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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문 ‘깨어나라’를 읽고 느낀 점

글/ 중국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의 신경문 ‘깨어나라’를 읽고 시간이 확실히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사부님께서 일부 법에 있지 않은 엄중한 일을 예를 들어 말씀하셨다. 비록 사례였지만, 나는 우리 매 대법제자를 겨냥해 말씀하신 것이라고 깨달았다. 현재 비교적 두드러진 문제, 정이 깊고 일을 할 때 극단적으로 가는 등이다.

1. 정이 깊은 문제

정은 인류 사회 각 방면에 스며있다. 정이 우리 어느 곳에서 체현되고 심각한지 심각하지 않은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이런 문제를 찾아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대법제자가 사명을 이행하는 마지막 순간 잘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일이든지 모두 인연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사람은 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바로 사람에게는 정(情)이 있으며, 사람은 바로 이 정을 위해서 산다. 육친정ㆍ남녀지정ㆍ부모지정ㆍ감정ㆍ우정, 매사에 정분(情份)을 말하며, 곳곳마다 이 정을 떠날 수 없다.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사랑과 미움, 전반 인류사회의 모든 것이 전부 이 정(情)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1]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1] 일부러 무엇을 하려 하는 이것도 정이다! 이전에 여태 이 문제를 주의하지 않았다. 시간이 있으면 본래 법공부를 더 많이 하려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든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 같다. 본래 이런 일을 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고 ‘정’에 이끌려 한 것이고 이지적이지 않다.

“매사에 정분(情份)을 말한다”[1] 이것은 최근 사부님께서 내게 점화해 주셨다. 며느리(수련생) 회사 동료가 며느리에게 표창장을 주었다. 며느리는 감사를 표하겠다며 인터넷에서 식품을 구매했다. 며느리는 이게 맞는지 틀리는지 물었다.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 “잘못된 게 없지.”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택배회사에서 물건을 보내지 않았다. 문의하니 우리 주소로 물건을 보낼 수 없다고 했고(혹시 전염병 원인인지 나는 깊이 묻지 않았다) 우리는 주문을 취소했다. 이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우연한 것이 아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 마침 사부님의 법을 보았다. “매사에 정분(情份)을 말한다”

‘남녀지정’, 내 몸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이것은 ‘색(色)’이다. 나의 이해는 ‘색’의 근원은 정이고 심지어 변이된 ‘정’이다.

‘색’의 위험은 확실히 크다. 수련에 영향 줄 뿐 아니라 사람의 전체 정신상태에 영향을 준다. 소침하고 안일하고 진취적인 생각이 없다. 왜 사람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주는가? 왜냐하면 ‘색’은 사람의 정혈지기, 사람의 정화(精華)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적당하지 않지만, 사례를 들겠다. 자동차가 주행하려면 기름이 필요하다. ‘색’은 자동차에서 기름을 쏟아버리는 것이고 헛되게 허비한다. 자연히 자동차는 동력이 없어 전진할 수 없다.

‘색(色)’에서 걸어 나오려면 정념(正念)을 세워야 하고 바른길(正道)을 걸어야 하고 바른 소원을 해야 하고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 ‘색’은 자기가 아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츠뻬이(慈悲)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정에서 뛰쳐나오면 어떤 일이나 물건을 보든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어떤 정경을 접해도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노력해 정진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법의 요구다.

2. 일에서 극단으로 가는 문제

왜 극단으로 갈까? 내가 발견하기로는 흔히 자기 각도에서 다른 사람과 일을 보기 때문이다. 전면적인 각도에서, 상대방 입장에 서서 생각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지 못했다.

사람이 한 가지 일을 보고 한 가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만약 사람 마음을 지니고 말하면 흔히 일의 본질을 보지 못한다. 사람의 표면은 모두 업력과 관념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한 가지 일을 말할 때 우선 그가 말하는 말은 자기의 많은 개인 요소, 관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듣는 사람도 표면적으로 역시 업력과 관념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 그는 정보를 듣고 자기 업력을 더해 자기 관념으로 이 일을 이해한다. 보고 들은 것은 아마 실제 상황과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런 후 이들은 사람은 자기의 이해를 토대로 어떤 생각이 생기고 혹은 또 어떤 일을 하는데, 법과 편차가 더욱 크다. 그러므로 내가 인식하기에, 우리 수련인은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외재적인 것을 질책하지 말고 빨리 ‘안으로 찾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다른 사람이 누구에게 어떤 일이 있다고 하는 것을 들으면 제때 이 일을 거울로 삼아 반대로 자신을 봐야 한다. 물론 해내기는 확실히 어려움이 있고 흔히 잊어버린다. 우리는 정진밖에 할 수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2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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