸이 하지 못한 일을 자네가 했네”라고 매우 감동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남편은 형제자매가 넷이다. 시아버지가 수술하게 됐는데 나는 상황을 물어보고 바로 돈을 보냈다. 남편이 집에 없었고 당시 연락도 할 수 없어서 나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시아버지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파룬궁을 배우지 않았다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거야. 사부님 감사합니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가장 감사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좋은 몸을 주신 것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시부모님 집에서 쓰는 모든 비용은 우리가 부담한다. 나는 항상 시부모님께 “드시고 싶은 거 다 말씀하시고, 돈이 필요하면 말씀하세요”라고 말씀드리는데, 시부모님은 늘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재작년에 시아버지께서 우리집에 오시더니 문에 들어서자마자 내게 “리 선생님은 어디 계시지? 리 선생님(사부님의 법상)을 뵙고 싶구나”라고 서둘러 말씀하셨다. 시댁 식구들은 내가 대법을 수련해서 그들에게 그토록 친절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어머니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한동안 우리집에 계셨다. 목욕도 해드리고, 머리도 감겨드리고, 빨래도 해드리고,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별미도 만들어드렸다. 시어머니는 “네가 날 이렇게 친절하게 대할 줄은 정말 몰랐다”라고 하셨다.

약혼하고 남편이 날 집에 데리고 갔을 때 시아버지는 퉁명스레 한번 쳐다볼 뿐이었고, 시어머니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으셨으며 우리 둘이 헤어지길 바라셨다. 지금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너는 복이 있어서 좋은 아내를 만났구나”라고 말씀하신다. 시부모님은 대법을 공부하는 며느리를 정말 좋아하고 대법을 찬양하신다.

마음속 돌을 완전히 내려놓다

아들의 건강은 내 마음속의 무거운 돌이었다. 법공부를 한 후에 나는 병은 생생세세에 좋지 못한 일을 해서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고, 앓는 것은 업의 빚을 갚는 것이며 오직 수련만이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때문에 나는 아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아이는 아직 어려서 아는 글자가 많지 않았다. 아들은 매일 내 무릎에 앉아 내가 한 구절을 읽으면 받아서 읽었으며, 매일 한 단락씩만 읽었다. 나는 그에게 반 친구들과 싸우지 말고 착한 아이가 되고, 모든 일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고 사람이 되는 이치를 알려줬다. 어느 날 아들이 나에게 “엄마, 오늘 제가 좋은 일을 했어요. 우리 반 두 친구가 싸울 뻔했는데 제가 지혜로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줬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매우 기뻤다. 아들의 심성이 제고됐다.

아들은 또 내 제고를 도와준다. 한번은 남편이 학교에 가서 하교한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아들은 집에 들어서자 나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며 “엄마, ‘보증서’를 보세요”라고 말했다. 보증서에는 파룬궁을 모독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파룬궁을 배우지 않겠다는 보증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사악한 당이 일체중생을 세뇌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좀 두려운 마음이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들이 그걸 보고 내 손에 있던 보증서를 가져다 찢더니 “엄마, 괜찮아요. 내지 않아도 돼요”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 학교에 가는 아들이 좀 겁내면서 “엄마, 선생님이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괜찮아, 선생님이 달라고 하면 엄마한테 연락하라고 해”라고 말했다. 남편은 아들을 학교에 데려갔다. 선생님이 남편에게 보증서를 달라고 하자 남편이 “집에 가서 찾아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남편은 아들이 보증서를 찢었다는 걸 알고 있었음) 이렇게 일이 끝났다. 선생님은 다시는 요구하지 않았고 나는 날 도와준 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아들은 법을 배운 후 몸이 완전히 변해 더 이상 숨이 차지 않고,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도 사라졌으며, 약도 먹지 않아 ‘약골’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아주 튼튼하고 운동을 좋아하는데, 반 선생님이 아들에게 체육위원 직책을 맡겼다.​

외지에서 일하던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 나와 아들이 더 이상 약을 먹지 않는 것을 보고 우리가 대법을 연마해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은 나와 아들을 매우 지지했고 나에게 “좋으면 그냥 배워. (악당을) 상관하지 마!”라고 말했다. 남편이 벌어들이는 돈으로는 우리 둘이 약을 먹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는데 이제 우리 가족은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나와 아들이 오늘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우리 가족이 이렇게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은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나와 내 아들의 운명을 바꾸고 우리 가족에게 복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부님의 큰 은혜를 말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다. ‘사부님, 제자와 우리 가족은 사부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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