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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잉춘(迎春)

[밍후이왕] 나는 1995년에 대법을 얻은 대법제자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한 초기의 그런 감격과 행복한 기분은 정말 어떤 언어로도 표현하지 못한다. 그때 비록 대법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것은 불법(佛法)이고 내가 찾고 있던 것이며 꼭 끝까지 수련해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대법이 중공의 박해를 받을 때 나는 불법적으로 납치되고 노동교양 당했으며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내가 대법을 따르고 조사정법 및 중생을 구하려는 결심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가지(加持) 해주셔서 나는 큰 고비를 넘었다.

1. 일념지차(一念之差)

2002년 말 나는 감옥에 납치됐다. 2003년 이후 감구(監區) 과장이 스스로 나를 위해 ‘병보석’을 두 번이나 신청했지만, 성(省) 감옥관리국에서 내가 죄를 인정하지 않기에 비준하지 않았다. 이것은 표면적인 원인이지만 실은 그때 내가 아직 사악이 틈을 파고들어 박해당한 그 집착심을 찾지 못했다. 그때 나는 현지 보도소의 주요 책임자였고 현지 수련생들의 수련과 진상을 알리는 상황이 외지의 수련생에게 뒤떨어질까 봐 매우 집착하고 걱정했다. 또한 시간과 자신에 대해 집착했고 쟁투심, 일을 잘하려는 마음, 과시심 등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감옥이 이전하기 전에 ‘병보석’ 정원이 있었는데, 대장과 과장은 일주일 내내 병원에 와서 나를 ‘설득’했다. 내가 ‘전향서’에 서명만 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으나, 나는 거절했다. 새로운 감옥에 가서도 사무 담당 죄수 몇 명이 며칠 연이어 병원에 와서 내게 지장을 찍으라고 권했다. 그녀들은 나를 대신해 모두 서류를 작성했고 민감한 어휘도 없으니 말도 할 필요 없이 지장만 찍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너희들이 나를 강요해서 하면 내가 지장을 찍었다고 말할 수 없어’라는 일념이 떠올랐지만 나는 즉시 부정하지 않았다. 그 죄수 몇 명은 동시에 달려들어 내 손을 잡고 강제로 지장을 찍었다. 나는 갑자기 놀라 어쩔 바를 몰랐다. 비틀거리며 병실에 들어온 나는 눈물투성이가 되어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나는 종이와 연필을 찾아 떨리는 손으로 과장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과장에게 정중하고 확고하게 지장은 그녀들이 강제로 찍은 것이고 나는 절대 인정하지 않고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나는 손가락을 깨물어 눈물범벅이 된 종이에 피로 지장을 찍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장은 그 서류는 폐기했고 무효하다고 알려줬다.

그때 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많은 대장, 과장, 의사들이 보고선 모두 내가 감옥에서 걸어 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최근 설법을 이미 봤는데, 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다. 나도 ‘병보석’에 집착하지 않고 여기서 사람을 구하겠다. 나는 꼭 건강해지고 일어서서 그들이 보라고 할 것이고 중생들이 대법의 초범함을 목격하게 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대법을 외우고 진상을 알리며 발정념을 하는 외에 장시간 자신 사상 중에 있는 모든 사람 마음을 청리하는 것을 강화하면서 그것들을 제거했다. 나는 주의식이 내 대뇌를 통제하게 하고 무조건 대법에 동화하며 ‘진선인(真·善·忍)’ 우주 특성에 동화하려 했다. ‘진선인’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사람 마음은 나의 것이 아니니 전부 제거했다.

내가 발정념을 한 지 반년도 되기 전에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가지해 주셔 나의 고혈압, 심장병, 폐결핵, 소뇌위축, 위장병, 발 통증 등 병업 가상은 거의 사라졌다. 체중 및 얼굴빛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자유롭게 걷거나 달릴 수 있었다. 대장, 과장, 교도소장, 의사, 병원 원장 등은 직접 파룬따파의 초범함과 신기함을 목격하고 놀라워했고, 감옥의 모든 폐결핵 병실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2. 교도소장과의 대화

내가 ‘죄’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2회의 ‘병보석’ 신청은 성사되지 못했다. 나는 늘 과장을 찾아 이야기 나눴고 나중엔 교도소장에게 편지를 썼다. 어느 날 교도소장과 과장이 나를 찾아 병원에 왔다. 만나자마자 교도소장은 큰소리로 내가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등등 호되게 꾸짖었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강한 정념으로 그녀 배후의 사악을 청리했다.

5분이 지나서 그녀의 정서는 평온해졌다. 나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은 합법이고 우리를 감금하는 것은 불법적이라는 관련 법 조항을 말하며 내가 수련해서 몸과 마음이 혜택을 받은 것과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말했다. 우리는 30분간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내가 한 말을 인정하면서 떠날 때 “당신은 총명한 여성이 되길 바라요”라고 말했다.

교도소 소장은 자발적으로 두 번째 나를 찾아와 이야기 나눴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대법에서 깨달은 일부 법리를 알려줬다. “사람이 죽으면 세포를 화장하는 것이기에 분자보다 더 미시적인 입자는 전혀 불로 태울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핵폭발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잠자면서 꿈을 꾸는데, 겉보기의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다른 차원의 영혼, 즉 미세한 공간에서의 활동 등 모든 것이 현실로 느껴진다는 것들을 말했다. 사람의 생명은 몇십 년뿐만 아니고 한 부모가 낳은 자녀들도 운명은 서로 다르며 심지어 차이가 매우 크다고 알려줬다. 또한 윤회 전생하는 층차, 생활환경의 좋고 나쁨은 모두 사람이 인간 세상에서 누적한 덕(德)이 얼마인가에 달렸다고 말했다. 내 말에 교도소 소장은 충격을 받고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다.​

교도소 소장이 세 번째로 나를 찾아 와 이야기 나눌 때 나는 일념을 발했다. ‘내 할 말을 끝내기 전엔 그녀가 떠나지 못하게 하라.’ 이번엔 나는 주로 파룬따파가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진 상황과 대법 수련의 아름다움을 말했다. 그녀도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를 물었다. 마지막에 그녀는 솔직하게 “만약 밖에서라면 우린 아마 친구가 됐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아직 사람들에게 삼퇴(중공의 3대 조직 탈퇴)를 권하는 것을 몰랐다.

3. 장계취계로 사람 구하다

그때 나는 법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해 안으로 찾을 줄 몰랐고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하는 것을 잘 몰랐으며 바르게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보호하고 가지 해주셔서 감옥에서 10여 년간 나는 ‘전향’하지 않았고 거의 일하지 않았다. 나는 거의 매일 장시간 발정념을 하면서 교도관과 죄수들 배후의 사악을 제거했다.

기회만 있으면 나는 사무 담당 죄수를 포함한 다른 죄수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녀들은 기본적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다 알게 됐고 모두 삼퇴했다.

소대에서 나는 국무원 특수보조금을 받던 죄수 B를 만났다. 복역하기 전에 그녀는 몇 년 내에 심한 적자를 내던 회사를 몇억 위안의 이윤을 창출하는 회사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상여금을 질투한 다른 사람이 그녀를 횡령 혐의로 거짓 고발을 해 그녀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녀는 분노와 불평으로 늘 울부짖기도 했고 자주 과장 사무실에 찾아가서 책상을 두드리고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면서 거의 멘붕에 가까웠다.

나는 그녀를 만난 후 대법의 법리로 일깨우고 천천히 이해하게 했다. 그녀는 점차 마음이 평온해졌다. 사부님께서 가지 해주셔서 그녀는 대법을 공부했고 오성이 매우 좋아 몸과 마음의 변화가 점점 좋아졌다. 1~2개월도 되기 전에 심각했던 그녀의 심장병과 뇌 신경쇠약 등 질병은 거의 다 나았다. 또한 몸과 정신 상태는 많이 좋아져 활력이 넘쳤고 얼굴엔 미소를 지었다.

감옥의 폐결핵 병실에는 농아 소녀 C가 있었는데, 매우 여위어 체중이 겨우 20~25킬로 정도였고 늘 고열이 나서 생수 한 병도 들지 못했다. 그녀를 보러 오는 가족이 없었고 폐결핵 병실에 온 후 같은 병동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대법을 배워 그녀를 돌보아 주었다. 그녀는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지만 매우 총명했다. 나는 천천히 수화와 글을 써서 그녀와 교류했고 ‘홍음’ 중의 시를 외우도록 가르쳤다. 그녀가 열심히 해서 빠르게 외울 수 있었고 건강은 많이 좋아졌으며 더는 열이 나지 않고 살도 쪘다.​

이 농아 소녀가 법공부를 한 지 2개월도 되지 않았지만 병이 나았다. 이전에 매우 여위었던 몸은 희고 통통해졌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도와주며 늘 즐거워했다. 우리가 단체 연공을 할 때 그녀는 문 입구에서 동정을 살폈다(그때 전염병 병실엔 감시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음). 그녀는 확고하게 수화로 “집에 돌아가면 절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진선인(真·善·忍)’을 행하는 좋은 사람이 되겠어요”라고 말했다.

D는 헤이룽장(黑龍江)성 사람이고 마약 판매 수감자다. 그녀는 간경화로 복수가 매우 심했고 몸은 여위었으며 늘 두 손으로 크게 부어오른 배를 받쳐 들고 수심에 찬 얼굴로 복도를 거닐었다. 설 즈음에 D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울면서 “당신 목소리마저 변했어요? 당신이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헛되이 기다리게 하지 말아요!”라고 말해 D도 매우 비관하고 실망했다.

나중에 D는 결핵 병실에 보내졌다. 우리 병실 사람들은 나에게 D를 가르치라고 말했지만, D는 비관적으로 “제가 죽을병에 걸려 여기를 떠날 수 없고 무엇을 배워도 나아질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발정념을 하면서 사부님께 그녀를 가지해 주시길 부탁드렸고 오후가 되자 그녀는 법공부를 했다.

3개월 후 크게 부어올랐던 D의 배는 어느새 사라졌고 병도 다 나아 건강이 매우 좋아졌다. 그녀는 감격하며 나에게 “저는 빨리 퇴원하지 않을래요. 우리 고향엔 없기에 당신에게서 대법을 잘 배워서 집에 돌아가 남편에게 가르칠래요. 감옥에서 이렇게 신기한 대법을 얻을 수 있어 정말 보람차요!”라고 말했다.

절도죄수 E가 있었는데 성격이 매우 나빴다. 당시 폐결핵 병실에 그녀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법을 배웠다. 나는 그녀의 악한 일면을 건드리지 않고 선한 일면을 일깨워 주었다. 그녀는 나이가 많지 않지만, 글을 몰라서 나는 한 글자씩 가르쳤다. ‘홍음’의 시를 그녀의 손바닥에 쓰면서 한편씩 외우게 했는데 때로는 한 구절의 법을 20~30회를 반복해야만 외울 수 있었다.

그녀는 가끔 마성이 나와 괴로워 화를 내면서 나에게 “배우지 않겠어요. 제가 덕을 많이 쌓지 못해서 대법을 배울 자격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대법의 법리로 조금씩 그녀를 일깨우면서 격려했다. 3개월 후 그녀의 폐병은 완쾌됐다. 이전에 그녀는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을 가빠했고 의사가 그녀의 폐병은 치료하기 어려우니 퇴원한 후 큰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라고 알려줬다. 그러나 대법을 3개월 공부하고 나서 그녀 폐를 촬영한 필름이 너무 깨끗해져 담당 의사조차 놀랐다. 그녀 손가락의 골절도 다 나았고 병도 나았고 성격도 좋아져 매일 즐겁게 보냈다. 모든 사람이 그녀를 좋아했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4. 마난 중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시다

내가 퇴원한 후 우리 소대의 일부 죄수와 사무 담당 죄수 몇 명이 대법을 얻었다. 또한 인연이 있는 많은 사람이 대법의 가없는 혜택을 받았다. 어느 날 대장이 우리 소대 회의에서 “내가 그녀만 믿으니 우리 소대의 물품을 그녀가 저울에 달게 하라.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바오자(包夾: 수감자로 이뤄진 감시원)를 철수해서 나는 거의 혼자 다녔으며 다른 수련생을 만나 쉽게 교류할 수 있어 환경이 좋아졌다.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나의 정념은 점차 느슨해졌다. 내가 출옥하기 1년 전에 다른 소대의 수련생이 경문을 보다가 진상을 알지 못한 죄수에게 신고당했다. 경문은 내가 수련생에게 준 것이어서 두 개의 소대에 관련된 문제가 되어 나는 또다시 독방에 갇혔다. 이번에 독방에 들어서자마자 천근 같은 무거운 짐이 내 어깨를 내리누르는 듯해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찌할 방도가 없었으며 매우 두려운(나중에 다시 강제로 ‘전향’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라고 깨달음) 느낌이 들어 하염없이 울었다. 대법제자인 나는 이 모든 난관을 이겨내려면 오직 사부님과 대법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눈물을 닦고 연이어 반복하며 사부님께서 초기에 발표하신 짧은 경문, ‘홍음’, ‘홍음2’, ‘전법륜(轉法輪)’의 부분적 내용 등과 특히 ‘논어(論語)’는 수십 번 외웠다. 대법을 몇 번이나 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정법 전(傳)함은 어렵고도 어렵구나 만마(萬魔)가 가로막나니 험난 속에 험난이 있구나”[1]를 외울 때, 내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과 공포감이 순식간에 해체됐다.

그때 11월이어서 밖에 진눈깨비 내렸으며 독방에는 누수가 생기고 난방도 없어 매우 추웠다. 밤에 나는 솜이 없는 이불 홑청을 덮고 웅크리고 앉아 대법을 외웠는데, 어느새 잠들었다. 그러다가 또 나도 모르게 더워 깨어났다. 나는 난방이 있는지 이상해서 손으로 만져보니 바닥은 매우 차가웠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돌았는데,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이 밝기 전에 나는 매우 분명한 꿈을 꿨다. 꿈에 독방의 얼음이 가득한 창문 옆으로 매우 아름다운 초록 잎의 붉은 꽃이 나타났다. 긴 가지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고 모두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는 바로 깨어났고 사부님께서 제자를 격려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의 가지로 독방에서 나는 사람 5명을 삼퇴(중공의 3대 조직 탈퇴) 시켰다.

5. 사악한 ‘전향’ 팀이 해체되다

내가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법제자를 전문적으로 ‘전향’시키는 팀이 있는 소대가 감구에 왔다. 대법제자 한 명을 ‘전향’시키면 수감자는 가산점을 받거나 감형을 많이 받는다. 70대의 노 수련생은 수감자에게 뺨을 10여 대 맞아서 며칠간 정상으로 잠자지 못하게 하고 식사도 못하게 하면서, 서 있게 했다. 어떤 수련생의 경추는 맞아 상처를 입었고, 다른 수련생은 박해당해 사망했다.

나의 형기가 길고 게다가 줄곧 ‘전향’하지 않았는데 그녀들이 ‘전향’시키기만 하면 감형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감옥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전향’시키기 위해 이 감방에는 감시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고, 12개의 침대에 6명이 있었는데 모두 팀장의 졸개였다. 나는 발정념을 지속으로 하면서 그녀들의 악한 일면을 건드리지 않고 원망도 하지 않았으며 팀장과 팀장의 졸개 2명에게 지혜롭게 진상을 알렸는데, 늘 10시 이후까지 말했다. 내가 걸어온 길, 내가 구치소와 노동교양소에서 확고하게 수련한 경험 및 수련에 대한 확고한 결심을 말했다. 나는 또 “해가 서쪽에서 떠오르고 지구가 거꾸로 회전할 수는 있지만, 저는 절대 ‘전향’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엄격히 대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면서 그녀를 이해하고 선하게 대했다. 1개월도 되기 전에 팀장의 졸개 두 명은 모두 삼퇴에 동의하면서 법공부를 했다. 한 달이 지나서 어느 날 팀장은 나를 한 빈방에 불러다 말했다. “언니가 오늘 당신에게 무릎 꿇으니 전향하면 안 되나요……” 팀장의 말을 다 하기 전에 나는 바로 “안 돼요!”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녀들은 나에 대한 ‘전향’을 철저히 포기했다. 팀장은 팀의 작업 현장에서 내 인품을 크게 칭찬했다.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팀장이 내게 “당신이 8번 방에 가서 할머니(노년 수련생) 한 분을 보살피세요. 그녀가 박해를 심하게 받아 매일 병원에 가는데, 의사가 심한 심장병, 담관 결석이 있다고 말했어요. 매월 비용이 많이 들지만, 담낭에 결석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해서 뼈만 앙상하게 여위었고 등도 심하게 굽었어요. 그 방에 가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그녀들을 도우려면 돕고, 주로 그 할머니를 보살피세요. 당신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교도사무실에서 이 방을 주시하지 않기에 밤에 당신이 다른 대법제자들과 함께 연공을 하거나 대법을 외워도 돼요”라고 말했다. 나는 기쁘게 동의했다.

새로운 방에 가서 보니 그 노년 수련생은 이미 정념이 없었고 대법도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녀와 함께 법공부와 발정념을 하면서 안으로 찾았다. 2개월이 지나니 그녀의 심한 심장병, 담관 결석 등 병 증상은 모두 사라졌다. 그녀는 감옥에 와서 처음으로 혼자 슈퍼마켓에 가서 큰 봉투 두 개에 물건을 가득 사서 스스로 5층까지 메고 올라왔다. 감방의 사람들은 모두 놀라 대법의 신기함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내 주변에 대법을 얻은 사람은 매우 많고 삼퇴를 한 사람은 더욱 많다. 일반적으로 한 소대에 70명 좌우의 인원이 있는데, 우리 소대의 사람 3~4명이 삼퇴를 하지 않았을 때 위층과 아래층 사람들이 맞교환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항상 내 곁에 계시면서 내가 구해야 할 인연이 있는 사람을 안배해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전문 ‘전향’을 시도하던 그 방을 떠났을 때부터 그 감구에 다른 대법제자가 와서 교도관사무실에서 이 ‘전향’ 팀에게 ‘전향’시키라고 했지만, 팀장은 대법제자를 직접 생산 현장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게 하면서 더는 ‘전향’을 시키지 않았다.

6. 시어머니를 선하게 대하다

2015년 나와 남편(수련생)은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정말로 방 한 칸도, 밭 한 고랑도 없어서 잠시 친척 집에 투숙했다. 금방 돌아와서 나의 몸은 아직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고,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셔서 나와 남편은 자진해서 거의 한 달간 매일 24시간 돌봤다.

집에 돌아온 나와 남편은 매일 밖에 나가 일하면서 생활을 유지했고 남편은 장기 출장을 했다. 나중에 시어머니는 나이가 많고 건강이 좋지 않아 혼자 생활할 수 없게 됐다. 시어머니는 시골에서 사실 때 돈도 저축하지 못했고 성격도 좋지 않았으며 매우 독단적이었다. 남편은 남동생 둘과 여동생 한 명이 있었지만, 모두 시어머니를 모시기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무조건 시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채광이 좋은 큰 방에 안배해 내가 보살폈다. 비록 우리의 생활 형편은 어려웠지만, 나는 매일 시어머니가 즐겨 드시는 음식을 만들었고 또한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옷을 샀다.

가끔 시어머니는 시동생네 집 일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울고 고함질렀으며 야박하게 말하고 화를 냈지만, 나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나는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에 따라 내 부족한 부분을 찾고 최대한 시어머니 마음을 풀어주면서 즐겁게 해드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어머니는 나의 선량함과 진심에 감동했다. 우리 집에 오는 친척, 친구들은 시어머니가 드시는 음식, 사용하는 물품을 보면서 모두 연거푸 시어머니가 복이 있어서 이렇게 좋은 며느리가 곁에 있다며 부러워하고 감탄했다.

어느 해 시어머니가 심장과 신장 질환으로 입원했고 나중에 뼈만 앙상하게 여위어 돌아눕지도 못해 병원 두 곳에서 모두 포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어머니는 대법을 공부하고 연공을 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사부님의 설법 동영상을 보고,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으며, 우리가 시어머니와 함께 법공부를 하자, 시어머니는 사경에서 되살아나셨다. 단지 20여 일 만에 시어머니는 침상에서 내려 걸으실 수 있었다.

3개월이 지나 이미 탈모로 두피가 보이던 시어머니의 머리에 검은색 새로운 머리카락이 자라났다. 기존에 독단적이고 과격하던 시어머니의 성격이 점차 상서롭게 변했다. 이전에 삼퇴를 하려 하지 않던 친척 10여 명이 시어머니의 변화를 보고 모두 삼퇴했다.

나는 20여 년간 정법 수련하면서 많은 시련을 겪었고 험난한 수련의 길에서 1분 1초도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깨우침, 보호, 가지를 떠날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 크나큰 은혜를 주셔서 제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었고 나의 서약을 점차 실행할 수 있었다.

제자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은혜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사부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개인의 인식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난중불난(難中不亂)’

 

​원문발표: 2023년 4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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