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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가부좌 중의 고진감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1993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다행히 사부님의 제2기 학습반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수련의 길을 돌이켜보면 잘한 일(법에 부합할 때), 못한 일(정념이 강하지 않을 때), 뼈저리게 후회한 일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수련 상황입니다. 하지만 줄곧 비틀거리면서도 오직 사부님과 법을 믿고 확고하게 수련하려는 마음만은 독실했습니다.

저는 처음 다리를 틀 때부터 두 다리를 완전히 접을 수 있을 때까지 19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수(修)’와 ‘연(煉)’의 과정에서 깊은 체험이 있습니다.

이전에 저는 달리기와 점프를 잘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일반 교사인 저를 체육 교사라고 여길 정도였는데, 뜻밖에도 가부좌는 제가 수련 중에 큰 힘을 들여서야 넘을 수 있는 ‘관(關)’이 됐습니다.

수련을 결심한 그 순간부터 업력이 빠르게 밖으로 배출돼 나왔습니다. 저는 자신의 객관적 신체 상황을 깨달았는데, 두 다리를 동시에 구부리고 앉을 수 없었고, 겨우 한 다리씩 구부리고 앉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다리가 마치 터질 것 같았습니다. 걸핏하면 발등이 굽어지고 다리에 쥐가 나며 신체 곳곳에 경련이 일어나거나 뭉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깨와 등 아래는 철판과 같았으며, 왼쪽 다리는 바깥쪽으로 치우쳐 왼발이 오른쪽 무릎에 닿지 않았습니다.

처음 다리를 접을 때는 반가부좌만 할 수 있었습니다.(스스로 책상다리를 하는 것은 불허함) 두 다리를 y자로 편 상태에서 오른발을 왼쪽 다리 종아리에 겨우 걸칠 수밖에 없는 엉거주춤한 자세였습니다. 앉을 때마다 ‘낑낑대고 낑낑거리며’ 1분, 1분씩 버텼습니다.

처음 단체 가부좌 연공을 할 때 저는 모두 가부좌를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리를 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허영심과 체면 때문에 수련생에게 저의 앉아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이 마음도 내려놨습니다. 제 모습을 보고 신수련생이 말했습니다. “가부좌 자세를 보니 노수련생 같지는 않네요.” 어떤 수련생이 나중에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앉아 있지 말고 집에 가서 혼자 연공하면 어때요?” 이 말을 듣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노수련생으로서 나는 어려워도 여전히 견지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격려가 되지 않을까?’

“공(功)을 수련하는 길은 마음이 지름길이라, 대법은 끝없나니 고생을 배(舟)로 삼을지니라”[1]는 사부님 경문을 처음 읽었을 때, 수련의 ‘지름길’을 찾았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 수련은 바로 마음을 닦고 고생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부좌할 때 ‘고생’하고 ‘마음을 닦는다’라고 생각하니 또 일종 깊은 깨우침을 얻은 것 같아서 사부님 법상 앞에서 허스(合十)하고 감사드렸습니다. 같은 시간에 고생도 하고 마음도 닦으니 정말 일거양득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수련인으로서 금후의 인생 행로는 개변될 것이며, 나의 법신이 당신에게 새롭게 안배해 줄 것이다.”[2] ‘사부님께서 이처럼 내게 안배해주셨으니 난 계속 연마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가부좌를 하는데 오른발 발끝, 왼발 발꿈치를 다리에 겨우 걸칠 수 있었지만, 손을 놓기만 하면 발이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저는 끈으로 발을 감싼 후 이를 뒤쪽 허리에 묶고, 모래주머니 두 개(합계 10kg)를 만들어 다리를 누르기도 했습니다. 가부좌가 안 되니 제 생각에 동공(動功)을 많이 해 업력을 없애야만 될 것 같았습니다. 한번은 제1장 공법 ‘포잔첸서우파(佛展千手法)’[3]를 아홉 번 했는데 그때 뼈마디가 모두 당겨져 허물어질 것 같았습니다.(조급해서 너무 세게 함)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아 무릎을 꿇고 법을 배우려 했지만, 무릎 뒤쪽에 주먹이 들어있는 것처럼 꿇어앉을 수 없었습니다. 두 팔꿈치로 침대를 짚고 수직으로 앉아보기도 했으나 얼마 버티지 못했습니다. 매일 몸에 각종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사부님의 안배이고 제가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에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간단히 이해하면 제가 얼마나 많은 ‘업’을 없애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정확히 한 덩이를 없애면 바로 한 덩이가 적어짐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시간 다리를 누르고 계속 시간을 증가시켰습니다. 그 당시는 고통도 무서움도 느끼지 않았고, 한가롭고 편함을 추구하는 마음도 없었으며, 업력이 한 덩이 한 덩이 제거되는 것만 볼 수 있었습니다. 고통이 곧 소업(消業)임을 알았기 때문에 매일 수확이 컸습니다.

저 자신도 어떤 마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부러움, 조급함, 낙담, 아픔이나 고통에 대한 두려움 등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즉시 멈추고 커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미 많은 업력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 집착심까지 더하면 수련이 더욱 어렵게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가부좌 상태는 수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생들도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너무 집착하는 게 아닌가요. 그렇게 고통을 참으며 견지하다니요”, “결가부좌를 하지 못하면 원영(元嬰)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비록 조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늘 의문이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어떤 사람은 다리에 못을 박거나 철판을 넣어도 결국 다 결가부좌를 했다고 하셨는데 나는 이렇게 오래됐는데도 왜 하지 못할까?’ 왜냐하면 모든 면에서 저는 비교적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998년 어느 일요일, 많은 보도원이 모이는 단체 법학습 날이었습니다. 새벽에 꿈을 꿨습니다. 제가 큰길을 따라 앞으로 달려가는데, 역방향에서 2인용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와서 저를 마주 보고 지나갈 때 한 사람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저를 때렸습니다. 저는 달리면서 “사부님, 사부님!”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팔을 휘두르는 시늉만 했지 절 때리지는 못했습니다. 길이 막바지에 다다랐고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설산이 있었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가려면 반드시 이 설산을 넘어야 해서 막 설산을 오르고 있는데, 발에 쥐가 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현실에서는 자주 쥐가 남). 그리고 꿈을 깼습니다. 꿈을 되돌아보면서 제 수련의 길이 순탄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단체 법공부 후 수련생과 교류했는데 그들은 평소 사부님께 질문할 것이 많지만 막상 사부님을 뵈면 질문할 것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사부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는데 왜 아직도 가부좌를 돌파할 수 없을까요?” 법학습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갈 때 머릿속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너는 다른 사람보다 더 고생을 겪어야 한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자의 의문을 풀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트인 저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즉시 앉아서 가부좌를 했습니다. 새벽 꿈속의 그 설산을 떠올리며 저는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5분간 앉아 있으면 설산을 5m 오르는 것과 같다.’

2003년 어느 날 아침, 가부좌할 때 저는 다리를 접으면서 문득 10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이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마음이 찡해지면서 약간의 무력감이 저를 엄습했지만 즉시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했습니다. 신통(神通)을 가지(加持)할 때 두 손을 펼치자마자 단번에 입정(入定)됐습니다. 몸은 마치 분출하는 화산처럼 하늘로 직통했는데 수십 초간 지속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일깨워주심을 알았습니다. ‘이쪽 몸은 비록 이러하지만 저쪽 변화는 천지개벽이다.’ 저는 감사의 눈물이 말없이 흘렀고 마음도 홀가분해졌습니다.

하루하루, 매번 가부좌할 때마다 비록 통증을 참아야 했지만 마음은 고통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고통 속에서 많은 업력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았기에 가부좌가 끝난 후에는 성취감과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2012년, 수련한지 거의 19년이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제대로 결가부좌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내 길일지도 모른다. 줄곧 이래왔지. 수련이 끝나는 그 날 나는 비로소 뜻대로 다리를 틀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받아들일 수 있겠어?’ ‘응, 받아들일 수 있어!’ 만약 정말 이런 안배라면 이전의 하루하루가 모두 이런 형식으로 소업(消業), 수심(修心), 승화(昇華)할 수 있는 기회였음을 의미합니다.

5월 어느 날, 신체에 강렬한 소업 반응이 나타나 온 전신이 감당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저는 큰 변화가 왔다는 것을 알았고, 닷새 동안 외출하지 않고(혼자 살고 있음) 매일 법을 배우고, 연공하고, 발정념을 하고, 밍후이왕 교류 문장을 봤습니다. 다섯째 날 저녁, 가부좌할 때 저는 단번에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고 처음으로 한 시간 동안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19년 만에 마침내 해낸 것입니다. 저는 감사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이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그 모든 과정에서 시시각각 매사에 제가 선택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정념으로 할 것인지, 사람 마음을 움직일 것인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이것이 바로 제 수련의 길에 남긴 ‘발자국’입니다. 바르게 걷고 잘 걸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법을 많이 배우고 법을 잘 배우는 것뿐입니다.

수련인이 겪는 일은 다 우연이 아닙니다. 어느 방면에서 제고가 필요하면 그 방면의 시험이 나타날 것입니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수련 중에 부딪히는 고비와 어려움이 다릅니다. 자신이 직면한 일에 대해 법에서 나온 정념으로 대하고, 시시각각 자신의 염두가 법에 부합하는지, 어떤 사람 마음을 제거했는지, 일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렇게 매번 정념으로 직면하면서 한 덩이 한 덩이 제거한 업력, 하나하나 닦아낸 사람 마음이 바로 우리 수련 제고를 돕는 ‘징검다리’가 됩니다. 관을 잘 넘겼든 잘 넘기지 못했든 이것이 바로 수련 과정이며, 설령 넘어졌다 하더라도 빨리 일어나 새로 잘하면 됩니다. 신사신법(信師信法)하며 수련하려는 마음이 흔들려선 안 됩니다.

제 수련 과정을 쓴 것은 자신을 일깨우고 채찍질하기 위해서입니다. 대법제자는 수련을 처음같이 하고,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중생을 구하는 사명을 저버리지 않으며 미래의 길을 잘 걸어가야 합니다.

제자는 오직 생명 깊은 곳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에 감사드리고 감사드릴 뿐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파룬따파(法輪大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대원만법-2. 동작도해’

(밍후이왕 제24회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3년 6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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