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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5.13] 한 지붕 아래 화목한 4대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시아버지는 17살에 결혼해 스무 살에 자식을 일찍 낳아 시댁은 한 지붕 아래 4대가 살고 있었고, 시아버지의 관용으로 대체로 가족들은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끊임없는 말다툼

시어머니와 시할머니 사이는 좋지 않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몰라도 제가 보기에 시어머니가 시할머니에게 늘 좋지 않게 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건설업자인 시아버지는 돈을 잘 버셨고, 시어머니는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은 뭐든 장만했지만, 시할머니에게는 대부분 먹다 남은 음식만 드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시어머니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남편과 함께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인연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시부모님은 시할머니를 부양하는 문제로 서로 심하게 다퉜는데, 몹시 화가 난 시어머니는 시할머니의 과거 잘못을 들춰내며 불만을 토로하면서 시할머니를 고향으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그런 시어머니를 달래면서 “아파트를 구해 여기서 나간다고 해도 부모님을 두고 갈 순 없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두 아들 부부를 향해 “봤지? 너희 아버지는 우리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아!”라고 푸념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가 방을 나갈 때 따라나서며 부드럽게 말씀드렸습니다. “제발 더 이상 화내지 마세요. 조부모님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 그분들도 나름의 생각이 있지 않겠어요. 애들이 앞에 있는데 좋은 본보기가 되셔야죠. 어머님이 아버님과 계속 이렇게 다투면 장래에 아이들이 어머님을 어떻게 대할까요?” 시어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이후 다시 갈등이 일어나자 화를 내며 저보고 판단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님, 우리 둘이 만약 고부갈등을 일으킬 때 아들이 제 편을 들길 원하세요, 아니면 어머님 편을 들길 원하세요? 아들들은 중간 위치에 있잖아요? 어머님이 외출하셨을 때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며느리가 성깔은 있어도 좋은 사람이니 며느리가 그런다고 화내지 말아요’라고 위로하셨어요.” 시어머니는 제 말을 듣고 마음을 가라앉히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저를 친한 친구처럼 여기셨는데, 제가 남편과 갈등이 있을 때는 저를 찾아오기도 하셨습니다. 시아버지는 나중에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하셨습니다.

설이 가까울 무렵, 시댁 식구들은 시할머니 문제로 또다시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몹시 화가 난 시어머니는 그날 밤 집을 나가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시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전법륜 제6강)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즉시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화내지 말고 빨리 집으로 돌아와요”라고 하며 사과했습니다.

시어머니는 결혼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의 사과를 듣자 마음이 확 풀렸습니다. 처음으로 남편에게 존중을 받았다고 느낀 것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말다툼과 싸움으로 얻어낸 결과가 아닙니다. 시아버지가 파룬따파 덕분에 착하게 변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한 시어머니는 지난 20여 년간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극심하게 박해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을 적극 지지하셨습니다.

대법의 위대함을 보여주다

아주버니 부부와 우리 부부는 함께 같은 고등학교에 다닌 적이 있고, 저는 동서와 함께 한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며 친자매처럼 지낸 적이 있습니다. 동서는 성적이 우수해 입학시험도 치르지 않고 수시전형으로 합격해 시어머니는 동서에게 많은 선물을 사주며 특별 대우를 해줘서 동서는 늘 행복해했습니다.

저는 항상 대법의 원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요구합니다. 시댁은 재정적으로 풍족하지만 저는 시어머니에게 저를 위해 아무것도 사지 말라고 말씀드렸고, 저는 시부모님과 아무 갈등 없이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가족의 화목은 1999년 7월 중공의 파룬따파 박해로 깨졌습니다. 동서는 정치학과 교수입니다. 그녀는 중공의 거짓말과 선전대로 우리의 파룬따파 수련을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동서는 우리가 파룬따파 책을 읽는 것을 보고 분노했으며, 제 남편이 세뇌반에 감금됐을 때는 시아버지가 아들 교육을 잘못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진상 알리는 것을 몰랐으므로 조용히 신념만을 견지했습니다.

이후 동서가 공부를 더 하겠다며 젖먹이를 집에 둔 채 다른 도시로 떠났습니다. 우리는 불평 없이 아기를 돌봤고 시아버지는 재정적인 뒷바라지를 해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돌아온 뒤부터 더는 우리의 대법 수련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부가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갔을 때 동서가 면회를 왔지만 수용소 측이 허락하지 않자 동서는 울면서 우리를 걱정했습니다. 시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시어머니와 아들은 동서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노동수용소 간수가 “당신 아들을 돌봐준 아주버니 부부에게 어떻게 보답할 건가요?”라고 물었을 때 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을 잘 수련하면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마련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노동수용소에서 풀려났을 때 아주버니 부부는 우리가 사회에서 버림받았기에 ‘자존감 없이 가난하게 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법에서 얻은 지혜로 사회와 잘 융화되어 직장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뒀습니다. 우리는 다른 가족에게 어떤 도움도 바라지 않았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족과 친지들은 우리를 보고 대법의 위대함을 알았습니다.

아주버니는 나중에 시어머니 명의의 아파트를 팔고 자기 이름으로 새 아파트를 매입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화를 낼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혀 불평하지 않자 우리에게 미안해하며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대법 수련자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집세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2개월만 집세를 받은 후 더는 받지 않겠다면서 우리에게도 그 집의 한 몫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조화롭고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시어머니는 우리가 아파트가 따로 없는 것을 걱정하셨습니다. 저는 시어머니를 위로하며 말씀드렸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박해가 끝나면 우리 아파트가 최고의 아파트가 될 거예요. 현관문과 캐비닛에 있던 ‘우담바라’ 꽃 기억하시죠?” 시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맺음말

파룬따파는 수련 과정에서 항상 평화와 아름다움을 가져다줬습니다. 우리가 겪은 모든 고난과 상처는 중공의 박해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그런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나는 장님이 아니야. 네가 하는 모든 일을 내 눈으로 직접 똑똑히 보았단다. 진심으로 널 존경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대법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시어머니는 이번 설 연휴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대법 사부님을 진심으로 믿는다”며 우리에게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밍후이왕 제24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3년 5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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