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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파룬따파 덕분에 시댁과의 불화가 해결되다

글/ 광정(光晶)

[밍후이왕] 나는 이미 70세지만 많은 사람은 내가 나이보다 수십 년은 젊어 보인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기껏해야 50대처럼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내 젊음이 1999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결과임을 알고 있다. 여기서 나는 내 이야기를 나누고 파룬따파와 사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비참했던 인생

나는 1950년대에 시골에서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내가 13살 때 돌아가셨다. 한번은 다른 아이와 말다툼을 한 후에 그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말했다. “저 애처럼 행동하지 마, 저 애는 엄마 없는 애야.” 나는 너무 속상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엄마가 더 보고 싶었고 사는 것이 싫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밭일을 하며 땀을 많이 흘리시는 아버지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삶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죽으면 누가 아버지를 돕겠는가?’ 그 이후로 나는 아버지의 짐을 덜기 위해 최대한 집안일을 도우려 노력했다.

어른이 된 후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당시 배달 사업이 수익성이 좋아서 나는 운전면허도 따고 트럭도 샀다. 10년 넘게 열심히 배달 일을 했다. 무리하게 일한 결과 건강이 나빠졌고 편두통, 복통, 신장병, 심장병, 불면증, 기침 등 수많은 병에 걸렸다. 다리에도 문제가 있어서 계단을 내려갈 때 자주 넘어졌다.

기침도 많이 하고 잠도 잘 못 잤다. 기침 때문에 눕자마자 일어나 앉아야 했다. 이런 증상은 매일 밤 끝없이 반복됐다. 결국 이불을 깔고 등을 받치고 반쯤 누워야 했다. 질병으로 인해 매우 고통스럽고 매일 많은 약을 먹었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고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당시 나는 45세였고 아직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둘이나 있었다. 내 삶은 절망적이었다.

건강이 악화되자 남편은 의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트럭과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 나는 말했다. “그래요, 트럭은 팔아도 돼요. 하지만 아파트를 팔면 당신과 두 아이는 어디에서 살아요? 돈이 있어도 내 병이 나을 가능성은 희박해요. 당신은 결국 모든 걸 잃게 될 거예요.”

“내가 죽으면 트럭을 팔아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 써요.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일자리를 찾은 후에 당신은 다른 여자와 결혼해요. 그럼 난 걱정되지 않을 거예요.”

인생이 바뀌다

나는 살아 있는 한 열심히 일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는 트럭을 운전할 수 없었기에 소매점을 열었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서서 손님을 응대할 수 없었다. 1999년 어느 날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했다.

당시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한 조카는 대법서적과 리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가져다줬다. 조카는 가게에서 테이프를 틀었는데 나는 강의를 아주 좋아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평생 그렇게 많은 곳을 가봤는데 왜 이런 가르침을 들어본 적이 없을까?’ 나는 희망을 보았다.

조카는 마비증세가 있었는데 리 사부님의 강의를 듣고 회복됐다. 나는 “강의를 계속 들으면 나도 나을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조카는 말했다. “물론이에요. 리 사부님의 강의를 듣는 사람은 누구나 이로움이 있어요. 설법을 듣고 그대로 따르면 병이 나을 거예요.” 나는 사부님 말씀이 너무 좋아서 매일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 3일간 나는 밤새도록 기침했다. 강의를 듣고 4일째부터 기침 없이 밤새 잠을 잘 잤다. 기적이었다. 사부님 강의는 나에게 에너지를 주었다. 모든 질병이 한 달 만에 사라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법륜(轉法輪)’에 있는 많은 현상을 체험했고 인생에 대한 모든 질문에 답을 얻었다.

나는 모든 대법 책과 사부님의 사진을 샀다. 과거에 공양하던 물건도 치웠다. 이 일을 하기 전날 밤, 나는 꿈에서 고양이 같은 동물이 방안을 뛰어다니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환경을 정화해주셨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대법서적을 읽었고 ‘진선인(真·善·忍)’ 원칙을 따랐다. 기적이 잇달아 일어났다. 파룬따파를 연마하기 시작한 후 파룬이 몸 안에서 도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주고 계심을 알았다. 그 후 나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 됐다.

새 사람이 되다

남편에게는 형이 세 명 있다. 시아버지는 남편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시어머니 혼자서 네 아들을 키우셨다. 남편이 군대에 있을 때 집안 재산이 네 형제에게 분배됐다. 남편 몫으로 집의 방 하나가 있었다. 당시 우리는 약혼했고 남편 가족은 결혼 후 그 방에서 살 수 있다고 약속했다.

나는 남편이 군대에서 전역하면 결혼하려 했는데 셋째 아주버니가 우리가 모르게 그 방을 세주고 집세를 받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셋째 아주버니 부부는 또 우리가 그곳에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돈을 들여 다른 집을 빌려야 했다. 시어머니는 셋째 아주버니에게 방값이나 월세라도 돌려달라고 했지만 돌려주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이듬해에 다시 그 집으로 이사하기로 하자 셋째 아주버니는 우리를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했다. 남편에게 할당된 땅도 셋째 아주버니가 차지했다. 그 당시 시골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채소를 재배했기에 채소를 파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재배할 땅이 없어서 먹을 채소가 없었다. 이웃들은 동정심으로 때때로 우리에게 채소를 조금 줬다.

나는 셋째 아주버니에 대해 남편에게 불평했고 결과적으로 우리 둘은 거지 같이 살았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2년 전 재산분할을 맡은 삼촌을 찾아갔다. 삼촌은 화가 나서 셋째 아주버니에게 가서 따졌다. 그러나 셋째 아주버니 부부는 우리에게 땅을 돌려주는 것을 거절했고 동서는 남편에게 욕을 퍼부었다. 더 이상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남편은 유산을 포기해야 했다. 분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재산분할 후 셋째 아주버니와 살던 어머니를 남편과 함께 뵈러 간 적이 있었다. 남편은 셋째 아주버니에게 “저희도 밭에서 채소를 재배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먹을 게 없어요”라고 말했다. 셋째 아주버니는 화가 나서 말했다. “제수씨 말만 들으면 안 돼! 제수씨가 이 일을 다시 언급한다면 넌 제수씨를 때려야 해.” 나는 왜냐고 물었다. 셋째 아주버니는 남편에게 말했다. “제수씨는 감히 논쟁을 벌이고 있어. 네가 그래도 남자냐? 남자라면 아내를 다스려야 해.” 셋째 아주버니가 자꾸 나에게 나쁜 말을 해서 나도 화가 났다. 나는 나무 막대기를 집어 들고 말했다. “좋아요, 그럼 이 문제를 오늘 단번에 해결하죠.”

한번은 채소를 잃어버린 동서가 내가 훔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위에서 언급한 삼촌에게 우리집에서 채소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분노해 삼촌에게 “왜 우리를 자꾸 괴롭혀요?”라고 했는데 때마침 동서도 우리집에 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붙잡고 때렸다. 심지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뽑고 얼굴에 멍이 들게 했다. 삼촌과 집주인이 우리를 떼어 놓았다. 그렇게 우리 사이의 불화는 더욱 심해졌다.

1999년에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한 후, 나는 진선인(真·善·忍)의 원칙에 따라 선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나는 계속해서 안으로 찾고 다른 사람들을 더 배려할 것을 자신에게 요구했다. 동서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도와주곤 했다. 셋째 아주버니는 딸이 대학에 지원할 때 그녀의 학업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조카를 우리집에 머물게 했고 떠날 때 돈도 줬다.

셋째 아주버니는 새집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내가 예전 땅을 놓고 그와 다툴까 봐 두려워했다. 그는 다른 사람을 통해 나에게 약간의 돈을 주려 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많은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그 땅을 원하지 않아요. 그곳에 집을 지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셋째 아주버니는 내가 문제를 일으킬까 봐 무서워 집을 짓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찾아가 말했다. “우리는 한 가족이니 진행하세요. 제게 돈을 주실 필요가 없어요.” 셋째 아주버니는 부부는 놀랐다. 나는 말했다. “저는 이제 파룬궁 수련자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를 믿으셔도 돼요.”

내가 이렇게 변하자 친척과 이웃은 나와 이야기하기 좋아했다. 그들은 내가 항상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내가 그들에게 파룬따파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동의했다. 그들은 파룬따파가 날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집안이 복을 받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를 탄압하기 시작한 후 나는 청원하기 위해 지방 도시와 베이징에 갔다. 나는 납치됐고 석방된 후에도 정부로부터 끊임없는 괴롭힘을 당했다. 친척과 이웃들은 파룬궁 수련을 그만두라고 했다. “파룬궁 수련은 위험을 가져다주고 자녀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거예요.” 또 그들은 나를 멸시하기도 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서기가 물으면 그냥 파룬궁 수련을 그만뒀다고 말해요.”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죽어가던 날 구해준 것은 파룬따파였다.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실 겁니다. 괴롭힘을 당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아이들도 진선인을 지지하니 복을 받을 거예요.”

그 당시 딸은 박사생이었다. 대학에서는 딸에게 공산당에 가입하라고 했고 그렇지 않으면 졸업장을 받지 못할 거라고 협박했다. 딸이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나는 공산당에 가입해선 안 된다고 했다. 사실 딸은 이미 중공의 공청단과 소선대를 탈퇴한 상태였다. 딸은 동의했다. 딸은 아무런 문제 없이 박사 학위를 받고 좋은 직업을 얻었다.

공무원인 아들 역시 영향받지 않았다. 동료들은 승진을 거듭하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번은 내가 아들의 승진을 축하하는데 아들이 대답했다. “사부님께서는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라고 하셨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우리는 파룬따파와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한단다.”

손자가 태어난 후 나는 손자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암송하라고 말했다. 손자는 나를 따라 했다. 한번은 손자가 열이 났다. 아들은 걱정하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병원 의사는 말했다. “심각한 병은 아닙니다. 주사만 맞으면 됩니다.” 우리는 지역 병원으로 가서 주사를 맞았고 손자는 곧 회복됐다.

“드디어 파룬따파 수련자들을 만났네요”

나는 2008년 설날 며칠 전에 아들을 만나러 가다가 길가에 가방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집어 들었는데 신분증과 많은 돈이 들어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나는 주인을 기다리려 했다. 그러나 아들과 며느리가 일하러 가기 위해 날 기다리고 있어서 가방을 들고 아들 집으로 갔다.

도착한 후 다시 다시 가방을 확인했다. 신분증 5개와 위안화, 미국 달러, 캐나다 달러 등이 있었다. 총 4만 위안 정도였다. 아들과 나는 가방에서 연락처를 찾지 못했다.

나는 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됐다. 아들은 “괜찮아요, 신분증이 있으면 경찰서에서 연락처를 확인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며느리는 동의하며 말했다. “이제 곧 설날인데 가방 주인이 즐거운 새해를 보낼 수 있도록 이것들을 돌려줘야 해요.” 나는 자녀들도 진선인 원칙을 따르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뻤다.

다음 날 집에 돌아온 아들이 가방을 발견한 곳에 “여기서 가방을 잃어버렸습니다. 발견하신 분은 돈을 가지시고 신분증만 돌려주십시오. 감사합니다”라는 쪽지가 있었다고 했다.

나는 쪽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쉰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내가 “당신 가방을 갖고 있어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감격했다. “감사합니다! 지난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너무 걱정돼 이가 시리고 잠도 못 잤어요. 신분증만 돌려주시고 돈은 가지셔도 됩니다.” 나는 그녀에게 가방에 무엇이 있는지 물었고 그녀의 설명은 맞았다. 우리는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나는 수련생 한 명과 함께 그곳에 갔다. 가방 주인은 생명보험사에 근무하는 동료 세 명과 함께 왔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파룬궁수련자라고 말했고 대법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전부 돌려주겠다고 했다. 대법제자라면 누구나 이렇게 할 거라고 했다.

가방을 돌려주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잡고 고마워했다. 그녀는 가방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 나에게 주면서 감사를 표했다. 나는 말했다. “받지 않겠어요. 대법은 진선인 원칙을 따르라고 가르쳤습니다. 제가 돈을 원했다면 아마 전화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와 동료 세 명은 모두 감동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말했다. “우리는 이제 파룬궁이 바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더는 공산당의 선전을 믿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 모두 중공 조직에서 탈퇴하기로 했다.

헤어지기 전 그녀는 “정말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저에게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파룬따파와 사부님께 감사하면 됩니다.” 그들은 동의했고 떠날 때 모두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이번 일을 통해 그들은 대법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더 좋은 미래와 복을 받게 될 것이기에 나도 기뻤다.

 

원문발표: 2023년 6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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