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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경지에 대한 체득과 깨달음

글/ 쓰투(司徒)

[밍후이왕] 최근에 발생한 세 가지 일로 수련인의 경지를 깨달았기에 이를 써내어 수련생 여러분들과 나누려 합니다.

현지 법공부 팀에서 어떤 수련생이 “사부님의 설법은 세워 놓아야지 눕혀 놓으면 안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심성에 공을 들이지 않고 온종일 무엇을 깨우쳤나요? 조금 전에는 집에 있지 않고 곳곳에서 작은 동물(약용 지네를 말함)을 파내더니 지금 또 이 일을 벌이시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일이 지난 뒤, 저는 문득 자신의 심성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생들이 심성을 수련할 줄 모르니 얼마나 불쌍한가요! 그러나 저는 그들을 조롱했습니다. 미혹 속에서 수련의 길을 찾지 못하는 수련생에게 연민을 갖거나 적어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상태여야 합니다. 여기까지 쓰다가 저도 제 경지를 제고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제 퇴근 전, 동료가 제게 “남편께서 오늘 쉬시니까 퇴근하면 남편께서 만드신 식사를 하시겠네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요, 남편은 쉴 틈이 없어요. 제가 식사 준비를 하고 남편은 할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귀가해 급히 식사 준비를 마치자 남편은 7시에 내려와 식사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가 한 요리마다 잘못 만들었다며 저를 한바탕 욕했습니다.

아이는 이미 침대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잠들기 전, 제게 식사하기 전에 꼭 자기를 깨워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딸을 깨울 때마다 일어나려 하지 않고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딸을 자게 두고, 깨어나면 다시 식사를 데워서 먹을 수 있게 줬습니다. 그런데 딸은 깨어난 뒤, 또 자기를 깨우지 않고 우리끼리 먼저 식사한 것은 자기를 신경 쓰지 않은 거라며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오늘 또 딸을 깨웠지만, 여전히 일어나려고 하지 않고는 저에게 화를 냈습니다.

저는 남편과 딸에게 욕을 먹고도 마음속으로 웃었습니다. ‘이런 가정이 있어 가족에게 욕도 먹으니 나는 꽤 행복하네. 가족이 마음속 화를 내게 퍼붓는 것은 나를 신뢰하고 내게 의존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욕하게 놔두자. 욕하라!’ 결국, 두 사람은 모두 멈췄고 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아? 예전에 나는 이런 경지가 아니지 않았던가. 나는 늘 참기만 했지. 그래서 늘 원망과 화를 닦아 없애지 못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밍후이왕에서 어떤 수련생이 쓴 글이 생각났습니다. 거리에서 진상을 알리던 그에게 속인이 뺨을 한 대 때리자 그는 웃으며 “화가 풀렸어요? 화가 안 풀리면 이쪽도 더 때리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방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경지가 정말 높다고 말했고, 진상까지 알게 돼 구원받았습니다. 식사 준비를 하는 이 사소한 일을 통해 저는 관념을 바꿔야 수련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며, 원망과 화를 지니고 참으면 원망과 화가 아무리 적더라도 속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현대 사회도덕이 심하게 미끄러져 내려가, 회사의 동료들은 개인 이익을 위해 정말 무슨 일이든 감히 합니다. 그들이 저와 이익을 다툴 때, 저는 억지로 참으면서 마음속으로 그들을 정말 경멸했습니다! 지금 저는 갑자기 변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그 자그마한 이익을 위해 잘 먹지 못하고 잠을 잘 자지 못하기에 매우 고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까지 다투어서 얻은 것이라곤 온몸에 업력이 한가득한 것으로, 지옥에 내려가 또 갚아야 합니다. 중생은 고해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데, 정말 끝없는 고난입니다. 이제 제가 그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더는 경멸이 아니라 연민입니다.

예전에 ‘사부님의 은혜를 회상하다(憶師恩)’에서 어떤 수련생이 사부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눈빛에는 연민이 가득하셨다고 말했는데, 저는 그것이 바로 자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왜 약간의 자비심조차 없을까요? 이제 저는 마침내 그렇게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慈悲心(츠뻬이씬)이 나올 때, 아마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워 보이고, 누구를 보아도 모두 고생스러워 보이는, 이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1]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워 보여야 비로소 자비심을 수련해낸 것이고,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있어야 내심으로부터 우러나 중생을 구하려는 소망이 생기며, 이는 자신이 원만하여 되돌아가기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련자의 경지입니다. 아울러 행한 것이 아무리 많더라도 개인의 제고를 위한 것이라면 속인의 경지에 있는 것입니다.

약간의 수련 체득이니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2년 5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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