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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법공부하고 정체(整體) 협력해 진상을 ‘펼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52세 농촌 여성이다. 부모님이 1998년에 법을 얻으셨기에 나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안다. 그때 나는 결혼해서 생활하느라 10년을 허송세월하고 정식으로 수련을 하지 않았다.

2009년, 나는 정식으로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의 기쁨이 나를 에워싸고 나는 사부님이 계시기에 너무 행복했으며 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나는 사람의 일생은 이미 잘 배치되어 있다는 것과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법리, 득실은 반드시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사는 것이 모두 홀가분해졌다! 매일 싱글벙글하며 생활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어 행복했다.

법공부 장소인 우리 집

수련하기 시작한 후 나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 무조건 최선을 다했다. 법공부하는 장소를 제공했던 수련생에게 특별한 사정이 생겨 법공부를 잠시 멈추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때는 박해가 심한 때라서 다른 수련생들의 집은 불편했다. 우리 집은 남편이 외지에서 일하고 있고 아이도 외지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어 환경이 좋았기에 나는 우리 집에서 법공부를 하자고 제안했다. 모두 의논한 후 우리 집을 법공부 장소로 정했다.

사실 나는 예부터 우리 집에서 법공부하기를 원했었다. 법공부 날이 되면 나는 집 안을 깨끗이 청소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모두 미루고 법공부를 첫 자리에 놓았다. 수련생들이 자료가 부족하면 나는 차를 몰고 시내로 가서 가져오고 그래도 부족하면 내가 배워가며 스스로 만들어 제공했다. 자료를 집에 가져가지 못하는 수련생은 자료를 우리 집에 놓아두게 했다. 나는 외출 시에 문을 잠그지 않고 수련생들이 수시로 자료를 가져갈 수 있게 해 일 년 사계절 수련생들이 사람을 구하는 데 지장이 없게 했다.

나중에 아들이 결혼하게 되자 나는 며느리에게 미리 진상을 알렸다. 그들의 지지로 우리는 여전히 법공부를 할 수 있었다. 며느리가 출산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아들을 일부러 집으로 돌려보내 수련생들이 법공부 후 자료를 가져가게 해 수련생들의 편의를 봐줬다.

물론 그 과정에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A 수련생이 있는데 항상 늦게 오면서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문을 세게 두드리고 큰 소리로 말하며 안전에 주의하지 않았다. 왜 늦었냐고 물으면 잠을 자다가 늦었다고 했다. 매일 점심때 잠을 자지 않으면 머리가 맑지 않아 정신을 차릴 수 없고 법공부를 잘하지 못한다고 했다. 심지어 특별한 일이 없어도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 싫으면 오지 않으면서 단체 법공부를 착실히 대하지 않았다.

자주 이렇게 법공부 환경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 그 수련생에 대한 원망심이 생겼다. 나는 법학습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누가 좋은 직장을 소개해줘도 법공부에 영향을 끼칠까 봐 거절했다. 나는 법공부 환경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수련생의 표현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 번은 내가 사당(邪黨)에 납치당해 15일간 불법 구류됐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수련생들에게 우리 집에서 하는 법공부모임을 잠시 중단하자고 했다. 사실 법공부 환경이 수련생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이 기회에 깨닫고 이런 환경을 소중히 여길 것을 바란 것이었지만 실제로 추구하는 마음이 충족되지 못해 생긴 원망과 복수심이었다.

우리는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바빠졌다. 집을 짓는 동안 수련생을 구출하고 법으로 박해를 막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느라 더 바빠서 단체 법공부를 하지 못했다. 수련생 구출 활동이 한 단락 마무리 짓고 새집에 입주해 좀 한가해지자 나는 수련생들을 다시 우리 집으로 모셔 법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남기신 단체 법공부는 좋은 점이 많다. 수련생들과 교류할 수 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알려줄 수 있다. 수련생 구출 시 제때 협력할 수 있고 수련생들의 정체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수련생들을 다시 모시고 우리 집에서 법공부를 하게 됐다. 수련은 나 자신이 하는 것임을 알게 된 내 심성도 높아져 다시는 수련생의 부정적인 일면을 보지 않았다. 특히 새집으로 이사한 후 수련생들은 날 도와 환경을 보호해줬다. 그들은 바닥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신발을 문 앞에 놓음으로써 나의 부담을 덜어주려 했고 큰 소리로 떠들지 않고 접착제를 붙일 때도 칼로 바닥을 긁지 않게 주의하자고 했다. 일이 있을 때면 법공부가 끝난 후 같이했다. 예를 들면 전시판을 통째로 붙인다든가, 보드 판 뒷면에 접착제를 미리 붙이는 등, 일을 마치면 같이 마무리했다. 법공부에 참가하는 시간을 지켰고 공부할 때 화장실에 가는 사람이 적어졌고 물 마시는 사람이 없어졌다. 공부할 때면 대부분 가부좌를 하고 앉아 법공부 태도와 자세를 바르게 했다. 모두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환경을 소중히 여겼기에 우리 법공부 팀은 사부님의 가지(加持) 하에 오늘날까지 안전하게 걸어왔다. 앞으로 우리는 서로 협력하며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가려 한다.

수련생과 협조해 진상을 알리다

내가 정식으로 수련을 시작했을 때 사악한 요소가 많고 환경도 좋지 않아 우리 현지에는 아무도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이 없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밖으로 나가서 사람을 구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대법제자의 사명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좀 담대한 편이어서 수련생들을 데리고 나가 진상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신수련생인데 오래 수련한 수련생들이 내가 나서서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진상을 알리려 한다면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나는 평소에 승용차를 몰고 다니기에 집에 오토바이가 없었다. 나는 수련생들에게 나는 신수련생이고 오토바이도 없는데 누가 날 데리고 나가서 진상을 알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나는 한 수련생에게 오늘 시간이 되냐고 물었다. 그가 오늘은 안 된다고 해서 내일은 어떠냐고 묻자 내일은 괜찮다고 해서 내일 같이 가자고 약속했다. 다음 날 그가 자전거로 날 데리고 함께 갔다. 다음번엔 다른 수련생이 나를 데려가도록 했다. 차츰 내가 말하는 걸 보고 그들도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됐다. 나중에는 여러 팀이 구성됐다.

수련생들이 진상 알리기에 참여하자 진상 자료 공급이 문제였다. 현지에 자료가 없으면 나는 차를 몰고 시내로 가서 가져왔고 나중에는 제때 공급하기 위해 내가 스스로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 자료를 만들어 수련생들과 같이 배포했다. 달력이 나오자 차를 몰고 수련생들을 데리고 큰 장터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달력을 배포했다.

어느 해 밍후이왕에 A3 9장이 한 세트인 보드판이 나왔다. 9장을 직접 맞춰 적당한 곳을 찾아 붙여야 했다. 보드판이 큰 데다 이전에 만들어 본 경험도 없고 또 본인이 붙여야 했다. 수련생들은 누구도 감히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보드판이 기품이 있어 보이고 사람들 눈에 잘 뜨일 것이며 사악을 두려워 떨게 하고 대량으로 해체하는 진상 효과가 좋을 것 같았다. 만약 많은 수련생이 모두 참여해 붙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어떻게 여러 수련생이 쉽게 붙일 수 있을까? 나는 방법을 생각해 여러 번 실험하고 개선하며 많은 신경을 썼다. 처음에는 테이프로 9장을 연결한 다음 벽에 풀칠한 뒤 붙였다. 붙인 후 사람들이 계속 보는 효과가 있어 나는 동력이 생겨 더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잘 달라붙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 큰 길가는 오가는 사람이 많아 장소는 좋으나 담장이 없고 모두 나무라서 붙일 수 없었다. 어떻게 하지? 나무에 묶자. 나는 사용하지 않는 흰 천을 찾아내 전시판을 천에 붙이려 했다. 그러나 천이 너무 부드러웠다. 나는 천에 풀칠하고 집안 바닥 타일 위에(바닥이 따뜻해) 펴 말렸다. 천이 빳빳해져 그 위에 전시판을 한 장씩 붙이고 네 모서리에 줄을 달아 길가 나무에 맸다.

이렇게 하면 효과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시간과 공이 많이 들어 효율이 높지 않았다. 나중에 전시판을 바닥에 내려놓고 앞면을 먼저 연결하고 뒷면은 접착제로 붙인 후 벽에 붙였더니 판이 큰 데다 뒷면 중간의 접착제를 벗기기 어렵고 조심하지 않으면 또 한 데로 달라붙어 판이 뒤틀리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이후에 전시판을 세로로 석 장씩 붙인 후 세 번에 나누어 붙였다. 실험해 보니 훨씬 편리하고 효과도 좋아 모두에게 보급하자 수련생들이 모두 참여했다.

나중에 겨울에 접착제가 잘 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접착제를 살 수 없을 때도 있고 원가도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신발 수선하는 노란색 접착제가 원가가 낮고 접착력이 강하며 빨리 말라 붙이기 직전에 바르면 됐다. 효과가 좋아 철판, 벽돌, 시멘트, 철망 어느 곳에도 다 붙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이 하면 더 효율적이어서 우리는 조를 나누어 사방에 게시판을 붙이기 시작했다. 걸어 나올 엄두를 못 내는 수련생이 있자 내가 차로 데리고 다녔다. 내 승용차는 네 모서리와 문짝이 군데군데 긁히고 부딪혀 볼품없었지만 그래도 대법 일을 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정체로 협력해 진상을 ‘펼치다’

우리 지역 수련생들은 우리가 정체(整體)를 이루기를 희망했다. 내가 생각해보니 정체로 협력해 일하려면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고 힘을 한 곳에 써야 전체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고 더 많은 수련생을 이끌어 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협력해야만 목적에 도달할 수 있고 또 정체 협력할 기회가 있어야 했다.

이후에 나는 사람들에게 본 지역 사악을 폭로하면 수련생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악경(惡警)과 나쁜 사람을 폭로하고 사회에서 그 사람의 악행을 공포(公布)하는, 이런 방법은 이성(理性)이 없는 그런 악인을 두려워 떨게 하는 더할 수 없는 큰 작용을 일으켰다. 동시에 또한 현지에 진상을 똑똑히 알려 사람들에게 사악의 박해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폭로와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또 거짓말에 독해되고 기만당한 사람들을 구도하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이었다. 대륙의 전체 대법제자들과 신수련생들이 모두 이 일을 잘하기를 희망한다.”[1] 이 몇 년간 현지 수련생들을 박해하는 데 전력을 다한 현지 국보대장을 폭로할 것을 수련생들과 교류한 결과 모두 찬성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수련생 세 명을 찾아 상의했다. 내용을 보드판으로 만들면 강도가 높고 효과가 좋을 것 같았다. 누가 할 수 있을까? B 수련생이 할 줄 아는 수련생을 찾아 하나를 만들어 우리에게 보여줬다. 컴퓨터로 보니 효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이후에 우리 몇 명이 모여 보드판에 쓸 내용을 아홉 장에다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토론했다. 보드판은 분량이 한정돼 완벽하게 쓰지 못하므로 책자에다 내용을 보충해 더 포괄적으로 만들자는 수련생의 제안에 찬성했다. 아이디어가 생기자 C 수련생에게 이미 구상했던 미비한 전시판을 만족할 만한 전시판으로 수정하게 했다.

이렇게 되자 C는 난감해했다. 그는 보드판을 만들어 본 경험은 없지만, 그만이 컴퓨터를 다룰 줄 알기에 더 미룰 수 없었다. 처음에 흰색 바탕으로 했는데 밍후이왕 게시판과 느낌이 달라 효과가 별로 좋지 않았고 여러모로 미흡해 보였다. 다시 수정하기를 바랐지만, 탐색 단계에서 작성하다 보니 수련생이 정말 힘들어했다. 시간이 좀 걸리자 기다리는 나도 마음이 조급해졌고 너무 힘들었다.

사부님의 가지하에 수련생의 끈질긴 노력으로 완성품이 나왔다. 우편함을 여는 순간 정말 눈부셨다. 보라색 바탕에 그림이 밝고 예뻤다. 그 후 수련생은 별 어려움 없이 책자를 정리해냈다.

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수련생들이 정체 협력해 전시판을 곳곳에 붙인 후 책자를 융단을 펴듯이 전체 시에 전면적으로 빠짐없이 배포한다면 악을 해체하고 악인을 진섭(震懾)하는 동시에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기회에 융단식 배포 방법을 연구한다면 이후에 밍후이 책자와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등 자료를 대량 배포할 수 있어 진상을 매 구석구석까지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진정한 정체 협력을 해야 한다. 전시판을 만든 후에 우리는 먼저 전시판을 붙였다. 거리마다, 도시에서 농촌까지 수련생들이 곳곳에 붙였다. 특히 번화한 큰 거리 담벼락, 정거장 표지판, 공안국 입구, 국보대장 주택가 맞은편 광장 광고판 등에 붙인 효과가 좋았다.

전시판을 붙인 다음 날 아침 수련생이 효과를 보러 나갔다.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보고 있었고 정거장 표지판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작은 광장에선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광장무(廣場舞)를 추고 있고 그 뒤에는 악을 고발하는 전시판이 붙어 있었다. 현(顯) 소재지에 사는 수련생 말에 의하면 거리에서 수시로 사이렌 소리가 울려 소란스러웠다고 한다. 국보대장이 한 수련생에게 직접 문자를 보내 “당신들이 한 일인 줄 알고 있으니 기다려라, 5일 후에 잡으러 간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이 수련생이 걱정돼 법공부 모임에서 이야기하자 수련생들은 사악이 잡으려면 진작 들이닥치지 문자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그가 확실히 무서워한다는 것과 이 전시판이 강력하게 사악을 제압한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했다.

씬탕런 뉴스와 밍후이왕에서 이 일을 보도해 현지 수련생들이 모두 매우 고무됐다. 우리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격려하시는 것임을 알게 됐다. 어려움 속에서 정념정행하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전시판을 다 붙이고 책자를 얼마나 만들어야 하는가? 인터넷에 접속해 조사해 보니 이 시의 인구가 60만 명 정도 됐고 도, 마을에 정부 사무소가 몇 개 있는지, 마을이 몇 개며, 마을마다 대략 몇 가구인지, 집집이 한 부씩 배포한다면 총 몇 권이 필요한지, 기본적인 숫자가 나왔다.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대량의 책자를 만들어야 하기에 나는 자료점 수련생에게 인쇄만 하고 내가 가져다 제본을 책임지기로 했다. 그때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나와 시누이가 번갈아 시중을 들어야 했다. 내가 바쁜 것을 본 한 노년 수련생이 자신은 나이가 많아 자료를 배포하러 멀리 나가지 못하니 본인이 제본하겠다고 자청했다.

이때부터 이 수련생이 대량의 제본 작업을 맡았고 때로는 가족과 함께해 제때 책자를 공급해줘 사람을 구하는 일을 지체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감동했다. 수련생들의 정체 협력의 효과는 참으로 좋았다. 관할구역 배포를 먼저 완수한 수련생은 배포가 늦은 사람을 도와줘 한 달도 안 되는 사이 우리는 전면적으로 빠짐없이 진상을 알렸다. 이번 정체 협력은 앞으로 진상을 잘 알릴 수 있도록 좋은 기초를 다져놨다.

그 후 수련생들이 합심해 진상을 알렸는데 한 가지 자료를 2주면 40여 개 마을에 배포할 수 있었다. 다른 지역 수련생들도 우리 경험을 배워 어렵지 않게 전면 진상을 알렸다.

2020년 전염병 여파로 마을이 모두 봉쇄됐다. 우리도 방법을 바꿔 자료를 지정된 장소에 갖다 놓으면 찾아가 배포했다. 매번 새로운 진상 자료가 나오면 나는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집마다 배포했다. 밍후이왕에서 새로운 내용을 제시해 또 한 바퀴 돌렸다. 추운 겨울날 손이 시리다가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면 마음마저 따뜻해지고 편안해졌다. 나중에 이웃 마을 수련생들과 연락이 닿아 그들에게 자료를 갖다주어 그들도 온 동네에 뿌렸다.

봉쇄가 풀리자 우리는 읍내에 또 한 차례 역병에 관한 진상 자료를 한 집 한 집 전했고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이야기했다. 이제 규율이 잡혀 진상을 ‘펼친다(鋪)’고 하면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선다. 이젠 마을마다 몇 가구가 살고 있는지 몇 권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아서 중생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이다. 밍후이왕에서 제공한 QR코드 카드는 내용이 전면적이고 매일 업데이트 되고 언제라도 진상을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우리는 이 카드로 또 한 번 진상 자료를 ‘펼쳤다’.

오늘날 세상의 정세 변화는 매우 크고 각종 천재지변, 특히 역병이 발생했다. 수련생들은 사부님의 정법이 최후에 이른 것을 알기에 열심히 자신을 수련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있으며 사람을 많이 구하고 있다. 우리는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하며”[2], 자신의 서약을 이행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3-수련생 문장에 대한 평어’

 

원문발표: 2021년 11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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