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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사부님께서 중환자인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6살 고등학생입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대법을 배웠고 가끔 연공도 했습니다. 네 살 때 할머니 집에서 고열이 나서 며칠간 주사를 맞았는데도 낫지 않았고, 주사를 맞아 손등은 부어올랐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저를 할머니 집으로 보내셨고, 할머니는 바닥에 이불을 깔아주셨으며, 우리 둘은 바닥에 앉았습니다. 할머니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계속 반복해서 염하셨고, 나는 울지 않고 앉아서 듣기만 했습니다. 주사나 약 없이 이틀 만에 회복됐고 어머니가 저를 집으로 데려다주셨습니다. 저는 몸이 아플 때마다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지 않고 이 ‘9자 진언(眞言)’을 외우고 나면 괜찮아졌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쌍둥이 형제 두 명도 대법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는 매일 휴대폰으로 진상을 전하러 나가셨습니다. 제가 하교하면 어머니는 저와 두 남동생을 데리고 나가 휴대폰으로 진상을 알리고 사람들을 구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배워 학교에 가서 반 친구들에게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에 대해 말했고, 친구들이 공청단 조직에서 탈퇴하면 저는 할머니께 그 명단을 드렸습니다. 방과 후에는 어머니와 함께 법공부를 하고 ‘홍음’을 외웠습니다. 가끔 할머니와 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진상 소책자를 나눠주러 나가기도 했습니다. 저녁에 수련생들이 진상을 전하러 나갈 때 나가기가 두려워 아무도 협조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저에게 함께 진상 현수막을 걸자고 하셨습니다.

매년 할머니와 함께 진상 달력을 만드는데, 저는 스프링을 붙이는 일을 맡아 매년 수백 개의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할머니가 진상 소책자를 만들 때 저는 소책자를 접고 봉투에 넣는 것을 도왔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했습니다. 할머니는 열 개가 넘는 지역을 담당했는데, 그때마다 3천 개 이상의 소책자를 직접 인쇄하고 제본하고 봉투에 담아 주변 지역에 전달해야 했고, 현지 자료 배포도 책임져야 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어머니와 제가 배포를 담당했습니다.

올해 저는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성적이 3등 안에 들었으며 반장을 맡게 됐습니다. 선생님이 공청단 가입을 제안하셨는데 거절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승낙한 후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께 공청단을 다시 탈퇴하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던 몇 달 후 갑자기 코피가 났는데도 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정신도 혼미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화장실에 갈 기운도 없고 걸을 수도 없어졌습니다. 아버지는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거라”라고 하셨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진해보니 혈소판 수치가 6으로 매우 낮았습니다. 그러다가 큰 병원에 가서 응급치료를 받았는데, 입원 첫날 약값이 8천 위안이 넘었지만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리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코에서 피가 났는데 휴대폰으로 확인해 보니 백혈병 증상이었습니다. 고모, 할머니가 절 보러 오셨는데 아무도 말도 하지 않고 울기만 하셨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며칠이 걸리고 의사는 백혈병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코피가 멈추지 않고 혈소판 수치도 더 떨어졌습니다. 나중에는 열이 30도가 넘었고, 밤새 열이 나면서 혈소판이 더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해열제를 먹어도 소용없었고 먹으면 먹을수록 열이 났습니다. 약 복용을 중단한 후 열이 멈췄습니다. 그러다가 류머티스 내과로 옮겨졌는데 이틀 만에 혈소판 수치가 3으로 내려갔고 위험하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의사는 제게 2만 위안을 내고 중환자실에 가서 수혈하라고 했고,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방법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후 허벅지 대동맥으로 수혈하려면 부모님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상심하시며 서명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전화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할머니는 “치료만 된다면 돈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할머니는 아버지 몰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아버지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기 때문) 할머니는 “수혈하지 마라.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해라. 꼭 수혈해야 한다면 뒤로 미뤄라”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울면서 아버지에게 “죽든 살든 수혈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답답해진 아버지는 할머니께 다시 전화를 걸어 “미루다가는 아이가 집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무서워요”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울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자 할머니는 “그냥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워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이틀 동안 외우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그냥 외우고 있으면 아무 일 없을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 모든 수련생이 할머니 댁에서 저를 위해 발정념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련생 중 몇 명은 “참 어렵군요, 가족들이 힘들겠어요”라며 울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중환자실 문을 지키고 있었고, 할머니가 다시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이미 서류에 서명했는데 지금 수혈을 거부해도 되느냐”라고 물으셨고 어머니는 “모르겠어요”라고 답하셨습니다. 할머니는 “피를 바꾸면 끝이야, 아이 피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알아요”라고 하셨습니다. 전화가 끝나자마자 의사가 와서 “지금 혈액 교체를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혈액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어떤 사람은 혈액을 바꾼 후 패혈증에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이틀 전에 혈액을 교체한 사람이 퇴원했는데 패혈증에 걸려 오늘 다시 입원했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또 현재 혈액은행에 혈액이 없어 혈액을 교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마음 깊은 곳에서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서 저를 구하고 계심을 알게 됐습니다. 의사는 “약을 한 번 더 맞고 혈소판이 올라갈 수 있는지 봅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은 문 앞에 이불을 깔고 밤새워 지켜주셨습니다. 다음날 할머니께 혈소판이 13까지 올라갔다고 전화하니 할머니는 매우 기뻐하시며 다행이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날, 저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돌아왔는데 혈소판이 70 이상으로 올라갔고 검사 결과도 전부 정상이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밤낮 항상 사부님의 강의 녹음을 들었습니다. 제가 중환자실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간호사에게 “이 이어폰을 좀 가져다주세요”라고 말했고 간호사는 동의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사부님의 법을 듣는 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두렵지 않았습니다. 보름간 입원한 후 의사는 괜찮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불안해서 톈진 병원에 검사 결과를 가져갔는데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퇴원했을 때 아버지는 여전히 불안해하셨고 삼촌에게 베이징으로 가서 교수님께 제가 찍은 필름을 봐 달라고 부탁했는데, 모든 것이 정상이었기에 마침내 아버지는 안심하셨습니다. 저는 마침내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고 학교에 다시 갔습니다.

둘째 이모가 할머니에게 제가 퇴원한다고 전화하면서 너무 기뻐서 “아이를 구해주신 파룬궁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제가 중환자실에 있었던 이틀 동안 할머니는 집에 있는 여러 이모, 삼촌과 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워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다시 세 번 더 검진을 받았지만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생명을 구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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