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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함’의 옳고 그름

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어려서부터 뭐든 진지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공부할 때 진지했기 때문에 성적이 좋았고 내내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 학생이었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회사의 상사에게도 진지한 업무 태도를 인정받았다. 해외로 나오기 전 십수 년의 박해 환경 속에서도 나는 업무에서 뛰어난 능력과 진지하고 책임지는 태도 덕분에, 정치 활동 간부가 괴롭히는 속에서도 기술관리 담당 상사가 제공하는 각종 기회를 통해 회사에서 한 몫을 도맡아 할 수 있었으며, 안정적인 직장과 진상을 알리는 환경이 있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서 ‘진지함’이라는 것은 언제나 옳은 것이었다. 특히 개인 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서 일할 때 그러했다. 나는 이렇게 자신에게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 표준으로 남을 가늠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타당치 않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얼마 전까지 한 가지 일이 있었는데, 구체적인 과정은 여기에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로서는 좀처럼 접하지 못했던 심성관이었다. 20여 년의 수련 기초가 있었기에 겉으로는 조용히 지나갔지만, 사실 그 이틀간 마음속은 혼란스러웠다. 안으로 찾으니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과 허영심이 있었다. 하지만 근본을 찾지 못했는데, 속으로 아직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근본 원인을 찾으면 마음이 홀가분한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 일은 내가 아직 감지하지 못한 집착심을 겨냥해 온 것이라고 인식했다.

나는 모순 그 자체와 그 안에 있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진지함’이라는 두 글자가 보였다. 그렇다. 이 일은 내가 너무 진지해서 발생한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고, 이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할 수 없었다. 문제는 이 두 글자에서 생긴 것 같았다. 나는 1년 동안 ‘진지함’과 관련된 모든 나의 언행과 행동 및 반영되어 나오는 수련상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항목 중의 일은 기술적 요구는 높지 않지만, 매우 번거롭다. 세세한 숫자 하나, 문자 하나까지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아주 꼼꼼하지 않으면 하기 어렵다. 누구나 일을 하다 보면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동료가 실수를 할 때 자주 나의 업무에서 피드백이 나온다. 이때 나는 대다수 직접 잘못을 지적해준다. 이유는 이런 유사한 잘못이 후에 중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고객에 책임져야 하고 중생에 책임져야 한다. 그 수련생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간혹 조급해하면서 무례한 말도 서슴지 않고 강요했다. 일은 반드시 진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물며 사람을 구하는 일임에랴. 착오를 방지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이 ‘진지함’이라는 잣대를 들고 진지하게 타인을 가늠했다. 다행히 수련생은 너그러이 받아들였고, 다들 협력해서 작업 과정을 규범화해 착오 발생 비율이 갈수록 낮아졌다. 그래서 내 심성 상의 누락은 ‘진지함’이라는 이 두 글자에 덮어 감춰졌다. 이후 줄곧 우리 팀 외에 다른 사람들과 심성 고험이 생기면서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이다.

지금 되돌아 이 과정을 보면 ‘진지함’이라는 이 두 글자에 대해 나는 단지 절반만 맞은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자기의 그 ‘진지함’이라는 잣대를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됐다.

우리 팀 수련생은 다양한 배경에서 왔고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봐야 하는 사람, 사무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 나이가 좀 많은 사람, 여러 항목을 겸하는 사람 등이다. 다들 각자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항목에 참여했다. 특히 전적으로 이 항목을 하는 수련생은 참 대단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점들을 고려하지 않고 내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고 한 것일까! 여기에 자아에 대한 집착심이 섞여 있고 수년간 사회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형성된 사람의 관념이 아닐까? 더욱이 선하지 않은 요소도 있다.

그럼 수련생의 업무에서 부족한 점이 보이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대법제자로서, 이때 만약 염두가 바르다면, 생각한 것은 수련이고 책임이며 잘해야 한다는 것인 즉, 당신이 완전하지 않다고 여기는 곳, 그것을 당신은 묵묵히 잘해야 하는바,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대법제자가 모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어떠한 일이든 모두 반드시 대단히 잘할 것이다.”

“이러한 것을 중히 여기지 않고, 당신이 본 부족한 점을 당신이 묵묵히 잘 완성해 나가고, 묵묵히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잘 하며, 당신이 그 한 가지 일 중 완전하지 못한 부분을 스스로 묵묵히 잘 한다면, 뭇 신들은 크게 탄복할 것이며, 이 사람은 너무나 대단하다! 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가 해야 하는 것이다.”[1]

나는 완벽하지 않은 점을 보완하기는 했지만, 늘 형식을 갖추고 드러내면서 보완했다. 속으로 늘 남을 변화시키려 했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묵묵히’ 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타인의 그 작은 실수들은 실제로 영향이 크지 않았다. 봤으면 묵묵히 고치면 되고, 비교적 쉽게 착오가 생기는 부분은 더 신경 쓰고 관심을 기울이고 보완하면 된다. 이런 일은 사실 진지하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부 중요한 문제는 당연히 말해서 다 같이 개선해야 하고, 나중에라도 말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를 이야기할 때의 마음가짐과 어투는 이전과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나는 더는 원망하거나 질책하지 않을 것이고, 내가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려고 남에게 강요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진정하게 항목에 대해 책임지고 수련생에 대해 책임지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평온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생각을 교류할 것이다. 진정으로 해내야 비로소 자신의 수련에 대해 진지한 것이다.

여기까지 쓰니 눈앞은 이미 유암화명(柳暗花明)이다. 밍후이왕을 통해, 이전에 내가 ‘진지함’이라는 기준으로 상처 준 수련생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수련의 길에서 수련생들과 함께 정진하고 싶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0-더 정진하자’

 

원문발표: 2021년 9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9/10/4306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