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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환경, 수련 환경과 수련 상태

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무엇이 좋은 생활 환경이고, 무엇이 좋은 수련 환경이며, 무엇이 좋은 수련 상태인가? 나는 이런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나의 수련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여기서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속인은 늘 좋은 생활 환경을 추구하는데 이는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인간 세상은 업력이 넘치는 곳이라 진정으로 좋은 생활 환경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진정으로 좋은 생활 환경은 어디에 있는가? 천상에 있다. 그곳은 우리가 수련 원만하여 가려는 곳이다. 그곳에는 사람 마음이 없으며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좋은 수련 환경은 어디에 있는가? 지상에 있다. 여기는 태상노군의 연단로처럼 각종 사람 마음과 각종 갈등이 우리를 용련(熔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속인에서 수련으로 들어왔기에 자기도 모르게 좋은 생활 환경과 좋은 수련 환경을 동일시하곤 한다. 그래서 수련생 중의 일부 좋지 못한 언행을 보면 그곳의 수련 환경이 좋지 않다고 원망하면서, 제대로 수련하기 위해 좀 더 좋은 환경으로 가야겠다고 한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는 밖에서 찾고 밖에서 구하는 것이기에 수련 성취할 수 없다.

예를 들겠다. 초기의 수련생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국의 한 보도소에서 아침 연공 시간 문제로 갈등이 생겼다. 일부 수련생은 좀 일찍 하길 바랐고, 일부 수련생은 좀 늦게 하길 바랐다. 이는 보도원을 난감하게 했다. 일찍 하자니 이쪽에서 미움을 사고, 늦게 하자니 저쪽에서 미움을 산다. 그렇다고 절충하면 양쪽 모두 불만이다. 결국 보도원은 이는 다 함께 수련해야 할 문제임을 깨달았다. 수련자라면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수련생들과 교류하자 다들 명백해졌다. 마지막에 보도원이 몇 시가 좋은지 묻자 다들 언제든 좋다고 했다. 심성이 제고되니 갈등도 따라서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보도원은 다른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연공장을 해산하는 방법이다. 연공장이 없어지면 갈등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우습지만 우리는 갈등을 해결할 때 자주 이 방법을 쓰지 않았던가? 예를 들어,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이나 기타 환경에서 다른 사람과 잘 맞지 않으면 떠나 버린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보지 않는다’고 해도 그 마음은 그대로 있고, 우리는 그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 아닌가? 떠나 버리면 수련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자세히 생각해보면 연공장을 해산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갈등이 있는 수련자 집단은 사실 수련하기 좋은 환경이다. 다만 이 집단이 반드시 좋은 수련 상태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수련 상태가 좋은지 아닌지는 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갈등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모두 안으로 찾고 심성을 제고하여 갈등을 해결한다면 좋은 수련 상태이다. 그러나 수련 상태가 좋은 집단이라도 갈등은 늘 있을 수 있다. 다양한 갈등으로 다양한 마음을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갈등이 모두 해결될 때가 원만할 때일 수 있다. 반대로 도피하거나 덮어 감추는 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집단은 수련 과정에서 일부 갈등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가짜 수련이라, 결국 헛수고만 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 집단의 수련 상태를 판단하려면 갈등이 있는지 없는지, 갈등이 격렬한지 아닌지를 봐서는 안 되고, 이 집단이 안을 향해 찾는지 여부를 보아야 한다.

개인의 얕은 견해이니 많은 지적을 바란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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