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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제자, 성스러운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 정진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청년 대법제자이다. 어느 날 우리 지역의 조정 담당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지역의 다른 청년 수련생들을 직접 만나서 함께 서로 격려하고 정체를 이루어 열심히 수련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고, 이런 제안이 신성하게 느껴져 사존님의 배치에 감사드렸다.

나는 이 일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의 수련에 대해 더욱 엄격히 요구했다.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 말이 작용을 일으키고 법의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주변의 청년 수련생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왜냐하면 나도 한때는 나태하게 지냈고, 그러한 나날들이 암담하고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세상의 혼란에 빠져드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 억만년의 기다림은 한 번 놓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모두 법으로 돌아와 정진 실수하기를 바랐다. 이리하여 반드시 그들을 일깨워주겠다는 숙원을 담아 청년 수련생들을 정법(正法)의 길로 불러들이는 일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수련생을 찾았다. 처음에는 또래 여자 수련생과 호흡을 맞추다가 나중에는 남편(수련생)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집에 돌봐야 할 아이가 있어서 내가 월, 수, 금요일에 집에 있고 화, 목, 토요일은 남편이 나가기로 했다. 저녁에 아이가 잠든 후 나와 남편은 한 시간 동안 발정념(發正念)을 하여 생각 속의 잡념을 없애고, 청년들이 법으로 돌아가도록 방해하는 사악한 요소들을 깨끗이 청리했다. 발정념이 끝나면 간단하게 다음날의 일정을 안배했다. 때로는 일하면서 나타난 사람 마음을 교류하고, 제때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안으로 찾기도 한다.

우리는 다양한 형식으로 그들과 접촉했는데 여기서 단지 몇 가지 예를 들겠다. 우리는 먼저 두 여성 수련생을 만났다. 매주 정기적으로 그녀들의 집에 가서 법을 배우는 것 외에, 우리 집에서 3일 동안 함께 지내며 법공부했다. 이 3일 동안 우리는 이 환경을 매우 소중히 여겨 조금의 시간도 놓치지 않았다. 한 여성 수련생이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약간 긴 머리 여자가 위층에서 밧줄로 자신을 잡아당겼다고 했다. 나는 꿈속의 그 여자가 바로 나라는 걸 깨달았다. 당시 나는 약간 긴 머리였다. 그녀는 사부님의 격려라고 여기고 수련에 자신감이 생겼다.

어느 날 그녀가 우리 집에서 법공부 할 때 졸음이 왔는데 줄곧 돌파할 수 없게 되자 다시 졸리면 무릎 꿇고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법공부 하면서 다시 졸리자 그녀는 단호히 무릎을 꿇었는데, 무릎을 꿇는 순간 졸음이 모두 없어지고 그 후로는 법공부를 하면서 졸린 적이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 수련생도 “딸의 수련 상태가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 진정으로 수련에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두 여성 수련생이 우리 집에 머무는 3일 동안 나는 꿈을 꿨는데, 꿈속의 나는 꽃 화분을 정성껏 돌보며 끊임없이 물을 주었다. 후에 화분에서 연둣빛 새잎이 두 개 자라났다. 이 역시 사존님의 격려임을 깨달았고 현재 나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4대가 함께 생활하는 집이 있는데, 주인 남자만 빼고 가족 모두가 수련했다. 그 집은 멀어서 우리는 차로 이동해 그곳으로 갔다. 어느 날, 그 집 아들이 말했다. “그분들이 매번 법공부를 위해 멀리서 와주시니 이 법공부를 소중히 여겨야 해요. 그리고 평소에도 우리끼리 단체로 법공부를 해야 해요.” 이렇게 2, 3개월 정도 지나면서 그 집에서도 단체 법공부 환경이 이뤄졌고, 주인 남자도 가끔 같이 배워 “대법 책을 보고 나면 밤에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다”고 심득을 말했다.

나와 이 집의 여주인은 인연이 깊다. 그녀는 자신이 난관에 부딪혔다고 느낄 때마다 내가 자기 집에 왔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부님이 나를 보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비 넘기기가 힘들 때 그녀는 울기도 했다. 나는 고비를 넘길 때 드러난 사람 마음을 시시각각 그녀와 교류하며 격려했다. “수련인은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해요. 무조건 안으로 찾으면 고비는 분명 잘 넘을 수 있어요.” 교류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미리 그녀에게 알리고 데리러 갔으며 정기적으로 진상 소책자를 보내 주었다.

한 번은 그녀가 집안일에 얽매여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가 그녀의 집에 갔을 때 그녀는 집에 없었다. 그녀가 딸의 가게에 일을 도와주러 갔을 것이라 짐작하고 갔더니 가게 안은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서 말을 별로 나누지 못했다. 나는 발정념하여 그녀를 가지(加持)했다. 저녁에 가게 문을 닫을 때 우리는 갈림길로 걸어갔다. 어둠 속에서 아쉬운 듯 서로의 손을 잡고, 하고 싶은 말이 매우 많았지만 아무 말 없이 눈빛으로 서로를 긍정하고 격려했다. 헤어져 뒤돌아서는 찰나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사부님께 수련생을 가지해 달라고, 그리고 끊임없이 정념을 더해준다면 그녀는 반드시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날 그녀도 울었다. 나는 수련생이 고비를 넘을 때 그저 질책만 할 게 아니라 어려움에 있는 수련생을 더 많이 격려하고 가지해야 한다고 깨달았고, 이것도 선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새로 알게 된 수련생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 집에 초대해 식사하는 것도 내가 자주 쓰는 방식이다. 그리하여 평소 요리를 잘못하던 내가 차근차근 요리 솜씨를 익혔고 그들은 내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고 했다. 이유는 모든 과정을 다 신경 써서 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오랜 시간 동안 해이한 수련생이나 어머니의 수련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식사할 때는 모두가 여유가 있기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면 상대방이 쉽게 당신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랫동안 수련해 온 노 제자가 있는데, 그녀의 아들은 줄곧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고 여태껏 본인 앞에서 대법에 관한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이 어머니(수련생)는 전에 나와 교류할 때도 아들이 화낼까 봐 조심했다. 그녀는 아들이 어렸을 때, 자신이 경찰에게 납치되어 경찰차에 타는 것을 직접 보았기에 매우 큰 상처를 받았다고 여겼고, 우리가 아들을 만날까 봐 난처해했다. 마침 아들이 결혼 준비 중이라 함께 신혼집을 골라줄 사람이 필요해 수련생은 나와 남편을 데리고 아들네 집에 갔다. 우리가 신혼집 선택을 도와준다는 말에 그는 정중히 우리를 안으로 초대하고 차를 대접했다. 나와 남편이 옷을 잘 차려입고 말도 조리 있게 하고 외모도 둘 다 준수했기에 그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이렇게 사부님의 배치로 우리는 좋은 인연을 맺었다. 수련생의 아들이 대법책을 본 적이 없기에 대법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래서 당장 법을 배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대법 제자가 다 노인들만 있는 게 아니며 우리처럼 젊은 제자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했다. 그리고 나와 남편 수련생은 가정 경제 조건이 매우 좋으며, 가난한 사람들만이 대법 수련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했다. 이 사회에서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거들먹거리고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는데 우리가 보여준 절제되고 친화적인 모습에 그는 많은 감명을 받았다.

모든 것을 다지고 난 후, 우리는 그와 그의 아내를 집으로 초대했다. 이번 만남을 위해 특별히 집에서 바베큐를 준비했다. 오전 내내 고기 썰고, 꼬치 꿰고, 숯을 구웠다. 처음 만들어보는 바베큐인지라 주방 초보자에게 쉽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니 꼬치 하나하나가 수련 중에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이었던 것 같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 집에서 저녁도 먹자고 권유했다. 당시 식탁과 주방은 이미 난장판이 되었지만 나는 단 30분 만에 치웠다. 모든 과정이 마치 신들린 것 같이 진행돼 나 자신도 신기했다.

주방을 정리한 후 나는 그에게 많은 대법 진상을 알리고 자신이 법을 얻은 후의 경험을 공유했다. 만약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와 남편도 사회 젊은이들처럼 갈등을 겪다가 이혼을 선택했을 건데 대법으로 운명이 바뀌었다는 등등 오후 내내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에 나는 마음속의 진지함과 생명을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그에게 말했다. “모모, 법을 배워요. 대법은 얻기가 너무 어려워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그가 바로 승낙한 것이다. 그때 나는 엄청 기뻤다. 대법에 편견을 가진 사람이 대법을 이해하는 데까지 매우 짧은 시간밖에 안 걸렸다. 사존님의 자비로운 가지(加持)에 감사드린다. 제자가 최선을 다하면 모든 것에 가장 좋은 배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새로운 수련생은 집에 돌아가던 날 저녁에 제1강을 배웠다. 그 후 우리는 법공부 팀을 구성했고 그는 매주 왔으며, 시간이 있으면 집에서 아내와도 함께 법공부를 했다. 이전에 그들은 늘 싸웠는데, 법을 배운 후 두 사람은 다시는 다투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오랜 세월 아들이 법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마침내 이루어졌다며, 사존님의 제도에 매우 감사드린다며 울었다.

전염병 기간에 도시 전체가 봉쇄되어 수련생과 연락이 되지 않고 진상도 알릴 수 없었다. 사람을 구함에 큰 어려움을 겪게 돼 안타까웠다. 요즘 청년 수련생들의 상태도 걱정돼서 동네 봉쇄를 뚫고 조정 담당 수련생 집에 찾아갔다. 당시 그녀가 집에 없었고 그녀의 가족이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쪽지를 한 장 남겼다. ‘전염병 기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후 사이트 내 메일함으로 연락합시다.’

수련생은 내가 왔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내가 엄격한 봉쇄를 어떻게 뚫고 그녀들의 동네에 왔는지 모르지만 쪽지를 보고 수련생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메일로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고 다시 만났고, 그녀는 나에게 진상스티커를 가져다주었다. 수련생을 만나면서 정체의 힘을 느꼈고, 사람을 구하는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독거하는 수련생 A씨가 요즘 수련상태가 좋지 않아 졸음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혼자 집에 있으면 상황을 돌파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데려오려고 했다. 내가 찾아온 뜻을 설명하자 수련생은 완곡한 말로 거절했다. 아마도 그녀 배후에 있는 관념이 우리가 정체(整體)를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에 다른 수련생이 우리 집에 오면서 A수련생을 초대했는데 단체로 교류한 후 수련생은 곧 깨어났고 우리 집에 묵으면서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기로 했다. 이렇게 한 번 묵자 두 달이었다. 두 달 동안 아침에 같이 연공하고, 그녀가 퇴근하면 저녁에 같이 법공부 해 수련생의 상태는 한 주 한 주 좋아졌다. 초기의 부은 얼굴은 둘째 주에 정상으로 돌아왔고 안색도 뽀얗게 변했다.

A 수련생이 우리 집에 들어온 날, 또 한 수련생이 봉쇄된 단지 담을 뛰어넘어 마침 아래층에 서 있던 남편을 만났다. 모두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처럼 반가워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함께 발정념했다. A 수련생은 눈물을 흘리며 이 모든 것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배치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는 거의 매일 함께했고 정체를 이루었다.

나는 수련생을 격려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나눴는데, 생각지 못했던 것은 남편 수련생이 그 과정에서 집착을 완전히 없애고 정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법공부 하고, 연공하고, 발정념을 했는데 개개인의 수련 상태는 매우 잘 조절되었다.

여러 사람의 하루 세끼를 준비해야 하고, 때로는 예닐곱 명의 밥을 해야 했기에 이제 나는 주방 고수가 되어 식사 준비가 빠르고도 맛이 있다. A 수련생은 종종 농담을 던진다. “예전에는 가사도우미를 쓰던 사람이 지금은 거꾸로 우리를 모시고 있군. 내가 자네 집에 있는 두 달 동안 시어머니같이 대접을 받았어.”

​여기에 작은 에피소드도 하나 있다. 며칠 전에 머리를 감으러 갔더니 이발사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운전하는 차를 보면 돈이 많은데 당신과 당신의 아이를 만나 보면 겸손하더군요. 다른 부자들처럼 거들먹거리거나 경망스럽지 않아요.” 나는 말했다. “예전엔 저도 그들과 같았어요. 대법 수련이 저를 변화시켰고, 호들갑 떨 것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남편과 함께 대법 항목에 참여했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놀라운 일도 많다. 단체 법공부의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남편은 한동안 운전기사 역할을 했다. 법공부 날만 되면 그는 저녁 식사 후 우리 집 부근에서 B 수련생[우리 집은 시(市)의 가장 북쪽에 있다]을 태우고 시의 가장 남쪽에서 C 수련생을 태우고 마지막에 시의 가장 동쪽에 있는 D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를 한다. 대략 자동차로 45분 소요되는 거리였는데, 그렇게 5개월가량 매주 세 차례씩 운전하다가 설을 맞아서야 멈췄다.

그 해는 우리 집에서 차를 가장 많이 사용한 해였지만, 1년 동안 겨우 위반 기록을 하나 받았고 50위안(약 만 원)의 벌금을 냈을 뿐이다. 이전에 우리가 운전하면서 낸 위반 과태료 액수는 보통 네 자릿수 이상이어서 나와 남편은 이 일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졌고 대법 속에서 수련하는 묘미를 실감했다.

​수련생들을 만난 과정에서 나의 가장 큰 깨달음은 처음에는 그저 남을 돕겠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내가 나를 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법 항목에 참여하면서 남편과 나는 수련 상태가 잘 조절됐다. 아침에는 연공을 하고, 오전에는 법을 배우고, 오후에는 사람을 구하러 나가고, 낙오하거나 진취적이지 못한 청년 수련생을 적어도 매일 한 명씩 찾아다니며 교류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 마음도 많이 닦아 버렸다.

한 수련생이 ‘청년 수련생을 되찾는 일에 대해 당신은 타고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며 나를 평가했다. 일을 함에 있어 어려운 점이 없었는데, 이 모든 것은 사부님의 가지(加持)가 있었기에 이토록 순조롭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언어 능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사람이지만 내가 바른 일을 할 때마다 지혜가 샘솟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나 자신도 방금 한 말이 매우 조리 있고 역동적이라고 느꼈다. 어느 날 저녁, 법을 배우고 나서 우리 세 수련생이 집으로 돌아가던 중, 달빛이 우리 세 사람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나의 머리에 떠올랐다. ‘머지않아 우리는 각자의 우주로 돌아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반드시 이 귀한 성연을 소중히 여기고 주변의 모든 수련생을 소중히 여기며, 모든 중생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존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리며, 이 자리에서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씀을 올리고자 한다.

 

​원문발표: 2021년 8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24/429010.html