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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첨’에 대한 생각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명혜편집부의 ‘아첨과 자심생마’를 읽고 처음에는 글에서 언급한 현상이 내가 관찰한 것과 일치한다고만 느꼈다. 확실히 일부 수련생은 과시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나도 그 안에 있고, 나도 ‘기름을 부은’ 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아첨하기

명혜편집부 글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아첨하는’ 문제를 언급했다. 나는 줄곧 자신이 아첨할 줄 모르고 오히려 직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니 나도 아첨과 칭찬에 많이 습관돼 있었다. 그 이면에는 남의 기분을 맞춰주며 인간관계를 좋게 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때로는 다른 수련생의 교류를 듣고 상대방을 칭찬하기도 했는데, 교류가 정말 좋다고 생각해도 일부러 찬양하는 것은 인맥을 쌓으려고 아첨하는 것으로 순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한다면 교류를 통해 계발을 얻으면 되지 굳이 칭찬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법에서 칭찬은 시험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른 사람에게 시험을 더해 주지 말아야 한다. 아첨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이며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다. 명혜편집부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타인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 사람에게 아첨”하는 것이다. 이런 뿌리 깊은 습관은 이미 자연스럽게 되어 무의식적으로 할 때가 많다.

또 나와 사이좋은 수련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 말에 쉽게 동조하게 되고, 법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더라도 지적하기 어려워하는데, 이는 사실 사람의 정을 대법 위에 놓은 것이다. 이는 노골적인 아첨은 아니지만 아첨과 같은 효과가 있다.

나는 올곧은 집안 어른들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사회의 오염으로 점차 아첨을 배우게 되면서 자신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아첨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어서 노골적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아첨할 수 있다. 특히 도덕성이 타락하면서 많은 사람은 입만 열면 남에게 아첨하거나 자신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60년대나 70년대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순박했고,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여겼다. 이런 사람들은 진지하고 성실하게 일했으며, 말이 화려하지 않고 남에게 아첨하지 않았다. 그 시대에서는 이런 품성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정직하다’는 ‘바보 같고’ ‘무능한’ 사람을 형용하는 명사가 됐으며, 대인 관계에서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속인사회의 이런 나쁜 풍조는 모르는 사이에 수련생 단체에도 유입되어 정직한 사람은 주류가 되지 못했다. 일부 수련생들은 심지어 ‘미인’, ‘친(親 역주: 중국 쇼핑몰 고객센터에서 ‘당신’ 대신 쓰는 유행어)’, ‘친애하는’과 같은 중국 본토의 유행어를 따라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모두 노골적인 아첨이 아닌가? 이런 단어들 배후에는 다른 나쁜 요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들 익숙해지면 아무 생각이 없게 되고 법으로 가늠해보지 않게 된다.

나처럼 남에게 느끼한 칭찬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도 저도 모르게 아첨하는 풍조에 물들어 수련생들과 교류할 때 한 마디씩 이런 말을 한다. “정말 잘 깨달으셨습니다. 정말 많은 계발을 받았습니다”, “따님이 정말 훌륭하십니다”, “집안 인테리어가 너무 멋집니다” 등이다. 마치 칭찬하지 않으면 미움을 사기라도 할 것처럼 생각하는데, 목적은 호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듣기 좋은 말은 보통 아무 생각 없이 뱉어내기 때문에 ‘진(真)’에 부합하지 않을 때가 많고, 목적도 이기적이기 때문에 ‘선(善)’에도 맞지 않는다. 또 이런 약은 행위는 ‘인(忍)’에도 맞지 않는다. [편집자 주: 선의적이고 순수한 긍정과 격려에는 이기심과 사람의 정이 없기에 아첨과 다르다. 아첨은 겉으로는 기분 좋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에 대한 모독이고 악행이다.]

자신을 과시하다

명혜편집부 글에는 ‘자신을 과시한다’는 언급도 있다. 나도 자주 입만 벌리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과시하는데, 예를 들어 무슨 일을 하면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곤 했다. 보기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여기에는 과시심과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알 필요 없는데 “보세요, 제가 이런 일을 했고 저런 일을 했습니다”라고 알린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바쁘게 지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심지어 자신이 한 일과 다른 사람이 한 일 중 어느 것이 더 대단한지 비교하려 했다. 더 가치 있는 항목에 참여하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음이 없이 순수하게 수련에 대해 교류하는 수련생들도 많은데 이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첨 받기 좋아하는 현상

한 수련생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불만을 가진 근본 원인은 다른 사람이 날 충분히 칭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그 말은 내 집착을 제대로 짚었다. 나는 확실히 그들이 날 나쁘게 대하거나 중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만이 생겼는데,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 나의 기대와 기호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기대하는 대로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아첨하는 것이 아닌가?

아첨 받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은 내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나는 그동안 다른 사람이 날 칭찬하면 모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상대방이 아주 안목이 있다고 생각했다. 식견이 있다거나 정의롭다고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사실 이는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나는 똑똑하고 정직하며 잘나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아주 우스운 일이고, 스스로에게 속아서 방향을 잃은 것이다.

내 생각에 아첨에 시장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사람이 아첨 받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며, 근본적 원인은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실증하려는 데 있다. 그래서 누가 칭찬하면 그 말이 맞고 상대방이 자신을 잘 이해한다며 기뻐하고, 누가 지적하면 그 사람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심지어 원한을 품는다. 아첨과 과시는 모두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때문에 시장이 있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여 선배는 아부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상사의 면전에서 잘못을 지적해 미움을 샀다. 하지만 정작 누가 자신을 칭찬하면 계속 기억하고, 누가 지적하면 듣기 싫어했다. 이처럼 사람마음은 아첨 받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정직한 척하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해악

나는 법에서 칭찬하는 말이 남에게 매우 해롭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는 정전(正傳) 기공사에게도 불복하며, 귀에 가득 찬 것은 모두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능력이 있다고 칭찬하는 말이다. 만약 누가 그를 좋지 않다고 하면 그도 좋아하지 않으며, 명리심이 모두 일어나서 그는 그가 다른 사람보다 고명(高明)하며 그가 대단하다고 여긴다.”(전법륜)

“이 대신선은 당신을 두어 마디 칭찬해 준 다음, 당신에게 무언가를 좀 가르쳐 주는데, 당신이 또한 가진다면 당신의 공은 곧 난잡해진다.”(전법륜)

“그 마(魔)는 또 당신을 칭찬할 것인데, 당신이 얼마나 높다고 하고 당신은 얼마나 높은 대부처, 얼마나 높은 대도(大道)라고 하며 당신을 대단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전부 가짜다. 진정하게 고층차로 수련하는 사람은 당신의 각종 마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며, 이런 문제와 마주칠 때, 여러분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전법륜)

내 생각에 수련하는 사람은 반드시 지혜가 있어야 하며 마음속으로 칭찬하는 말을 수시로 거부해야지 그런 말이 맞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스스로 자신을 속이게 된다. 칭찬하는 말이 한 사람을 순식간에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런 말을 믿고 잘난 척하거나 득의양양해하는 사람은 모두 어리석고 위험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자심생마(自心生魔)해 자신을 철저히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풍선이 부풀면 부풀수록 벽이 얇아지다가 결국 터져 버리는 것과 같다.

아첨을 받는 문제 외에 자만심이 생겨도 안 된다. 늘 자신을 우주에서 떠다니는 티끌만큼 작다고 생각해야 한다.(실제로 이러하고 어쩌면 티끌보다 더 작을 수도 있음) 또한 겸손하고 사심이 없어야 하며 법에 녹아 있어야만 가장 지혜롭고 안전할 수 있다. 이래야만 구세력이 훼멸하려는 표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만심에 부풀어 있다가 구세력의 박해를 받은 사례는 너무 많다.

명혜편집부 글에서는 “신전문화(神傳文化) 중에서 한자의 ‘誇(자랑할 과)’자는 ‘言(말씀 언), 大(클 대), 虧(이지러질 휴)’자로 구성됐다”라고 언급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누군가를 칭찬하면 거창한 말을 한 것으로 인해 대가를 치르게 된다. 칭찬을 받은 사람은 부풀어 오른 탓에 심성이 떨어지고, 칭찬한 사람도 환심을 사기 위해 남을 해친 탓에 업을 빚어, 결국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게 된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남을 칭찬하지도, 남의 칭찬을 듣지도 않는데 이래야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순박한 사람이 되면 가장 손해를 적게 본다.

나의 이해로는 구세력이 당문화(黨文化: 공산당 문화), 마귀문화, 무신론 등을 배치한 것은 사람들의 수련을 방해하기 위해서고, 전통문화에서 벗어난 가치관으로 사람들을 세뇌하기 위해서다. 머리에 이런 것들이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수련하기 어렵다. 현대의 많은 사람은 순박한 사람이 되기도 어려운데 신이 될 수 있겠는가? 전통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스스로는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큰 손해를 보면서도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아첨하면 환심을 좀 얻을 수는 있겠지만 남과 자신을 해쳐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자신을 과시하는 것 역시 칭찬을 듣고 부풀어 올라 아래로 떨어질 위험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군자의 우정

명혜편집부 글에서는 ‘군자의 사귐은 담백하기가 물과 같다[君子之交淡如水]’는 말을 언급했다. 나의 이해로는 군자 간의 우정은 담담해 인간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과 명예를 만족시키려는 강한 사람마음이 없다. 사실 과시하고 아첨하는 사람들은 상대방도 자신에게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데, 듣기 좋은 말로 서로의 사람마음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 아닌가?

일부 수련생들은 담담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대하지만, 일에서는 매우 협조적이고 빈틈이 없다. 이런 수련생들은 남을 칭찬하지도 자신을 과시하지도 않으며, 거의 한담하지 않고 말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한다. 이는 수련자의 수구(修口)와 심성 표준에 부합된다. 예를 들어, 한 수련생은 협력을 잘하지만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또 일과 관련될 때만 의사소통을 하면서 내가 보낸 명절 인사와 다른 이런저런 인간관계와 관련된 메시지는 모두 답장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은 진지하고 꼼꼼하며 다른 사람을 겸손하고 온화하며 인내심 있게 대했다. 말을 적게 하고 약게 행동하지 않는 그녀는 과거의 순박하고 인품 좋은 사람들처럼 진선인(真·善·忍)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맺음말

나는 우리의 환경이 깨끗한 정토(淨土)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련해 천국에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함께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은 복잡한 인간관계에 시장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솔직하게 말을 하면 되고 인심을 자극하는 ‘조미료’를 추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첨하거나 과시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환경을 나쁘게 만드는 데 부채질하는 것이며, 이런 일을 한 사람들은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명혜편집부 글에서 말한 것처럼 “최후의 심판을 앞두고 모든 사람은 다 자신의 언행에 대해 책임지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에 최근 명혜편집부가 발표한 몇 편의 글은 다른 공간의 일부 좋지 않은 사람마음의 요소를 청리(淸理)하는 정법노정에 대응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생 여러분께 이번 기회에 관련된 사람마음을 청리할 것을 제안한다.

개인적인 작은 체득이니 부적절한 부분은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께서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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