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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법리에 따라 질투심을 닦아 없애다

글/ 중국 랴오닝성 대법제자 샤오제(小傑)

[밍후이왕]

저는 1999년 초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이 20여 년 수련에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지 않았고 대법 수련의 엄숙함을 몰랐습니다. 질투심과 온갖 집착심에 이끌려 각종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나 장기적으로 시련 속에 머물면서 수련 전반에 심한 교란을 가져왔습니다. 지금 저는 강렬한 질투심을 없앤 경험 및 일부 소감과 깨달은 바를 써내려 합니다. 층차와 오성의 한계로 적절하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질투심 이 문제는 아주 엄중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우리가 수련하여 원만에 이를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문제에 연관되기 때문이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 여기에 한 가지 규정이 있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1]

이 단락 법을 저는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진정으로 중시하지 못했고 법에 따라 자신을 대조하지 못하고 질투심을 한 가지 집착심으로 여기면서 닦았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이미 강조하셨습니다. 즉 질투심을 지니고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불국세계에서도 원하지 않으며, 결국엔 헛된 것으로 수련을 헛되이 한다는 뜻입니다.

줄곧 저는 늘 자신에게 질투심이 매우 적다고 여겼습니다. 특히 가정에서 가족들과 일단 갈등을 빚기만 하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며 가족들은 사람의 정이 있다고 여겨 그것이 수련에 별로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질투심 측면에서 착실히 수련하지 못했고 제고할 수많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얼마 전 너무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는데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 대형마트에 정규직으로 출근했는데 하루 6시간 2교대 근무라서 제가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에 영향 주지 않으면서도 수입이 있는 제게 만족스러운 일자리였습니다.

4월 어느 날, 평소처럼 차를 몰고 수련생과 함께 시골에 가서 진상 간행물을 배포했습니다. 목적지에 이르러 저는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수련생은 차에서 내린 후 주머니 속에서 스카프로 된 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저는 보고 그 마스크를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습니다. 수련생은 제가 일하는 마트에서 샀다고 말했고 저는 “정말 꽤 괜찮네요. 눈을 가리지 않아 꽤 실용적이에요. 출근하면 저도 하나 사야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날은 마침 오후 근무였습니다. 저는 마트에 도착해 스카프 마스크가 있는 매장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해 스카프 마스크를 보고 하나 집어서 주머니에 넣고 일하러 갔습니다. 퇴근할 때가 되어 저는 미리 준비했던 상추 두 묶음을 들고 계산대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계산대에 이르러 상춧값을 계산했는데 마스크를 깜빡 잊었습니다. 이어서 출구를 향해 걸어갔는데 출구에 이르자마자 경고음이 울려 깜짝 놀랐습니다. 스카프 마스크에 마그넷이 부착돼 있었고 그제야 마스크를 주머니에 넣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황급히 계산대로 되돌아가 스카프 마스크값을 계산했습니다. 저는 어쨌든 값을 계산했으니 별일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했을 때 매니저와 마주치게 돼서 저는 “매니저님, 정말 죄송해요. 스카프 마스크 관련 일은 제가 깜빡 잊은 거예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매니저는 “더 얘기하지 마세요. 어젯밤에 저도 출근했었고 전반 과정을 봤어요. 우선 가서 일하세요. 책임자분이 오시면 제가 다시 그분들과 이 일을 잠재우도록 소통해볼게요.”

한참 후 매니저는 저를 찾아와 “일이 난처하게 됐어요. 제가 거듭 그분들께 이 일을 설명해드렸어요. 당신을 정말 남기고 싶지만, 장(張) 책임자님이 동의하지 않으세요. 앞으로 유사한 일이 더 일어날까 봐 염려하세요. 장 책임자님은 반드시 당신을 해고해야 한다면서 또 20배의 벌금을 물린다고 하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친지와 친한 친구들로부터 여러 측면에서 압력을 받은 데 이어, 대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말았습니다. 이 일자리를 잃음으로써 저는 심신 전체가 무너져내렸는데 정말 사부님께서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2]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동시에 제 수련에 일정한 교란을 가져왔습니다. 발정념을 할 때 손바닥이 넘어갔고 법공부를 하면 졸렸습니다.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에 심하게 영향을 줬고 정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신체적으로 심한 병업이 나타나 신체적으로 고통을 감당했습니다. 아울러 구세력(舊勢力)은 끊임없이 제 공간장에 대단히 나쁜 물질을 넣었는데 처음으로 수련의 간고함과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됐고 심신이 매우 큰 압력을 견디고 있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노수련생 집에 가서 수련생과 제가 마트에서 해고당한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수련생은 제게 말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우연일까요? 심성에서 자신을 찾아봐야지요.” 저는 “저도 찾아봤어요. 수많은 사람 마음을 찾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수련생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직도 깨닫지 못했나요? 한동안 사소한 일로 남편과 대판 싸움을 벌였잖아요. 말해보세요. 당신 모습이 수련인인가요? 속인 중의 좋은 사람도 이런 일을 벌이지 않는데 당신은 막돼먹은 여자나 다름없지 않나요? 사악이 당신의 틈을 타지 않을 수 있겠어요? 수련에서 이것은 큰 누락이 아닌가요? 당신이 상대방 얼굴을 때렸으니 사악이 당신을 크게 창피당하게 한 거예요. 저는 당신의 이번 시련은 당신 스스로 불러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수련생의 일련의 말은 ‘쾅쾅’ 천둥처럼 귓가에 울렸고 저를 정신이 번쩍 들도록 깨어나게 했습니다. 저는 수련인답지 못했고 사부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법 수련의 원칙은 ‘진선인(真·善·忍)’입니다. 스스로 20여 년 수련하면서 참지 못했는데 더욱이 선하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위험하기 그지없습니다. 해고는 사실 저를 각성하게 했고 법을 알면서 고의로 어긴 것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대법 수련은 장난이 아니며 엄숙한 것입니다.

저는 또 자신의 질투심을 깊이 파헤쳐 보았습니다. 예컨대 자신이 마트에 출근했을 때 매우 사이가 좋은 두 자매가 있었는데 한 명은 A, 한 명은 B였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서로 매우 잘 지냈고 나누지 않는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B는 책임자로 승진됐고 A는 점차 저를 멀리하더니 B와 가까워졌습니다. B가 야근하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가져왔고 온종일 B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미운 마음이 들면서 마음이 번거롭기 시작했는데 그 괴로움은 형언하기 어려웠습니다. 이것은 정말 질투심 아닌가요?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바로 질투심의 소치입니다. 이 한 층의 법리를 깨우쳤을 때 한 층의 새로운 소감과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법공부를 통해서 비로소 깨닫게 됐는데 알고 보니 제가 잘 수련한 것이 아니고 질투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제 이 마음이 너무 강렬해서 자신조차도 이 마음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느 마음과 어느 생각이 질투심으로 조성된 것인지조차 똑똑히 분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공사가 학습반을 열면 어떤 사람은 거기에 앉아서도 불복한다. 아, 무슨 기공사인가. 그가 말하는 그런 것들을 난 듣고 싶지도 않다.”[1]

이 구절의 법을 읽고 난 후 저는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를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교류할 때 많은 경우 수련생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것도 질투심이었습니다. 저는 이 질투심을 없애야 합니다.

저는 또 자신의 질투심을 깊이 파헤쳐 보았고 이 마음의 뿌리를 찾아냈습니다. 어릴 적에 저는 성격이 외향적이었고 말하기 좋아하며 겨루기를 좋아했는데 무슨 일이든 최고가 돼야 했습니다. 우리 집은 자매가 많았는데 누군가가 저를 건드려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만 하면 즉시 화를 냈습니다. 게다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은 모두 제가 그들보다 나아야 했습니다. 이런 성격은 자신의 질투심을 키웠고 수련에서 일정한 어려움을 초래했으며 줄곧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또 제가 한 가지 고수했던 관념을 찾아냈는데, 바로 법으로 타인을 가늠하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갈등에 부딪히면 타인이 저를 질책해도 반감이 들지 않았고 다음번에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의사를 표했지만, 속으로는 곧바로 그래도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입으로 말한 것과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요? 전형적인 당(黨: 공산당) 문화입니다. 말 따로 행동 따로였습니다. 저는 자신의 이런 염두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알았는데, 거의 매일 모두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자신을 도와달라고 청을 드린 후 발정념으로 그것을 깨끗이 청리(淸理)하고 소멸했는데 지금 그것은 이미 갈수록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시련과 교훈을 겪은 후, 저는 사부님의 홍대하신 자비를 체득하고 깨달았습니다. 저를 대신해 거대한 업력을 없애주신 동시에 제 정념을 일깨워주시고 수련의 엄숙함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마음을 닦는 것에 있어서 저는 더는 감히 조금도 태만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장기적으로 당문화를 닦아 없애지 않고 질투심을 닦아 없애지 않아서 자신의 업력을 소멸하지 못한 것은 물론, 주변 환경과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 불리한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대량의 법공부를 통해 저는 당문화가 주입되어 질투심이 가득한 사람은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선 ‘진(真)’에 부합하지 않는데, 흔히 말 따로 행동 따로이거나 사실을 과장하기 좋아하고 자신을 표현하기 좋아하면서 자신이 말한 말을 실천하기는 어려워합니다. 이는 진(真)과 선(善)에 부합하지 않으며 선(善) 역시 위선(僞善)입니다. 자신을 표현하기 좋아하는 것은 진정으로 상대방 입장에 서서 문제를 사고하는 것이 아니므로, 인(忍)은 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남을 용인하지 못하는 것이고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입니다. 늘 법으로 타인을 가늠하면서 자신이 타인보다 잘 수련했다고 생각하며, 늘 자기가 올바르고 타인이 잘못됐다는 것을 실증하려 합니다. 이런 것은 모두 구우주(舊宇宙) 생명의 위사(爲私) 속성입니다. 저는 스스로 이 사(私)에서 걸어 나오는 과정에서 오직 잘 수련하려는 마음이 있고 진지하게 이런 집착을 마주해 없애려는 마음만 있다면 사실 모두 사부님께서 해주시며, 사부님께서 줄곧 저를 도와 이런 나쁜 물질을 없애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갈등에 부딪히거나 타인이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면 속으로 ‘왜 갈등이 내 여기에 일어난 걸까? 왜 이런 것을 내가 보도록 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잘 수련했고 제 공간장이 깨끗하고 바르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므로, 얼른 자신의 어디가 법에서 빗나갔고 잘하지 못했는지 찾아봅니다.

평소에 타인에게 무슨 나쁜 마음이 있는 것을 보면 곧 자신의 문제를 생각해보고 왜 내게 보도록 했는지 먼저 자신을 살펴보면, 정말 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 자신 역시도 예전에 이러했다는 것을 곧바로 깨닫습니다. 수련 과정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모두 자신이 우주 대법을 바르게 깨우치는 방식과 과정이 있습니다. 왜 반드시 자신의 견해에 부합해야 할까요? 우주의 법은 그처럼 크며 무슨 나쁜 요소든지 모두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한순간에 관용할 수 있고 용인할 수 있으며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저는 일을 하면서 마음과 사유 모두 매우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주의 법이 저를 용련하고 있는데, 이것은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위덕입니다. 사부님의 호탕하신 성은(聖恩)에 감사드립니다!

정법 노정이 급격히 추진되는데 저는 반드시 심성에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합니다. 대법에 먹칠할 수 없으며 더는 사부님께 걱정을 끼쳐드릴 수 없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마음고생(苦其心志)’

 

원문발표: 2022년 6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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