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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법회] 책임감을 닦다

글/ 유럽 서양인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보도(輔導: 도우며 이끌다)’에 관한 제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오랫동안 ‘보도’에 관해 생각해 왔지만 이러한 생각에는 항상 걱정이 따랐습니다. 명혜편집부의 최신 문장을 통해 이에 대해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보도’를 잘못 인식하다

저는 타인의 의견을 아주 잘 경청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습니다. 제가 늘 자부심을 갖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것이 법의 각도에서 볼 때 정말 옳은 것인지, 아니면 좀 속인스러운 행동이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6년 전 저희는 독일과 스위스의 독일어권 보도원들과 ‘보도’의 실제적인 의미에 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법의 관점에서 우리 임무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수련생들이 정법(正法)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장려할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됐습니다.

제가 맡은 항목에서 수련생들은 가끔 “여기는 법공부 팀보다 더 솔직하게 교류할 수 있어”, “여기는 우리의 약점에 대해 비판받지 않아”, “여기는 편안히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라는 등 말을 듣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항상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존경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환경일까요?

“사부는 이렇게 많은 대법제자를 당신에게 맡겨 당신에게 그들을 잘 이끌라고 했는데, 그것은 당신이 반드시 해야 하고, 이것이 책임이다. 잘하지 못하면 그것은 자신의 수련과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이다.”[1]

저는 존경하는 사부님께서 기대하시는 대로 수련생들을 잘 이끌어 왔을까요? 답은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넌 그저 경청하고 속인 각도에서 그들이 편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을 뿐이야.’ 저는 여전히 경청하고 곁에 있어 주는 것이 보도원으로서 아주 중요하고 필수적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들을 잘 이끌어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보도원으로서 자상한 태도로 경청하고 수련생들이 고민이나 두려움을 쏟아낼 때 받아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법이 제시하는 좁은 길을 함께 잘 걸어갈 수 있게 분명히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후자는 잘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생 중 몇 명은 몇 달간 이 항목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지만 저는 그들에게 다른 항목을 찾아보라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왜 그런 말을 못 하는 것일까요? 어떤 수련생이 항상 남에게 불평하는 것을 보면 저는 왜 말리지 못할까요? 왜 저도 같이 불평하는 걸까요? 우리가 서로의 이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경험을 나눌 때, 저는 그들을 이끌어 주기는커녕 덩달아 불평하고, 명확하게 말해야 할 때는 오히려 두루뭉술하게 말합니다.

원인은 체면 때문이었습니다. 수련생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여유를 주면 그들은 절 좋아할 것입니다. 제가 덜 엄격하면 그들은 저를 좋아할 것입니다. 또 화를 자초해서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도 줄어듭니다.

확실히 과시심입니다.

설령 협조하는 과정에서 제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라도, 실제로 저는 이기적이고 아첨 받고 싶을 뿐입니다. 이것은 수련이 아닙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순이 생기지 않고, 당신에게 心性(씬씽)을 제고할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또 올라가지도 못한다. 당신도 좋고 나도 좋다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2]

이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때 저는 부끄러웠지만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이 집착이 제 마음속에 얼마나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정법 항목을 진행하면서 걸어온 많은 순간에 과시심이 수반됐는데, 이 집착은 겉으로는 매우 정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자신과 제 항목이 방해받아 향상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주 중의 어떤 물질이든, 전체 우주 중에 꽉 차있는 모든 물질을 포함하여 모두 영체(靈體)고, 모두 사상이 있으며, 모두 우주의 법이 부동(不同)한 층차 중에서 존재하는 형태다. 그가 당신을 승화하지 못하게 하면 당신이 제고하려 해도 제고해 올라오지 못하는데, 그가 곧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 왜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가? 왜냐하면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다.”[2]

예전에는 교류가 끝나면 남편 수련생에게 제 말에 혹시 문제가 없었냐고 묻곤 했습니다. 저는 교류할 때 실수하거나 너무 말을 많이 할까 봐 늘 조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어떻게 심성을 높였는지, 더 중요하게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심성을 높였는지 이런 본질적인 것을 보기보다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에 대해 아주 신경을 썼습니다.

몇 달 전부터 저는 이런 표면적인 것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보다 직접적이고 본질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제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문제를 직접 지적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비교적 소극적인 자세로 임했습니다. 저는 이미 사부님께서 하신 “내가 말한 적이 있는데, 대법제자로서 잘못을 했어도 상관이 없다고 나는 말했다. 거리낌 없이 자신의 착오를 인정하며”[3]라는 말씀을 잊고 있었습니다.

실수하면 체면을 잃는다는 생각에 실수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나중에 제가 다른 수련생을 너무 불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제가 저지른 허다한 실수를 보면 그들 역시 사부님의 제자이기에 대법에 따라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할 게 뭐가 있을까요?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각자의 길을 가도록 격려해주셨고, 저는 법에서 수련생들을 잘 이끄는 방법을 깨닫게 됐습니다. 존경하는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정정당당하게 수련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보도의 초점은 수련생이 자신의 길을 가는 데 보도원이 동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여행 가이드처럼 관광객의 안전은 물론, 낯선 땅이나 정글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이드, 즉 보도원은 장군이 아니기에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고 알록달록한 우산을 들고 사람들을 한데로 모을 뿐입니다. 그는 항상 주위를 둘러보며 모든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길을 잃은 관광객을 찾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맡으려고 하는가? 당신은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았는가? 당신은 모두가 한 무리 양처럼 당신 곁에서 그렇게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당신이 원하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렇게 복잡한데, 당신은 어떻게 대법제자의 책임자를 잘 맡아 할 수 있는가.”[4]

제가 현재 이해하는 좋은 ‘보도’란 보도원이 수련생의 안전과 정체(整體)를 보장하는 것을 뜻합니다.

항목에 빠지다

책임자로서 수련생을 어떻게 잘 이끌 것인지 하는 외에 명혜편집부의 ‘책임을 지다’라는 문장에서 다음과 같은 단락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학회 책임자가 항목의 주요 책임을 맡음으로 인해 불학회 책임자의 직책을 소홀히 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라는 내용입니다.

2001년 수련을 시작한 이래로 저는 끊임없이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정치인들에게 진상을 말하거나 대법 관련 사이트를 설립하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부터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 왔고, 저의 수련은 진상을 알리는 항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목 교류에 자주 참석하고 지역과 독일의 대형 교류는 소홀히 했습니다.

저는 독일 파룬따파 학회의 다른 책임자들과 함께 매주 월요일에 온라인으로 열리는 대규모 교류회를 준비합니다. 독일 전역과 스위스 독일어권에서 온 수련생들이 모여서 근래에 얻은 수련 체험을 교류합니다. 교류 내용은 수련과 관련된 최근 내용이어야 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하며, 무엇보다 정법과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보통은 수련생 200명 이상이 참석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준비 과정에서 다양한 법공부 팀과 연공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독일에는 소규모 법공부 팀이나 연공장이 많아서 보도원들과 아주 긴밀히 연락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항목 때문에 너무 바빠서 그들과 거의 연락하지 않는 편입니다.

중국어로 ‘바쁘다[忙碌]’라는 말은 한 가지 일이나 한 사람에게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제 경우에는 거의 전적으로 항목에만 집중합니다. 하지만 명혜망 기사를 읽으면서 지역과 독일 전체 수련생들에게 제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존경하는 사부님께서 기대하시는 바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부가 당신에게 알려주었는데, 당신은 책임자이니 현지의 이런 수련생들을 한데로 모으고, 사부를 대신해 그들을 함께 모이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수련에서 올라올 수 있게 하고 사부를 도와서 그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당신 현지 책임자의 책임이다.”[4]

이 법을 깨닫게 됐을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저는 지난 몇 달간 왜 주변 항목 중 일부가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는지 자주 생각하면서 걱정했습니다. 저는 명혜편집부의 글에 담긴 조언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저에게 주신 본래의 임무, 즉 수련생을 잘 이끌어가라는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의 기쁜 소식을 들으실 수 있도록 모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더 열심히 합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2-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3-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3-2015년 미국뉴욕법회 설법’

(2023년 유럽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3년 8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8/30/4646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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